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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에는 가을이 꽃피는 시기이나 온난화의 영향인지 요즘에는 겨울에도 솔방울 같은 붉은빛의 꽃을 볼 수가 있다.  

알로에는 9월을 상징하는 꽃이면서 꽃말이 “꽃도 잎새도” 였다. 알로에대하여 글을 적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알로에의 꽃말 때문인데

보통 꽃들의 꽃말은 들으면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의미의 사랑, 희망, 인내, 나를 잊지 말아요 등등인데 특이하게도 알로에의 꽃말은 들어도 뭔 의미인지도 모르는 상태인 “꽃도 잎새도” 이다.  

알로에는 건강에 좋은 식물인 것은 널리 알려져 있어 다양한 건강식품과 화장품 등으로 만들어 진다.그러나 정확한 꽃말의 의미는 해설되어 져 있지가 않다. 이것의 의미를 알기위해서는 알로에 꽃을 본적이 없다면 이해할 수가 없다.

사진처럼 알로에 꽃은 소나무의 솔방울모양이면서 또한 소나무의 잎새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소나무는 늘 푸르러 지조의 상징으로 표현되는데 푸르른 부분은 소나무의 잎새인 솔잎이지 솔방울부분은 아니다.

소나무의 꽃이면서 열매인 솔방울과 솔잎은 별개이지만, 알로에의 꽃은 열매인 솔방울 모양이면서 소나무 솔잎처럼 잎새도 꽃에 일체로 붙어있다. 이것은 소나무처럼 열매와 잎새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알로에는 열매와 잎새는 하나이며 푸른 게 아닌 붉음을 의미하기에 삶과 죽음, 고난과행복의 양쪽 면이 하나가 되려면 피의 대가나 어려움의 대가의 과정을 거쳐야함을 의미하는 소나무가 지조를 상징한다면

알로에 꽃은 극한에 다다를 만큼의 어떠한 어려움일지라도 이겨내고 반드시 성취를 이루어 낸다는 태양의 붉음을 의미하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알로에 꽃말이 무엇인가라고 했을 “꽃도 잎새도”라는 모호한 개념을 알고 있을게 아니라, 알로에의 꽃말은 양극단을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라고 말해주면 알맞은 상식에 해당한다. 

진급이나 기타 시험공부 등을 할 경우에 방안에 넣어두며 합격을 도와주는 생물과 식물이 금붕어나 알로에를 포함하는 선인장종류 월등이 우수함은

금붕어와 알로에는 그자체가 긍정적 에너지를 상호작용하게 하여 합격에 도움을 주는 특이한 생물들에 해당하기 때문인데  알로에하면 불굴의 의지 떠오르면 가장 올바른 꽃말에 합치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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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과 소나무, 바닷가, 산,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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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있는 땅위에서 자라는 소나무와 바위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같은 종류의 소나무라도 자라나는 모습이 전혀 다름을 알수가 있다.

바위위에서 자라난 소나무를 보고,대지의 풍요로운 영양분을 흡수하며 자라,곧고 쭉쭉뻣은 소나무 모양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올바르지 않다.

바위위에 소나무의 모습은 이미 조그많고,꼬불꼬불한 굴곡있는 소나무의 모습이 예정되어진 운명이.곧고 쭉쭉뻣은 소나무로 자라길 바랬다면,터전을 대지에 잡았어야지,바위에서 잡아놓고 "소나무야,소나무야 장대하게 쭉쭉뻗어 나가라"라고 말하는것 만큼 자연의 순리를 거스리는 짓거리도 없다.

공정한 사회란 애시당초 환경이 달랐다면,메마르고,갈라터진 바위사이에 자란 소나무들에게 똑같은 기준이 아니라,운명의 터전이 달랐다면,그것의 갭을 현실의 제도로 보완해주는 사회를 의미한다.인간의 문화발전은 약자를 배려하는 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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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벌써,2010년 티스토리 탁상달력 응모가 시작되는걸보면 한해가 금방~ 지나감을 느낀다.


티스토리의 탁상달력에 응모는 당연히해야겠고,가을날을 의미하는 사진을 응모해본다.


사진은 그자체로 순간의 정지,시간의 정지를 담고있기에 변하지않는


유일한 추억의 시간을 정지시키는 진실한 마술이라고 볼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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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목:"가을날 석양의 소나무" 사진찍은이:k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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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식물의 가장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답이 나올수있겠지만,신기하게 생각되어지는 특징이  꺽꽂이라고 말할수 있다.


동물은 몸의 일부를 짤라내어다고해도 잘려진부분이 완전한 성체로 자라지 못하지만,

식물은 꽃이든 나무이든 상관없이 모든식물은 주위환경만 적합하다면,

씨앗이나 열매를 통하지 않더라도,나무나 꽃의 줄기일부를 잘라내어 화분에 심으면,또다른 완전한 식물로 뿌리를 내리고 잘자란다.



주위에서 볼수있는 식물로 동백나무,매화나무,소나무,개나리,장미,국화,토마토,고구마등의 줄기를 짤라다가,흙에 다시 심으면,또다른 꽃이나 나무를 무궁하게 만들어 낼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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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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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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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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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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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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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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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마

주위에 멋있는 나무나 꽃이 있다면,전체를 가져가려하지말고,살짝 나무가지나 꽃의 잎사귀의 일부 줄기를 가져다 화분에 심으면 또하나의 쌍둥이 나무와 꽃을 만들어 낼수가 있다.


여기서 일반상식퀴즈,거의 모든 본래의 식물에서 줄기일부를 잘라내어 이식하면,또다른 완전한 나무와꽃으로 줄기가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맞으면 o 틀리면 x  정답은 o이다.

암술과수술의 결합도아니고,정자와난자의결합도 아니고,일부분으로 하나의 또다른 생명체가 뚝딱 만들어지는 식물들을 보면서 과학이 더욱발전하면 미래에는 인간도 순간의 아픔이 있겠지만 자신의 손가락이나 발가락 일부를 환경에 맞게 잘 배양하면 자신과 똑같은 후손을 혼자서라도 만들어낼수있는 남녀구분없이 누구나가 처녀생식도 가능한 기술이 나타나지않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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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중심의 나라였던 조선시대에는 매화나 대나무같은 식물이 지조와절개를 상징하여 그림이나 글들에서 볼수가있는데 삼국시대에는 단연코 돋보이는게 송백이다.


나라의 위급상황이나 어려움에 쳐했을때 극복하는 글과그림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자주등장한다.


조선시대의 매화,대나무vs 삼국시대의 소나무,잣나무 공통점은 추운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식물이지만,속을들여다보면 각기 쓰임이나 의미가 차이가있다.




매화는 평화로운시기에 안분지족적 편안함을 추구한다면,소나무는 어려움이있을지라도 극복하여 나라의 중흥을 이루는시기에 자주등장한다.삼국시대의 역사인 삼국사기기록에서 자주보이는 소나무가 상징하는 "비장미"는 어떤식물보다 역동적이고,다이나믹한 강렬한의미를 가지고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소나무가 가지는 상징성뿐만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인간에게주는 유익한것들이 어떠한것이있는지 살펴보고,집안에 심어서 안좋은나무들이 어떠한것들이 있는지 일반상식적으로 알아두자.


오늘날에는 이해할수없을지 모르지만,반세기전만하더라도 초근목피라는 용어가 낮설은 단어가 아니었다.배고파 먹을게없을때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는 양식이 되어준것이 바로 소나무껍질이다.요즘은 배고파서 산에있는 소나무껍질을 벗겨서먹는다기보다는 건강을위한 웰빙기능적효과로써 소나무껍질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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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가지는 솔잎은 송편음식의 재료로 쓰일뿐만아니라,육식을 먹지않고 채식만을 하는사람들에게는 솔잎은 그자체로 생식하여 먹기 좋은음식이 되기도한다.소나무의 열매는 잣나무의 열매처럼 생겼는데 사람의 기운을 좋게해주는 건강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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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서 떨어진 솔방울과 솔잎은 모아두어다가 추운겨울날 따뜻한온기가 필요할때 불을지펴 사용하기도하는데 연기가 거이나지않고,조금만 불씨에도 활활 잘타오르기에,다른것을 잘타게하는 촉매제역할뿐아니라 그자체가 훌륭한 연료였기에 겨울에 사용되어질 연료로 떨어진 솔방울과솔잎을 모으는게 겨울을 대비한 일이기도했다.

소나무의 솔잎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상괘하게하기에,집안에 심는 정원수로도 좋은나무이다.나무에는 소나무처럼 집안의 기운을좋게하고,잘되게하는 나무가있는반면에 집안에 심으면 안좋은나무들도있다.집안에 심어서 안좋은 나무종류에는 버드나무(집안에 대를 끊기게한다),봉숭아나무(조상들의 영혼을 괴롭힌다),오얏나무(자두나무라고도 하는데,집안에 음란한사람이나 난봉꾼이 생기게한다),수양버들(사기나 망신살을 불러들인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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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백제를 이길수있었던 이유는 김유신이라는 당대 세계최고의 명장이 있었기때문이기도 하지만,신라상류층이 위기상황에서 솔선수범하여,나아가 싸우는 싸울아비정신을 평소에 가지고있었기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나온 불영자의 기록을 토대로,신라의 싸울아비정신을 이해해보자.


진덕왕(647~654)=진덕여왕(왕의 이름 김승만)때에,백제의 정예 3만대군이 신라의 성을 빼앗기위하여,쳐들어온다.이때에 맞서싸운 신라의 장군이 김유신이었다.



김유신은 신라 군사1만명을 이끌고 나아가,맞서싸우게되는데,백제의 군사들이 용맹할뿐아니라,정예화된군사들이었기에,신라의 군사들은 서로먼저 죽지않으려구,싸우기만하면 뒤로 도망가기가 바빴다.이때에 김유신은 땅에 떨어진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위하여,특단의 전술이필요하였다.김유신은 위기상황을 역전시키기위하여,자신의 친구인 불영자를 막사로 불러 대화를 나누게된다.


김유신:추운 겨울이된후에야,소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것을 알게된다.죽음을 두려하지않고,나라를위하여 목숨바칠 정신을 보여줄때이다.나의 둘도없는 친구 영자여,술한잔을 받으라.


 

불영자:위급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오직 저를 선택하고  믿어주심이 ,진실한 친구입니다.그 믿음에 진실로 목숨을바쳐 보답하겠습니다.


두번 절하고 막사를 나와 그의 종 합절을 불러이르길,

불영자:내가 오늘 위로는 나라를 위하고,아래로는 친구를 위하여 죽을것이다.다만 걱정이있다면,나와함께 종군한 나의 아들 거진이 내가죽으면,나를 따라 죽으려할것인데,너는 그러한것을 막아,나의 시체를 수습하여,나의아들과함께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도록하여라.


 

합절:목숨을 바쳐 주인님의 명을 지키겠습니다.


말이끝나자마자,불영자는 말에채찍을가하여,창을들고 홀로,적진으로 들어가,목숨이 다할때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이것을 지켜보던 불영자의 아들 거진이,말을 몰고 홀로적진으로 나아가려하자 합절이 말고삐를 잡으며 말하였다.

합절:주인님께서 유언하시기를,도련님과함께 집으로 돌아가서,어머님의 슬픔을 위로하라구하셨습니다.이제 도련님이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어머니의 슬픔을 더하게하는것이 효도라고할수있겠습니까?


 

거진:아버지가 죽는것을보고도,구차하게 사는것이 그럼 효자이겠는가?


거진이 합절이 잡고있던 말고삐를 칼로 쳐내고,적진으로 들어가 싸우다 죽었다.이것을 바라보던 합절이
"내가 비록 미천한 종이나,대의를위하여 모두죽었는데,나만,구차하게 살아돌아가 무엇을하겠는가"라고 말하며 적진으로 홀로들어가 싸우다죽었다.


세사람의 죽음을보고,느끼는봐가있던 병사들이 앞다투어 진격하여 나아가 싸우니,백제의 군사들이 대패를하였다.대승을 하고난후,유신이 세사람의 시체를 거두어,자신의 옷을벗어 덮어주고,밤새 슬피울었다.


불영자의 이야기에서보듯이,신라에서는 나라가 위급한상황에서는 위에것들은 탱자탱자하면서,도망이나 가면서,졸따구들에게만  죽어도 막아라식이 아니라,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직접실천하는 모범을 보여,군사들의 사기를 높여다는것이다.


신라의 이러한 싸울아비정신은 자기가 아끼는 사람은,뒤에숨겨두고 도망가게하고,아래것들에게만 싸우게한것이아니라,자신이 가장사랑하는 사람부터,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는 솔선수범의 정신을 함축하고 있었기에,신라는 백제를 이길수가있었다.백제도 패망의 마지막순간에,걸출한 영웅 계백장군이 이러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지만,상황이 너무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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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를보면,역사드라마에서 나오는 백성들의 모습과 전혀다른모습이었지 않을까생각한다.그중에서 칼에대한부분이다.우리나라는 칼을 숭상하는문화였구,그러한 전통은 반만년역사속에서 흘러왔으며,이러한 문화가 왜곡되어진것은 반만년역사중 조선왕조기간뿐이었다는것이다.


고구려시대에두,평민이든,귀족이든 상관없이,무를 숭상했으며,고구려에서 다른나라에 파견된고구려사신의 고분벽화의 모습은,역사드라마에서 자주나오는 글쟁이 사신모습이아니라,칼을차구있는 모습이라는것이다.오늘날로보면,타국나라에 파견되어진 우리나라 외교관이 칼을차구 공무를 보는것하구 똑같다.


또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듯이,연개소문은 칼을 몸에 5개나 차구다녔다는 기록두있다. 칼을 차구다닌다는것과 칼을 들구다니는것은 비슷해보이지만,




실생활에서보면,일이있거나,군사훈련할때만 칼을 가지구다니는것은 들구다니는개념에 가깝구, 일반생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칼을차구다녔다는 의미와 비슷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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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귀족이라서 칼을차구다닌게아니라,고구려의 일반백성들두 칼 1-2개는 보통으로 일상생활처럼차구다녔다는것이다.


신라에서두,칼을 중시했던 문화가 화랑이란집단에서 찾아볼수있는데 ,일상생활과 군인생활이 구분없는,
일상화된 개념으로 칼을차구 다녔다는것이다.


이러한 일상화된 집단인 칼을차구다니는 화랑도가있었기에 신라가 3국을 통일할수있는 튼튼한 정신적
토대가 될수있었던것이다.



현재 역사드라마에서 보여지는,시대구분할것없이 군인이나 칼을 들구다니지,일반백성들은 봇짐이나 광주리등을 들구다니구,평상시 칼을들구 다니는 그러한모습은 전혀안보임을 알수있는데,이건뭔가 틀렸다구본다.


삼국사기를 보면,신라,고구려,백제와의 전쟁시에 자주나오는게,승패의 결정적향방은,칼을 들구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일부러죽음을 당하여,사기를 높여서 이겼다라는 기록이많다.


일본사무라이들이,홀로 칼을들구 외치면서 적진에돌격하는 모습의 원조는 우리나라에서 아주오래전
삼국사기에 일찍부터 그러한 모습을 가지구있었다는걸 기록하구있다.


통일신라이후 후삼국시대에두,혼란한시기상,일반백성들이 봇짐이나 메구다니구,이렇지는 않았을것이구
일상화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해서라두 칼을 차구다녔을것이다.


고려시대에 넘어와서두,이러한 숭무의 전통이 남아있었기에,무신정권이 생겨나는 밑바탕이되었을것이며
고려와 몽고의 항쟁만해두 30년넘게 싸웠구,무신정권하에서두,숭무가 상징하는것은 곧 칼이었다.


이러한  칼숭상문화가,조선에 들어오면서,철저한 사대주의의 결과,500년동안에 큰전쟁이라구해봐야,
정묘,병자,임진 3개정도뿐이었구,양반입네,부모의 나라이네  어쩌구하는 개벽따구,유교적 공자왈,맹자왈을 집권자들이 강요한결과,전혀 엉뚱한 이미지로 일반백성들은 시대구분없이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들구다니는 모습으로 고정화시켰다구본다.


우리나라의 고대무덤에서,죽은사람의 무덤에 평소사용하던 칼이나 무기류가 함께 있는걸보면,
일상생활에서 칼을차구다닌것이지,장식용이나, 나라의 위급상황에서만 칼을 들구다녔다구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중 지극히 일부인 조선시대를 빼놓구,칼을 숭상하는 문화는 고구려시대부터~
고려까지
주욱이어져오지않았나 생각되어진다.


우리나라가 칼을숭상했다구해서 다른나라를 침략하는 호전적면이있었던것두아니지만,그렇다구
순한양처럼,어느시대건 통틀어 백성들은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나 들구다니는 그런모습은,절대아니라본다.
분명히 호신용이든,공격용이든,일반백성들두 칼을차구 다녔을것은 분명하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졌을때,히로히또천황이 " 겨울에 푸르른 소나무처럼~"이런말루 일본국민을
단결시켰는데,이말은,이미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 비녕자열전편에 김유신장군이 한 말이다.
"추운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법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만 강조되구,우리나라는 일반백성은 어느시대구,조선시대의 일반백성의 모습인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만 들구다니는 순한양같은 어벙벙한 모습으로 표현되는것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최소한 고구려 시대의 일반백성들은  칼한자루 필수적으로 차구다니는 모습이 더 역사적사실에 가깝
다구생각한다.


우리나라두 칼을 일상화처럼 차구다녔던,시대가있었구,그러한 사무라이보다,더한 정신력을 가진
문화두있었다는것이다
.안타깝게두,그러한 고구려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이,조선시대에 멸종되어버렸다.
조선시대가 민족의 기상면에있서는 가장 부끄러운시대였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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