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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부팅시 항상 보게되는 상징중에 윈도우로고가 있다.이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속에는 사소하지만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는 의미들이 숨겨져있다.

윈도우로고가 대체 무엇이관데?그림을 보면 이것이 상징하는 의미를 개인적으로 유추해볼수가 있었다.

윈도우 로고는 지구위 특정한 국가위에 시계방향으로 파랑,빨강,연두,노랑 4가지색이 깃발이 어우려져 있다.

파랑은 유럽을,빨강은 아메리카,연두는 오세아니아,노랑은 아시아를 상징하고있음을 올림픽대륙기와 비교하면 금방 의미를 파악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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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로고는 그림에서보듯이 윈도우의 정점은 북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대륙위에 깃발이 고정되어 휘날리는것을 알수가있다.

북아메리카의 미국이 윈도우의 시작임을 선포하는것임을 알수가있는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기는게 윈도우로고는 4대륙을 상징하는 색깔은있는데,아쉽게도 검정색인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깃발은 포함되어있지 않음을 알수가 있다.

이러한 태초의 로고의 상징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째든 현실세계에서도 가장 윈도우의 혜택을 받지못하는 지역이 아프리카인것은 사실이다.윈도우의 태동시 어쩌면 아프리카는 관심밖이었을지도 모른다.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돌아가는 원시와 초원의 삶의 방식에는 윈도우가 절대 필요치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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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나 도로에서 차를 얻어타고 갈경우 우리나라는 손바닥을 펴고 주욱내미는데,서양에서는 엄지손가락만을 치켜세우는데,문화에따른 손가락의 상징차이인가하고 궁금했다.

우리나라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의미는 어떤트로트가수가 춤추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아줌마~ 너무좋아" 노래를부르는것처럼,"좋아,좋아"라는 의미가 강하다.


중지를 치켜세우면 "엿먹어라" 검지는 "무엇인가를 가르킬때" 서양의 여행자들이 여행하다가 차를 얻어 타려고할때



히치하이커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게 우리나라처럼 "너 좋아"라는 의미를 가지고있을거같지는 않고 "태워다 주세요"의미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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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여행자들은 여행중 남의 차를 얻어타야할경우 손바닥을 쭈욱펴고 흔들고, 택시를 잡을때도 손바닥을 펴고 흔들고,무슨사고가 나서 필요할때도 흔들고,자신의 장사를하려고할때도 손바닥을펴고 흔들어 멈춰세우려고한다.


"가는 방향이면 태워주면 좋겠어요"라는 히치하이커의 표시와 그밖의 여러가지 의도를 담은 표시를 구분하는 센스를 가지고있어도 좀더 수월하게 여행자가 여행중 차량을 이용할수있을거같다.


뭔의미인지 알수없는 손바닥만펴고 흔들면,무슨 딴의도로 차량을 세우려는것같아 같은방향으로 태워다주는것에도 인색해지게된다.멀리서도 그 의도를 분명하게 알수있는 엄지손가락상징을 이용하는게 여행자나 차량운전자에게 더 좋을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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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오늘날처럼 길거리에서 몸을파는 여자들이 있었는지,창녀들에대한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명칭기록으로 남아있음을 알수있다.


일반적인 형태의 창녀는 관가의 노비로예속되어 활동하는 관기,기생,운평으로 불려던 여자들로서 조선시대의 양반문화의 기득권을 가진 관리들의 노리개감으로 합법적으로 활동했던 여성들이 있었다.

일반 백성들의 삶속에서는 이러한 여자들이아닌 나라에서 인정하지않기에 불법적인,노는여자를 뜻하는 유녀의 역할을 무당이라는 호칭을가진 사람들이 하였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여지는 신내림개념만을 가진 무당이아니라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사이에서 행하여지는 매춘,일탈행위를 기업적으로하는 포주의 개념으로 받아드려졌기에,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하는 조선시대에서는 무당은 온갖 나쁜것의 대표적상징으로 사용되어졌다.


무당은 아름다운 미모를가진 여자를 현수라고하여 데리고 다니면서 거문고를 타거나 노래를 부르게하였는데,무당의 눈치에의하여,현수와 일반백성간의 성매매가 은밀하게 이루어졌다.또한 무당은 남자무당인 박수를 데리고다니면서 일반백성들이나 양반집부녀자들과 사통하여 거래하기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자무당을 화랑이나,양중으로 불리웠는데,삼국시대의 진취적 무예기상을 화랑이라는 개념이,유교문화 시대인 조선시대에는 오히려,똑같은 화랑이라는 단어가,오늘날의 호스트바종업원정도의 개념으로 사용되어졌다.이러한 호스트바의 영업방식이 중종(1513년)시대에 전라도관찰사 권홍이 왕에게 올린 장계에서 살펴볼수있는데.그내용은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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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굿을할때 젊은남자를 여자복장을하게하고,얼굴에는 분을바르고,여자무당과함께 방안에있다가,밤이 깊어지면,틈을 엿보아,여자무당이 젊은남자와 부녀자간의 매춘를 알선하고있습니다."



여자무당은 예쁜여자인 현수도 거느리고,젊은남자인 화랑도 거느리고하면서,마음껏마시고,노는 굿판이 벌어지면 틈을보아 굿판을 벌이는 집안의 남자나 부녀자와 매춘을 알선하는 포주역할을 조선시대에하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엄격한 신분계급사회를 이상향으로한 유교문화인 입으로만 도덕,공자,맹자,열녀문,정조를 외친 조선시대조차도 일반백성을 상대로하는 무당의 매춘문제는 해결할수없었던 근본적이유는 유교적도덕을 주댕아리로만 외쳐던 기득권양반들이,관아의 노비신분으로 삼던 성노리개감인 여자들인 관기나 기생제도를 조선왕조가 패망할때까지,전혀 스스로 폐지할생각을 하지않았던 이중적도덕률을 가졌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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