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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이 있는곳이 어디일까? 오마이뉴스의 짝퉁을지향하는,그런곳은 언제나 오마이뉴스는커녕,언제나 그아래 짝퉁이될수밖에는 없다.

블로그정보에대한 글을 잘적지는않지만,블로거들이 알아두면 좋은곳이라 정보글로서 남겨둔다.
둥글다라는것은 포용과 다양함을 근본으로한다.블로그의 장점은 다양함과 포용이라구본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구,저건 블로그두아니여,어쩌구하며,의견을 내놓을수는있으나,아예 사라져야할것이라구,일방지향적관점으로 블로그를 정의하려는 인간들을 나는 쓰레기라구생각한다.




블로그는 진행형이구,다양성에있어.블로그보다 더 위대한곳은 없다.블로그에대한 여러가지 다양한
시도가있어야하며,그러한시도들이 나쁘다구생각치않으며
,블로그의 모습이 어떻게변해갈것인지
독단적으로 이렇게되야한다,정의하구,그러한기준에 맞지않는시도는 나쁘다라는 관점을 가지는것은
오직 쓰레기밖에될수없는 논리라구 생각한다.


자신과 뜻과 의견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만들든,무엇을하든 그것은 그들의 가치이기에,
블로그는 이래야한다라는구 정의하지말자라는것이다.


진행형인 블로그를 왜? 규정하려하는가, 단체를 만들어 세력화되든,그러한행동에 참가하든,그것은
그들의 자유이며,대표성을 가지든,안가지든,다양성속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나오는것이므로,시도를
해보구,긍정적이면 그것두 좋은것이구,긍정적이지않으면 그것두 블로그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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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에대한 정보와 블로거들의 정보에대한 글들을 모아놓은 뉴스로그라는곳.
블로그를 등록해두면 자신의 글이 링크형식으로 게제되기에,오마이뉴스짝퉁에 짜증난 블로거들에게
대안의 될수있는 사이트로보였다.


사이트를 들러보니 전체적인 느낌두 편안한 느낌을주고,알콩달콩한 블로거들의 글과 기자들의
글을 읽을수있어서 좋았다.


어디뉴스 기자는,어떤블로거는 어떤글들을 썼구 어떤평판을 얻구있을까? 기자들중에 임의로
선택해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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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쓴글들이 일목요연하게 나와있구,등록된 블로거의 글또한 모아져 찾아볼수있게 되어있었다.
반가운사이트이다.오마이뉴스짝퉁에 짜증난 "절이 싫으면 중이떠나야하는것처럼"블로거들에게 대안이
될수도있는 자신의 글을 알릴수도있구,좋은글들을 읽어볼수도있기에 의미있는 시도를하는곳이라는 생각이든다.



아류와 스크랩을 생산하여,짝퉁을 지향을하는그런곳보다,당당히 어리벙벙하구,못쓰는글이라할지라두,
자신의생각과 글을 나름대루 적어나가는
블로그들에게 의미가있는곳이기에,블로그를 등록하여 참여해
틈틈히 시간날때 둘러보구 글들을 읽어보기에 편안함과정감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가진 짝퉁이아닌
열린지향을 추구하는곳으로 생각되어졌다.


p.s 세계는 넓다라는 말처럼,다양한 나라의 언어와음악이 있는데,생소한(?) 언어로만들어진 음악중에
독특한 느낌을주는 음악이있길래.......이런나라의 음악두있구나 감상해보시라구^^


음악이 언어가 다양한것처럼
,블로그세계는 생각하는것보다,너무커서 모든것을 포용해버릴수있는
엄청난 우주와같은곳이 블로그이다.우주상태로 팽창할수있는 블로그를,이렇게행동하구,이렇게해야
하는것이 블로그다라구 정의하려는 그자체가,대갈박이 사고가 편협하다구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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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행적과 이미지는 다양한해석이 가능하지만,그사람의 공이나 전술등의 면에있어서는 제대로 알려져있지않다.

연개소문에대한 공에대한 기록은 달랑 2줄밖에없다.
삼국사기의 보장왕21년(662)에 기록되어있다.


"21년 봄 정월, 좌효위 장군 백주 자사 옥저도총관 방효태가 개소문과 사수 언덕에서 싸우다가 그의 군사가 전멸하였다. 효태도 그의 아들 13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소정방은 평양을 포위했다. 그 때 마침 폭설이 내렸으므로 그들은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역사란 문장구절자체에 집착하기보다는,그당시 시대적상황을 고려하여 전체적인 문맥을 이해하구
풀이해야한다.세계3대해전의 한사람인 도고헤이아치로 제독두 실전사령관은,수도나 궁성에 머물러
지휘하는게아니라,직접 현장에서 지휘했다는것이다.또한 당나라 장군 이세적을 보더라두,
옛날의 장군들은 80살먹었더라두,현장에서 싸우지,수도에 머물며,현장의 군을 지휘하지않는다는것이다.


그런데,유독 연개소문은은 실전사령관이었는데,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에서 연개소문이 위치는
언제나  평양성에서 지휘했을것이라는 어리석은추정에서 사수대첩의 의미가 축소되구있다.


사수는 평양성근처에 위치해있지않았으며,연개소문은 고,당전쟁시 수도평양에서 머물면서
지휘했다는 이런엉터리해석은 기본적으로  상충되는구절을 만들어내는 허구의 가설일뿐이다.


연개소문은 왕이아니었구,실전사령관이었다.적국과 싸울때 누구보다 먼저,앞장서서 나아가
싸웠을것이다.
연개소문은,평양성에서 지휘하다가,방효태군의 별동대가 온다는것을알구,
소정방에게 포위되어진 평양성을 빠져나가,평양성근처에서 방효태군을 기다리다가 싸워서 이겼다라는
이러한 논리는 전혀 엉터리가설일뿐이다.


좌효위대장군 방효태가 이끄는 군은 별동대가 아니라,핵심적 지원군으로,그병력규모는
기존에 평양성을 에워싼 당군사보다 더많았을것이며,군사의 수는 못해두 30만명은 넘었을것이다.


방효태가 이끄는 군사는 수군이아니라,육로로 행군해서 들어왔다.이미 평양성이 포위된상태에서
지원부대가 오구있다는걸 알았다면,연개소문이 위치는 원래부터,평양성에있지않았구,최전선에
위치해있었다구 보는것이 타당하다
.요동성이나 안시성등 지금의 동북3성근처의 사수라는 강
어디에서인가 퇴로를 끊구,연개소문이 기다리구있었다구 볼수있다.


이때 주목해봐야할 기록이 사수대첩이 일어난 당고조때가 아닌 당태종이 이전에 고구려를 침입하여,
도종이라는 사람하구 나눈대화의 요점이,어째서 자신이 고구려공략에 실패하였는가라구 물었을때
안시성에 집착하지말구,평양에 먼저 별동대를 보내서 혼란케해어야 하지않았나 대답하는기록이다.


연개소문은,최전선에서 싸웠을것이며,싸움에 승리는,오히려 당나라영역으로 꺼구로 진격하는
전술로 맞대응했다구볼수있다.당태종이,늪지를 급하게 도망갔던 이유도,후방이 연개소문에게
차단되었구,오히려 당의 영역에 연개소문이 진격하였기때문이었을것이다.


연개소문이 평양성에 머물러 지휘했다면,어느세월에 평양성에서 연개소문이나와  당태종이 그렇게 겁을
먹구 살기급급하여  급히퇴각하구 도망갔는지 그해답이 나오지않는다.


사수대첩에서두,연개소문의 위치는 평양성이 아니라,최선에위치해서 싸웠을것이구
평양성에 밀구올라간게아니라,최선에서 오히려 당나라영역쪽으로 밀구올라갔다구 볼수가있다.


후방이 퇴로가 막혀있던,소정방군대뿐만이아니라,지원군으로  넘어왔던 모든 행군도총관들두,
요동지역에서 현장지휘를했던,연개소문에 의하여,다 궤멸되었다구볼수있다.


그러므로 사수대첩에서 죽은 당군의 숫자는 최소한 30만명이상이었으며,연개소문의 성격상
단1사람두 남김없이 죽였을것이다.전멸이 뜻하는것은,포로가 없다라는의미로 해석하는것이
타당하다.


어찌되었든,고.당전쟁에서 연개소문의 지휘위치는 평양성이아니라,최전선이었으며,안시성전투,
사수대첩등 모든전투에서 연개소문이었을것이다. 안시성성주 양만춘이라는 인물두 허구일
가망성이 100%라구 생각한다.안시성이 포위되었을때 고구려에서 지원군을 10-20만을 보냈다는것은,
안시성을 구하기위하여 우리나라는 전력을 기울였다구 볼수있으며,그렇게한 가장중요한이유는,
그러한 병력을 동원할수있구 지원할수밖에 없는 중요한인물이 안시성에 포위되어 지휘하구
있었다구볼수있다.


즉,당태종의 눈까리를 맞춘화살이나,당태종이 늪을따라 목숨을 구걸하면서 도망가게한,당나라영토
깊숙히 추격할수있는 권한이나 배포를가진것은,그당시 상황하에서는 일개성주가 그렇게했을리는없구,
현장지휘자가 연개소문이었다면,가능한 이론이라구볼수있다.


안시성전투나,사수대첩 이모든 일련의 전투는 연개소문이 직접지휘했구,당태종이 눈까리에 화살을
맞구,안시성성주를 기특하게여겨,비단과 의복을 내렸다는데,그대상은 허구인 양만춘이아니라,
연개소문을 역적이라구 기술한 삼국사기의 잘못된평가기록때문이었다구 볼수있으며,역적에게는
공이 있었두,작게하거나,없게기술하는게 역적기술에 더합당하기에,누구인지는 모르는 안시성성주라는
두리뭉실한기록으로 넘어가버렸다구 볼수있다.


이런한 시대적기록이 조선후기에 양만춘이라는 가공의 인물로기록돼지만,조선시대는 고구려역사의
암흑기였기에,제대로된 개념을가지구 고구려역사를 논할수있는 사관이나 역사가는 애시당초 존재하지않구
멸종되었던시대였기에,조선시대에 기록된 고구려역사기록은 가장신뢰할수없는 기록이라구 볼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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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쓰려다,약속이라는것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사람들의 가치관은 다양하기에,자신의 기준에서는 사소하다구 생각되는게,어떤사람에게는 큰가치일수가있다.

농담처럼 담긴 댓글하나의 약속에두 소중하게생각하는 가치관을가지구있는사람두있구,별것두 아닌데사소한 약속은 안지켜두돼지라구 대범하게 생각하는사람두 있을것이다.

중요한약속두있을것이구,사소한약속두있을것인데,
가장피해할 약속이,분위기상이라든지,마음과는
다른약속을 하게되는경우이다.




분위기상,상대방을 맞춰주려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상대방이 그럼 토요일은 어떨가요?
이렇게 생각치두못한 구체적으로 정해져버리는 약속이되면,맞짱구로 무심코건넨 한마디가
나는왜 이모양이야,분위기상 쓸데없는말 하는거 고쳐야지,고쳐야지.......



아무리 분위기상으로라두,왜 내가 하지안해두 되는 쓸데없는 말을했을가,그런 약속을 한날은,
뭔핑계꺼리가 없나, 대갈박두 굴려보지만,주어담을수는 없기에,그리구 담부터는 절대 분위기에
이끌려 약속을 하지말아야지,말아야지.......



빈말이라두,약속과 관련되어지는말은,덜렁되지말구,한번더 생각해보구 말해야한다는것이다.
분위기에 덜렁거리는 kungmi "뮤지컬을 좋아하시나봐요? 저두 뮤지컬를 좋아합니다.하하하하"
좋아하기는 개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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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대의 미스테리가,광개토태왕의 아들인,장수왕의 평양천도부분이다.


삼국사기 장수왕 15년에 적혀있는 "이도평양"이라는 단어로,평양은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를 했다는 데,과연 지금의 평양이,장수왕이 천도했다는 평양인지에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삼국사기를 전체적으로 읽어보니,전혀앞뒤가 안맞는 구절이많기에,고구려의 수도 평양이 어디인가에대하여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광개토태왕은,고구려역사에서,북방민족을 제압하면서 정복군주로서 북방영토를 넓히며 광활한 영토를
만든왕이었다.그리구 그러한 막강한 권력을 이어받은 아들이,북방에는 눈을떼구,그렇다구,백제의
왕을 잡아죽이면서두,그나라를 영토로 편입할생각두 없었다는것은 장수왕의 행적을보면 알수있구,전혀
백제나 신라를 패망시켜 나라를 흡수할생각두 없었음을 알수있는데,어느날 갑자기,남진정책을
위하여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했다는것은,뭔가 평양이라는 위치가 지금이 평양이 아닐수있다는
생각이들었다
.



삼국사기 광개토태왕편을 보면,광개토태왕 16년 궁궐을 중축하고.18년에는 동쪽 지방에 독산 등
여섯 개의 성을 쌓고, 평양의 백성들을 이주시켰다라구 나오는데,동쪽지방에 성을 쌓았는데
자신의 아들이 수도로 옮길, 평양의 사람을 이주시키구,얼마없으면 떠날 궁궐을 뭐하러 중축하구
있었겠는가,평양의 위치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는의미로 보여지구,평양은,지금의 간도라구부르는
동으로 토문강이라구하는곳,그곳어디엔가 위치한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장수왕 15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의미는,지금의 평양으로 장수왕이 천도했다는의미가
아니라,송화강근처,지금의 흑룡강성일대 토문강주변에있던 지역을 부르는말이 아닌가생각이든다.
삼국사기 고구려편에는 왕에 관련된 기사들중 "왕이 졸본에 가서 시조의 사당에 제사지냈다"
이런 비슷한 구절들이 여러개보인다.



특이하게 생각되는것중하나가,평양이 장수왕이래루,고구려의 수도였다면,왕의 무덤들은 당연히
지금의 평양에 산재해있는게 당연할것인데,평양에는 고구려의 왕들의 무덤이라구 알려진게 하나두
없다는점이다
.죽기는 평양에서죽고,묻힌곳은 졸본에가서 뭍혀다구 이해할수도있겠지만,어째든
삼국사기 장수왕조에 기록된 네글자 "이도평양"을 근거로,장수왕때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했다구
해석되어지는것은 잘못되어졌다구 생각되어진디.장수왕이 말한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어디인가,평양이라는곳이 별도로 존재하구있었다구보는것이 더 합리적이다.



지금의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로 고구려의 왕들이 왕성이된것은 삼국사기 기록을 토대로
보면, 지금의 평양은  장안성이라구 기록되어곳이라구 보는것이 더합당하다구 생각되어진다.
장안성=지금의 평양이라구본다면 장안성을 근거로 기록을 찾아보면



양원왕8년, 장안성을 쌓았다. 평원왕 (평원왕 양원왕의 맏아들이다)28년,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영양왕( 평원왕의 맏아들이다),영류왕은(영양왕의 이복 아우이다)보장왕 (영류왕 아우인 대양왕의 아들이다)



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 이렇게 5명의 왕만이 지금의 평양에 살았던 임금이라구
볼수가있다.장수왕이 도읍을 옮겼다는 평양이 지금이 평양이라면,그이후 오래세월이 지난
평원왕28년에 나오는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기록된,장안성은 그럼 어디란말인가?



현재의 평양에서 장수왕이후 쭈욱수도로 삼아왔다면,평원왕이 아버지 양원왕이 공들여 장안성을쌓구
그아들인 평원왕이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겨버렸는데,분명한것은 궁궐을 옮긴게아니라,도읍을 옮겼다구
기록되어져있는데
,장수왕조 15년의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는것만가지구,그때의 평양은 지금의 평양
이라구 단정하는것은,그이후의 왕인 평원왕이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구 기록되어지는것을보면
이상하다.



그러므로 지금의 평양은,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이렇게 이어져온 장안성을 의미하구
광개토태왕조나 장수왕조에 나오는 평양은,지금이 평양이아니라,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수도가
있었던,상경용천부지역인,우리나라의 간도부르는곳,그곳에 고구려의 평양이있었다구볼수있다.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신뢰성은 없다.그러나 삼국사기기록을 보더라두,장수왕조의 평양천도는
절대성립될수없는,그시대상황과 전혀맞지않는 이도평양이라는 네글자에 억메인 오류라구
생각한다.설령 평양으로 장수왕이 도읍을 바꿔다해두,지금의 평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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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라벨지나,기타인쇄문서를 작성할때 글씨나 문자에있어 세로글씨를쓰기나,글자의 회전,기울기같은것을 만들어내는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있다.물론 포토샵이나 플래시를 다룰줄안다면,문자나 도형등이다양한 변화를 쉽게만들어낼수가있다.그러나 그러한것을 배우지않은 사람일지라두,그런것을 만들어내야
할경우도있다.이런경우에 프로그램이 없다해두,윈도우에 자체내장된 그림판의 기능을 활용하면 쉽게
만들어낼수가있다.


아래의 그림을 참조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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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바탕화면 우측 맨아래부분-시작-모든프로그램-보조프로그램-그림판을 선택하여 열어준후
위에 그림에서처럼 A라는 선택해준후,마우스왼쪽버튼을 눌러준채 드래그하여 넓히면 글씨를 쓸수있는 범위의 파란선이나타나게된다.선택되어진 공간에서,마우스오른쪽버튼을 선택하면 텍스트도구모음을 선택할수가있다.나타난 텍스트도구모음창에 맨오른쪽끝에보면,문서처럼세로모양의 아이콘이보인다.그곳을 선택하면
세로글씨를 작성할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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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그림처럼,글씨를 세로로 써준후,쓰여진 글자나 도형부분을 그림판의 왼쪽부분 별모양옆에
사각형표시되어있는것을 선택한후,마우스왼쪽버튼을 눌러준채 드래그하여 선택해주면 선택되어진부분에
파란선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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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그림에서처럼 선택되어진 글자나 도형에 파란선이 선택된 상태에서,그림판의 항목중- 이미지-를
선택하면 세부항목중에,대칭이동회전을 선택해주면 선택되어진 글자나 도형의 회전이나 기타 다양한
모양으로 위치시킬수있며.늘이기,기울기를 택하면 글자나 도형의 기울기를 변화시켜줄수가있다.


그림판에서 작업하다가,실수로 틀린작업을했거나,엉뚱한곳을 잘못그려줬거나했을경우,망가지기전
전단계로 되게하는 단축키는
키보드자판에서 ctrl+z를 동시에선택해주면,전단계작업상태로 가게된다.


포토샵이나 플래시같은 프로그램을 다룰줄모른다해두,컴퓨터자체에 내장된 그림판의 기능을알아두면,
문서나 도형작성시 글씨체의 세로변경이나,늘이기,기울기등의 필요한 문서작업이나 인쇄해야하는경우 
도움이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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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김대중,노무현각하,지난 10년간 수구보수세력의
모진공격에두,대한민국의 철없는 국민은 몰라서 그러는거니,


가르침을 받아야 제대로 된다는 넓으신 자애로운마음으로 대한민국을위하여,밤을 낮인냥 불철주야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며,고생하시던 보습이 눈에선합니다.


애쓰시구 고생하셨습니다.훗날 역사의 정당한 평가가 있을것으로 생각합니다.





비가오는데,우리 위대하신 지도자동지 사진을 비맞게하면 됩니까?
이딴거 두고볼수없습네다.이따구로하면 응원단이구뭐구,돌아가겠시요~


우리아바이 수령님 국기하구,북한국가연주하시라우요.
북한국가를 들으며, 통일을 위한 위대한일을 하구있습네다.눈물 줄줄~ 
위대하신 지도자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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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월드컵축구대회예선에서 만나자.태도는 180도 달라진 뽀끄리


민족이중요하지,남한국기나,애국가는 반통일적인것이야.
남한을 국가로 인정하느니 차라리 전쟁을 하갔어,남한이 무슨국가냐
때중이샤키하구 뭇현이 어뎄갔어.갸들 대한민국 국가구,애국가구 이런거 알아서
내가 신경안쓰게 자발적으로 굽신거리던데, 정권이 바꼈다구 대들겠다는거야?.......
불바다돼봐야?정신차릴래? 확~


한민족인데 응원단이 왜필요해? 우리가 알아서 응원두해줄테니,
응원단 그딴거 오지마라, 응원단오는건 반통일적인것이야,
오로지,국기두,국가두,응원단두 오직 나를위해서존재할때 비로서,
통일적인것이구, 나머지는 다 반통일적이야,다죽이갔어


300명만이 넘게 굶겨죽이거나,고문하거나,수용소에가둬서 죽인 위대한 뽀그리에 이로운것은 통일적이구,뽀그리에게 안이로운것은 반통일적인것이라는.......


뽀그리의 공과사는
모두,대쭝이와뭇현의 공과업적에 동기화된것이므로 ,두눔이 뽀그리와함께 후세 역사가들에 의하여 역사의 평가를 받게될것이다.햇볏정책이 과연 북한동포를 이롭게해준건지,아니면 뽀그리를
이롭게 해준 통일을 방해한 비겁자의 반통일협조정책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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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를보면,역사드라마에서 나오는 백성들의 모습과 전혀다른모습이었지 않을까생각한다.그중에서 칼에대한부분이다.우리나라는 칼을 숭상하는문화였구,그러한 전통은 반만년역사속에서 흘러왔으며,이러한 문화가 왜곡되어진것은 반만년역사중 조선왕조기간뿐이었다는것이다.


고구려시대에두,평민이든,귀족이든 상관없이,무를 숭상했으며,고구려에서 다른나라에 파견된고구려사신의 고분벽화의 모습은,역사드라마에서 자주나오는 글쟁이 사신모습이아니라,칼을차구있는 모습이라는것이다.오늘날로보면,타국나라에 파견되어진 우리나라 외교관이 칼을차구 공무를 보는것하구 똑같다.


또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듯이,연개소문은 칼을 몸에 5개나 차구다녔다는 기록두있다. 칼을 차구다닌다는것과 칼을 들구다니는것은 비슷해보이지만,




실생활에서보면,일이있거나,군사훈련할때만 칼을 가지구다니는것은 들구다니는개념에 가깝구, 일반생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칼을차구다녔다는 의미와 비슷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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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귀족이라서 칼을차구다닌게아니라,고구려의 일반백성들두 칼 1-2개는 보통으로 일상생활처럼차구다녔다는것이다.


신라에서두,칼을 중시했던 문화가 화랑이란집단에서 찾아볼수있는데 ,일상생활과 군인생활이 구분없는,
일상화된 개념으로 칼을차구 다녔다는것이다.


이러한 일상화된 집단인 칼을차구다니는 화랑도가있었기에 신라가 3국을 통일할수있는 튼튼한 정신적
토대가 될수있었던것이다.



현재 역사드라마에서 보여지는,시대구분할것없이 군인이나 칼을 들구다니지,일반백성들은 봇짐이나 광주리등을 들구다니구,평상시 칼을들구 다니는 그러한모습은 전혀안보임을 알수있는데,이건뭔가 틀렸다구본다.


삼국사기를 보면,신라,고구려,백제와의 전쟁시에 자주나오는게,승패의 결정적향방은,칼을 들구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일부러죽음을 당하여,사기를 높여서 이겼다라는 기록이많다.


일본사무라이들이,홀로 칼을들구 외치면서 적진에돌격하는 모습의 원조는 우리나라에서 아주오래전
삼국사기에 일찍부터 그러한 모습을 가지구있었다는걸 기록하구있다.


통일신라이후 후삼국시대에두,혼란한시기상,일반백성들이 봇짐이나 메구다니구,이렇지는 않았을것이구
일상화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해서라두 칼을 차구다녔을것이다.


고려시대에 넘어와서두,이러한 숭무의 전통이 남아있었기에,무신정권이 생겨나는 밑바탕이되었을것이며
고려와 몽고의 항쟁만해두 30년넘게 싸웠구,무신정권하에서두,숭무가 상징하는것은 곧 칼이었다.


이러한  칼숭상문화가,조선에 들어오면서,철저한 사대주의의 결과,500년동안에 큰전쟁이라구해봐야,
정묘,병자,임진 3개정도뿐이었구,양반입네,부모의 나라이네  어쩌구하는 개벽따구,유교적 공자왈,맹자왈을 집권자들이 강요한결과,전혀 엉뚱한 이미지로 일반백성들은 시대구분없이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들구다니는 모습으로 고정화시켰다구본다.


우리나라의 고대무덤에서,죽은사람의 무덤에 평소사용하던 칼이나 무기류가 함께 있는걸보면,
일상생활에서 칼을차구다닌것이지,장식용이나, 나라의 위급상황에서만 칼을 들구다녔다구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중 지극히 일부인 조선시대를 빼놓구,칼을 숭상하는 문화는 고구려시대부터~
고려까지
주욱이어져오지않았나 생각되어진다.


우리나라가 칼을숭상했다구해서 다른나라를 침략하는 호전적면이있었던것두아니지만,그렇다구
순한양처럼,어느시대건 통틀어 백성들은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나 들구다니는 그런모습은,절대아니라본다.
분명히 호신용이든,공격용이든,일반백성들두 칼을차구 다녔을것은 분명하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졌을때,히로히또천황이 " 겨울에 푸르른 소나무처럼~"이런말루 일본국민을
단결시켰는데,이말은,이미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 비녕자열전편에 김유신장군이 한 말이다.
"추운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법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만 강조되구,우리나라는 일반백성은 어느시대구,조선시대의 일반백성의 모습인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만 들구다니는 순한양같은 어벙벙한 모습으로 표현되는것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최소한 고구려 시대의 일반백성들은  칼한자루 필수적으로 차구다니는 모습이 더 역사적사실에 가깝
다구생각한다.


우리나라두 칼을 일상화처럼 차구다녔던,시대가있었구,그러한 사무라이보다,더한 정신력을 가진
문화두있었다는것이다
.안타깝게두,그러한 고구려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이,조선시대에 멸종되어버렸다.
조선시대가 민족의 기상면에있서는 가장 부끄러운시대였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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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언어들두있는데,몽골어는 어떻게생겼을까? 전세계에 언어가 다양하다보니,문자모양들이궁금해졌다.몽골어는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봤다.


세계의 나라마다 자신들의 언어가있다.한글윈도우를 사용하구있다하더라두,외국인친구들과의이메일이교환이나,문서작성을 할경우 그나라의 언어를 사용하여 적을 필요가있을경우도 있다.

예시적으로 한글윈도우에서 필요할때 몽골어,일본어등의 외국문자들을 사용하는방법에 대하여


 


아래의 그림을 참조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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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그림에서처럼,컴퓨터바탕화면에 맨아래 작업표시줄에  한영표시가 바뀌는부분에 a나 가
등으로 바뀌는부분위에서
마우스오른쪽버튼-설정-선택하면 기본적으로 한국어입력기만 들어있다.
추가를 선택하면 입력언어추가창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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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그림에서처럼 기본적으로 설치되어있는 한국어말구,사용하고싶은 나라의 언어,예를들면
몽골어라든지 일본어,아니면 수많은언어들중에서 자신이 문서작성에 필요한 나라의 언어를 선택해주고-
확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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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그림에서처럼 추가된언어들이 나타나게된다.추가되어진 언어들중에 사용하고픈,언어를
선택하여 적용-확인해주면,그나라의 언어로 문서를 작성할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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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그림에서처럼 영어이외의 다른나라의 언어를 설치했을경우,필요할때 작업표시줄에서 ko,jp,mc
등으로 필요로하는 언어를 선택할수가있다.기본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할때는 한국어나 영어가
자동적으로 사용되어지구,그나라의 언어로 문서같은것을 작성할때만,작업표시줄에있는 특정언어를
위에그림에서처럼 선택하여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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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어가 어떻게생긴건지,시험삼아 메모장에 적어보았는데,알파벳같기두하구,상형문자같기두하구,
쓰여진 몽골어가 무슨의미인지 나두모른다.몽골어를 자판배열대루 적어놓아본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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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하면서,한번쯤 뒤돌아보구, 별꼴같지않는 내블로그는 어디쯤가구있는지 확인해보구싶을때,작은것같은부분이지만 kungmi가 찾아보는곳이,다음의 디렉토리검색이라는 부분입니다.

처음에 블로그를 시작할때,블로그순위 100위안에 들어가는것을 목표로잡구 걸어가구있었는데,

오늘 궁금해서,다음의 디렉토리검색에서 블로그순위를 찾아보게되었는데,내가 목표했던,순위를
이루었기에,기념포스팅으로 간직해두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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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블로그 순위는 25위였구
전체블로그 순위는 목표로했던 100위를 뛰어넘어 53위였습니다.


잘못된것아닌가하구,내블로그는 ,댓글두 별루없구,왁자지껄
한분위기두 없어서,유배당한 고도에 벽보구 나혼자 위안삼으며 글쓰구있는줄알구있어서
잘못나와나 싶은생각두 들어서 세부부분을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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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거북이처럼,뚜벅,뚜벅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쓰다보니,어느새에 신문에두 글두나오구,다음까페,블로그메인에 글두올라보구,목표로했던 블로그 100위진입두 달성하구,얼쑤~^^


거북이의 모토루 쭈욱가다보면,혹시 1위까지 갈수가?^^  택두없는 잠꼬대 고만해야지 ㅋ.ㅋ
kungmi가 생각해본봐,일반인이라구해두 누구나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면,누구에게나
가능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블로그는 누구나,빠르면 빠를수록 운영해나가는것이,전체적으로
보면 자신의 삶에 유의미한 퀄러티가될수도있겠다는 생각이든다.


자신의 넉두리라구해두,자신이 만들어나가는글과 컨텐츠들이,하나의 작품이될수도있는 시대변화
인걸보면 블로그가 가지는 의미는,개인적이면서두,그파급력이 개인에게만 머물지않는,미디어성격두
결합되어있는 요상,방통한 블로그----------------------------블로그를 무엇으로 정의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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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리나라의 들과산에는 표범이 살구있었다.표범이 들과야산에 돌다다녔던 조선시대에 표범과 그시대의 가치관에대하여 찾아보려구한다.


실용과 실사구시적 측면보다는 가식과 명분등의 것치레에 치중해서 싸우기를 좋아했던 조선시대의정치문화의 단면이,표범이라는 동물과 관련되어 나타나는데,오늘날에두,이런 공자왈,맹자왈하면서,쓸데없는 이념이나 체면에치후쳐,백성을 위한 실사구시적 정치보다는 당파적 이익에만 몰두하여 주댕아리싸움을 즐겨하는 그러한 뒤떨어진 정치문화의 관습이 이어져오구있다.




아나운서가 음주운전을하지말라구 방송에나와서 캠페인을 벌이면서,뒤로는 술처먹구 음주음전
으로 단속된다든지
,겉으로는 키스해본적두 없구,순결을 지켜야한다는 방송에나와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
뒤로는 호빠를 가면서 이중적모습을 보이는 여자연예인 ,남에게는 엄격하구,자신에게는
너무나 관대한,그러면서두 주댕아리는 정의와자유를 외치구,실제행동은 개차반이구,
이미지로 단물을 빨아먹는 가식적인것들의 사고방식속에는 이러한 이중적 것치레를 중시했던
양반입네,쌍눔이네하는 그러한 유교적 명분주의의 영향이 크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표범과 관련되어진 황당한 시츄에이션속으로 들어가보자


때는 1428년 세종 10년의 일이다.

양주에사는 최종생이,표범을 잡아서 나라에 바치니,세종대왕이 면포7필을 표범을 잡아 받친
사람에게 내렸다.


그런데 도중에 그 명을 받들어 시행하는 관리인 최습이  상을 주라는 명을 시행할려고
상세한 내용을 확인해보니, 표범을 직접잡은 사람두있었지만,표범잡는데 몰이꾼으로 도움을준
사람두있었다는것을 알게되어서,시행과정에서 표범을 직접잡은 사람에게는 면포5필,조력하여
도운사람에게는 면포2필을 나누어지급했는데,이 일이 세종에게 알려지게되었는데.


세종:내가 표범잡은 사람에게 면포7필 주라구했어,안했어?
최습:제대로 명을 시행하여 면포를 주었습니다.
세종:똑바루 시행했는데,2필은 도움을준사람에게 줬다는 소리가 왜들리냐?
최습:표범을 잡는데,조력한사람두 공이있지 않겠습니까?
세종:표범잡은사람에게 주라구했어 안했어?
       여봐라 최습 저눔의 벼슬을 박탈하구,장80대를 치도록해라.
최습:억울하옵니다
세종:억울은 개뿔,너가 왕이냐? 누가 너맘대루 명을 시행하라구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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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관점에서보면,최습의 일처리가 타당한면이 있는것같은데,조선시대의 당시 사회문화에서는
이것은,맞아죽을일이었다는것이다.조선시대는 호랑이를 잡은 공에대하여두 포상에 차이를두는 절차
까지두  문서로서 정해놓았는데,맨먼저 창이나 화살을 맞춘사람,두번째로 창이나 화살을 맞춘사람
세번째루.......
이런식으로 호랑이를 직접잡았더래두,선,후를 가려서 포상하는데,직접잡은것두아니구
그냥 옆에서 조력한사람에게 공이있다구하여 상을줬으니,가식적인 겉모습을 중시하던 시대상황에서는
통용될수없는 판단이며 행위였다.


오늘날에서보면,화려한 주연배우가있다면,그뒤에서 주연배우를 빛나게하는 조연두있구,말없이 도움을
주는 스텝두있을것인데,눈에보이는 주연배우 그자체만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볼수가있다.


눈에보이는것,직접적인행동을 한사람만 최고라는, 결과가아닌 것모습이나 보여지는 체면에 집중한 이러한,
덜떨어진 이중성이 표범의 상벌처리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구있다.


선진화된 사회일수록,썩어빠진 눈에보이는,주댕아리는 정의와명분 외치구 실제행동과결과는 개차반들이
이미지쇼댓가로 단물을 빨아먹는 그런 이중적인것을 멀리하는 사회적시스템이 가동된다는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두,실용과 실사구시적측면보다는,이념이나 주댕아리, 쇼맨쉽등 눈에 보여지는
이미지만을 추종하구 실제의 결과보다,보여지는 허상이나 겉치레를 더좋아하는 이중적가치관이
아직두 남아있구,
이러한 명분론적 공자왈,맹자왈하는것들은 타파되어야할,사회의 암적인
가치관이라는것이다.


실사구시와 실용의 이면은,당리당략적인 명분론적 싸움보다는 최우선으로 백성들의 삶에 관심을두고
그러한 관점에서 나라의 부강을 이루어낸다는것이다.아직까지두 표범의 일처리처럼,겉치레와 명분에 치후쳐,개소리나발을불며,백성들을 분열시키구,이간질시키며,결과가없는 빈깡통,이미지쇼에만 오,교주님, 오,교주님하는 덜떨어진 것치레의 이중성을 보여주는것들이 많다는것이다.


이미지정치는 단물은,묵묵히 가려진 삶속에 사는 백성들이 혜택을본게아니라,이미지정치를한 
당사자와패거리들에게 돌아갔구,그러한것들은 뭐한자리라두 챙겨먹었구,더  안도와줘두 나라세금으로
평생 잘처먹구 잘살게되었다는것이다.


오,교주님,오~ 교주님하기전에,자신의 삶을 살펴보자,과연 자신에게 무엇을 더낫구,좋게해주었는지
결과야 어떻든 허울데기가 감동만주면돼 이런식이라면,사기꾼의 말과 언변두 참으로 듣기에는
달콤하구,좋지만
결과는 언제는 그말을 믿은사람에게는 비참한 결과가 생기게된다는것이다.


허울데기의 명분이나 주댕아리가아닌,백성의 삶을 낫게하여 더욱부강한 나라,그것을 염원하는것이지,
달콤한 말이나 주댕아리들의 쇼와이중성에는 이젠 넌덜머리가 난다는것이다.


북한에대한 정책두마찬가지다,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의 삶두 제대루못챙겨,300만명이 넘게 죽였구
계속 헐벗은 동포들을 굶겨죽어나가게하는 것들은,아무리좋은 민족이구,이념이구,동질성어쩌구하기전에,
이미 인간말종의 정치인들이라는것이구 그러한 악독한정권지배층에대하여 굽신이 아니라,
매를 들어야한다는것이다.


또한 이런거지같은것들에게 협조하여,뒷돈까지주면서 굽신거린시기에
죽어나간 300만명이 넘는 우리동포들의 원혼을 위해서두 악독한정권지배자의 몰락과함께
역사에 단죄를 받아야한다는것이다.


악독한 지도체제가 붕괴되지않는한 해결될수없는 문제인데두
닝기리주사만 처방하여,암을 암이라구안하구,잘될거라구 거짓쇼를한 댓가는 반드시 심판받아야한다.
의사가,암에걸린사람은 암이라구 판정하구 말해줘야지,암은아니구,암은아니구여,닝기리만 주사만해주면
다 잘될거라구 환자를 속여,악독한정권만 더공고하게해준 돌팔이 의사는 더이상 나타나지않도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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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대로,키보드자판이 쓰여지는데루 글을적어보려구합니다.오늘의 양념은 블로그와 그에부가되는현상들에대하여,나름껏 비판해보고자합니다.

노랑색이 의미하는것은,근본적으로 다른색과함께있으면,칙칙함을만들며,홀로 유아독존으로 있을때 그색은돋보이지,다른것과 융화나 화합을 이루지못하는 색깔입니다.노랑색깔이 의미하는것은 배신,분열,이중성,싸움을 근본적으로 의미한다.

제가 처음에 블로그시작했을때,그때두 인기블로거들은있었습니다.




글만쓰면,다음블로그뉴스에 헤드라인을 꼭차지하는사람들이었죠.그런데 그런인기블로거들을보면서 공통적으로 발견했던부분이,어느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나관념을 표현한 블로거의 글들이 블로거메인에 주로 자리잡구있었으며,그러한 현상은 변함없이 다음블로그뉴스에 이어지구있다구 생각합니다.


이러한현상은,다음블로거뉴스의 편집진의 생각이나 가치관에따라 다음블로그뉴스의 인기글코너에
선택되어지는 막강한(?)눈에 보이지않는 판단기준 권력의 행사이기에 그에 발맞춰 나가는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인기가있다보니,눈치빠른 블로거들은,이미 다음블로그뉴스의 편집진의 경향에 맞춰서
글을써야 좋은글로 뽑인다는것은 말안해줘두
,스스로 인기글에 뽑히는 글들을 통하여 알수가있기에
블로거들이 그러한 블로그뉴스편집진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일치하는글들이 넘쳐났구,지금두 변함이없다구 생각합니다.


다음블로그뉴스는 지극히두 다음블로그뉴스편집진의 생각과 가치관에 동조하는  일방적이구,
편향적방향의쪽만에 치우친 글들을 선호하며 메인글에 블로그뉴스편집진들이 선정한다구
kungmi는 생각합니다



블로거들에게는 다음블로그뉴스가 좋은기회두 제공해주는 통로이기에,다음블로그뉴스 편집진이
경향이 어떻게되었든 그런가부다생각할수도있겠지만,어째든 블로거들에게는 다음블로그뉴스의 편집진
들의 글을 선정하는 기준에 종속될필요가 없다는것입니다.


블로거들의 글들은,다음블로그뉴스편집진의 편향된 시각만 있는게아니라,다양한 시각과 가치관을가진
사람들두 많이 읽는다는것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다음블로그뉴스를 이용하지만, 다음블로그뉴스편집진의 편향적시각의
메인글선정기준들을 보아왔기에,오래전부터 kungmi는 다음블로그뉴스에 메인글목록에 올라가는것은
"그대 아직두 꿈꾸고있는가"라는 푸념섞인 글까지 써던적이 있었습니다.


다음블로그뉴스가 위력이있네,없네하지만,저에게는 뜬구름같은이야기이구,전혀,도움이 안되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철저하게 다음블로그뉴스편집진의 생각과 동떨어진 글들만 써와서인지 나의 블로그는
다음블로그뉴스에 글을보내던지,안보내던지,상관없는 나에게는 그저그런 메타사이트중 하나가
다음블로그뉴스라구 할수가있습니다.


블로거글의 장점은 다음블로그뉴스만이 있는게아니라,블로거들의 글은 수많은 사이트로 퍼지기에
블로거는 특정블로그뉴스에 종속되려구할 필요가 전혀없다는것입니다.또한 블로거는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다음블로그뉴스편집진에맞춰 종속하려구 할필요가 없다구봅니다.


웃기는이야기지만,지금에와서보면,처음 제가 블로그를 시작할때 블로거뉴스의 특정경향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메인단골을했던 블로거들이 블로그를 방문했을때,그들이 블로거가 하루에 수만명의 방문자가 가는걸보구
참 부러운눈으로 봐라보면서,내 블로그는 왜 이모양이야
,그렇게생각했었지만,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써가다보니,하루에 수만명 방문하던  그런블로그의 방문자수와 꾸준히 일정방문자수를 유지하는 제블로그의
방문자숫자가 지금에와서는 도토리키재기 차이밖에 안나는현상이 나타났다는것입니다.


다음블로그뉴스로 제가 블로그를 시작하며,지금까지 총 얻은 방문자수는 1,800명입니다.
작년부터 운영한 블로그운영기간을 생각해보구,다른여러경로에서 방문하는 비율을 본다면
하루방문자수에두 못미치는 있으나 마나한 영향력입니다.


왜 이렇게 하루 수만명이오던 블로거와 제블로그가 동일한 방문자가 되어버렸는지,그이유를
찾아보니
,다음블로그뉴스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블로그는,다음블로그뉴스에 글을쓸때 그날만
방문객들이 넘쳐나구,다음블로그뉴스에 글이 걸리지않는 날에는,형편없는 방문자수를 유지하더라
는것입니다.
반대루,다음블로그뉴스가있던,없던,꾸준히 글을써나간 제블로그에는,꾸준한 글쓰기
덕분에,고정적으로 방문하는 일정방문자가 날들에 차이가별루없이 지금까지온결과,수만명이 방문자가
한번에 방문하는것이 부러웠던,그 블로그의 방문자숫자나 제 블로그의 방문자숫자나 한번 힘껏 달음박질하는
토끼가 앞서던게아니라,뚜벅,뚜벅 자신의 생각대로 걸어간 거북이가 앞지르더라는것입니다.


블로그는 단기간경주가아닌,마라톤인것입니다.그 도중에 다음블로그뉴스는 하나의 기회는
될지언정,
그것만이 방문자수를 만들어주는것이아니라는것입니다.다음블로그뉴스보다는 제생각에는
다음에서 블로그를 대표하는곳,어디냐하면,다음메인에서 카페,블로그로 표시된부분,이곳에 노출
되도록 노력하는것이,다음블로그뉴스에 노출되는것보다,훨씬더 의미있구,좋은결과를 블로그에게
준다구 생각합니다.


다음블로그뉴스에 노출되봐야,블로그뉴스편집진이 생각과 가치관에 부합되는 글이어야하구,
대부분 글쓰는 사람이 99%의 글이 1-200정도방문자를 얻구 블로그뉴스편집진의 알수없는 컷트행사기준에따라 글이사라진다면,다음메인의 카페,블로그로 표시된부분에 블로그글로 소개되면 기본이 1만명이상이 방문한다는것입니다.


이곳은 다음블로그뉴스와는 다르게 블로그나 까페의 글 자체에 대한 소개이기에 편집자의 생각이나
이념,가치관등에 일방적편향성이 종속되거나 나타나지 않는다구 kungmi는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가장중요한것은,블로그의 방문자수는,다음블로그뉴스편집진에게 외면받았다구,
외면안받을라구 노력하는 글을 쓸필요가없다는것이다.왜냐하면,다음블로그뉴스가 아니더라두,
블로그에 쓰는글들은,아무런 매체가 없다해두,검색이라는 막강한 기능이있으며,또한 우리나라에
블로그글을 소개하는곳이,다음블로그뉴스만이 아니라,크게보면 다음블로그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1%라면,
99%는 다른매체가 담당한다는것이다.그러므로 좋은글을 블로글에 써나갈수만있다면,어느한쪽에
목메어 종속되어질필요가 전혀없는게 블로그라는것이다.


다음블로그뉴스는 지극히 작은것중 하나일뿐이라는것입니다.블로그뉴스메인글에 선정되면 좋은것이구,
안된다해두,그것은 다음블로그뉴스편집진이라는 일부의 판단결과이기에,자신의 쓰는글들이 쓸데기없는것들인가 움츠려들필요가 전혀없다구 생각합니다.여러분의 블로그에 쓴글을 방문하여 읽는 지역의 아이피를
한번이라두 어느나라인가 찾아 살펴보면 놀라게될것입니다.


미국,중국,러시아 심지어 부탄이라는 나라에사는 사람까지두,인터넷이된다면 읽구간다는것입니다.그만큼
인터넷에 쓰여진글들은,자기가 생각하지두못하는곳에 사는사람들조차 관심있는글이면 방문하여 읽는다는
것입니다.다음블로그뉴스에 메인글에 채택되지못하는 많은분들,저와함께 요렇게 외치며 웃어봅시다
"에이 짜리몽땅한것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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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연예인이 술먹구,자전거를타구 일반도로를 운전하구 집으로가는 모습의 사진을 오늘보았는데,자전거에대하여 일반인들이 잘못알구있는 상식에대하여 적어보려구한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로 규정되어져다.그러므로 자동차의 도로통행방법이나 신호규정등 모든규정이 자전거에두  적용된다.

자전거는 예외적인면이,면허증을 가지구 운전하지않기때문에,벌점이나 무면허운전이런 조항에서는 예외적적용이되지만,원칙적으로 자동차에게 해당되는 모든규정이 적용되며,




자동차에관 규정을 위반하면 범칙금두 받아야되구,벌금두내야하며,단지 면허증이없는관계로
벌점조항이 적용되지않을뿐이다.

음주를하구 자전거를 타구가다 사고를 내면,당연히 자동차의 음주운전에대한 처벌규정에
의하여 처벌을받구 음주운전벌금두 100만원두 받을수있구 그러한 판례가 존재한다.

이경우,자동차운전자는 벌점이 부과되어 운전면허정지나 취소를받지만,자전거는 면허없이운행되므로,
벌점조항만 예외적으로 없을뿐이지
,자전거라구해두 음주운전해서 사고를내면,음주운전벌금이 부과된다.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에서,자전거를 타구가며,"자전거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이런것두 범칙금발부대상이구 인도는 사람이 우선이지,자전거는 우선이아니며,자전거는 인도와 차도가있을경우 차도로
다녀야한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범칙금,과태료등
,일반자동차운전자는 스티커와함께 벌점두 부과받지만,
자전거운전자는 면허증없이 탈수있기에 단지 벌점부과만이 예외적인것이다.

자전거를 타구가다,사람을치거나,물건을 접촉사고냈거나했을경우,당연히 도로교통법에규정된 교통사고에해당하며,도로교통법및 교통사고처리특례법조항이 적용되므로 "에이,자전거타구가다 상대방이 살짝다친건데,그냥갈수도있지" 이런생각을하구 가버리면 자전거라 할지라두 뺑소니교통사고에 해당하며,뺑소니범으로
가중처벌받게된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부디쳐서 사고가났을경우도,자동차와 보행자가 사고가난개념하구는
전혀다르다.
자전거운전자와 자동차운전자는 교통법규준수유무및 과실에따라 서로책임이 결정된다.
자전거는 도로를 운행하는이상,자동차와 똑같은 법률규정과 의무준수가요구되며,사고발생시
자전거가 뭔 교통사고여,그냥가두되지,이따구로 생각했다가는,혹독한 댓가를 치루게될것이다.
자전거는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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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의 첫경험에대하여 적어볼게요. 어떤일이든지,첫경험은 나름대로의 느낌을 간직한채,다른기억보다 더 또렷하게 추억속에 남아있게됩니다.

추억은 만들어간다는말처럼,첫경험또한 블로그를 거북이처럼 뚜벅,뚜벅 만들어가는중에 여러가지 다양한첫경험을 하게되었는데,그중에 개인적으로 기념할만한 첫경험이기에 기록해놓구 대대손손 자랑할라구합니다.

그런것두 자랑거리냐,이렇게생각하실분두 있겠지만,자랑할게 없는 저에게는 대단히 의미있구,기쁜일입니다.



블로그를 하면서,나두 한번해보구싶은 로망들중에,포탈메인페이지에 내글이 오르는것,이 첫경험두
이루어졌구,블로거가 쓴글들이 일반신문에나오는것들두 종종보아왔기에,나에게두 그런기회가 올까?
참 부럽다,그런생각만하구있었지,나에게두 그런기회가 올줄은 생각하지못했었는데,블로그의 글이
일반신문에 나오는 첫경험의 로망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블로그을 운영하면서 받았던 첫경험의 기쁨들은 모두 적어놓으려구합니다.오늘은 블로거의
두번째로망인 일반신문에 나의글이 뉴스로 기사화된것에대한 기록입니다.

네이버뉴스,미디어다음,엠파스,일간스포츠에 올려진 뉴스란에 올려진 증명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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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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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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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다음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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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스 뉴스 플러스메인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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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스 뉴스기사란에 보이는 kungmi의 티스토리 블로그주소,감~동(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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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뉴스화면

블로거의 두번째 로망,일반뉴스로 자신의 블로그글이 나오는것,첫경험의 로망두 이루어졌습니다.
감사하구,기쁩니다.토끼의 모토가아닌,거북이모토로 꾸준히 블로그활동을하면,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지는곳이 블로그라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일반인들두 얼마든지,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한다면,저처럼 뉴스란에두 자신의 블로그글이 소개가될수있구,
첫경험의 기쁨두 얻을수있다는것입니다.

지금까지 kungmi의 두번째 로망,일반뉴스란에 자신의글 기사화되기에대한 첫경험으로 대대손손(?)
전하고픈 가문의 영광인 기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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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드는 사진이나 케릭터를 오려내거나,움직이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가장쉬운방법에 대하여 적어보려구합니다.




특정배경이나 사진인경우에 사용하고픈 부분만을 따로내거나,그림이나 사진의반복을 통하여 움직임을 만들어내는과정을 아래그림들을 통하여 알수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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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그림에서처럼,오려내거나 사용하고픈 그림을 먼저,스테이지로 불러온후,수정-분리-항목을선택해준후
선택도구에서 올가미처럼생긴도구를 선택하면,오른쪽맨밑부분에 불꽃놀이연필같은것이 보입니다.
이것을 선택하구,스테이지로 불러온 그림에 특정부분을 선택하면,그부분만을 선택할수있습니다.
선택되어진부분은,페인통도구를 통하여,자신이원하는 색깔로만들어줄수가있으며,선택되어진부분은
세부적부분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오려낼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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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오려내었으면 오려내어진 대상을가지구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위에 그림에서처럼,움직일 대상을 선택하여,심볼로 만들어준후,프레임상에 위치하게해주는데,여기서
프레임한칸,한칸마다 그림을 배치해줘두,움직이는 형태를 만들어줄수는있지만,쉽게만들어 내려면 프레임
상에 첫부분과 마지막부분에만,선택그림을 위치하게한후,모션튀이닝기능을 사용하면,중간부분은
자동적으로 만들어져 움직이게됩니다
.만들어진분량이 초당 12프레임이라면,위에그림처럼 40프레임은
대략 3-4초분량이 움직이는분량이 만들어집니다.프레임부분은 프레임복사를하여,시간을 늘려주던지
화면의 움직임을 변화시켜 여러가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수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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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그림에서처럼,프레임복사는 만들어진 프레임 마지막부분에 한칸뒤 프레임에서 마우스드래그하면
블록이생기게되구
,마우스오른쪽버튼을 선택하여,프레임복사라는 항목을선택해준후,이어서 프레임상에
프레임 붙여넣기를해주면됩니다.여기서는,사과가 작은상태에서 커지는부분을 만들어주는과정인데
모션튀이닝된 프레임을 프레임복사한후,반대루,커진사과상태에서,작아지는 움직임을 프레임복사
기능을 이용해 만들어보는것입니다.위에 그림같은 모션튀이닝된 프레임뿐아니라,타임라인효과로
만들어진 각프레임부분두,프레임복사기능을 이용하여,다양하게 이용할수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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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모션튀이닝된 40프레임을 프레임복사기능을 이용해서,프레임상에 붙여넣기해줬으므로 위에
그림처럼 80프레임이되었습니다
.첫번째 40프레임이나 41-80프레임이나,사과는 작은상태에서
큰상태로 움직이는것이므로 아무런차이가없기에,41-80프레임은 반대루 커진사과에서 작은사과로
움직이게해주면,전체적인 모습은,작은사과에서 큰사과,큰사과에서 작은사과의 움직임을 보여주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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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유의할점은,모션튀이닝된 프레임복사였기에,프레임반전이라는 간단한 기능을 사용할수는없구,복사된 프레임이 첫부분과 마지막부분은 까만점으로 표현된 키프레임이 들어있는 실제그림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에그림에서처럼 처음과 마지막부분의 키프레임이 들어있는 한칸프레임부분만 프레임복사를 이용하여,맨 마지막키프레임은 첫부분키프레임에 붙여넣기해주고 마찬가지루,첫부분에있는 키프레임을 프레임복사한후,마지막키프레임에 붙여넣기해주면 됩니다.



이렇게되면,41-80프레임복사된부분은 모션튀이닝이 해제되지만,키프레임이 앞뒤를 바꿔준후
다시 모션튀이닝을해주면 정상적모습이되구,위에 움직이는그림처럼 작은사과에서 큰사과로,큰사과에서
작은사과로
움직이는모습이 하나로연속되어 만들어지게됩니다.이처럼 프레임복사기능만 잘활용줄알면
다양한 모양과 변화를 이미 만들어진 프레임을 이용하여 활용할수가있습니다.사과를 조각내거나,
사과의 그림자를만들어내거나
하는변화두,그중간과정을 일일이 그려내어서 만들어내는게아니라,타임
라인효과기능을 이용하면,중간부분은 자동으로 만들어주기에,다양한 변화를 만들면서 움직이는 그림을
가장쉽게만들어내는것 그것이 플래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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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축구선수들은 프리킥을찰때,손으로 남자의 중요부분을 감싸는것을 볼수가있다.그렇다면 여자들의 급소는 어디일가? 아무리 황소만한 몸집을가진 남자라두,낭심을 가격당하면 아픈것은 둘째치구,죽을수도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여자의 급소가 어디인지에대한 사건기록이 기록되어져있다.그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때는 성종 6년(1475년)
조선시대는 신분사회였지만,여자들이 상업에 종사하는것을 금하지는 않았기에 여자들두 상품의 판매나 장사를할수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대표적인 여자거상인 김만덕이라는분두 있었다.
상인들이기에,여기저기돌아다니다보면,상인들끼리 싸움두날수두있었구,남자상인이
여자상인을 겁간하는경우도 있었다.이럴경우,보부상집단에서는 남자상인을,거세를 해버렸다.
여자들끼리 장사문제로 싸움을하게될경우도 있었는데,이러다가 일이발생하게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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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리:여긴 내가 물건파는곳이니까,딴데루가~
주원
:노점상이 니땅,내땅이 어디냤,나두 여기서 장사할거다

건리:오늘 노란손수건쓰구 누워있을래?
주원
:굶어서 죽으나,장사못해죽으나 이판사판이다,에잇~

여자들의 싸움은,머리끄댕이를 잡구,싸우는것이 일반적이구 남자의 낭심처럼 서로
때리지말아야곳이 있었는데
,건리는 얼마나 화가났던지,머리루,주원의 가슴을 냅다 박아
버린것이다
.딱한번 머리루 가슴을 부디친것뿐인데,주원은 가슴을 움켜쥐고,진짜루 노란손수건쓰구
하늘나라로 올라가버렸다.

사람을 죽이면,조선시대에는 교수형을 시켰으나,너무나 황당한사건이었기에 성종은
신하들의 교수형을시켜야한다는 주청에두,건리의 죄를 감하여,살려주었다.

여자의 가슴은,아름다움의 상징이기두하지만,치명적급소라는점이다.여자끼리 싸울때라두
절대 여자의 가슴은 때리면 안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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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으려면,여행만한것이 없을것이다.인생두 어쩌면 한편의 여행인지두 모르기때문이다.무엇을 알구,무엇을배우고 태어나지않았구, 알수없는상태에서 세상에 인생의 첫발이 시작되었구,알수없는정해진 시간으로 인생이마감되는것이다.

여행이라는것또한,자신이 알지못하는,그러한곳을가보구,그곳의 아름다움이나,삶등을 통해 무엇인지모를 추억과감동을 가슴에남기게된다.

요즘은 해외여행을 다니는것이 일상화되었는데,유럽이나 선진국같은나라를 돌아보는것두 나름의의미가있지만,뭔가 가슴에남는 여행은,자연과전통이 잘보존된나라들이다.





내가 꼭한번 여행하구싶은나라는,스리랑카이다.홍차의 나라라구 예전에 불려서 실론이라는 국가
명을가지구두있었던 스리랑카는,불교든,기독교이든 많은종교들이 잘어우러진나라루,섬나라이지만
크기는 작지않은
,한반도의 절반정도되는 크기를가진 나라이다.불교의 3가지 보물이라는 불,법,승 3보중
법에해당하는 부처님의 말씀을담은 경전을 제일먼저 만들어낸나라이다보니,불교역사유적과 불교적인
전통이 잘보존된나라이다.

인도나 방글라데시,파키스탄,스리랑카는 남아시아지역으로 불리는지역으로,영국의 지배를 오랬동안
받았기에,어느나라보다두,영어가 대중화되어있는나라이기에,몇마디 영어단어만알구있다해두,여행중
언어로인한 불편은 없을것이라구 생각한다.

스리랑카의 국가명을살펴보면,스리라는 존칭어와,랑카는 고유명사가 결합된나라이다.
랑카는,우리나라의 제주도가 궬파트라는 다른명칭이있듯이 그러한 고유명사라구볼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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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라자,구루,마하트마 이런단어들은,대부분 존경의 의미를가지는 언어단어들이다.
마하트마 간디라구하면,마하트마는 간디라는 사람의 이름이아니라,위대한이라는 뜻을가진 존칭어이다
라자는 우리나라로보면 ,구루스승,스리는 어떤대상을 높여주는 이라는 단어와같다.

이들 남아시아지역국가는,영어들을 공용어로하구,자체언어들두 사용하기에,나마스떼라구인사해두
통하구,굿모닝해두 다알아들을수있는 문화적언어의 다양성을가진 국가라구볼수있다.
그러므로 언어에있어서는 영어를 조금이라두할수있다면,그나라의 언어를 모른다해두,불편함이
없다는것이다.

스리랑카는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불교정신문화가 잘보존되어있는국가이기에,스리랑카
뿐만아니라 불교전통문화를 간직하구있는나라들은,순박함과 포용의 문화를 가지구있기에,광신도들이
일으키는 종교분쟁면에서는 평화롭다구 볼수있다.

불교를 보기위해서 인도나,태국를가는것보다는,스리랑카를가보는것이 더의미가있다.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이르는 법을 대표하는 국가이기때문이다.여행을 통하여,삶의 교훈을 배울수있는나라,
무엇을 가르쳐주거나,말해주지않아두,스리랑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보는것만으로루,삶에 대한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가질수있다구 생각한다.

나의 여행로망,스리랑카,다른곳은 못가보더라두,생애 꼭한번은 가보구싶은 나라,스리랑카
스리랑카 쁘리이까르따훙?  love srir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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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에 관해 잘못알려진상식이,내시는 남성을 상징하는것이없어서,여자와 성관계를 못하는존재루알려져있다.그러나 내시들은 성기를 절단했던게아니라,고환(동그란것)이라는부분만을 없앴으므로,정자를 생산할수없었을뿐,남성의 성기는가지구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내시들두 여자와 결혼해서 살수있었구 아내를가지구있었구 성관계두 할수있었다.그러므로 내시가 아내이외의 여자와 관계를 하여 처벌받는 사례두 조선왕조실록에는 많이기록되어있다.







여기서,조선왕조실록에 재미난 사례를 찾아보면,내시 이만과 태조의 아들인 세자의 세자빈인 현빈유씨에대한이야기가 기록되어져있다.

세자의 나이는 11살이었구,현빈유씨는 18살이넘었으므로,남편이라구해봐야 남녀간의 정을 나눌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으며 나눈다해두 세자빈의 입장에서는 외로웠을것이라구 볼수가있다.
그리하여,궁궐일을 맡아보는 이만이라는 내시를 유혹하게되는데,

세자빈 유씨: 밤이 외로굽나,이만아,이리오거라 ㅎㅎ
이만:마마,이러시면 저는 죽겠됩니다.미천한 제가죽는것은 괞잖지만,마마두 죽게됩니다.고정하소서
세자빈 유씨:너는 죽는것이 그렇게 두려우냐,사랑을 위해선 차라리 난 죽을란다 ㅎㅎ
이만:마마,,,,,

이후 두사람은 남모르게 사랑의 불을 지피다가,태조에게 그사실이 알려지게된다.
태조2년 1393년 6월19일
내시 이만을 목베고,세자 현빈유씨를 사가로 내쫓다
.

보통의 조선시대의 가부장적인 율법으로는,여자를 죽이구,남자에게는 여자보다 약한벌을 내렸는데
왕실의 여자는 대역죄에 관련된죄를 짓지않구는,어떠한죄루두 처벌받지않는 특권을 가졌음을
볼수있다
.일반 궁녀나,일반백성의 여자였으면,교수형을 당했을것인데,친정으로 돌려보내는것으로
처벌을 마무리했음을 알수가있다.세자빈 유씨의 유혹을받은 이만은 참형을 당하여 목이 댕강된것과
비교해보면,조선시대에는 신분의차이에따라 법의처벌두 다름을 알수가있다.

여기서 더웃긴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져있는데,내시 이만을 태조가 목베어죽이자,
눈치없는 신하가,어쩐일루 이만이 목베어 죽게되었는지 알수있게해주소서.

태조:진정그이유가 뭔지알구싶으냐?
홍보:사람을 죽였으면,뭔이유인지 알아야 할게 아니겠습니까?
태조:대갈머리없는것,감옥에들어가서 곰곰히 생각해봐,너가 뭘 잘못한거지
       여봐라,홍보 저눔을 옥에 가두어라,앞으로 세자빈유씨 어쩌구,고따구로 말하는것들은
      다 집어넣을것이니 그리알라.

조선시대에는 아무리합당한 말이라구해두,때와장소를 잘못선택하여 말한마디 잘못하면
그날부로,자신은 물론 일가친족까지 화가미쳐 길바닥에 나았는것이다.오늘날에두 어쩌면
자신의 가족이 잘못한것이있다해두,그것을 뭐라말을하는 사람에게,좋은말을 해주어서,고맙구려
하는것보다,
태조처럼,가족일을 이렇쿵저러쿵이야기하는건 곧 나에대한 도전이야 콱~ 
가족과관계된것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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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은 용과 학이 교미를해서 태어난 새가 봉황이라구알려져있다.조선시대부터 오늘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봉황은 임금을 표현하는 상징이었다.그러나,봉황은 사대주의정신을 철저하게 표현하는
아주 기분나쁜잡종새이다.중국은 황제의나라라구해서,황색에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썼구,조선시대의
왕들은 중국황제가 쓰는 황색과용은 감히 황제의 상징이기에,사대하여 스스로 낮춰 조선시대왕은
황색옷을 입는것은 황제에대한 불충이라구여겨,적색옷에 봉황을 왕의상징으로 사용하였다.

봉황이 조선시대왕의 상징으로 사용한 이면에는 이처럼 철저한 중국에대한 사대주의의
썩어빠진 소중화적사관이 자리하구있었다는것이다.또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봉황을
황제의 여자를 상징하는뜻으로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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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극을보면,임금이 황금색옷을입구있는것을 볼수가없을것이다.오로지 빨간색옷을 입구있는데,이속에는 철저한 사대주의정신이 숨어있었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을 어찌감히 왕이 사용할수가있는가하는 논리였다.

봉황두 마찬가지루,중국황제의 여자,이런의미였구,봉황자체두 용의 씨를 받아 태어난 잡종이라는 의미이기에,주체성은 결여되구,용의 사생아나,아류정도라는것을 함축한,재수없는상징이라는것이다.








이러한 사대주의를 함축한 봉황문양은,조선시대이후로,주욱 현재 대통령까지 아무런 생각없이
그대로,사용되어왔다는것이다.정말 재수없는 것이 용의 씨를 받은 잡종인 봉황이라는것이다.

봉황은 사라져야할 구시대적,상징으로,용을 사용할지언정,용의 씨를 받구 잡종으로 태어난
봉황은 애시당초,용보다 덜떠어진 지위나,상징에 사용되는 상상의 새라는것이다.

썩어빠진 사대주의상징인 봉황은 중국황제를향한 흠모하는 여자인 왕을 의미하는 상징이기에
조선시대에 사용되어진 이런 썩어빠진 사대주의문화인 용의 잡종인 봉황을 계속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상징으로 사용한다는것은 치욕이며,대한민국의 수치라구볼수가있다.

봉황은 다시말하지만,우리나라의 국운을 막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왕을상징하는 재수없는
의미를함축하여 만들어진 새라는것이다.주류가아닌 잡종으로 만들어진걸,그래두 용의씨를
받았으니 황송하다구,받들어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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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사람의 블로그를 구경하러 돌아다니다보면,비밀댓글로 달아놓아서 블로그주인이 누구와 대화하는지
궁금한경우가있다.이런경우 비밀댓글에 담긴상대방들이 누군인지,알아낼수있는 방법이있다.
아래의 그림을 참조해보면,비밀댓글의 대화상대방을 쉽게알수있음을 알수가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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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방문하는 블로그에가보니,비밀댓글이 달려있어서,누구와 대화하구있나 궁금해져서,비밀댓글의
상대방이 누군인지 알수있는방법두 일반인들에게 정보가될수있지않을가 생각해서 적어봅니다.

위에 그림에서처럼,블로그에 비밀댓글이 달린부분을 복사한후,윈도우자체에 내장된 메모장
연후,그곳에 붙여넣기하면,비밀댓글의 상대방의정보가 나타나게됩니다.
너무간단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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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좋아하는 노래파일이나 사진등이 올려져있는 글들있는데,자신의 컴퓨터에 노래를
저장하거나 사진정보등의 정보등이 내용을 나타나게하지않게하구싶을때가 있다.

dslr의 배경음악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다가,올림푸스 e3의 배경음악이  토루키아라는 노래와 비슷하다해서
토루키아를 찾아 컴퓨터에 저장하여들어볼려구하다,겸사겸사 알아두면 좋은정보들을 적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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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위에 그림처럼 글들과 함께 윈도우미디어형태로 음악파일이 올려져있는곳을
볼수가있다.이경우,윈도우미디어형태자체를 복사한다구해두,자신의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되어지지는
않는다.이런경우,글속에 들어있는 윈도우미디어부분을 복사한후,태그연습장에 붙여넣기한후,html
소스보기를하면,음악이 링크된주소가 보인다.음악주소를 복사한후,직접 인터넷주소창에 적어넣으면
자신의 컴퓨터에 직접다운로드형태의 파일로 저장되어진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사진은,기본적으로 jpg파일로 올려져있다면,사진세부정보가 나타나있다.이런
사진을 다운받아,사진세부정보가 안나타나게하려면,파일형식을 24비트 비트맵형식으로 저장한후
다시저장되어진 bmp사진파일을 열어 다른이름으로 저장을 선택한후,확장자를 jpg로 바꿔주면 jpg라구
해두 사진의세부정보는 안나타나게된다
.bmp를 그대로 올려두 사진정보가 안나타나지만,똑같은
사진이라구해두
bmp확장자를 가진 사진용량은 jpg의 확장자를가진파일보다 보통 10배이상크다.
bmp보다 훨씬적은 사진용량을가지는것이 확장자가 jpg인 사진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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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그림에서처럼,난 태그연습장이구,뭐그런거 다귀찬구,그냥 올려진 윈도우미디어형태에 담긴 노래주소를
알구싶은경우는 눈에 노가다를 좀해서,직접찾는방법두있다.윈도우미디어형태의 노래가 담긴글 아무부분
에서나 마우스오른쪽버튼을 선택하여,소스보기를 선택하여,보여지는 페이지에들어있는 모든정보가 html
형태로 보여지는데
,위에 그림에처럼 마우스오른쪽버튼-소스보기를하면 postview라는 메모장이
뜨게된다.대부분 글중에 윈도우미디어형태가 들어있을것이므로,본문글내용이나오는곳 언저리를 찾아보면,위에그림처럼,찐하게 표현된 윈도우미디어형태의 음악이 올려진 노래파일이 주소를 찾을수있다.이러한
주소를 인터넷주소창에 직접치면,블로그들에 윈도우미디어형태루 올려진음악파일이나 글속에 숨겨진음악파일들을 직접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할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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