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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점을치는 사람이었던 지화라는 사람의 관계를 통하여,세종이 풍수나 점같은것에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수가있다.


지화는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때부터 국가의 점치는 일과,혼례에대한 궁합을 보는일을 맡아서했다.

지화의 운명은 태종과 세종에대한 "말한마디"인과응보에의하여  극과극인 운명을 살게된다.


태종은 세종처럼 남녀관계에는 금슬이 좋아서 왕비뿐아니라 많은 궁녀들에게서 아이를 낳았다.




태종은 궁녀에게서 나은 자신의 딸들이 혼례할 나이가 차자,궁합을 잘보는  판수인 지화를 시켜,알맞은 사위감을 찾도록한다.지화는 장성한 아들이 있는사대부집들을 돌아다니며 생년월일을 알아보러다니던중,이속이라는 관리의집에가서 그 집의 아들의 생년월일을 묻자,


이속이 지화에게 말할길 "명문가의 비빈의 딸이아닌,일반궁녀에게서 난 딸의 혼례를 위하여 우리아들의 생년월일을 묻는거라면,우리아들은 죽을걸로 가서 말해주게" 지화는 자신의 들은 말을 그대로 태종에게 해버렸다.


태종이 누구인가? 자신을 거스리는것은 외척이고,형제이고 박살내버리는 조선조 최대의 터프가이 왕이 태종이었다,대노한 태종은 이속을 잡아오게하고는 말할길" 근본이 틀려먹은 가문인걸 내 익히 알고있었기에,나도 혼인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그러나 네놈의 말투는 용서할수가없다"하고는 이속을 감옥에 가두어 말에대한 댓가를 치루도록한다.


지화의 입장에서는 꼭 이속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궁합을 맞춰볼 사대부집의 아들들이 많이있었기에,이속이 한말을 사적인 대화로알고 뭍어주고 태종에게 말하지않을수도 있는 문제였다.지화는 평소 이속을 좋게보지않았거나,태종이 자신에대한 신임을 널리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훗날 이러한 말실수에대한 연은 결국 지화 자신도 범하여 자신의 운명이 박살나버리걸보면 연에의한 인과응보라는 말을 되새겨보게된다.


세월이 흘러 태종이 죽고,세종이 왕위에 올랐다.지화는 선대부터 국가의 점과 혼례에대한 일을 잘한 공이있었기에 세종은 신하들이 "점쟁이에게 벼슬을 내리는것은 가당치 않습니다"라는 상소를 물리치고 지화에게 사옹원사직이라는 3품에 해당하는 꽤 높은 벼슬을 내린다.


1444년 겨울 어느날에 부련듯 나라의 일에대한것을 점쳐보려는 생각이 들었던 세종이 신하를 시켜 지화를 보고싶다고 하였다.신하가 지화의 집을 찾아가보니,지화는 없고,그대로 돌아갈수없어 여러곳을 찾아다니다 마침내
지화를  찾아냈는데 다른사람의 집에서 술을 먹고있었다.


신하가 말하길 "전하께서,나라의 일에대하여 점을 칠일이 있다고 부르십니다" 술을 먹어서인지 눈에 뵈는게 없던 지화가 말하길 (오늘~꺼억,노새,노새 젊어서 놀아~ 아 좋다~ )"술을 많이 먹어,오늘은 점을 칠수가 없으니 잘말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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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가 세종에게가서 그대로 말하길 "술을 많이 먹어 오늘은 점보는 일을 못하겠답니다" 이말을 들은 세종이 대노하여 "이눔이 운명보는것을 좀 안다고 음흉하고 간교하기 짝이 없는눔이구나,의금부로 하여금 잡아다가 그 말뽄새에대하여 문초하도록하여라"하고는 결국 세종은 지화를 남도땅 외딴섬인 진도로 귀향보내버려,지화의 운명도 한순간에 막장인생으로 변해버리게된다.


세종이 풍수지리나 점치는것에대하여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진 왕인지는 1449년 4월의 조선왕조기록으로 분명하게 알수가있는데 세종이 말할길 "장님인 지화가 운명에 대하여 점친것들이 모두 맞은것은 아니지만,예로부터 성현들이 풍수지리등인 복서를 중히여겼는데,인간세상일로는 알수없는 일들이 생겼을때 무엇으로 의지할수있겠는가,그렇기에 운명에 관한책은 널리 구하여 올리도록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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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1767년)시대에 있었던,엽기적인사건에대한 황당무계한 판결내용대한 이야기이다.


산음현이라는곳에 7살 여자아이가 동정녀로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80살이었던 영조는,이사건이야기를 듣고,어찌된일인지 상세히 조사하여 보고하라구하였다.


영조와 신하들사이에있었던 문답을 종합하여,엽기사건의 내용과 판결에대하여 살펴보자.



영조:7살짜리 여자아이가 혼자 아이를 낳았다니,이게뭔 변고이냐?

신하:나라에 불길한일이니,잡아다 죽여합니다.

영조:남자없이 여자아이혼자 아이를 잉태해서,무럭무럭 잘자란다니.어떻게 된것인지,소상히
     살펴보고난후 처리해도늦지않다.


며칠후.......




산음어사 구상:산음현에서 일어난 일에대하여 자세히알아본봐,7살여자아이가 사내아이를 낳은것은 분명하고
그마을에 돌아다니는 소금장사가 자백하였는데,소금장사의 아들이 틀림없습니다.

영조:여자아이가 7살이 진짜맞아? 키는 어느정도하던데?

구상:7살이 맞습니다.몸은 이미 다자라 보였습니다.

영조:내나이 80이지만,괴물들이로구,괴물이야,이 잡것들을 처리하는것은 별거아닌데,알아보지두않구,여자아이혼자 잉태해서 무럭무럭 잘자라구있다구 요따구 글을 올리면 되겠냐? 성현들이 남녀7세부동석이라는 말을 괜히 한것이 아닌것이야,다 이유가있는것이다.

구상: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영조:7살여자아이,여자아이의 엄마,임신시킨 남자와 여자아이에게서 태어난 사내아이  모두 잡아다가,따로따로 귀향보내어,노비로 삼도록하여라.



오늘날에서보면,대갈박이 제대로 되었다면,저런판결은 나올수가없다.그러나 조선시대는 연좌제로 인하여,집안의 한사람이 잘못하면,죄없는 부모형제,일가친족까지 3족을 잡아다 멸하는 시대상황이었기에,7살여자아이의 엄마에게두 그책임을 물었다구볼수있고.


오늘날같으면,7살여자아이는 피해자로서 보호받아 마땅할것인데,이또한 조선시대의 유교적 공자왈,맹자왈 꼬부랑헛소리나해되는 시대였기에,순결을 잃은여자는 보호의 대상이아니라 비난이나,매장을 시키는면이 더욱컸다.또한 신분제가존재했던 시대였기에,하찮은 신분의 7살여자아이에게는 보호해줘야한다는 그런측면보다 오히려,벌을받아야 사회풍습이 올바른윤리가 선다는 궤변적.이중적가치관이 지배하구있었기에,귀향을보내 노비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여자아이를 임신시킨 남자야 오늘날에 관점에서봐두,처벌받는것은 당연하겠지만,태어난 사내아이는 아무죄두없는데도,이또한 그시대상황에서는,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보호해주는게아니라,들이나 야산에 버려서 굶어죽게하거나,처벌로 태어나자마자 노비신분으로 예속되었음을 알수가있다.


시간을 되돌려,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정상적인교육을 받은사람이,영조시대로 돌아가,영조임금을보구," 너 대갈박이 제대로 됬으면,이런판결이 내릴수있어"이런식으로 따진다면,그것은 오늘날의 가치관이구,그시대상황에서는 즉각 목이댕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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