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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동안 죽어있었다가 살아난 사람에대한 기록이 우리나라의 삼국역사서에 기록되어있다.


예수님은 사흘동안 죽어있다가 살아나셨는데,무려...무려....무려....한달....우리나라의 정사인 역사서에 기록된것이기에,허튼소리보다는
진실일 가망성이 많다.


또한 위대한 왕이나,인물을 높이기위한 기록이아니라,일반백성에게서 일어난 기이한 현상을 기록해둔것이기 때문이다.




때는 서기 222년 신라 10대왕 내해왕때였다.경주 남쪽지역에 있는 남신현이라는곳에 사람이 죽어,장례까지 다치루었는데,죽은지 한달뒤에 살아서 무덤에서 관뚜껑을 열고 나왔다.사람들이 이를보고 기이하게여겨 나라에 고하니,그에관한 기록이 역사서에 기록되게 되었다.


사람의 부활이라는것이 부활은 사전적의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이다.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에대한 기록은 현대화된 오늘날에도 언론기사로 때때로 전해진다.


의사에게 사망진단서를 받고,냉동실에 안치되었다가 살았났다든지,죽은사람의 장기이식을 위하여 수술하다가,아픔때문에 죽은사람이 살아났다든지하는 기사들이 전해진다.


현실적으로도 바다의 물고기인 복어의 독을 이용하여,의학적인 사망선고를 받게하고,매장해서는 며칠이 지나 무덤의 관에서 사람을 살려내어,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그러한 부류의 집단도 존재하고있다.사람의 부활이라는 개념이 종교에서만 일어날수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흘만에 죽었다가 부활한것을 믿습니까,안믿습니까?라는 단순한 종교의 선택이아니라,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현상은 공상이아니라,현실적으로 그러한 많은 사례들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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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진평왕때 설씨 성을 가진 처녀가 나이든 아버지와함께 살고 있었다.집은 가난해도 얼굴이 아름다워 관심을 가지고있는 남자들이 많았다.

어느날 설씨처녀의 아버지가  3년간의 군역의 의무를 해야했는데,몸이 병들어 그것을 할수없는 처지였다.

이러한 어려운 형편을 알고있던 설씨처녀를 짝사랑하던 남자중에 가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가실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기회라고 생각하고,설씨처녀의 집으로 찾아가 아버지의 병역의무를 자신이 대신해 주겠다고 하였다.



설씨처녀는 별로 가실이 탐탁치않았으나,병든 아버지를 대신하여 준다니,그말에 혹하여,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결혼해주겠다고 약속했다.그 말을 믿고,가실은 군인의 의무를 대신하기 위하여 타지로 떠나갔다.



3년이 지나도 가실이 돌아오지않자,설씨처녀의 아버지가 말하길"3년이 넘었는데,돌아오지 않는걸보니,죽어는가보다. 약속한 기한도 다 지났고,너도 별로였던 남자였으니,잘되었다.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것이 어떻겠느냐?"



설씨처녀가 말하길" 아버지가 편히 지낼수 있던것은,가실의 덕분입니다.처음에 아버지를 위하여,덜떨어진 가실이를 이용하려고 비록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하였지만,가실은 저를 생각하며 생사를 알수없는 적과의 싸움을하면서도 오직 제가 해준 약속하나를 진실로 믿고,힘든것을 견뎌냈을 것입니다.가실의 그마음은 100년을 기다린다해도 제가 먼저 약속을 깰수없는 소중한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사기 열전에 인물이 기록된다는것은 그만한 가치가있기에 기록해 뒀을것이다.설씨처녀의 행적은 오늘날에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약속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역사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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