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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강원도의 깊은 산골인 니하마을에 눈이 안 보이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아마라는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나무를 저자거리의 시장에 내다팔거나 산나물들을 캐어 끼니를 때우며 어렵게 살던 중 큰 흉년이 들어 모녀는 굶기가 일상화가 되어, 한 입이라도 덜어 봉양하고자 소녀는 16세 되던 해 같은 동네 부잣집인 60이 넘은 노인의 첩으로 들어갔다.

틈틈이 때를 내어 집안에 먹다 남은 음식들을 모아서 눈이 안 보이는 어머니의 끼니를 챙기기를 10여년이 흘렀는데, 노인이 소녀에 대한 편애와 이러한 행동을 쭉 지켜봐 왔던 노인의 안주인은 항상 못 마땅하게 생각하여 마루를 청소하고 있으면 걸레를 얼굴에 집어 던지거나, 밥을 하러 부엌에 있으면 오늘은 무슨 좋은 것을 훔쳐가서 메기려는지 감시하고 개돼지가 먹을 만한 수준이 짠 반이 아닌 것을 가져가려면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리며 집안을 나가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로지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홀로 굻고 있을 어머니 생각에 어려움을 이겨 내며 버티며 지내고 있었다. 안주인의 악독함은 날로 더해져 노인이 아마를 찾는 날이 더 많아 지자, 아마가 먹는 음식에 매일 비소를 소량씩 집어넣어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백일이 지난 동짓달 추운 겨울날 소녀는 복통과 고열에 시달리며 사경을 헤매게 되었는데 그러한 상황에서도 아마의 생각은 자신이 없으면 끼니조차 연명할 수 없을 엄마 생각에 마지막 힘을 다해서 울며 노인에게 자기를 엄마의 집 마당귀퉁이에 묻어 달라고 말을 하고는 눈을 뜬 채 죽었다.

 

안주인의 악행을 알면서도 못 본채 했던 노인은 측은함에 소녀의 소원대로 정성껏 묻어 주었다. 이듬해 이른 봄 마당 한편에 노란 꽃잎의 향이 가득한 꽃이 피어났는데 그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꽃을 보고는 들렸다가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것들을 놓아두고 갔다.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상소로 알려져 구휼이 행해졌고 소녀의 눈물을 모아 신선이 만들어 낸 꽃이라 하여 수선화라 불리었고 꽃말이 “죽어도 사랑합니다.” 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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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만일.......그대얼굴에 물들고싶어,붉게 타는 노을 저 노을처럼,그대뺨에 물들고싶어~♪

저녁무렵 차창 밖으로 본 억새꽃이 주변모습과 잘어울어져 보였다.그러다 차에서 내려 주변에있는 것들을 핸드폰카메라로 찍어보았다.

찍혀진 사진을 보다보니,찍여있는 것들이 나름의 의미를 포함하고있었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상태에따라 같은대상이라도 찍인 사진의 모습이 달라보인다더니,정말 그런거같다.




"생각해 보게끔하는 5가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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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고개들어 쳐다봐야 보이는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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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에 났다고 같은색깔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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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은 홀로 피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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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위에서도 귤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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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잎은 어릴때부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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