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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대의 미스테리가,광개토태왕의 아들인,장수왕의 평양천도부분이다.


삼국사기 장수왕 15년에 적혀있는 "이도평양"이라는 단어로,평양은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를 했다는 데,과연 지금의 평양이,장수왕이 천도했다는 평양인지에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삼국사기를 전체적으로 읽어보니,전혀앞뒤가 안맞는 구절이많기에,고구려의 수도 평양이 어디인가에대하여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광개토태왕은,고구려역사에서,북방민족을 제압하면서 정복군주로서 북방영토를 넓히며 광활한 영토를
만든왕이었다.그리구 그러한 막강한 권력을 이어받은 아들이,북방에는 눈을떼구,그렇다구,백제의
왕을 잡아죽이면서두,그나라를 영토로 편입할생각두 없었다는것은 장수왕의 행적을보면 알수있구,전혀
백제나 신라를 패망시켜 나라를 흡수할생각두 없었음을 알수있는데,어느날 갑자기,남진정책을
위하여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했다는것은,뭔가 평양이라는 위치가 지금이 평양이 아닐수있다는
생각이들었다
.



삼국사기 광개토태왕편을 보면,광개토태왕 16년 궁궐을 중축하고.18년에는 동쪽 지방에 독산 등
여섯 개의 성을 쌓고, 평양의 백성들을 이주시켰다라구 나오는데,동쪽지방에 성을 쌓았는데
자신의 아들이 수도로 옮길, 평양의 사람을 이주시키구,얼마없으면 떠날 궁궐을 뭐하러 중축하구
있었겠는가,평양의 위치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는의미로 보여지구,평양은,지금의 간도라구부르는
동으로 토문강이라구하는곳,그곳어디엔가 위치한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장수왕 15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의미는,지금의 평양으로 장수왕이 천도했다는의미가
아니라,송화강근처,지금의 흑룡강성일대 토문강주변에있던 지역을 부르는말이 아닌가생각이든다.
삼국사기 고구려편에는 왕에 관련된 기사들중 "왕이 졸본에 가서 시조의 사당에 제사지냈다"
이런 비슷한 구절들이 여러개보인다.



특이하게 생각되는것중하나가,평양이 장수왕이래루,고구려의 수도였다면,왕의 무덤들은 당연히
지금의 평양에 산재해있는게 당연할것인데,평양에는 고구려의 왕들의 무덤이라구 알려진게 하나두
없다는점이다
.죽기는 평양에서죽고,묻힌곳은 졸본에가서 뭍혀다구 이해할수도있겠지만,어째든
삼국사기 장수왕조에 기록된 네글자 "이도평양"을 근거로,장수왕때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했다구
해석되어지는것은 잘못되어졌다구 생각되어진디.장수왕이 말한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어디인가,평양이라는곳이 별도로 존재하구있었다구보는것이 더 합리적이다.



지금의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로 고구려의 왕들이 왕성이된것은 삼국사기 기록을 토대로
보면, 지금의 평양은  장안성이라구 기록되어곳이라구 보는것이 더합당하다구 생각되어진다.
장안성=지금의 평양이라구본다면 장안성을 근거로 기록을 찾아보면



양원왕8년, 장안성을 쌓았다. 평원왕 (평원왕 양원왕의 맏아들이다)28년,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영양왕( 평원왕의 맏아들이다),영류왕은(영양왕의 이복 아우이다)보장왕 (영류왕 아우인 대양왕의 아들이다)



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 이렇게 5명의 왕만이 지금의 평양에 살았던 임금이라구
볼수가있다.장수왕이 도읍을 옮겼다는 평양이 지금이 평양이라면,그이후 오래세월이 지난
평원왕28년에 나오는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기록된,장안성은 그럼 어디란말인가?



현재의 평양에서 장수왕이후 쭈욱수도로 삼아왔다면,평원왕이 아버지 양원왕이 공들여 장안성을쌓구
그아들인 평원왕이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겨버렸는데,분명한것은 궁궐을 옮긴게아니라,도읍을 옮겼다구
기록되어져있는데
,장수왕조 15년의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는것만가지구,그때의 평양은 지금의 평양
이라구 단정하는것은,그이후의 왕인 평원왕이 장안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구 기록되어지는것을보면
이상하다.



그러므로 지금의 평양은,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이렇게 이어져온 장안성을 의미하구
광개토태왕조나 장수왕조에 나오는 평양은,지금이 평양이아니라,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수도가
있었던,상경용천부지역인,우리나라의 간도부르는곳,그곳에 고구려의 평양이있었다구볼수있다.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신뢰성은 없다.그러나 삼국사기기록을 보더라두,장수왕조의 평양천도는
절대성립될수없는,그시대상황과 전혀맞지않는 이도평양이라는 네글자에 억메인 오류라구
생각한다.설령 평양으로 장수왕이 도읍을 바꿔다해두,지금의 평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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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9대왕인 광개토대왕이 아들인
고구려 20대 장수왕은 394년에서-491년 100세 가까이 사신분이구
재위기간이 413년에서-491년이므로,79년을 왕으로 재위를
하신분이다.이분은 부왕인 광개토대왕이 젊은나이로 승하하자
왕위를 이어받아 오랜기간 재위를 하셨다.

그런데,이분이 아들이 조다라는분인데.
우리가 어떤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조다같은것
하는걸보면,조다라는분은 아버지인 장수왕이 79년을
재위하는바람에,왕이 되어보지두 못하구,도중에 죽었다.

장수왕은 부왕에게 젊은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아 오랜재위를
했지만,그와는 반대로,자식에게는 절대루 양위함이 없이
죽는 마지막순간까지,권력을 향유하여 훗날,자식이 조다같은
놈이라는
욕의 주인공이 되게하는 역할을 한 측면두 있으신분이다.


이런케이스를 찾아보면,영조라는분두 있습니다.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는 1694-1776년으로 80여세 정도사신분인데
재위기간이 1724-1776년이므로 무려,52년을 왕으로 재위하셨다.
이분의 아들인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사도세자)또한 왕위를
이어받지 못하구,도중에 죽습니다.

조다왕이나,장조는 공통적으로 왕위재위기간이
태자나 세자에게 이어질수없을만큼 부왕이
오랜기간동안에 왕위에 있었다는것을 알수있습니다.

권력이란것은 이처럼,늙어죽는 마지막순간까지두 향유하구
싶어하는것인지는 몰라두,어느정도 재위하구,자식에게
물려줬다면,조다나 장조가 불행한 삶을 살다가,한맺힌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것입니다.


단지 부왕이 권력이양을 하지않아,조다라구 후세에
까지 안좋은 의미로 사용되어지는 것과,뒤주에 갇혀
온갖 나쁜사람으로 기록되어지구 죽은댓가로 역사에는
오랜재위기간으로 자랑으로 기록되어질지 모르지만
권력을 죽는순간까지 향후하려는 욕심이 자리한결과로
자식이 불행진 케이스입니다.

그러나,이와는 다르게,홍익인간에 맞는 백성의 안위와
평안을 준 위대한 임금으로
기록되어지는 세종대왕은
위에 권력욕에 물들어,양위를 하지않구,자식이 못난것이라구
해야 죽을때까지 권력을 놓지않을수
있을것이기에,죽는순간까지
재위한결과 자식이 불행한 결과를 만든왕들에 비하여,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은,오히려,자신이 막강한 권력을
유지할수있는 재위기간이었는데
두,오히려 자식에게 왕위를
양위하므로서

오늘날 우리가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이
되게하는 터전이 되게해준걸보면,후세에 자식이 욕의 대명사나
사악한 사람으로 기록되어지는 자식의 불행이 오히려 권력의
무상함에 있는것일때두
있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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