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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우리나라에서 복을 불러다주는 동물로 인식되어지고있다.중동이나 유럽에서는 돼지가 행운과복과는 관련이 없는데,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유독 돼지가 행운과복을 상징하는 믿음이 생겨는지,그 근원을 찾아보다가


삼국사기에 나타난 고구려라는 나라는  돼지를 신성시하는 문화가 있었음을 알수가있었다.


돼지와 고구려가 잘매치 되지않는것 같지만,돼지는 고구려의 중요한 일이 생길때,어김없이 등장하여 해결해주는 영특한 동물로 기록되어있다.




돼지가 가른 사람의 운명을 고구려의 역사기록에서 찾아봤다.고구려는 전통적으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때,희생물로 돼지를 사용하였다.주몽의 아들인 유리왕편에 돼지에 관련된 기록이 여럿보인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위하여 돼지를 애지중지하여 기르고있었는데,그만 돼지가 탈출하여 도망가버리자,왕이 탁리와사비라는 사람을 시켜,쫓아가 돼지를 잡아 오도록하였다.


힘들게 돼지를 추격하여,잡은 탁리와 사비는 생각하길,이놈에 돼지때문에,이런 생고생을하게 되었으니,돼지발의 힘줄을 짤라버리면,도망가지 못할것이므로,돼지 다리의 힘줄을 잘라버렸다.이를 안 유리왕이 탁리와 사비의 행동은 자신들의 편리를 위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낼 돼지에 상처를 냇으니,돼지보다 못한것들이라고하여,탁리와 사비를 구덩이속에 넣어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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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0대왕 산상왕편에는 왕이 자식이없어 애통해하다가,하늘에 제사를 지내려고 기르던 돼지가 도망을 가버렸는데,그 돼지를 따라가다보니,주통촌이라는 마을에 이르러,돼지가 마을의 한집에 들어가서 얌전히 있었는데,그집에는 고운처녀가 살고있어서,그여자를 통하여 왕이 후손을 얻게해주기도하였다.


고구려의 수도가 국내성이 될수있었던것도
,돼지를 뒤쫓아갔는데,국내성에 이르러 멈추었다.그래서 유리왕은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겼다.이처럼 고구려에있어서 돼지의 존재는,특별할때 나타나,나라의 일에 길흉화복을 정해주는 동물로 묘사되어 기록되어있다.


고구려의 상징은 삼족오인것같지만,실질적으로 고구려인들에게 있어 운명을 안내하는 상징은 돼지였다.그러므로 오늘날에와서 우리민족이 갑자기 돼지에대한 상징적 믿음이 생긴게아니라,고구려시대부터,돼지는 행운과복을 가져다주는 상징으로 존재해왔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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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이 고국천이라는 지명에있어 고국천이라고 불리우는 고구려의 9대왕에게는 발기,연우,계수라는 동생이 있었고.왕비는 우씨였다.


왕비우씨는 고국천왕이 죽자,꾀를 내어서 왕비의 신분을 계속유지하려고,고국천왕이 동생중 제일 연장자인 발기를 찾아가 유혹을하였으나,넘어가지않았고,두번째인 연우를 찾아가 유혹하여,왕위를 이어받는대신에,자신을 왕비로 맞이해주도록하였다.


연우는 왕비 우씨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고,고구려 10대왕인 산상왕이되었다.



나중에 이러한 사실을안 발기가 연장자순으로 자신에게 올 왕위를 동생이 빼았갔다고하여,반란을 일으켰으나,이미 실권을 가지고있던 왕비우씨의 지원을 받은 연우에게 민심이 돌아간 상태였다.


이에 불따구가 난 발기는  이민족인 공손도를 찾아가,자신의 원한을 풀도록 군사를 지원해주면,고구려를 정벌해주겠다고하여,공손도의 군대 3만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다.이에 산상왕은 자신의 아우 계수에게 고구려군사를 이끌고가 막도록한다.


발기와 계수의 싸움에서 발기가 패하자,동생인 계수는 차마 형을 죽일수없어서,살려보내어주지만,얼마안가서 발기는 스스로 자살해버린다.계수는 발기의 장례를 예를 다하여 치루어준다.나중에 이러한 사실을 안 산상왕은 동생인 계수를불러 반역의뜻이 있는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한다.


계수가 말하길,왕께서는 왕위를 형제간의 우애를위하여,순리에따라 발기에게 양보하는,형제의 미덕을 보여주지않았고,발기는 사사로운 개인적인 분노로인하여,나라를 망하게하려는 매국의짓을 하려고하였습니다.죽어서까지 형제의를 보여주지않는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왕비우씨는 고국천왕이죽자,자신의 위치를 유지시켜줄 사람이면,발기이든 연우이든 왕위를 주려고하였는데,발기는 밤늦게 찾아온 우씨를보고,"여자가 야심한 밤에,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것입니까?"했고, 동생인 연우는 왕비우씨가 "밤길이 무서운데,왕궁으로 돌아가는데 같이가주면 안될까요?"하자, "노프라블럼!!",결국 왕위는 연우에게로 같다.


왕비우씨는 천수를 다누리고 죽을때,유언하기를 고국천왕의 무덤옆에 자신의 묘를하지말고,산상왕의 무덤옆에 묘를 해달라고하여,산상왕곁에 뭍히게 되었다.왕비우씨가 살아있을때는 자신의 부귀영화를지키기위하여,그러했다고해도,죽어서까지 산상왕곁에 묘소를 만들어 달라고한것은 오늘날까지도 미스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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