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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는 형용사와 이라는 대명사의 합성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리라는 단어의 의미는 칼로 베인 피부의 상처에 생마늘을 부볐을때 느껴질 수 있는 감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가슴이 시리거나, 아리거나 할 때의 표현에 자주 사용되는 순 우리말에 해당한다.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화랑도의 화이나, 신처럼, 사모하거나, 사랑하는 대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님과 동격이다. 조합해서보면 아리랑은 가슴이 아리도록 사랑하는 님 표현하는 대상의 전체를 대표하는 대명사임을 알 수가 있다.

 

아리랑의 원문을 해석해보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가슴이 아리도록 사랑하는 님, 가슴이 아리도록 사랑하는 님, 가슴이 아리도록 사랑하는 님, (나를 버리고)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원문해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리랑은 궁극의 대상을 버리고 떠나려고 해도,그럴수 없음이 운명적이라는 의미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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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오늘날처럼 길거리에서 몸을파는 여자들이 있었는지,창녀들에대한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명칭기록으로 남아있음을 알수있다.


일반적인 형태의 창녀는 관가의 노비로예속되어 활동하는 관기,기생,운평으로 불려던 여자들로서 조선시대의 양반문화의 기득권을 가진 관리들의 노리개감으로 합법적으로 활동했던 여성들이 있었다.

일반 백성들의 삶속에서는 이러한 여자들이아닌 나라에서 인정하지않기에 불법적인,노는여자를 뜻하는 유녀의 역할을 무당이라는 호칭을가진 사람들이 하였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여지는 신내림개념만을 가진 무당이아니라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사이에서 행하여지는 매춘,일탈행위를 기업적으로하는 포주의 개념으로 받아드려졌기에,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하는 조선시대에서는 무당은 온갖 나쁜것의 대표적상징으로 사용되어졌다.


무당은 아름다운 미모를가진 여자를 현수라고하여 데리고 다니면서 거문고를 타거나 노래를 부르게하였는데,무당의 눈치에의하여,현수와 일반백성간의 성매매가 은밀하게 이루어졌다.또한 무당은 남자무당인 박수를 데리고다니면서 일반백성들이나 양반집부녀자들과 사통하여 거래하기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자무당을 화랑이나,양중으로 불리웠는데,삼국시대의 진취적 무예기상을 화랑이라는 개념이,유교문화 시대인 조선시대에는 오히려,똑같은 화랑이라는 단어가,오늘날의 호스트바종업원정도의 개념으로 사용되어졌다.이러한 호스트바의 영업방식이 중종(1513년)시대에 전라도관찰사 권홍이 왕에게 올린 장계에서 살펴볼수있는데.그내용은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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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굿을할때 젊은남자를 여자복장을하게하고,얼굴에는 분을바르고,여자무당과함께 방안에있다가,밤이 깊어지면,틈을 엿보아,여자무당이 젊은남자와 부녀자간의 매춘를 알선하고있습니다."



여자무당은 예쁜여자인 현수도 거느리고,젊은남자인 화랑도 거느리고하면서,마음껏마시고,노는 굿판이 벌어지면 틈을보아 굿판을 벌이는 집안의 남자나 부녀자와 매춘을 알선하는 포주역할을 조선시대에하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엄격한 신분계급사회를 이상향으로한 유교문화인 입으로만 도덕,공자,맹자,열녀문,정조를 외친 조선시대조차도 일반백성을 상대로하는 무당의 매춘문제는 해결할수없었던 근본적이유는 유교적도덕을 주댕아리로만 외쳐던 기득권양반들이,관아의 노비신분으로 삼던 성노리개감인 여자들인 관기나 기생제도를 조선왕조가 패망할때까지,전혀 스스로 폐지할생각을 하지않았던 이중적도덕률을 가졌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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