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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봤을때 하얀솜같은 것이 바람에 날아와 상추 잎사귀에 붙어있나하고 자세히 받더니 솜이 아니라

거품같은 것인데 비료가 거품이 된건가 자세히 보니 눈같은 결정체가 보이고 가느다란 선모양도 무수히 보이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비오는 날이라 비가 지나면 사라지겠지하고 가만히 나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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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도 봄이 되니 생각할 것들이 많은지 봄꽃앞에서 멍때리는 모습이다. 봄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것들을 활성화시키기에 봄만큼 사계절중에 아름다운 계절도 드물다.

봄봄봄봄 봄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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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식빵과 토마토캐찹 그리고 치즈를 준비한다.



준비한 식빵에 토마토캐찹을 바르고 치즈도 적당량 뿌려준후 샌드치처럼 포개준다.
이렇게 2~3개 만들어서 전자레인지에 사용가능한 용기에 담아 4분30초가 돌려준후
꺼내서 주면 아이들 누구나 좋아하는 간식을 간단하게 만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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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충망은 기존 방충망을 고무가스켓을 부분을 제거하고 철망을 제거한후 다시 철망을 씌우고 고무가스켓으로 고정해주는 간단한 작업이기에 누구나 집에서 교체를 할수가 있다.



고무가스켓이라는 고무줄같은 것을 맨 마지막부분에서 짜를때 2~3센치 정도 여유가 있게 잘라야 당겨지는 고무힘을 생각했을때 여유롭게 딱맞게 들어가 둘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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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아무리 잘두더라도 딱 한수로 승패가 바뀌는 요소를 가지고 있기에 일반적이라면 사람의 인성을 좋게하는게 아니라 나쁘게 만들기에 이때에 나쁘게 만든다는 것은 

스스로를 책하거나 잘두는 상대방을 존중하기보다는 분노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이바둑을 보면서 바둑의 단점을 생각해본다면 바둑을 왜 두지 말아야하는지 알수가 있다.

이바둑을 백돌을 들고 바둑을 두었던 사람은 아마도 자신을 책망하거나 상대방에게 분노가 나왔을 것이다. 다이긴 바둑이라고 확신했을건데 딱 한수로 승패가 바뀌어버렸다.

바둑은 사람의 인성을 좋게만드는 것이 아니라 끝임없이 자신을 책망하고 사소한것에 분노를 만들어 내기에 소심한 인성을 만들지언정 호연지기를 만드는 인성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것을 알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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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는 터키입니다. 터키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성들로 유명합니다. 

9위는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의 사람들은 키가 크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습니다. 

8위는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여군이 미인들이 많아 유명합니다. 

7위는 우크라이나입니다.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아름다운 금발외모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6위는 루마니아입니다. 루마니아의 여성들은 동양적이면서도 유럽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5위는 브라질입니다. 브라질의 아름다운 여성은 건강미인들로 유명합니다. 

4위는 미국입니다. 미국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로 인해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습니다.

3위는 페루입니다. 페루의 여성들은 신비한 분위기의 아름다움을 가진 미인들이 많습니다.

2위는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 여성들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명합니다.

1위는 대한민국입니다. 한국의 여성들은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내면과 외면이 어울어진 진정한  아름다운 미인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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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제목을 입력하면 동영상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ai기능이 있다길래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유튜브쇼츠 동영상을 만들어보았는데 ai가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동영상이라서 그런지

아주 편리하고 간단하게 누구나 쉽게 만들수가 있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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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오래되면 기이해진다.

나무의 나이테가 아주 많을거같은 기이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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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라 먹을거리가 부족한지 밥을 내놓지 않으면 안가겠다는 자세로 지키고 서있는 길고양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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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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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츠배달을 처음부터 여러개 잘할수는 없다. 가게나 고객들 지리와 장소에대한 일정 정도의 익숙함이 있어야하는데 이것은 하다보면 저절로 습득이 된다.

초보인 내가 경험을해본봐 당황스러웠던 것을 미리 읽어두면 도움이 될수가 있다. 쿠팡이츠에는 멀티배달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같은 경로상에 여러가게가 위치에  있어 픽업을 두군데 이상하고 그이후에 고객배달이 시작되는 것이다.



단건인 경우는 보통 매장에서 물건을 픽업하면 그이후에 자동으로 고객의 주소가 나오는데 멀티배달인 2건이 함께 되는 경우는 픽업이 2개가 다 되어야 나중에 고객주소가 차례대로 나온다는 점이다.

물건을 픽업했는데 고객주소가 안나온다고 나같은 경우는 고객센터에 전화까지 해보았는데 이런 과정은 배달시간을 늦게해주기에 고객주소가 안보이는 경우는 멀티배달이라는 제도로 인한 것이다 미리 알고 있는것이 당황하지 않게된다.

쿠팡이츠를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처음부터 익숙하거나 편한다는 느낌을 가질수있는 일은 아니지만 자유롭게 스스로가 하고싶은 시간에만 할수 있다는 그것만큼 확실한 우위에 있는 알바다.

쿠팡이츠를 뛰어보니 저절로 다이어트에 몸무게가 안줄수 없었는데 쿠팡이츠를 뛰는 분들중 뚱뚱한 분들이 없었는데 정상적으로 했다면 그럴수밖에 없겠다 저절로 느낄수 있었다. 아무리 자가 교통수단을 활용하여 배달한다고해도 만보걷기같은 것은 하찮은 것일만큼 전체 도보거리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배달하는 것의 무게가 한손에 들수있을만큼 모두 가벼운 것들이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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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새가 무엇인가를 잡아먹는 것같은데 부리로 잡아먹는줄 알았는데 얼굴전체가 하얀 동그란것을 달고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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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원래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반복하여 선수교체를 하는 지역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이 텃밭이 되어버린 지역으로 20년이상 단 1석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을 지경에 이른 국민의 힘이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서는 절대적 험지에 해당한다.



제주지역 3석의 국회의원을 국민의힘으로 가져가는 것이 전체판세에 있어 다수당이 되는 척도라는 것은 대선이나 지선이나 기타 정당 후보자선택에 있어 제주가 출발점인 바로미터였음을 이전의 선거의 결과들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의 텃밭화 되어버린 현실을 바꾸려면 전략공천이 필요한 지역으로 개인적으로 국민의힘이 당선자를 낼수있는 방법은 서귀포는 원희룡, 제주시갑은 고두심 ,제주시을은 안동우  이렇게 공천이 된다면 최소 2석이상은 특정정당의 텃밭이 아닌 예전의 제주도의 정치지형처럼 여야가 선수교체하는 지역이 될수있다고 생각한다.

3사람이 당선이 된다면 그이후도 예상해본다면 원희룡------->국회의장, 고두심------->문체부장관, 안동우------->제주도지사 이런 경로가 되지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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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는 수많은 배들이 침몰해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곳은 물고기들의 천국이 되어있는 것을 볼수가 있었다.바다의 산호초의 서식지도 되고, 문어나 연체동물들의 집으로도 서서히 변화되어갔다.

모든 세상의 이치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불교에서 이르는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같다는 것은 모양의 변화일뿐 결국 그자체가 내재한 작용과반작용은 50:50를 그대로 유지함을 알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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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틀에 달린 샷시든 일반 나무 문이든 상관없이 그것이 움직이는 레일과 문짝자체에 이것을 뿌려주면
부드럽게 열고 닫히기에 

일반마트나 철물점에서 1-2천원에 팔기에 사다가 뿌려주면 사계절 다 유효하지만 
특히 겨울철 빡빡한  문에는 더 확실한 부드러운 담힘과 열림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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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가 없다하나, 생사 없는곳이 없구나
더이상 구할것이없으니,인연또한 사라지는구나"

생사가 없다하나: 삶과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중생들이 말은 잘하는데
생사 없는곳이 없구나: 행동이 없는 빈수레만 요란한 중생들이 많아지니 어찌할것인가
더이상 구할것이 없으니: 아무리 좋은말을 포교해도 쇠귀에 경읽기에 이르렀으니
인연또한 사라지는구나: 중생들을 위한 공함을 발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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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사진은 존재했었고 교과서에도 실렸었는데  어처구니없는 궤변으로 일부 역사가들에 의하여 진본을 궁녀라는 논리로 명성황후사진이 아니라는 왜곡이 되었는데 조금만 역사적 사진들을 비교하고 원본 명성황후사진을 보면 사진속의 사람은 분명한 민비로 불린 명성황후사진이 맞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먼저 사진에 나온 인물을 알려면 배경이 된 의복이나 머리모양도 중요하지만 왕조시대에있어 왕과왕비가 사용하는 의자는 어떠한 경우든 일반궁녀나 신하들이 사용하거나 앉을수 없다는 것이다.

명성황후 사진에 나오는 의자는 서양식의자로 조선시대 대대로 내려온 왕과왕비가 사용한 전통의자는 아니지만 왕과왕비만 사용한 가능한 의자임을 사진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매듭을 묶은 것을 내리는 방식의 의자는 구한말에 일반인들은 사용하지 못했고 왕과왕비만이 사용할수 있었던 궁중물품이었는데 

이사진에서 앉아있는 여인이 왕비가 아닌 궁녀가 이러한 의자에 앉아사진을 찍는 그자체로만으로도 왕과왕비에대한 불경으로 대역죄에 해당하여 참수형에 처해질수있는 일이기에 어떤 궁녀가 기록으로 남기는 사진에 왕과왕비만이 앉을수 있는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을수 있다는 말인가하는 것이다.

이사진에 해당하는 매듭을 내리고 두른 의자를 배경으로하는 고종의 초상화와 사진도 전해지고 있고 이방식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서 구한말 남은 사진은 왕과왕비이외는 없었기에  사진의 여인은 민비라 불리운 명성황후가 분명하고 더불어 순종의 눈매와 이사진속 인물의 눈매는 빼박이라 친모가 아니고서는 얼굴이나 눈매가 완전히 일치하는 이유를 설명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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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등의 정사에 나오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에서 왜곡된 부분들이 있는데 왜이러한 잘못된 전쟁사를 정사에 기록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먼저 고려 목종에 관련된 기록에있어 목종은 효자인것은 분명하나 그의 모후 천추태후의 신분은 고려건국 태조인 왕건의 손녀라는 것인데 여기서 천추태후의 집안은 고려의 호족정치에있어 태조왕건이 왕권을 강화하게해주는 근본토대를 만든 집안이라는 것이다.

고려의 4대 광종까지 왕건의 아들들이 왕위에 올랐는데 5대부터 왕건의 손자들이 왕위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역사적으로 희귀한 사례가 발생하는데 5대  경종의 아내들로 천추태후의 자매가 연이어 왕비에 오르게된다.

천추태후는 경종의 장남인 목종을 낳았고 여동생인 헌정황후는 경종의 사후 왕씨 종친과 불륜으로 사통하여 훗날 대량원군 왕손으로 불리는 현종을 낳았는데 5대 경종이 죽으면 당연히 천추태후의 장남이 왕위를 이어야하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천추태후와 헌정황후의 친오빠가 6대 성종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려초기 왕씨의 왕권강화에 있어 천추태후와 헌정황후 그리고 성종은 같은 형제자매로 고려 왕족이 500년을 집권하게하는 궁극의 토대인 집안을 만들었다고 할수가 있다.

한국 왕조역사에 이러한 자매의 아들들이 차례로 연이어 왕위로 올라간 사례가 없고 고려의 목종과 현종이 유일한 사례였기에 희귀한 왕위계승이었다고 할수가 있었다.

고려사등 정사의 기록에등으로 오늘날에는 고려의 7대인 목종에 이어 등극한  8대인 현종을 세종대왕에 비교하는데 현종이 군주로써 명군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거란과의 전쟁사에있어서는 왜곡되어 기록되어지는 구절들이 있음을 살펴볼수가 있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인 현종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인데, 천추태후 입장에서는 여동생이 낳은 현종은 경종의 아내였던 자신과 자신의 여동생의 정통성에 있어 자신의 아들인 목종이 후사가 없다면 오히려 불륜으로 낳은 여동생의 아들인 현종보다 자신도  김치양과의 사이에 불륜으로 낳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오히려 목종이 후사로 맞다고 생각한게 틀렸다고 볼수가 없었다.

왕조시대에 선대왕의 아내였던 왕비들이 불륜으로 천추태후와 헌정황후 자매가 둘다 아들을 낳았는데 헌정황후는 같은 왕씨와 불륜을 해서 낳았다는 것이고 천추태후는 김씨와 불륜을 해서 낳았다는 성씨 차이일뿐 서열상으로 천추태후가 당대 목종의 어머니이고 여동생보다는 그 위치가 높았기에 자신의 아들인 목종의 후사가 없다면 불륜일지라도 자신이 낳은 또다른 아들을 올리려고 했던 것은 통일신라대 여왕의 전통인 모계가 강하게 이어진 고려초기에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신라가 여왕이 등극하고 후대에 왕위가 이어진다면 여왕의 남편이 조씨이든 윤씨이든 김씨왕조로 여겨져 이어졌는데 신라와 마찬가지로 고려초기인 모계영향력이 강했던 시기에 천추태후의 생각은 오늘날에서  이해가 안될지 모르지만 이상할것도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 강조가 왜 목종은 죽이고 그의 모후인 천추태후는 죽이지 않고 목종사후 21년을 친정인 황보씨가에서  장수하다 편하게 자연사하게 나두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있는데  

천추태후는 왕건의 친손녀이고 고려의 왕씨의 토대인 강건한 호족의 군사력을 보유한 집안의 장녀로 친할아버지가 태조왕건, 친오빠가 성종이었고 ,당대 목종의 어머니였고, 후대 현종의 큰이모였는데 왕씨 왕족을 절멸하여 역성혁명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여자를 죽여서는 고려가 유지될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왕씨왕족을 대표하는 기둥이기에 누가 그것을 뽑을수 있는가 말이다.

어째든 배경은 이러한 시대였는데 현종대에 거란과의 전쟁이 발생하게되는 여기서 서희의 강동6주니 강감찬의 귀주대첩등이 고려사의 정사기록등에 나오게 되는데 문제는 그러한 기록들을 읽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들이 있기에 이부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의문점으로 들어가보면 귀주대첩에 있어 승리의 결정적 요인중 하나로 기록된 병마판관이 이끌고 거란의 후방을 공격한 고려의 기병 1만의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도대체 이해가 할수없는게 고려라면 대장군,장군도 아니고 조선이라면 관찰사 도절제사가아닌 판관이라는 오늘날의 공무원 급수로보면 4급에 해당하는 판관벼슬이 오늘날의 군대로보면 대위나 소령쯤에 해당하는 중대장벼슬을 가진 사람이 고려의 기병 1만명을 이끄는 총사령관이었다는데 이게 말이 안된다.

오늘날의 군대의 직제를 보더라도 1만명의 직속군을 지휘하려는 최소한 별을단 장성급이지 중대장급이 그러한 부대를 이끌고 거란의 후방을 쳤다는게 개소리라는 것이다. 더욱더 믿을수 없는 부분이 우리나라가 제주도에 말의 방목장을 두어 대량의 말을 기를수 있었던 시기가 몽골의 원나라시기이기에 그보다 한참 앞선 거란과의 전투시에 1만의 넘는 말을 구하기 힘들었을뿐아니라 그렇게 귀한 말을 타고 이끄는 부대의 지휘관을 대장군도 아니고 현종이 판관벼슬에게 맡겨서 출전시킨게 맞는냐 하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기술이 문제점을 풀려면 거란의 침입루트나 후에 병자호란,임진왜란등의 전투에서 실마리를 얻을수가 있다. 먼저 왜 북방이민족들의 공격루트는 항상 예외없이 압록강지경만으로 한반도로 진입했느냐이다.

우리나라는 압록강이 아니라 백두산의 두만강지경도 있는데 왜 왜 왜 두만강 지경으로는 한반도의 진입공격루트로 거란은 한번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는가 하는점이다.

여기에 고려사의 정사에 기록된 귀주대첩의 왜곡된 거란과의 전쟁사를 풀열쇠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귀주대첩이 한반도를 지킨 결사의 전투이고 한민족의 자랑인 역사적 대첩은 분명하다. 다만 이과정에 있어 승리의 결정적 요인중 하나로 지목된 고려기병 1만의 정체이다.

소배압의 10만 거란군은 조선의 병자호란시 청나라의 신속기병군으로 삼전도의 치욕을 만들었던  방식의 당대최강의 기병으로 이루어진 전부가 기병대였다는 것이다.

한민족의 전투사는 공성전에 특화되어 물리치는 전투민족이지 드넓은 평야에서 대규모 전투에서 이기는 고대전쟁사는 단한번도 존재하지 않았고 강감찬의 귀주대첩이 유일하다. 유일하다면 뭔가 기존과는 전혀다른 것이 작동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거란기병대의 후방을 때렸다는 고려 기병의 존재였다.

실제 역사속에 있었던 그 기병대의 비밀을 풀어보면 거란과 고려의 귀주대첩시 거란의 후방을 공격한 기병대의 정체는 고구려왕조를 함께 이루었던 숙신또는 말갈로 불리던 백두산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쫄따구 벼슬인 병마판관이 아닌 흑수말갈족 기병이었다는 것이다.

강감찬장군의 이끌었던 보병 20만이 거란의 소배압의 10만 기병대에 넓은 평야에서 그대로 전투가 지속되었다면 우리나라가 수적으로 2배인 전력이고 말의 진로를 방해하는 검차같은 다양한 장비가 준비되어서 그랬다는 잠꼬대같은 소리해봐야 고려의 군대는 거란 기병대에 전멸을 했을것이다.

전멸하지 못하게 거란의 기병의 후방을 친 기병대의 정체는 어디서 왔는가하면 그당시 흑수말갈의 기병인 5만의 병력이 거란의 후방을 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흑수말갈 오늘날에는 여진족이라고 불리는 세력이 고려와 호흥하여 귀주대첩에서 거란을 쳤나는 것이다.

태조왕건의 반거란 정책을 시행한 중요한 요인중 하나가 거란이 고구려의 계승자인 형제국인 발해를 무도하게 멸망시켰다는 것이었는데 이때 발해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우리 한민족과 말갈에 해당하는 여진족이 민족구성으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점이다.

거란과의 전쟁시 고려의 적이 거란이었지만 말갈족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나라를 멸한 원수이기에 공통적인 적으로 대적하는데 이상할것이 전혀없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선의 선조가 의주에서 조금만 더 잡으러 오면 중국으로 도망갈거같아 왜군이 더이상 진군하지 않았다고 엉터리 논리를 펴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은 

그때당시 말갈족인 여진족이 차지한 백두산주변지역은 중원을 삼킨 청나라를 세울 부족들이 막강한 기병군사력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었고 이때 일시적으로 동원가능한 말갈의 기병을 5만으로 임진왜란시 기록에 남아있는데 이들이 참전할수도 있는 상황이 될수도 있었는데 왜군은 이들과의 확전은 막대한 피해만 예상되어 더이상의 전진이 없이 후퇴하고 정유재란시에도 여진족인 만주족이 기병대가 있는 지역으로는 아예 더 북진할 생각을 하지 않게하는 요인이 되었다.

거란과의 평야에서 전투인 귀주대첩에서 거란의 후방을 격파한 기병대는 흑수말갈기병으로 이들이 역사기록에 지휘관급으로 기록되어진 성씨중에는 특이하게도 고씨인 성씨들이 많은데 이들의 정체성은 두가지부류로 자신들을 고구려의 국적으로 생각하는 말갈족과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순수 말갈족으로 구분이 되었는데 고씨들은 아마도 고구려후손들로 생각하는 말갈족계통으로 생각할수가 있는대 발해를 세운 대씨들도 비슷한 성씨들이라 할수가 있다.

거란이후 금나라가 강성해지는데 바로 이들이 고려초기 거란과의 전쟁에서 고려의 막강한 기병대를 가지게하는 후원세력이었다는 점이다. 말갈족이 우리나라와 연합하여 중원세력과 싸운 기록은 고구려와 당태종 이세민의 전투사에도 이들이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군을 공격하여 당태종이 고구려와의 전투시 포로로 잡힌 수만명의 말갈족을 생매장하거나 다죽였다라는 기록이 정사에 남아있을 정도이기에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한 고려나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했던 발해나 말갈족은 우리나라와 외적들의 전투시에 함께싸우는 주요부족이었음 알수가 있다.

뼈아픈점은 이러한 말갈족인 만주족이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상국이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상하우위가 바뀌어 청나라가되어 우리나라와 군신의 관계를 맺게하는 삼전도의 치욕을 만들게했기에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국제사회의 논리를 잘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와 거란의 귀주대첩당시 거란을 전멸의 상황을 만들수있는 대적가능한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강한 기병은 판관나부랭 중대장급이 이끈것이 아니라 그당시 유일한 가능성은

백두산지역에 부족을 이루어 생활하던 말갈족인 5만 정도의 기병이 그당시 즉각적으로 응대가 가능한 병력이었다는 것이다. 거란를 멸망시키는것도 백두산지역의 말갈족인 금나라였던 것만 보아도 그당시 고대사 우리나라와 북방세력이 전투시 단골처럼 함께했던 말갈족이 귀주대첩에서는 아무런 기술이 없다는것은 누가봐도 이상한 점이고, 

고려의 태조왕건이 후백제와의 통일을 위한 일리천에서 벌어진 최대의 전투에서도 최대한 끌어모은 병력이 정사에서 8만정도라고 기술한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는 최대한 끌어모은 추정치가  3만정도였는데 그중에 고려왕건이 후백제를 쳐부술때 흑수말갈의 기병대 참가병력을 1만명정도로 기록하고 있는데 

내전에도 고려초기 흑수말갈이 기병을 1만을 지원해줄 정도면 국제전이 발생했을때 백두산지역에 비산해서 살아가던 흑수말갈부족의 기병대가 얼마나 더 지원이 가능한 상태였는지는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수가 있고 고려가 부족한 실제로 강한 기병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하는것이 틀리지 않다.

좀더 정확하게 살펴보면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에서 거란의 10만기병대를 후방에서 기습할수있고 맞설수있는 그당시 유일한 기병대는 백두산지역의 흑수말갈이 보유한 기병대이고 이들이 고씨성을 가진 예가라는 지휘관에의하여 참가하여 고려군과함께 거란기병대를 후방을 공격하여 전멸시켰다 

이렇게 역사의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것이 엉터리 정사기록보다 더 맞고 왜 이부분을 역사에서는 흑수말갈의 지원을 숨기고 밥풀때기 3개를 단 중대장급인 병마판관이 1만의 기병을 지휘하여 쳤다는 황당무계한 기록을 남겨나는 것이고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이 고대나 현대의 군대계급체나 지휘체계만보더라도 뭔가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것도 더 희귀하다 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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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가 집게에 삼겹살을 들고 있었는데 눈깜짝사이에 채간후 남겨진 것까지 싹드심
고양이는 친분관계보다 처음봐도 먹이앞에는 두려움도 없어지고 물불을 안가리고 다가 오는것을 알수가 있다.
동물들은 먹이로 교육시키는게 어떤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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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집에 가면 맛있는거 준데라고 서로 전파하는 것같음"
벌써부터 삼겹살 맛을 알고 전파를 해?  좋은건 혼자먹지 떼로 데려오면 난 어떡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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