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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왕조시대에서 왕보다 높은 신분은 존재하지 않는 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왕을 폐위시키거나 왕의 계승권 자를 정하거나 왕의 정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대비였다. 왕이라는 신분은 종신적이기에 왕이 죽은 후에야 다음 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기에 왕의 사후부재는 일반적이고 이러한 때에 대비가 있고 없음은 천양지차의 양상을 띠게 된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유일하게 폐위된 2명의 왕인 연산군과 광해군이 강제 폐위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대비에게 불효했다는 이유였다. 위에 열거한 왕이 아무리 잘못된 정사를 펼쳤다해도 대비와 맞서지 않고 효를 행했다면 조선왕조의 특성상 폐위될 수가 없었다.

조선왕조는 충과 효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 국가였는데 인륜을 져버린 불효를 행하는 왕은 마찬가지로 신하로부터 충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규정되어졌고 폐위가 사필규정으로 여겨졌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왕과 자신의 모친이 죽을 경우 신하는 어떠한 것이 먼저이고 앞서 참여하여 행하는 것이 올바른 신하의 도리라고 여겨졌을 생각해볼 때 공과사라는 개념으로 왕의 국상을 먼저 참여하는 것이 옳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조선왕조에서는 절대 그러하지 않았다. 왕의 국상과 자신의 모친의 상이 겹쳤을 때는 모친의 상을 우선하여 효를 행하도록 규정하고 철저하게 지켜졌다.

이러한 사례는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의 죽음과 유자광의 모친의 죽음에 있어, 모친상을 먼저 행하도록 조야의 의견이 일치하여 시행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허울 데기이지만 광해군이나 연산군이 대비에게 불효를 행하지 않았다면 오랑캐에게 사대를 했든 폭군이었든 절대 폐위되지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연산군은 대비에게 불효를 행하였을 때 자신이 폐위 될 것을 짐작하지 못했을 까라는 점에서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자신의 아버지인 성종은 어려서부터 인수대비의 지도와 가르침에 충실히 따라 정사를 행하였고 슬하에 30여명에 이르는 자식을 뒀고 그중에서 왕자들만 해도 십여 명이 넘었는데 연산군이 그러한 상황에서 다른 왕자들을 이겨내고 끝내 왕위를 이어받을 것을 보면 머리나 처신에 있어 빈틈이 없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처세의 달인인 연산군이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를 핍박하고 불효를 행할 때에 스스로가 폐위가 될 수 있겠다고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러면 왜 연산군은 막장으로 치달아 끝내는 스스로를 폐군이 되는 길을 선택했을까 하는 점이다.

실록에 기록된 연산군의 기질을 자세히 살펴보면 연산은 스스로를 천하에서 제일로 뛰어난 호남아로 굳게 믿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명나라 사신에게 허리를 굽히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한다하여 중국 사신을 박대하고 병을 핑계를 이러한 의식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 며 거부하는 모습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성종이나 연산군의 모후인 폐비윤씨는 오늘날로 보면 꽃미남과 절세가인의 만남의 얼굴을 한 사람들임을 역사기록으로 알 수가 있는데 그러한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연산군은 몸과 얼굴이 아주 잘생긴 왕이었다. 인물도 잘났고, 성격도 호방하고 영웅기질이 있었고, 자존감도 스스로 삼한 제일로 굳게 믿었던 왕이었기에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에는 한 치도 결단을 머뭇거리지 않는 오늘날의 강남스타일 왕이었다.

연산군이 폐위로 간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존감의 폭주에 의한 궁극적 파멸이었다. 사약을 받아 죽은 폐비윤씨 때문에 정신이 돌아서 파멸되었다는 연속극의 상투적 연관성은 전혀 사실과 일치하지 않고 연산군이 폐위된 것은 나르시시즘에 해당하는 일종의 정신병의 궁극적 결과였다. 폐비윤씨의 사건은 자신의 나르시즘을 극대화시키려는 좋은 구실로 활용했을 뿐이다. 이러한 성향이 너무 지나쳐 조선왕조에서는 건들지 말아야할 역린을 건드리는데 인수대비를 핍박하여 죽게 하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것에도 자신이 최고다라는 개념으로 조선왕조체계에서 마지막 최후의 절대 지존인 대비와 겨루다 결국 스스로 파멸하게 된다.

왕이 살아있든지 죽었던지 왕을 폐위나 등극 시킬 수 있는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권능을 가진 존재가 조선왕조시대하의 대비의 계급이었다. 충효를 나라의 근본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 하에서는 왕이 얼마나 뛰어나서 잘났든 못났든 왕이 건드리지 말아야할 최후의 궁극적 존재가 대비라는 사람인데, 연산군과 광해군은 이것을 건드렸다는 공통점을 가진 존재였다는 점이다. 이것이외에 나머지 반정과정이라든 반정주체나 상황 등은 부차적인 곁가지들에 불과하고 궁극적인 것이 이러한 왕과 대비의 관계의 서열관계를 거꾸로 돌려 행한 불효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는 부모가 잘못했을 때 자식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가치관으로 변화되었지만 조선시대 하에서 아무리 대역죄나 도덕이 무너지는 후안무치한 범죄를 저지른 부모라해도 그러한 죄를 경찰에 자식이 신고했을 때에는 오히려 신고한 자식을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몽둥이로 패는 것이 조선시대의 법이며 현실이었다. 일반서민들에게도 이러한 엄한 효의 실천과 인내를 강제했는데 하물며 왕이 어떠한 이유나 명분을 같다 붙이든 대비에게 불효하는 것은 역린에 해당하였다. 오늘날의 법에도 이러한 친분상의 잔재가 남아 부모의 죄를 자식이 안 다고해도 신고하지 않거나 보호해줘도 처벌받지 않게 법률로 규정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조선시대나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아버지에게 불효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불효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핵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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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정신병자가 있었을텐데 조선시대에는 그런 환자들은 어떻게 관리를 했었는지 궁금하네요 지금처럼 정신병원이 따로 있을리도 없고..


조선시대에는 "수지부모는 불경훼손"이라는 말처럼,신체에 흠이있거나,이상한것은
불효라는
관점의 공자왈 맹자왈의 지독한 유교사회였습니다. 

유교사회에서의 특징이,왕이나 귀족,양반과천민등,신분상의 차이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효도를
근간으로하는 신분제를 옹호하는 주의입니다. 

멀쩡하게 태어난 사람끼리도,양반과 천민의 신분차이가 있다는 단한가지 이유로,사람취급을 못받는사회였기에,하물며,정신병자나,장애인은 집안의 불명예요,수치로여겼기에,죽이든지,골방속에 가둬놓고,집밖에 아예 못돌아 다니도록,죽을때까지 가두어놓았습니다.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의 부모조차도,공자가 태어났을때 단지 외모가 너무 흉직하고,괴물같아서 들에다 버리고,죽이려고 했을정도 였다고 합니다. 

어찌 되었던,사람의 가치를 신분의 높고 낮음에따라 평가했던 조선시대에서는,장애인이나,정신병자는 사람일수가 없는,집안에 명예를 깍아먹고,더립히는 버러지같은 존재로 대접을받았고,이들에 대한 옹호나,보호는 일절없었고,되도록 안보이는 곳에서,되도록 일찍죽는것을 바라는 사회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또한 정신병자라고해서,오늘날처럼 죄를 저질렀을때 치료해주거나,법의 형을 집행하지 않는게 아니라,무조건 죄에따라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인이유는,장애자나 정신병자는 천벌을 받은존재로 여겨졌고,또한 차별을받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여겨지는 사회풍토였습니다.위에서 기술했듯이,같은 멀쩡한 사람끼리도 양반입네,쌍눔이네 하며 신분의 차이에따라 차별하는데,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은,아예 사람취급도 안했고,그들에 대한 기본적 인권조차 인정치 않았으며,오로지 골방이나 이런곳에 가둬두고,집안이 수치로 여기며,죽을때까지 방치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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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와 첩의 차이에대하여,한자로 처(妻)는 어려움이나 좋은일등을 모두 함께처리한다는 뜻을 가지고있고,

첩(妾)은 의미그대로 시중들기위해서 서있는 여자를 의미한다.

시중하기위해서 상시대기한다는 의미는 분명한 의미가 첩은 단지 성교의 대상일뿐이고 집안일이나 가족관계상에서 배제됨을 의미하는 한자단어이다.


이와같은 단어상의 구별뿐아니라 처와첩의 자손은 구별하여 조선시대에서 엄격한 적서의 차별을 법률로써 규정하여 불이익을 받게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보통은 첩이었다가 처가 될수있는 경우가 전혀 없었지만 간혹 예외적인 경우가 존재하여 첩도 처가 될수가있었는데,그길은 바로 처가 자식이없고 첩만이 아들을 낳았을 경우이다.신분제사회에서 사대부집안 여자들에게 적용된 차별이 처첩관계라면 왕의 여자에게있어 적용된차별은 왕비와 후궁의 관계이다.후궁도 후비가 될수가있는경우가 있는데,왕비가  아들이없고  후궁이 아들을 낳았을 경우이다.후처나 후비는 정식처로 첩의 신분이아니기에 그의미는 첩과는 달랐다.

신분제 사회상에서 첩이 처가 될수있는 유일한 가망성이 있는 신분의 로또는 아들을 낳는것이었다.예를 들어살펴보면 1466년 세조임금시절,중추원부사 김형은 자식을 낳지못하는 민씨와 두아들을 낳은 도씨 두여인을 함께 데리고 살았었는데 김형이죽자,도씨의 아들중 김견이 자신의 어머니는 첩이아니라 처의 신분임을 확인해달라고 세조에게 상소를 하였다.

이에 세조가 신하들의 서로다른 의견을 취합하여 내린결론은 도씨는 먼저 결혼한 민씨와 같이 살았기에 나중에 들어온 도씨는 첩이 분명하나,민씨가 자손이 없으므로, 아들을 낳은 도씨가 후처로서의 지위를 갖는것이 합당하다하였다.이러한 결론은 아들의 의미가 중요했음을 알수가있다.

오늘날에는 처의 아들이든 첩이 아들이든 상관없이 상속이나 신분에있어 똑같은 대우를 법률에의하여 받지만,신분제사회인 조선시대에서는 첩의 자식은 아예 인간의 구실을 할수없도록  법제화하였기에 처인지 첩인지의 구별은 조선시대에서는 아주중요했다.오늘날에도 처가 아닌 첩을가지는 사람들은 어떤계층의 사람들일가하고 궁금해서 포탈검색창에 첩이라고 검색해봤더니 아래와 같은 관련검색어가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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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질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는 입으로는 공자왈 맹자왈하면서 도덕군자인척하며 힘깨나 쓰는 사대부양반가문층의 도덕적 이중성을 가장 잘나타내는 단어가 첩이라는 단어였다.일반백성들은 처이외에 다른여자에게 관심을가지면 부인이외에 여자를 간음하였다고하여 교수형에 처했으나,왕이나 특권계급층들은 첩이나 후궁제도를 활용하여 도덕적,법률적처벌에서 예외의 특권을 향유하는 그들만은 예외였다.

오늘날에 포탈에서 첩이라고 검색했을때 관련검색어로 제시되어지는 단어들을보니,첩이라는것은 아무나 관련검색어로 붙어서 제시되는 명칭은 아닌거같고 능력있는 남자(?)를 대표하는 관련검색어인거같다는 생각이 들정도이다.실제로 그러해서 관련검색어가 된것인지,첩은 부유함을 상징해야하는것으로 규정되어서 관련검색어로 제시된것인지는 알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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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보다보면 교지를 들고  "어명이요"라고 말하면,사람들이 다른의견이나 논쟁꺼리로 다투다가도 각자의 의견이 어떠했든 상관없이

명를 따르는 장면을 자주 볼수가있다.이러한 어명속에는 재미난 법률규정이 들어있는데

만약에 교지로 어명을 받았는데 "어명이고,뭐고간에 따르지 않겠소"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어명을 거부하거나 따르지 않았을 경우 어떠한 처벌규정이 조선시대의 법률에는 규정되어있고,어느정도의 형벌을 받았을까?



임금이나 세자가 교지로 내린 어명을 따르지 않았을경우에  제서유위률이라는 조문으로 규정했는데,이런 조문을 어겼을때는 장 100대를 때리도록 처벌형량이 규정되었다.

엉덩이에 긴몽둥이로 100대를 맞는것이 뭐 별거이겠는가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깔짝,깔짝때리는 그러한 강도가아니라,몽둥이를 치는 사람이 두손으로 몽둥이를 잡고,180각도로 힘껏 때리는것이기에,왼만한 강인한 체력이 아니고서는,겉으로는 엉덩이가 터지고,부어오르는정도로 보이지만,며칠안되서 장독으로 대부분이 죽을만큼의 처벌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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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명에관한 제서유위률 법률규정은 왕이나 세자가 교지로 내릴수가 있었는데,왕과 세자가 내린 교지의 어명이 서로 경합되었을경우,밑에서사람은 누구의 말을 따르는것이 일신상에 좋을까?라는 문제가 생길수도 있는데

군대같은경우도,자신의 바로위 선임병과,몇단계 거친 선임병의 지시가 서로 다를경우,"누구와 더 오래생활 할건지 잘생각해보라"라는 무언의 압력의 선택을 받게되고,

일반직장에서도 자신의 직속상관이나 타부서의 직속상관보다 높은사람의 지시가 상충되었을때 밑에서 사람은 누구의 말을 따르는것이 좋은가?등과같이 현실생활에서 어떤것이 현명한 처신인가 생각해봐야 할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런경우들의 현명한 처신은 상황에따라 예외가 있을수도 있겠지만,불법한 지시나 명령이 아니라면,일단은 직속상관의 지시나 명령을 따르는것이 현명한 처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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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말리아의 해적선에대한 이야기들이 많다.조선시대의 역사속에서도 해적선이 출몰했다는 기록들이 많이 나타나는데,그중에는 중국해적선에대한 기록도 나타난다.

때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9년이지난 어느봄날,해주앞바다에서 우리나라의 무역선을 추격하던 해적선을 잡았는데,그 배안에는 우리나라의 물건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중국해적선에는 호유충을 우두머리로하여 19명이 타고있었고,배에는 대포같은 무기등이 장착되어있었는데,이들은 자신들은 중국군사들이고,



중국지방관리가 발행한 정체불명의 공문서를 보여주며 표류했던것이라고 주장하였다.지방관리는 법대로 처결하고자 했으나,중국군사라고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황제폐하의 성은에 망극하옵니다라는 임금인 선조의 자세였기에 중국해적선을 잡은 지방관리는 장계를올려 그처리에 대하여 선조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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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왈:해주에서 우리나라의 무역선을 추격하던 중국배를 잡았는데,자신들은 표류한것이지 해적질을 한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있습니다.

선조왈:표류가 맞다.

신하왈:우리나라의 무역선을 추격하고,배안에 우리나라의 물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선조왈:어허,표류가 맞다니까,우리나라 무역선을 추격하였다고 말하는것은,우리나라 지방관리가 해적선으로 둔갑시켜 공을 챙기려고하는거야,그리고 중국배에 문서가 있었다며? 해적선이 그런것을 가지고다닐 이유가 뭬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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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왈:저들 배의 소행과 물건들을보면 해적선으로 의심될만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선조왈:단정적으로 말하는데 해적선아니고 표류한선박이다.신하왈:.......

선조왈:임진왜란때에 의지할곳없는 이몸,백성들이 구해줬냐,신하들이 구해줬냐,구원해준게 누구겠느냐,차마 중국이 나를 버릴지언정,내가 중국을 버릴수는 없다.내가 현장에서 안봤어도 단번에 알수있다.표류가 확실하다.눈치없게 일도 제대로 처리못한 해주판관이 문제야,사헌부에서 잡아다 벌을 주도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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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공위성운반로켓이 성공은 반만년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일임이 틀림이없다.



후세의 역사에서 기록될 김정일의 업적가운데 그 첫번째가 핵실험성공을 통한 핵무기보유와,두번째로 자체기술력으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성공을 들수가 있다.


강대국들의 이데올르기인 강대국만 핵무기를 가져야하고,탄도미사일을 가져야한다는 논리는 그 어떠한 정당성도 가지고 있지않다.





이 강대국들의 논리는 속을 들여다보면 아주 궤변임을 알수가있는데,중국같은 인권후진국조차도 강대국논리에따라 핵무기를 마음대로 보유한다.인권후진국인 중국조차 대륙간탄도 미사일과 핵무기를 가진다.인권이 좋은나라가 가져야한다는 논리도 궤변이겠고,그렇다고 인권이 높은 미국이라고해서 핵실험과 핵무기,탄도미사일을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고 있는것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조선시대이후 길들여진 사대주의적 당파싸움만하는 정치문화속에서는 통일된 한반도라고해도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보유할수 없을것이다.특단의 상황하에서만 가능한것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보유이다.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하여 실존보유하게한 김정일은 북한국민들을 탄압하고 배고파 아사하게한 그 죄에 대하여는 단죄받겠지만,통일한반도의 자주국방측면에서는 우리나라역사에 기록될 업적으로 볼수가있다.

김일성,김정일정권이 지속되어진것도 역사라는 관점에서보면,그 이유와 뿌리가 존재하며 통일한반도를 내다보았을때,통일한반도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보유는 당연하다.우리나라의 반만년역사에서 우리나라를 가장많이 침략을하여 괴롭힌 국가는 중국이다.통일한반도가 중국과 국경을 맞데어야한다면,경제적으로 뿐만아니라,군사력에 있어서도 강해야한다.경제력만있고,군사력이 뒤받침되지 않는 나라치고,강대국이 된 역사는 인류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김정일정권의 운명은 어찌되었든 2012년이 그 마지막한계이고,핵무기보유와 이번에 성공한 인공위성로켓발사성공 2가지를 끝으로 통일한반도의 탄생은 예정되어졌고,더이상 김정일정권이 유지될 이유와 목적이 존재하지 않게되었다.

김정일의 유고상황에서 중국이 북한핵무기의 통제권을 가지겠다는 쇼를하는데 있을수없는 일이고,그것은 통일한반도가 결정할 문제이지,중국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우리나라의 논리는 분명해야한다,중국과 국경을 맞데야한다면 중국의 티벳트침략,베트남침략,인도침략,네팔침략등등 중국과 국경을 맞데어진 국가들중 국경전쟁을하지 않은 국가들이 거이없을 정도로 중국은 자신들이 힘이 강해졌을때는 언제나 주변국가를 침략하는것이  반복되어진 역사의 교훈이었기에 그에 맞썰수있는 힘을 가지고있지않는한 조선시대의 븅신같은 허울뿐인 평화를 위하여 주변국들의 상황에따라 엉뚱하게 얻어터지게되는 사대주의적 정치문화를 반복 답습하게 되어질 것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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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북한의 위성로켓미사일 발사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그것이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 위협이된다고해도,더 큰 그림을 봤을때 이러한 논리가 아니면 우리나라의 썩어빠진 사대주의적 당파정치문화속에서 그러한것이 이루어질 가망성을 전혀 기대할수가 없기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에 맞는 군사적힘을 아울러 가지는것,그것이 통일한반도의 미래가 밝기때문이다.통일한반도는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있으며,어떠한것이 통일한반도에 더 유익한것인지는 사대주의적인 관점이아니라,통일한반도의 자존과 미래의 측면에서 생각해봐야한다.

우리나라가 우리선조들의 고토인 간도지역을 찾아오지 못하는것도,다 후손들이 못났기때문이다.자신의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못하는 국가가,무슨 면목이 있나,통일한반도에 있어서,현실적으로 다가올 문제가 고토회복문제인데,이것은 다른나라들이 도와줄일이 없겠고,힘의 논리에따라 이루어질것이기에,안돌려준다면,일제에 맞써 36년간 독립운동을 했던 저력을 모아서 다시 독립운동을해서라도 중국으로부터 반드시 되찾아야와야할 선조들의 무덤과 발자취가 남겨진곳이다.결과적으로 군사적힘이 통일한반도에서는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는점이다.

고구려가 중국과 맞설때 강이식장군이 한말이" 이렇게 무례한 국서에는 글로써가 아니라 칼로써 대답해야한다"하고 싸웠던 기상을 회복하지않는한,영원히 고토회복은 꿈일뿐이다.북한이 이번에 쏘아올리는 인공위성로켓발사는 한민족으로서,진심으로 성공하길 기원하며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이어져왔던  대륙의 혼을 일깨워,선조들이 발자취와 무덤이 남아있는 간도지역과 민족의 영산인 중국에게 절반 빼앗긴 백두산은 우리나라땅이기에 반드시 회복해야할 통일한반도의 역사적 과제가 남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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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나 기타사정으로 궁궐밖에 나가살게되는 궁녀들은 비록 민가에서 산다고해도,왕의 여자들이었던 까닭에 결혼하거나,남자와같이 살수가없었다.


형식상으로는 민간인 처녀들이었기에 법으로 궁녀의 신분이었다가,민간인이되었다고 결혼하지말라는 그러한법은 없었지만,


왕가의 입장에서 왕조의 여자였던 궁녀들을 신하가 데리고산다는것은 주.종의 신분관계가 엄격한 조선유교주의사상하에는 불충의 개념이 될수밖에없었기에,나서서 결혼하려는 사람들은 존재할수가없었다.


이러한 예외를 깬 특이한 경우가 있었는데,남치원이라는 사람이다.병으로 궁궐밖을 나간 궁녀을 첩으로 맞아들여서 살고도,무사했을뿐만아니라,벼슬까지도 할수있었는데,어떠한 사연이 있었길래 감히 왕의여자를 첩으로 두고도 살아남을수있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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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의 슬하에는 배다른 형제자매가 많았다.성종의 첫째아들이 연산군이었고,배다른 둘째아들이 진성대군인 중종이었다.연산군과 진성대군의 나이차는 12살이었는데,연산군의 어머니 폐비윤씨는 일찍죽었고 진성대군의 생모인 숙의윤씨(정현왕후)는 연산군이 자신의 생모의원수를 갑는다고 일으킨 피바람속에서도 숨죽이며 살아남아 자신의 아들인 진성대군과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수있었다.


연산군과 진성대군의 배다른 형제자매중에 성종의 후궁인 숙의심씨의 맏딸인 경순옹주가 남치원에게 시집을갔기에 남치원은 성종의 부마이면서,연산과진성의 처남이기도했다.숙의 심씨와 훗날 중종의 어머니가되는 숙의 윤씨는 서로를 잘아는 사이의 친분을 가지고있었다.


연산군시대에도 남치원은 우대를 받았고,중종시대에도 배려를받았는데,중종은 연산군을 내쫓고 왕이된 임금이었기에,쫒겨난 왕의 측근들은 대부분 처단되기마련인데,남치원은 연산군의 배려를많이 받았는데도,중종대에 이르러도 특혜를 받는걸보면 평소처신을 잘하지 않았을까하겠지만,


남치원이라는 사람의 일상생활행동을 살펴보면,오늘날의 망나니나 조폭같은 인물이었기에,성종의 여러 부마들중 한사람인 부마라는 관점보다는 경순옹주의 어머니인 숙의심씨와 중종의 어머니인 숙의윤씨의 관계가 특별했다고 생각할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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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치원에대하여 기록된 행동들을보면,다른지방을 50명정도의 무리를 이루어 여행다니며,자신에게 잘못보이는 사람은  일부러 시비나꼬투리를 잡아 그자리에서 패거나 가둬둔다든지,승려들이 사냥하는데 방해가된다고 절간자체를 박살내버린다든지 일반사람같았으면,중한형벌을 받았을것인데,유야무야로 넘어가는 기록들뿐이다.


평소행실이 이모양이었던 남치원이 궁궐의 대비전에서 나인으로 일했던 궁녀가 병으로 민가에 나가살게되었는데,그 궁녀를 데려다 자신의 첩으로 만들어 버린일이 생기게된다.다른것은 그냥 넘어간다고해도,이것은 그냥넘어갈수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조정에서는 연일 궁녀를 데려다 첩을삼은 남치원은 불충이기에,잡아다 죽여야한다고 상소를하니,


처음에는 이복동생의 남편이였기에 생각해서 눈감아 줄려고해도 궁녀의 체계자체를 무너뜨릴수있는 행위였기에 형벌은 내려야겠고 잡아들이면,반드시 죽여야하는 불충에 해당했기에,처단해버릴까 하다가도,어제밤에 자신의 모후이면서 대비인  정현왕후가 한말이 귀가에 멤돌았다.


"성종시대,악독한 폐비윤씨의 피박속에서 그리고 연산군아래에서도 나와 숙의심씨는 서로를 도우며,이겨냈었는데 이번일은 불문하고 넘어갔으면 하네" 하지만 어머님,신하들의 상소가 너무강해서......."신하들의 말은 중요하고,내말은 암것두 아니라는 말이지,아이고 내가 지금까지 누굴믿고 모진 연산군의 핍박속에서도 살았는데,늙으면 빨리죽어야 할까보네 내말은 상관말고,신하들 말 잘듣고 잘사시게,그만 물러가게......."  어머님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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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대간들이 남치원을 잡아들여 죽이라고 탄핵했지만,중종의 입에서 나오는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불허한다,불허한다,불허한다" 결국 남치원을 유배를 시키는가싶더니,유야무야되어지게된다,중종의 생몰년은 1488-1544 이고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는1462- 1530 이기에,남치원은 중종25년 1530년까지는 중종의 어머니의 보호를 받았을것같기는 한데,남치원의 공식적인 벼슬은 중종14년 1519년이후로 사라져,생몰년을 알수가없다.


병으로 민가에나가 사는 궁녀에대하여,사람들이 남치원처럼 행동했다가는 목숨이 열개라도 부족한 왕과신하의 관계가 엄격했던 불충하면 같은형제라도 죽임을 당하는 조선시대에서 부마로서 대놓고 꺼리김없이 행동하며 살다간 인물 1위를 고른다면  남치원이다.중종과 남치원의 기록을 살펴보다보니,왕이라고할지라도,자신의 어머니가 후원하는 사람에게는 어쩔수가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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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관계를 행복하게하는 체크판단기준은 다음과같다.

chk-opts(체크선택판단기준)은 7가지 요소의 첫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1.Communication:남녀의관계시,조선시대에 보는 양반집혼례처럼 촛불을 끄고,여자는 목석처럼 가만히 누어서 조용한 관계를 하는게아니라,남녀관계시에도 서로간의 대화를 하는것이좋다.

2.Harmony:서로 상호간에 다른 성이라,이질적이지만 통합되어 조화를 이루어 하나된 느낌을 가질때 괘감을 만들어낸다.


3.Kiss:여자는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남자와의 관계시 입맞춤 해주는것을 좋아한다.오랜시간이 지난 부부관계가 아니라,연인관계일때조차도 관계시 키스를 해주는것을 꺼려하는 남자는 여자에대한 진실한마음이 부족하다는 남자가 의식하지못하는 무의식적인 본능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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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Orgasme:신체적,감정적으로 나타나는 쾌감이 있어야한다.남녀관계가 고통으로 느껴지거나,아무런느낌도 가질수없는 관계라면 차라리 하지않는것보다 못하다.

5.Pose:남녀간의 관계시 체위를 오로지 한가지방식만이 도덕적이고 올바르다 생각하지말아야한다.감정에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체위를 서로 공유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야한다.

6.Technic:남녀관계의 조화를 이루려면 오케스트라연주처럼 혼자만의 악보를 탈게아니라,상대방의 신체리듬을 맞추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7.Sustaining power:남녀관계시 너무 오래지속되는것도 문제이지만,너무 짧은것도 문제를 만들어낸다.우리나라의 평균적인 남녀관계시간은 30분정도이다.30분은 서로간의 편안한감정과 느낌에 이룰수있는 최소한의 시간이다.5분정도하고 아무말없이 내려와서는 어때?좋았어하고 여자에게 묻는 남자,여자는 남자의 기분을 맞춰주기위해서 어색한 썩소를 날리며 응,좋아라고 대답해줄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묻지를 말고 반성하며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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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은 용과 학이 교미를해서 태어난 새가 봉황이라구알려져있다.조선시대부터 오늘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봉황은 임금을 표현하는 상징이었다.그러나,봉황은 사대주의정신을 철저하게 표현하는
아주 기분나쁜잡종새이다.중국은 황제의나라라구해서,황색에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썼구,조선시대의
왕들은 중국황제가 쓰는 황색과용은 감히 황제의 상징이기에,사대하여 스스로 낮춰 조선시대왕은
황색옷을 입는것은 황제에대한 불충이라구여겨,적색옷에 봉황을 왕의상징으로 사용하였다.

봉황이 조선시대왕의 상징으로 사용한 이면에는 이처럼 철저한 중국에대한 사대주의의
썩어빠진 소중화적사관이 자리하구있었다는것이다.또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봉황을
황제의 여자를 상징하는뜻으로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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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극을보면,임금이 황금색옷을입구있는것을 볼수가없을것이다.오로지 빨간색옷을 입구있는데,이속에는 철저한 사대주의정신이 숨어있었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을 어찌감히 왕이 사용할수가있는가하는 논리였다.

봉황두 마찬가지루,중국황제의 여자,이런의미였구,봉황자체두 용의 씨를 받아 태어난 잡종이라는 의미이기에,주체성은 결여되구,용의 사생아나,아류정도라는것을 함축한,재수없는상징이라는것이다.








이러한 사대주의를 함축한 봉황문양은,조선시대이후로,주욱 현재 대통령까지 아무런 생각없이
그대로,사용되어왔다는것이다.정말 재수없는 것이 용의 씨를 받은 잡종인 봉황이라는것이다.

봉황은 사라져야할 구시대적,상징으로,용을 사용할지언정,용의 씨를 받구 잡종으로 태어난
봉황은 애시당초,용보다 덜떠어진 지위나,상징에 사용되는 상상의 새라는것이다.

썩어빠진 사대주의상징인 봉황은 중국황제를향한 흠모하는 여자인 왕을 의미하는 상징이기에
조선시대에 사용되어진 이런 썩어빠진 사대주의문화인 용의 잡종인 봉황을 계속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상징으로 사용한다는것은 치욕이며,대한민국의 수치라구볼수가있다.

봉황은 다시말하지만,우리나라의 국운을 막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왕을상징하는 재수없는
의미를함축하여 만들어진 새라는것이다.주류가아닌 잡종으로 만들어진걸,그래두 용의씨를
받았으니 황송하다구,받들어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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