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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고 씨나 신라의 김 씨나 고려의 왕 씨 조선의 이 씨처럼 민족의 주류를 이루었던 나라는 정통성을 가지는 일관된 성씨를 유지하고 이어왔으나 백제는 부여씨,여씨,김씨등 일관된 왕위계승을 이어간 게 아니라 시기에 따라 이질적인 성들이 나타나 왕위에 오르곤 했다. 실제로 백제왕족의 성씨가 무엇이라고 정하려면 위에 열거한 성씨가 진짜 백제왕의 성씨인지도 불분명하여 일시적으로 만들어 졌거나 일관되게 이어지지도 않았다.

이것은 백제라는 나라의 근본적체계가 주류인 성씨가 왕위를 이어나가는 체계가 아니라 군사력이나 기타 세력이 큰 사람이 그 상황에 맞게 왕위에 올랐거나 누군가에게 임명되어 부임되는 형식의 왕위체계를 유지한 국가였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고대국가를 이루었던 나라들의 왕은 설혹 완전한 국가제체를 갖추지 못하였다고 제외하는 가야라는 나라조차도 왕의 무덤들이 전해지고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들의 무덤은 각지에 산재해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백제라는 나라의 왕의 무덤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무령왕능이 유일하게 존재하는데 이 무령왕도 어느 순간에 불쑥 나타나 왕위에 오른 인물로 김 씨라는 성을 사용했던 동성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성인이 된 이후에 한반도로 건너와 왕위에 오른 인물로 봄이 역사적 기록에 부합한다.

이처럼 백제의 왕위계승에는 주류적 성씨의 왕위가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왕위계승에서 성씨의 개념은 별로 중요치 않았거나 백제왕은 다른 고대국가와는 다르게 어떤 성씨가 되어야한다는 기준도 존재치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백제 멸망의 날인 660년대에 금강의 하류인 백강구전투에서 일본은 병선 400척에 군사 수는 3-8만에 추정되는 인원이 동원되었는데 이 당시에 백제멸망시 최대로 동원한 계백의 군사수가 오천 명에 불과했고, 광대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정벌군이 규모가 5만 내외, 그리고 신라와 백제가 숙적으로 국력을 총동원하여 싸울 때의 평균 군사 수는 1-2만 내외에 불과했음을 기록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3만 명의 넘는 군사를 일시에 한반도로 움직일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했다면 그 당시 일본은 군사력으로 신라와 백제보다 우위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에 신라의 궁성에까지 왜가 진입하여 난리를 쳤을 뿐 아니라 신라가 왜의 침략에 나라의 위급상황에 자주 쳐했으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게 노예가 되도 좋으니 나라를 구해주라고 구걸하는 기록 등을 보더라도 왜의 군사력은 신라를 압도했을 뿐 아니라,백제보다 우위에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역사의 기록에서 신라는 왜의 군사력에 의하여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기록은 많은데 이시기에 백제는 한 번도 왜의 군사력에 의하여 침략 받거나 괴로워하는 기사가 존재치 않고 오히려 왜와 백제의 연합군이 미정복지였던 전라도지역등을 정복해나가는 기록들만이 보일뿐이다.

이것은 왜와 백제의 관계는 군사적 동맹을 맺은 사이였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왜의 군사력은 백제보다 우위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군사력의 우위에 있던 왜라는 나라에 대한 백제의 왕위건 계승문제가 오늘날 백제의 왕의 성씨가 무엇이냐라는 미스터리를 만들었다고 볼 수가 있다. 백제가 멸망하면서 한반도와 왜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지게 됨을 주목해야한다. 이후로 우리나라의 고대국가에서 왕의 계승에 있어 성씨가 들쑥날쑥하며 계승되는 그러한 국가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역사 가르침에 있어서 백제의 문물은 찬란했을 당시 왜라는 나라는 통일국가도 이루지 못한 미개한 상태로 전수받는 입장임을 강조하면서 숨겨버리는 상황이 왜라는 나라는, 미개한 문화였던 몽골이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중국이나 유럽을 지배했던 역사적 사실을 보더라도 군사력의 우위인 국가가 그렇지 못한 국가보다 하위관계였을 거시다는 것은 역사적 기록과 부합되지 않는다.

백제의 왕위계승권은 한반도내의 주도적 토착세력의 의견에 따른 계승이 아니라 그 당시 왜라는 군사동맹국의 입김에 따라 왕위에 올랐기에 성씨와 상관없고 또한 한반도의 토착세력에게는 그러게 임명되어진 왕의 사후에 무덤을 만들어 공경하고 모셔야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기에 오늘날에 한반도내에 백제왕의 무덤들이 존재치 않지 않나 생각이 들고 이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게 우리나라의 고대국가의 왕들은 가야조차도 왕의 금관이 발견되는데 백제는 왕의 쓰는 금관은 전혀 존재치 않고 한 지방의 수령이나 사용하는 그러한 유의 족두리 관만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백제의 왕들이 성씨가 미스터리인 이유는 왜라는 군사강국의 존재를 인정치 않고 백제의 문화를 전수받는 왜라는 존재측면만을 부각하고 군사적으로 오히려 왜의 도움이나 후견을 받는 낮은 위치에 있었던 백제의 정치현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하려는 데서 설명되어 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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