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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들의 일상생활에서 왕이 선택하여 밤에 행차하는 경우 그의미는 필수적인 잠자리가 마련되어졌는데,

이러한 왕의 선택에대하여 궁녀는 거부할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예외적으로 궁에사는 여자중 거부할수있는 사람이 왕후,황후들이었는데 이들의 거부권도 오로지 한가지 이유일때만 가능했고,대신할 역할이 주어져야 인정되어 질수 있었다.

춘향전에서 춘향이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는것이 오늘날에서야 죄에 해당하지 않는것이지,그당시 기준에서는 그러하지 않았다.오늘날에는 성적결정권이 여성에게 주어졌지만,봉건체제하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고,이것을 거부하는것은 죄에 해당하고,하물며 왕의 선택에 거부는 왕에대한 모욕적 반역과 동격으로 극형에 해당할수 있었다.

왕비나 황후들이 거부할때도 명분이 있어야했는데,생리하는 경우에만 인정이 되었고,이러한 경우도 왕후나 황후는 왕를 위하여 자신의 시중을드는 궁녀 가운데 한명을 대신 지정하여 왕과 잠자리를 하도록 정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중전의 시중을 드는 나인들중에 단한번의 잠자자리로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왕비나 황후등의 생리는 대면적인 거부권이 가능했지만,궁녀들도 여자인지라 생리하는 경우에 왕의 선택을 받았을때 거부할수조차  없게되는 숙명인데,이러한 경우는 애시당초 대면하기 전에 미리 왕의 선택권영역에서 내시나 환관등이 조언하거나 제외시켰다.왕비나 황후는 이에 해당하지 않을 뿐이었다.

왕에대한 궁녀의 잠자리 선택권은 궁녀에게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왕후나 황후도 자신의 기분에따라 거부할수없고,거부하는 경우는 투기로 몰아,사약을 통한 극형에 처해질수도 있었다.왕비나 황후가 왕이 밤에 자신의 침실에 들어와 잠자리를 하는경우,죄를 받지않고 거부할수있는길은 생리하는 경우라는 명분을 말할수 있었고,이러한 명분도 자신의 기분이나 투기에 해당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왕비나 황후를 시중드는 궁녀가 대신하여 동침하도록 시켰다.

이처럼 투기라는 죄명은 궁녀,왕후나 황후,일반여염집 여자들 모두에게 코에걸면 코걸이,귀에걸면 귀걸이에 해당하는 조항이었기에,봉건제하에서 여자에게있어 성적결정권은 전혀 주어지지 않았고 왕비나 황후라고 할지라도 스스로가 잠자리를 하고 싶다고 왕의 침소를 찾아갈수 없었고,신체적인 특성상 주어지는"생리"에 대하여도,왕이 기분나쁘지 않도록 대신 잠자리를 할 궁녀를 지정해 주는것이 투기에 해당하지않는 여자가 행하여야 할 덕으로 규정되어졌다.

유교사회에있어 궁녀,왕비등의 신분의 변화는 혼자의 운명이 아니라,그자신이 속한 일가친족의 삶과죽음을 가르는 운명공동체였기에,여자로서의 성적결정권의 기준은 자신의 기분이나 기쁨은 부차적일것을 숙명적으로 교육받아졌고,그것이 당연한것으로 사회적도리가 형성되어졌던 시대적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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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에게 물었습니다.인생이 뭐냐고,정치인에게 물었습니다.

인생이 뭐냐고 같은듯 하면서 다른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번을 읽어봐도 유치원생의 삶의철학이 가슴에 와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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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선조들의 초상화들을 보면 사람이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 정형화된 복식과 느낌을 주고,인간미의 얼굴이라는 느낌이 들지가 않는다.

거이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복사품 조각같은 느낌만을 가지고 있는거 같다.

실제 모습이 사진이 존재하지 않고,얼굴모습에 대하여 묘사 되어있지 않는 인물들인 경우는

상상적으로 창조해 낼수밖에 없겠지만,만들어내는 모양틀들이 되게 일률적으로 보여진다.

그당시 지역과 시대상 그리고 사람을 상대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업가적인 모습을 고려해봤을때 폼잡고 앉은 현모양처의 얼굴 모양보다는  실제 김만덕님의 모습은 이러한 얼굴스타일과 분위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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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기실험을 2차례나 진행했고,미국,러시아등의 핵강국들이 북한의 핵실험은 분명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가진 국가라는점에 의견이 없는것을 보았을때,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핵보유국임을 알수가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6자회담이라는 명칭의 회담을 왜 하는지 그것도 의문이다.핵무기는 개발단계까지는 제한하거나 멈추게 할수있지만,

핵실험을 해버린 경우는 어떠한 경우도 핵무기보유국지위는 변하지 않게된다.

중국이나 미국등이 가지고있는 핵무기를 모두 폐기 한다고해서 핵보유국지위가 사라졌다고 누가 그렇게 말하겠는가? 핵무기보유국의 지위는 실존핵무기를 보유했느냐,안했느냐의 핵무기존재 유무가아니라,핵실험을 해서 성공했느냐,안했느냐에 달린것이지,핵무기숫자에 달린것이 아니다.

단 한개도 가지고 있지않더라도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행했으면 자동적으로 핵보유국이 된다라고 생각하는것이 상식적으로 보여진다.핵무기 보유국의 지위가 결정 되어진것도,핵무기를 가지고있는 국가라는 개념으로 동일시하는 개념이 이상하다.

5개 상임이사국이 핵보유국 지위를 가진 이유가 ,그때당시 핵실험을하여 성공한 나라가 5개국뿐이었기에 핵보유국지위를 가진것임을 봤을때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핵보유국지위를 가진다라는 개념이 아님을 알수가있다.



핵실험을 성공한 국가기준을 핵보유국지위를 가짐을 알수가 있다.한민족은 어떻게 되었든 헌법상 북한도 대한민국의 일부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북한이 행한 핵실험 성공으로 주어진 핵보유국지위는 이미 주어진 현실앞에 되돌릴수 없는 상태임이 분명하다.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2차례나 실시한 국가는 향후 통일이 되어 단 한개의 핵무기도 가지않고 모두 폐기한다고 해도 핵보유국의 지위는 변하지 않는다고 본다.핵보유국의 지위는 핵무기를 가지고있느냐로 주어진것이 아니라,핵실험을 성공적으로 한 국가들에 주어진 지위로 보이기 때문이다.

통일된 한반도에서 한민족이 가지는 핵보유국지위는 향후 북한의 핵무기를 모두 폐기한다고 해도,세계9번째 핵보유국지위는 변함이 없음을 알수가있다.

"핵실험을 성공한 국가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갇는다."와 "핵무기를 가진 국가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갇는다" 어느것이 과학적이며,현실에 맞는 핵보유국 규정인가 생각해보면,핵무기실험을 성공한 국가가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지고있다라는 의미가 합당함을 알수가있다.

현실적으로 통일한반도는 북한의 핵무기를 모두 폐기를 한다고해도,핵실험을 2차례 성공적으로 진행한 핵보유국지위는 어떻게해도 변하지않는 통일한반도의 운명이라는 점이다.오직 우리나라 정부만 모르고 있는것 같다.이미 다른나라들은 한민족의 핵보유국지위를 되돌릴수 없음을 이미 핵실험을 2차례 진행한 국가를 ,잠재적 핵보유국이라고 할수도 없고,무엇으로 불러야하는지 그러한 사례가 존재 하지않기에 현실에 맞게  핵보유국라고 부를수 밖에 없다.핵실험을 진행하여 성공한 국가는 핵무기가 존재하든,존재하지않든 핵보유국지위를 가질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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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60년 6월21일 소정방이 이끄는 10만명의 당군이 인천의 덕적도라는곳에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한다.

소정방과 신라의 협력을 위하여,신라에서는 태종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을 소정방과 동행하게하여 군사를 이끌게하고,

태종의 첫째아들인 김법민은 김유신장군과 함께 군사를 이끈다.김법민은 훗날 왜적으로 침입으로부터 동해의 용이되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문무왕이 된다.

신라에게 있어 왕자들의 배치를보면 당나라의 군사보다는 김유신장군이 이끄는 군사에 더 중요성을 두었음을 알수가 있다.두나라가 작전회의를하여,660년 7월10일날에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백마강입구에서 모여 함께 사비성을 공략하는것으로 했는데,여기서부터가 백제의 계백 오천명의 미스테리가 시작되어진다.

먼저 백제측에서보면 당나라군사의 침략이 갑자기 이루어져 사비성을 친게아니라,20여일이 터울을 두고,신라의 영역이던 인천지역을 당도한후,대강의 작전계획을 신라와 짜고,배의 방향을 바꿔,백마강하구로 진격해드러 갔다면 이에대한 대비를 백제에서도 할수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을 알수가있다.

백제의 충신들이 당나라의 침공이 있기 4년전에 "전투가 벌어지면 당나라군은 백강을 넘지않게 하시고,신라군은 탄현을 넘지말게하소서"라고 계책을 올리는것을 보면,백제는 국제정세를 잘파악하고 있었고,고구려와 연합하여,신라를 공격했을때 어떠한 국제정세가 벌어질것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 알수있고,



당나라 수군이 직접 백강입구로 들이 닥친것이 아닌 인천에서 대규로 집결한후,다시 백강입구로 쳐들어왔는데,이에대한 대비를 할수있는 여건은 충분히 마련할수있는 상황이었다.그러나 백제가 보여준 전투다운 전투는 황산벌에서 벌어진 오천명의 군사들이 방어가,제대로 싸워본 처음이자 마지막기록이 되어진다.

여기서 드는 두번째 의문은 백제의 군사력이 신라를 압도했고,역사서에 패망당시 80여만호에 인구가 600만명이 넘었다고 하였는데,농번일치의 제도로 외적의 침입하면 남자는 모두 군인이 되는 제도로 보았을때,600만명의 절반이 남자라면 300만명,여기에 노인이나 어린이를 빼고,정상적인 젊은이를 최소한 10%잡아도 위급시에는 최대 30만명의 군사력을 동원할수있는 국력을 가졌다고 추측해 해볼수가 있다.

고려 광종때,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30만명의 광군사를 조직 할수있는 인적환경을 보았을때,고구려이든,백제이든,신라이든 아무리 어려울때에도 결전을 할수있는 15만정도의 군사는 마련 할수있는 국력이 삼국에는 있었음을 알수가 있다.

이러한 군사력이 추정이 가능함에도 신라군 자체로만 5만명을 동원하는 황산벌싸움에서 계백은 단지 오천명만을 가지고 출전할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을수 밖에없다.신라군은 인천의 덕적도에서 당나라군과 만났을때 작전회의를 통하여 당나라군의 배에는 신라의 두번째 왕자가 길을 안내하고 있었는데

백제의 지리를 선도할 신라군이 일정정도 함께 승선하여 백마강입구로 나아갔음을 충분히 예상할수있다.그러므로 신라의 원정군 규모는 김유신이 이끄는 5만명이외도,식량이든 군수품이든 당나라군사와 함께하여 지원할 공병.식량부대격인 신라인들이 동해하여 지원하고있었을 것인데,이러한 군사도 대략 2만은 넘었을것으로 볼수있다.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거나,당나라군의 변심에의한 공격을 방어하기위한 대비로 ,신라는 일정정도의 예비군사력을 신라지역내에 자체 보유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면,신라가 백제와의 일전에 대비하여 최소한 10만명 이상의 신라군을 움직일수있음을 알수있고,얼추 예상 삼국의 국력과 맞아 떨어진다.



백제의 군사들은 다들 어디에 가있었느냐라는 의문이 들수밖에 없는데,이것의 진실은 계백의 계급이 낮은것에 주목해야한다.오늘날에보면 병마원수라든지,수륙양용원수라든지 삼군통제사라든지,왕이 내릴수있는 직위는 여러가지가 있었을것인데,달랑 계백장군일뿐이다.달랑이나 달솔이나 발음이 비슷한것을보면,정말 달랑 그것밖에라는 의문이 들수밖에 없는 달솔의 계급을 가진 장군일뿐이었다.

이것은 훗날 백제가 멸망한후 신라에서 논공행상이 행하여졌는데 계백의 군사와 출전했던 달솔보다 위에 계급인 좌평 충상,달솔 상영등을 태종무열왕이 이들에게 일길찬이라는 높은관직을주며 후대하였다는 기록을 봤을때,아래것인 계백은 전사하고,그보다 위에 계급으로 참전하여 포로로 잡혔던 충상,상영이 신라의 높은 관직을 하사받는것을보면 백제가 신라군을 맞아 싸운 황산벌의 백제군 규모는 오천명이 아닐수있고,오천명을 제외한 군사는 싸우지않고 항복했거나,그렇게 되겠끔 충상,상영이 협조했기에,그에대한 공으로 신라의 태종이 관직을 제수했음을 유추해 볼수가 있다.

계백의 이끈 오천명은 별동대고,그와 함께 출전한 본진은 최소 3만이상의 백제군이 뒤에 대기 하였다라고 할수가있다.삼국사기의 기록은 삼국의 초기국가부분의 신뢰는 미약하나,그이후에 기록되어진 역사기록의 정확도는 아주높은데,계백이 오천명의 결사대로 싸웠다라는 기록이 사실에 부합하다라는것을 부정할수없고,그렇다면 이해될수없는 백제의 국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황산에서의 군사수는 충상.상영의 논공행상에서의 부귀영화에서 답을 찾을수 있을것같다.

이러한 결과가 아니라면,어디에선가 역사에 기록 되어지지 않은 백제군이 대규모의 피해를 입은 전투가 있었다는 것인데,이러한것이 있었다면 삼국사기에는 없다해도 중국측 역사서나,일본역사서등에는 있어야할것인데 전혀없는것을 봤을때,계백은 싸움에 있어 선봉대역할을 했던 특공선발대를 이끌었던 장수의 하나였을 뿐임을 알수가 있다.

특공대가 무너지자,백제군의 본진은 우두머리들과 함께 그대로 항복해버린 상황으로 보는게 자연스럽고 다른방향인 당나라군사를 대비한 백제군의 본진도 보전되어 그쪽에서도 황산벌싸움과 비교되어지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역사의 단편적 기록들로 미루어 짐작할수가 있다.신라군이 합류할 약속시간까지 미리맞춰 백강하구에서 상륙작전을 진행하던 당나라군이 신라군이 올 동안 전진하지않고 있다가,김유신장군의 신라군이 늦게라도 합류하여 앞으로 나아가자하는데도 소정방군이 머뭇거렸다는 기록을보면 소정방은 단독적인 백강하구상륙전에서 대대적인 백제의 공격을 받았고,그영향으로 더이상의 전진을 하지않고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도 신라군을 기다렸다고 볼수있고,

이후에 신라와 당나라군이 합세하여 사비성의 8킬로 지점에 이르렀을때 다시 대대적인 백제군사의 반격이 있었는데 중국측 역사서에는 이때 일만명정도의 백제군이 죽었다라고 했음을 볼때,포로를 감안하면 2-3만명의 백제군이 공격했음을 알수가 있다.

660년 7월10일날에 백강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던 김유신의 신라군이 예상기일인 660년 7월11일 늦은오후에 백강입구에 당도했을때,소정방이 김유신장군의 부하에게 늦게 당도한 책임을 물어 참수하려고 하자, 도끼자루를 손에들고 소정방등의 당나라장군들을 바라보며 황산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하는것들이 늦은책임을 물으려하다니,당나라군사를 먼저 없애버리고,백제를 치겠다라는 기록이 남겨있음을 봤을때,

김유신의 사내다움은 삼국의 제일이요,대국의 군사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음을 알수가 있고.이러한 모습은 한번 어쩌다가 아니라,김유신장군 자체가 지나온 전사에있어 기록이 말해주고있는데,

김유신이 아버지와 함께출전하여,고구려와 싸울때 신라군이 고구려군을 두려워하여 사기가 떨어지자,아버지에게 말하고,혼자 적진으로 들어가 상대방 장군의 목을 베어서 돌아와서 그기세를 몰아쳐서 이겼다는기록이나,황산싸움에서 김유신의 친동생 아들인 반굴 그리고 사촌의 아들 관창등이 홀로 적진에 드러가 싸우다 전사했다는것등을 보면,

김유신장군이 살아온 무인의 길이,자신과 자신의 집안사람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생명을걸고 전투에 임하는것을 기본으로 했음을 알수가 있다.뒤에 앉아서,돌격하라의 장군스타일이 아니라,나를 따르라하며 앞으로 먼저 나아가 싸우는 장군 스타일이었음을 알수가 있다.

반굴과 관창이 희생양이라고 하는데,어찌보면 맞지만,김유신이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홀로 적진에 들어가 적장의 목을베고 돌아와서 승기를 잡았듯이 반굴과 관창이 계백의 목을 치고 가지고 돌아왔다면 반드시 죽어야할 운명은 아니었다.단지 반굴과 관창은 그러할정도의 운명의 그릇을 가지고있지 못했음이다.

계백이 신라대장군 김유신을 두려워한 이유도,김유신장군이라는 사람됨이 자신을 따르는 부하의 목숨을 자신의 아들과 친척들보다 못하다 생각치않고,오히려 힘든상황일수록 먼저 자신들의 가족들이 솔선수범을 보이도록 행동했다는 점이다.김유신 장군의 참모들에게 유독 김씨가 많은데,이러한 인물들이 공통점은 가장 어려울때 가장먼저 선봉의 죽음을 맞이해야함을 김유신의 삶의 행적을보면 이미 각오하고 참전함을 알수가 있다.

계백은 마지막 순간에 전사하면서도 이러한것을 생각한다.왜 자신은 죽고,김유신이 승전의 장군이 될수밖에 없는지,왜 자신은 달랑 오천의 군사만을 가지고 싸워야했는지, 백제가 김춘추와 김유신의 분노를 만들어내게된 원천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등을 말이다.

김유신과 김춘추의 백제 정벌전이 벌어지기 이전에 자신의 장녀가 대야성에서 백제군의 윤충에게(이사람의 집안은 백제에게 병주고 약주는 집안이 되는데,위에 형님인 성충은 백제의 3충신이 하나가되고,이사람의 동생인 윤충은 신라의 김춘추와 김유신장군의 불구대천의 원수의 감정을 갇게 만들어 내어 백제패망의 근원적 감정을 만들어낸 장본인인데,특이하게도 이들은 실무진급 장군들이아니라,부여씨를 성으로하는 왕족 집안출신이라는 점이다.실무자급 장군이었다면 김춘추의 장녀의 머리를 베어 사비성으로 보내는 이러한 원한의 감정을 갖게할 짓을 독단적으로 처리할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든다.)목베여 죽여졌다는 소리를 듣은이후로 미친사람처럼,자신의 장녀를 그리워했으며,그 분노로인하여 술이 밥이었다고 전해지고있다.

김유신은 자신의 동생의 딸이 목베여져서 그머리가 사비성으로 보내졌다는것을 알고,한 하늘을 이고 같이 존재할수없는 나라라고 규정하여,분노에찬 정벌을 계획하게 되는데,목베여진 머리가 사비성으로 보내진후 6년이 넘어가도록,유해를 돌려받기위해 노력하다가,김유신 자신이 포획한 백제우두머리급 장수들 8인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신라로 유해를 돌려 받았을만큼,김유신에게 있어,목베어진 동생의 딸에대한 복수의 칼날을 가는 시간이 일반인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의 기다림이었다는 점이다.대야성에서 목베어진 여자에대하여,나중에 문무왕이되는 김법민이 항복한 백제태자에게 분노하여하는 말이나,김유신의 혼신을 다하여 유해를 돌려받으려고 했던 기록등을보면,이복누이라기보다는 친누이로 판단하는것이 자연스럽다.

어찌되었든 그당시 김유신을 건들이고는 나라의 멸망을 각오해야할 만큼,절대적인 부하들의 믿음과 신뢰를 김유신장군이 갖고있었음을 알수있고,고구려의 연개소문조차도 김춘추를 죽이려했지만,그후에 닥칠 김유신장군과의 일전을 두려워하여 살려보내줬음을 김춘추와 김유신의 약속의 기록을 보지않더라도,실제로 연개소문이 김춘추를 죽였다면,백제가 먼저 멸망하는것이아니라,고구려가 먼저 대상이 되었을것을 김유신의 행적상 능히짐작할수있다.

오늘날 역사인물들에대한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오천년역사의 제일의 장군을 뽑으라면 연개소문,계백,이순신등이 많이있지만,제일은 신라의 김유신대장군이다.천오백년이 지난 오늘날에 그 많던 왕이나 영웅호걸들의 무덤은 어디에있는지 전해지지 않는것이 다수이지만,김유신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나라의 흥망성쇠로 국가명들이 여러 바뀌었지만,그의 무덤은 어느나라 시절이던간에 잘보전하여,후세에 전할 위대한 장군이라는 개념으로 관리되어 계속이어져 왔다는점이다.

오늘날의 한민족의 뿌리가 어디서왔는지 아는분들이 드문것같다.오늘날의 한민족이라는 민족개념을 만들어낸것은 김유신대장군이후에 생긴것이고,김유신장군이 없었다면 한민족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을것임을 알아야한다.대한민국인이면서 대한민국의 한이라는 개념이 어디에서 나온것인지 모른다면 부끄러운것이다. 한민족의 개념을 말하고,일통삼한이 한민족이 되어야함을 유언을 할정였고,그것이 죽어서도 소원이라고했던 김유신대장군의 애국혼을 모르고는 한민족을 말할 자격이 없다.한민족을 만들어낸 오천년 역사의 제일의 장군인것이다.



백제의 사비성이 함락되던날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강물로 뛰어 내렸다고 하는것에 패망의 군주를 험담하기위해서 숫자를 부풀렸다고 하는데 이러한것도 그당시 백제라는 나라의 풍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록된다.삼국시대에는 순장이라는 풍습이 존재했는데 왕과 관련되어진 여자들은 왕이사후,같이 자결하거나 무덤에 뭍히는 전통이 있었는데,백제의 패망의 순간은 다시는 돌아올수없는 국가의 상태를 의미했고,의자왕의 기록되어진 아들들만도 40여명이 넘었음을 알수가있는데 그만큼의 아들이 태어날려면,비율상 여자들도 그만큼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의자왕은 보통으로 잡아도 100여명의 아들딸을 슬하에 두었음을 알수가 있고,

궁녀라는 신분이 잠자리를 같이하는 궁녀만이아니라,밥을 짓는 궁녀,옷을 담당하는 궁녀등등 여러부류의 일을 담당하는 여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통칭하여 궁녀라했기에,600만명의 인구를 가졌던 백제가 3천명의 궁녀가 있었다는것이 믿을수 없다는것이 무지다.잠자리하는 궁녀라는 개념으로 받아드린다면 말도안되는 숫자이지만,궁녀라는 개념이 그렇게 쓰여진것이 아니라,궁의 일을하는 모든 여자들이라고 받아드리면 이상할것도 없다.



일주일정도 항전하던 사비성의 마지막날 당군이 들이닥쳤을때 당군과 신라군이 백강입구에 도착하여 집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지 3일도 안돼어 먼저 사비성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도망간 의자왕과 귀족계층은 살아남고,왜 궁녀들은 거이 대부분 강물에 몸을 던져을까하는 의문이 생길수도있다.이것은 궁녀라는 직업이 모두 여자였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면 당나라군사들에게 치욕적인 행위를 당하다가 죽거나,노예로 당나라에 끌려가 팔리는 신세가 되어짐을 충분히 예상할수 있었고,오늘날은 조금 개방적으로 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근세에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정조를 중요하게 여겼는데,하물며 왕을 위한 순장까지 명예로운 전통이라고 남아있던 삼국시대에서 이민족에게 정조를 빼기는것은 왕의 아내로 규정되어지는 궁녀라는 신분의 여자들에게는 삶보다 더한 불명예였기에,왕의 여자로 죽는것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함이없이 낙화암에서 몸을 던질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낙화암에서 백제의 꽃다운 궁녀들이 강물에 몸을 던져을까? 그런 의문이 든다면,그렇다에 목숨을 걸것인지,아니다에 목숨을 걸것인지 선택하라면,그렇다에 백번이라도 거는것이 지혜로운 판단이라고 할수가 있다.낙화암에서 있었던 궁녀들의 애국혼은 그만큼 신뢰 할수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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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의하여 패망하던 긴박한 상황하의 백제는

어떻게 대처하고 움직였는지 역사속 실존인물의 행위기록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봤더니.......

백제의 패망군주 의자왕의 백제는 대외적으로는 신라를 압박하여,신라가  나라 날의 존망이 염려할만큼 막강한 백제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지휘했던 왕이었고,

실제로도 신라보다 더 큰 군사적.경제적능력을 가능케 환경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었던 신라보다 객관적으로 강했던 국가를 만든 왕이었다.

의자왕은 생각하였다."내가  백제의 국력을 신라를 완전히 압도하도록 만들었는데,그 공이 적지않고 높다.그러므로 이러한 국력의 결과는 나의 아들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것이 당연하다.내가 좀 정력이 쎄서,아들들이 40여명이 넘는데 이들을 모두 우두머리급으로 임명을 하고자하니 지방세력들은 잘알아서  처신하도록 하라"

백제에서 지방세력들은 백제라는 나라를 구성하는 지분을 가진 군사력을 자체로 보유한 세력들이었지만,대부분의 지역은 속으로야 어떻든 겉으로는 왕의 명에 순종을 하였다.그러나 전주와 나주의 세력들은 다른지역보다 좀더 강한 지역세력의 힘과 군사력을 보유했기에 백제왕이 뭐라고하든  대놓고 불평할 만큼의 세력 전통이 유지되어지고 있었다.(후삼국시절 나주가 고려의 후백제 정벌의 선봉대 역할지역이 될수있었던것도 이러한것과 무관치 않았다고 볼수있다.)

우리나라가 외적이 침입을 당했을때 왕들의 피난경로는 중국에서 내려오는 외적에 맞서 남쪽으로 몽진하며 이동하였고,일본쪽으로 들어오는 외적에대하여는 북쪽으로 피난을 가는 형식의 역사기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백제의 마지막날 당나라 대군이 밀려드는 순간에 의자왕은 남쪽으로 피난을 간게 아니라 엉뚱하게도 북쪽지역으로 북상하여 피난루트를 잡았다는 점이다.백제 의자왕에게 있어 마음속에는 남쪽으로 내려가는것보다 북쪽으로 올라가는것이 더 심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다고 볼수있는데 이러한 행태는 우리나라의 기본적 피난루트와는 의외라고 볼수가 있다.

백제의 우두머리급 관직들은 모두 의자왕의 아들들이 들어차게 만든 의자왕이었기에,실질적으로 능력을 발휘하여 백제를 방어할수있는 층은 계백장군같은 실무진 급들이었다.백제의 마지막의 상황을 구성해보자.

의자왕:나의 잘못된 관리임명으로인하여 실질적으로 백제를 방어하여 지킬수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 대부분 등지거나 죽어서 별로 없는상황이 되었소,계백장군은 지방세력들이 마음을 돌려,그래도 나의 허물을 탓할지라도 국가의 종사는 망하게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들어 지원군이 올 동안 시간을 벌어주시오.

계백장군:신명을 바치겠습니다,전하.(애원하는 왕을 바라본 계백의 심정은 이미 백제의 앞날이 망조로 진입함을 느끼고,살아 돌아올수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백제흥망의 열쇠는 당나라군이 아니라,신라군이었기에 신라군만 꺽을수 있다면 백제에 일가닥 승산이 있었지만,상대방 장수가 신라대장군 김유신임을 듣는 순간,계백은 희망조차 없음을 알고,집으로가 집안정리를 먼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계백이 자신의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면서 읍조리는 말이 "전하,어찌하여 김유신의 손녀를 죽여,김유신이 백제에대한 불구대천의 원한을 갖도록 만드셨는지,그것이 여한입니다.김유신의 분노가 백제를 망하게하니 김유신을 신라에 태어나게한 하늘의 운명을 어찌하겠습니까 " 

신라와당나라의 대군이 사비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자,의자왕은 마지막 백제의 혼을 보여주고자 끝까지 남아 항전하려고 했으나,의자왕의 아들들끼리 줏대없이 여자에 홀려서 태자를 왔다갔다 바꾼탓이니,항복을 할지언정 항전하여 내가 왜죽어야하오,죽기 싫소하니,의자왕은 어쩔수없이 항복하겠다는 아들세력을 사비에 남겨놓고 항전하겠다는 아들들은 데리고 밤에 몰래 북쪽방향으로 길을잡고 이동했다.

역사의 가정을 할수있다면,이때에 의자왕이 북쪽방향과 남쪽방향의 피난방향의 선택에서 남쪽으로 갔더라면 망하는것은 막을수는 없었더라도 치욕스럽게 부하의 배신으로 당나라왕에게 바쳐치는 뒤통수맞은 패망군주라는 불명예는 더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주와 나주세력에대한 백제지배세력의 뿌리깊은 불신이 그쪽 방향으로 피난방향을 잡지못한 원인이 될수도 있었겠지만 그당시 백제와 일본과는 사이가 나쁘지않았기에 만약에 의자왕이 전주나 나주쪽으로 피난가 전주출신 여진족으로 살과피를 섞었던 조선의 전주이씨왕조의 선조임금처럼,

자신의친족과 가까운 방향인 북쪽의 의주쪽으로 도망가 여차하면,중국으로 튈거여하고,버티고 실제로 일본으로 튈생각을했다면 의자왕은 망하지않고 후대를 이어 갔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선택에서 의자왕은 북쪽방향으로 나아갔고,결국 짱깨쪽 귀화세력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아쉽다.의자왕이 통치시 최소한 전주와 나주에 공을 들여서 잘다스려 놨고,그쪽방향으로 피난을 가도된다는 믿음이 생겼다면,의자왕도 조선의 선조처럼 충신들은 다 죽게만들었을 망정,스스로의 안위와 부귀영화는 끝까지 유지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선조임금이 북쪽방향으로 도망길을 잡아서 결국 명나라가 조선에 지원군을 파견해서 도와줬고,전라도지역이 보존되어 이순신이 이곳 경제력을 바탕으로 왜적에 맞서 결국 승리했던 과정과,의자왕이 남쪽방향인 전라도방향으로 피난을 가서 버티다가 일본의 지원군이 올때까지 뒤통수 맞지않고 버텨 항전했다면,역사의 방향이 바꼈을수도 있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일본은 명나라처럼 시기가 늦었지만 분명하게 백제에게 지원군을 보낸것을 보면,선조처럼 백성이 죽든말든,충신이야 되지든 말든 도망의 귀재로 단지 운명의 동전을 어느쪽 방향을 선택했으냐에.......걸어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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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배돈: 어린아이들에게 웃어른이 주는 돈.
복돈:새배돈을 받을 나이가 지난 사람들에게, 새해에 복을 받으라는 의미로 주는돈

복돈을 받았다.새해에 복많이받고 돈이 많이들어와서 부자가되라는 복돈을 받으니,액수에 상관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ㅎㅎ 복돈 받았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만수무강하세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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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가?

                                                                   눈물나는가?

                                                                   감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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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 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선사(1262-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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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만나지 말아야할 10가지 유형의 남자중에 최악의 남자는

여자에게 돈꿔달라는 남자가 1위,나머지 9가지 순서는 아래의 순서대로,


10가지중에 5가지 이상에 해당하는 남자를 만나고 있다면


앞으로 스스로의 자구조치가 필요하거나,운명에 대하여 생각해봄직 하다. 


                                                            1.돈꿔달라는 남자.


                                                   2.전화안받기 일상다반사인 남자.



                                                         3.30분안에 내려오는 남자


                                                              4.운전을 못하는 남자


                                                             5.말귀가 느린남자


                                                        6.제사를 지내지 않는 남자


                                                       7.운명을 믿는 않는 남자


                                                         8.총을 안쏘아 본 남자


                                                      9.집안 노가다를 못하는 남자


                                                       10.책을 읽지 않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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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은의 사주를 풀이해보면,향후 8개월안에 변고가 생길 운명을 가지고있는 사주에 해당하고 자체적으로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할수있는 제왕의 운을 타고나지는 못했으나

조력을 통한 협력적 우두머리운을 함께가지고있는 특이한 형이고,

스스로의 변화에따라 운명을 바꿀수있는 여지는 있는 숙명에 해당한다.

8개월의 한시적 생명을 부여받은 운명의 김정은을 기대하고 정책을 펴나가는것보다


8개월이후에 닥쳐올 북한의 공백상태에대하여 지금부터 미리 준비하는것이 현명하다고 보여진다.8개월후의 북한의 미래를 결정할 운은 장성택이니 군부가아니라,희안하게도 김경희와 김정남에게서 나오고 있다.

이 두사람의 역할에따라 중국보다 못살고 빌어먹는 북한의 상황을 계속유지해 나갈것인지,중국을 능가하는 통일한반도의 역할을 만들어갈 초석이 될지가 달려있다.



김정은의 운명은 8개월 시한부인데,김정은의 사주는 그러한 운명을 스스로 바꿀수도 있는 숙명도 함께 가지고있 특이한 형인데,그것의 판단은 김정남과 김경희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있다.그들을 협력자로서 끌어들이고 힘을 합친다면,협력적 우두머리운에 해당하여 시한부운명을 비껴갈 운에 해당하지만,그렇지않고 정반대로 김정남을 제거하는 형제간의 피바람이 불거나,김정일의 장례식에 김정남의 모습이 전혀보이지 않는다면 김정은의 운명은 향후 8개월로 종지부를 찍을 사주팔자이기에 김정은에 대하여 기대어 정책을 펴거나 예측할필요가 없겠고,



8개월이후의 북한의 공백상황이 되었을때 필요한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하여 긍정적으로 유도할수있는 힘을 가진 김정남과 김경희에대한 예비채널을 김정일의 장례식모습을 보고 향후예측이 가능하기에 연결고리를 미리확보하고 지금부터 대비하여야 한다.

왜 김정남과 김정은을 밀어주고있다는 김경희 서로 상극이아니라 뭉치고 발전하는 협력하는 사주팔자를 가지는 특이한 인연을 가졌는지는 두사람만이 알겠고,김정남과 김경희는 사주상으로 서로가 떨어질수없는 숙명을 가지고있다.김정남이 죽으면,김경희가 죽고,김경희가 죽으면 김정남이 죽는 삶에있어 공동운명체 사주로 묶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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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림과 인간의 삶의 한계를 표현할때 백년이라는 시간단위가 어색하지않다.

거이 대부분은 백년도 못살 사람의 일생을 살다가 가지만 사물들은 백년의 흐름쯤이야 가뿐하다.

백년의 시간이 흐른후 변한 사물들의 모습은 그자체로 아름다운것도 있고,그저 그런것도 보인다.

7가지의 백년의 흐름을 보면서,시간은 결코 동일한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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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쓰레기통에서 발견되는 물건중에 비경제적으로 가장많이 버려지는 쓰레기가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공항에 갔을때 쓰레기통속에는 사람들이 어떤것들을 많이 버릴까하고 쳐다봤네요.



딴곳에서는 거이 버리지 않을것같은것들이 무수히 버려지고 있었는데요.


                                          무엇일가요? 쓰레기통속으로.......

                                        공항의 쓰레기통속에는 일회용라이타들이 많이 버려지네요
                 이러한 이유는 1번:공항에만 오면 금연을 결심하는사람들이 많아서(?)  2번:공항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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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에서 글을쓰고 저장을한후 발행을 하려고 했을때 어느때부터인가 "저장하지 못했습니다"라는 오류메세지가 나타났는데,

익스플로어창을 하나 더열어서 살펴보면 정상적으로 발행되어진 상태인데 글을 쓴 화면상태에서는 저장하지못했습니다라는 오류창이 그대로 보여진다.

이러한 오류를 해결하기위하여 임시로 앞글을 저장하여 발행하고난후

다시 글을 적어 발행한후 앞에 글을 삭제하면 해결될것이라는 "티스토리 지식글"을 테스트해보고 해결책이 되는지 실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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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와 같은 메세지가 나타나게된다.

인터넷익스플로어 기본설정복구-시작프로그램-모두사용안함-재시작-해결안됨
방화벽문제인가 사용안함-사용함으로-해결안됨
한달전으로 시스템복원-해결안됨
백신프로그램완전제거-해결안됨
타브라우저삭제-해결안됨
결국 포기,포멧및재설치-해결안됨.
구관리와 새관리에서 새관리로 저장-성공...의외의 결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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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스트하기위하여 적은 앞에글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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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하지 못했습니다"라는 오류창을 확인하면,위에그림처럼 "이 페이지로부터 벗어 나시겠습니까?"라는 오류메세지도 나타날수가있다.쓴 글이 사라지는것은 아니기에 확인하고 나가버리면 된다.
위에 표시된 방법으로 해결이 안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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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플로어8로 업데이트-해결안됨,백신프로그램실시간감시 오프-해결안됨
결론:개인컴퓨터의 상태문제가아니라 서버자체의 문제인것 같다.

최종결론:티스토리 구관리의 종료(4.7)를 앞두고 나타난 오류였군요.새관리버전에서 글을 저장하거나 수정저장하는 경우에는 저장하지 못했습니다라는 오류메세지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티스토리 공지사항을 살펴보니 글쓰기에서 구관리버전이 종료된다고 예고되었었군요.지금까지 구관리를 계속써왔는데,새관리로 사용해야겠네요.가끔식은 공지사항도 읽어보자의 경험을 얻었내요.엉뚱하게 컴퓨터문제인가하고 포멧하고 재설치까지 했으니,에휴.......공지사항을 읽어봤다면 쉽게 파악했을것인데 쉬운해결을 어렵게 돌아돌아가서 제자리로 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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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인간은 선천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지며,국민들은 독재자가 법을 지키라고 주장하더라도 독재자를 징벌할수있는 법보다 상위인 저항권을 행사할수있는 천부적권리를 가진다"라는 시민혁명의 전통과사상기반을 확립하여

민주주의 기초토대를 확립한 제1의 나라 프랑스,자신의 안위와부귀를 위하여 국민을 무참히 폭압하고 압제하여 학살하는 리비아의 카다피를 응징하는 국제적인 이슈에대하여

그 어떠한 나라보다 제일 먼저 군사적응징을 실천한 프랑스의 정부와 국민들의 단결력을 보면서,역사적인 순간에 선구자적 책임을 실천하는

프랑스에대하여 왜 자유와인권의 선진국이며,문화예술의 선진국인지 느낄수 있었다.자국에 이익되지않는 일에대하여는 외면해버리는 국제현실속에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자유와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국제적 책임의식"을 보여준 프랑스의 국민과 정부에 감동한다.

그에 비하면 국제사회의 도움과노력으로 국민들의 자유와인권을 지키고 성장발전해온 우리나라가 보여주는 행동은 말뿐이라 부끄럽기 그지없다.

도움을 받았으면 응당 도움을 줘야하는것은 나라와 나라간의 일이아니더라도 인간의 마땅한 인지상정의 도리인데,카다피의 응징에 아시아의 단 하나의 나라도 참여하는 나라가 없다는것은 부끄러움 이전에 피로써 이루어진 자유와인권의 역사적책임에 몰염치라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아시아 나라가없다가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자유와인권에대하여 국제적 책임을 다하는"대한민국이 있습니다"라고 보여줘야할때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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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멧과 운영체제 재설치에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왜 간단한 이러한 작업에 있어서도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발생할가?

그이유는 다양한 지식과경험에서 나오는 부가적설정들에의하여 차이가 발생한다.


일반적인 어렴풋이 배워서 포맷과운영체제를 설치하여 사용하는 컴퓨터와 전문가스킬이 포맷하여 재설치한 컴퓨터는

똑같은 컴퓨터를 작업했다고해도 바이러스나 기타 오류나 고장비율에서는 차이를 나타내게된다.


과연 어렴풋이 배운스킬이 착각하거나 소홀히하는 문제들은 무엇들이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첫번째:메이커컴퓨터는 그자체가 정품운영체제인데 듣보잡 시디로 운영체제를 깔아놓고 괞잖다고 생각하는 황당함.메이커컴퓨터들은 메이커회사들에서 배포하는 시디로 깔아주는것이 좋다.

둘째:운영체제 재설치를 단순히 포멧하고 재설치하고 드라이버를 잡아주면 끝이라는 생각.운영체제 재설치는 설치가 다끝난후 부팅과 속도및 오류메세지등에 관한 소프트웨어적인 다양한 부가설정들 해주는냐,안해주는냐의 차이에따라 사용상 자잘한 오류발생빈도가 적어지게되는데 이작업은 지식과 경험에따라 그설정 부분이 많아지는데 이러한부분이 부족한다.

셋째:일반적으로 학교리포터나 사회생활상 프리젠테이션등으로 인하여 컴퓨터사용상 필요로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최적화(?)를 소홀히한다.

넷째:윈도우업데이트는 필수적인데,시간상또는 귀찮음상인지 그까이거 사용자가 알아서 해야지 모드의 차이를 만든다.

다섯째:운영체제를 깔려고하는 경우 다양한 듣보잡 시디들을 분해하는 안목이 부족하다보니 바이러스나 기타 악성프로그램등이 첨가된 좀비가 포함된 프로그램체제를 설치할수가 있는데 이러한것에 주의를 기울임이 부족하다.

여섯째:전문가스킬은 운영체제를 설치한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고 불편함을 최소화해주려고하지만,어렴풋이스킬은 아 내가 포멧하고 운영체제 재설치할수있구나 잘했어,잘했어 현재만을 생각하고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한다.실상 전문가스킬들은 운영체제를 설치한 컴퓨터의 자잘한 설정상태를 몇개 열어보면 이것이 잘설치된것인지,어설픈이가 설치한것이지 금방 파악할수가있다.

일곱번째:전문가스킬이 설치한것과 어설픈이가 설치한것이 가장큰 차이점은 설치된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입에서 나오는 "원망과 욕"의 빈도로 알수가있다.어떤 고장이나 오류가 생길때마다 어설픈이가 설치한 경우"그 눔이 설치하고 간이후로 이모양이다"라는 말을 다반사로 듣게된다.

옛말에 능숙한 목수는 연장가는 시간이 많이들고,어줍잡은 목수가 일을 서둔다라는 말이있다.무엇인가를 할수있다는것과 능숙하게 할수있다는것은 분명한차이로 나타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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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푸르름을 유지하며 자라는 채소들이 사람의 몸에 좋은 이유는 낙엽이 떨어져 생장을 멈춘 나무와식물들과는 다르게

눈 덮인속에서 녹색잎이나 뽑내며 자라는 강인함에 있다.눈내린 양파밭의 모습은 그자체가 아름다움이다.

사람도 추워서 꽁꽁 숨어 버리는날에도 의연하게 눈속을 뚥고 나와 녹색잎을 드려내며 굿굿이 서있다.


양파의 효능이야 나보다 전문가들이 더 잘아는 분야이겠고,


눈덮인 양파의 모습은 어떨가 궁금해서 사진으로 찍어받다.왜 양파를 사랑하는것이 좋은건강을 유지할수있는 비결인지 현실의 모습으로 체감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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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은 누가 될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할수 있는것은 고래로부터 내려온 수많은 예언서들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그시대가 요구하는 시운에 따른 "운명"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란 직책자체가 시대의 부름에 선택되어지는 사람들이기에 아무리 자질이있고 능력이 있다고해도 시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거슬려 될수가 없게된다.


18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사람은 어떠한 운명을 가진 시운을 타고 났는지에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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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했던 역사의 기록을 가진 성씨를 가진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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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관을 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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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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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의 기운을 받은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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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와 연관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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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성을 가지지 않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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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이 여자인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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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추웠으며 제주도 바다가 얼어버렸을까? 2011년 새해벽두부터


몰아치는 올해의 기습한파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고있는 사진이다.


바다가 언다는 이야기는 북극이나 남극에서나 볼수있다고 생각했는데.......


펭귄들이 조만간 남쪽으로 내려올듯^^;;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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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들에서 나눠주는 자동차 엔진오일등의 정비할인쿠폰,이것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이익일까 생각해보았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자동차를 이용하여 부품이나 오일류를 사기치는것들이 주위에는 너무많은것 같다.자동차는 안면이 있거나,신뢰할수있는 곳을 가야한다는것을 느낀다.

보통  엔진오일 교체 2만원,3만원,무료등의 할인쿠폰의 유혹으로 프랜차이즈 비슷하게

대기업마크를 달고 주유소등에 이웃하여 자동차를 고치는곳으로 찾아가면,



사람이 자동차정비에대하여 어리숙하게보이거나 여자분들에게는 무조건 10에9은 엔진오일할인쿠폰으로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일부러 찾아간사람들을 등쳐먹는게 다반사다.일명 다른 오일류 교환권유이다.

엔진오일을 갈려고간 사람에게 생명이 위험이 있다느니하면서 브레크오일을 갈아야한다느니하면서 덤탱이씌우기는 가장 기본적이고,일부 악덕사기꾼들인경우는 고장나지도 않은 멀쩡한 부품을 고장이라며 고쳐야한다고하는 경우도 있다.

잘생각해보면 할인쿠폰으로 적용받는 항목만을 교체나 교환받았을때는 경제적이고 소비자에게는 이익이겠지만,악질사기꾼들은 할인받는 엔진오일 교환을 기회로 할인되지않은 다른부품이나 오일류를 무조건적으로 권유하게된다.

결과적으로 할인받는 소모품이외의 다른부분의 교체나 교환은 일반 카센터나 다른곳에서 교환이나 교체받는 비용보다 오히려 더 비싸게 등쳐먹는다.그리고 이러한 엔진오일교환쿠폰 기회를 활용하여 다른 오일류의 교체를 권하는 사기꾼들이 특징이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사후a/s를 요청할때는 절대로 소비자들이 원해서 오일류를 갈아준거지,자신들이 권해서 갈았다는 뉘앙스는 전혀없다.

자동차보험이나 카드실적이 좋아서 보험회사등에서 주는 자동차정비  엔진오일등의 무료나 할인쿠폰의 사용은 정해진 딱 그항목만 교체하고,실제적으로 다른부품이나 오일류의 교환이 필요하다고해도  할인쿠폰을 사용하는곳에서 교체하지않는것이 현명하다.

기회가 될때 한번에 정비받는게 좋지않을까 이런 멍청하고 우둔한생각을 이용해먹는것이 다반사라는것을 알고,할인쿠폰을 가져간곳에" 무엇을 갈아야 한다고 하면",알겠다고하고 다음에 교체할게요 한다음,

정 필요한것같은 생각이든다면 주위에 다른곳을 방문해서 정말 갈아야하는지 물어보고 갈아도 늦지않다.엔진오일 할인쿠폰을 받는 정비소가 말그대로 엔진오일만 갈때,경제적이라는것이지 그외 부품을 갈때 할인이나 더싼가격에 교체하는 정비소라는 말이 절대아니다.

자동차보험회사들도 고객들에게 혜택이라면서 주는 엔진오일할인교환권등으로 인하여 오히려 지정된할인쿠폰사용처로 찾아간 고객들이 피해를 입는경우가 다반사라는것을 알고 고객들이 불만이 많은 쿠폰할인업체 엔진오일할인권은 오히려 보험 재계약시 더 안좋은 선택기준이 된다는것을 알고 사후모니터링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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