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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화가분이 지나가는 말로 "손톱으로 작품"을 만들어보면 좋을거 같다라는 글을 적었는데,그 화가에게 3년이 지난 어느날 택배가 도착했는데,

열어보니 보내준 사람의 가족들이 손톱을 깍을때마다 3년간 모아둔것인데 "3년전에 하신 말씀 잊지 않으셨죠? 좋은작품을 만드세요"라는 편지와함께 손톱이 가득들어 있었다고 한다.

글을 쓴분은 즉흥적으로 생각나는대로 적어논 말이라도,대부분이 사람들이 그런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분들에게는 사소한 것일 지언정 마음에 담아 3년간의 시간을 들이는 사람도 있음을 알수있다.


말이든 글이든 한번 나온것은,사람의 기억속에 남아있든,글의기록으로 남아있든 사라지지 않는다.블로그에서 포스팅하여 발행된 글은 스스로 블로그에서 삭제하거나 블로그를 닫아 버린다고해도 웹상에서 발행된 포스팅은 인터넷환경이 없어지지 않는한 발행된 글은 남아 있게된다.

옛날에는 역사는 종이위에 기록된 책의 기록들을 통하여 수백,수천년전의 일을 참조하여 역사서가 만들어졌다면,웹이라는 환경이 탄생된이후 역사의 개념은 달라졌다.100년,아니 200년이 지난후 오늘날의 역사를 살펴볼때 정사로써 승자의 기록인 삼국사기나,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등과 같은 특정되어진 책만을 통하여 그시대상을 살펴보거나,신뢰하지 않을것이라는 점이다.

웹이라는 환경속에는 자연스럽게 사회,문화등 모든분야가 총망라되어 기록되어지기에,천년이 지난다해도,서기 2009년 한국의 시대상은 어떠했는가?는 특정 역사서가 아니라 후손들은 웹상을 찾아보게 될것이고 역사시대마다 특정되어진 책만으로,인물이든,문화든 시대상을 평가하지 않게 될것이다.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웹상에서는 수천년이 지난후 특정국가가 2009년의 일을 왜곡하여 역사서를 만들어낸다고해도,동시대의 사회.문화자료들이 실시간 전세계가 공유되어진 웹상에서는 다 뽀록이 날수밖에 없다.

역사이야기를 적으려고했던게 아닌데,둘리같은 kungmi 여기까지 글을쓰다가 내가 왜 갑자기 이런글을 적게되었지? 댓글이야기를 하려다가 이런글을 적게된거같은데,^^;; 글을 쓰다가 삼천포로 가는경우가 많기에,이 글을 적게된 계기가 된 이야기로 들어가서,그러니까 댓글에 2007년에 내가 포스팅했던 글이 있었는데 만이 아니라 2009년 햇수로 3년만에 글에대한 피드백이 달렸는데,

그때 티스토리 블로그의 초보로서,웹상에서 블로그 운영에 모델이 될만한 블로거 분 들의 블로그을 찾아다니며 글을 읽으면서 나도 저분들처럼 개성있는 블로그를 운영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내가 모델로 삼으려고했던 블로그의 주인들과는 일면식도없고 전혀 모르는 분들이지만,틈틈히 방문하여 눈팅하며 몰래보던 블로그들중 글속에서 푸른바다의 맑은 바다 물빛같은 느낌을 받는 블로그가 있어서,내가 생각하는대로 그 블로그에대한 느낌을 포스팅한적이 있었다.

그 분의 블로그가 이과수폭포수라면,나의 블로그는 간혹가다 가뭄에 콩나듯이 좋은글을 쓸까 말까하는 한두 방울 떨어지는 옹달샘같은 격차를 가진 블로그라서 내가 뭘 주절이든 알턱이 있겠나 싶었고 실제도 그러하다.어찌되었든 내가 블로그운영의 모델로 삼고자했던 블로그의 주인이 무려,무려,햇수로 3년만에 나의 블로그에 댓글을 남겨주셨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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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http://blog.naver.com/africaart_ko

그분의 글을 읽기는하지만 댓글을 남긴적도,블로그주소를 남긴적도 없는데,어떻게 찾아오셨을까,그것은 바로 웹이라는 환경속에 몇년이 흘렀어도 검색창에 나의 포스팅이 시간이 흐름과 상관없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댓글 하나에 댓글어천가를 부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닮고싶은 블로그주인이 댓글을 남겨준것이 기쁜일이 아니라면,세상에 뭔 기쁜것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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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가 그린 그림중에 900억짜리 그림이 있다고해서 누가 그린 어떤 그림이기에 그정도 가치를 가졌는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이중섭의 그림일까,유명화가의 그림일까 알고보니 그 화가는 전혀 생각치도 못한분의 그림이었다.

세계 유명박물관들에는 이분의 그림이 소장되어 전시되고있다고 한다.

닥터노구찌와 관련된 록펠러재단뿐아니라,영국의 대영박물관등 한국화가로 이런 경우는 한민족의 역사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독특한 정신세계와 영향을 끼친 그림을 그린 화가라는 의미일것이다.서양에 피카소가 있다면,동양에는 이분이 있다라고 극찬되어진 화가 중광스님이다.집안에 이분의 그림을 소장하고있다면 로또당첨된것보다
더 소중하게 보관할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인정해주는 만큼,이분의 그림이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받고있는지
,그 하나의 잣대인 화가의 그림가격을 찾아보았다.아무거나 일반적인 검색으로 찾아보니,아래의 검색결과가 나왔다.숫자를 보고는 영이 몇개인지를 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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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을 달고보니라는 그림이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그냥 걸레스님,땡중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단어로 인식되어 생전에 불려졌지만,미술전문가들이 보는것은 일반인들의 시각과는 그림가격을보니 다른 의미를 가지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걸레나 땡중이 아니라,그림이라는 분야에서 세계적인 궤적을 남기신거같다.


나의 눈에는 닭과 물고기가 악수하는 생각이 단순한 어린아이의 장난그림같은데 가격이 놀랍다.피카소의 그림들도 생전에 몇 만원하던 것들이었고,고흐나 고갱의 그림들도 당대에는 이런것도 그림이냐라는 평가를 받고 사가는 사람이 없었는데,사후 시간이 흐른후 세계적인 명화가 되는걸보면 미술의 분야만큼 당대보다 후세의 평가가 더 중요한곳도 없는것같다.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소장되는 중광스님이 그림이,우리나라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갔을때도 쉽게 볼수있었으면 좋겟다.아무튼 외국으로 다 그림이 반출되고 정작 우리나라에서 보려면 외국겔러리에나 가야 볼수있는 현실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리나라의 화가중에 세계적으로 그림한점에 900억대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는분이 중광스님이 그림말고는 없지않을까 생각한다.


집안에 피카소그림 한점걸고는 뿌듯해하듯,중광스님의 그림또한 그에 못지않은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있다.스스로 걸레라고 칭하고 "괜히 왔다 간다"라는 마지막 유언을보면  사후에 자신의 그림이 얼마를가든,위대하십니다,존경합니다 등의 평가들은 그분의 정신세계에서는 전혀 관심꺼리가 아니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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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높이 날다가,수직급강하,그리고 날쎄게 바다뱀을 발톱으로 낚아채는 물수리는 바다뱀을 잡아먹는천적이다.


아무리 맹독을가지구있는 바다뱀두,물수리의 날카로운 부리에는 소용이없다.



바다뱀은 바다속에서 4-6시간이상 지낼수는있지만,고래나 돌고래들처럼,숨을쉬기위하여 바다수면위로 올라와야하는데,이때를 놓치지않구 물수리는 한번에 낚아채어버린다.



우리나라의 역사나,성경에서나 뱀이란동물이,인간에게 도움을주는 그런역할루 나타나는것은없구,대부분은,안좋은 이미지로 표현되어진다.아래의 그림은 1400년대에 어떤화가가 그린그림인데 남녀사이에 뱀이 표현
되어져있다.


 




뭔그림이 저렇게생겼을까 자세히들여다보니,남자와여자를 이어주는것은 이었구,여자의 손은 뱀을잡구있구
남자의 손은 벌거벗은여자의 손을잡구있구,뱀의입은 남자의손을 물어잡구있었다.600년전의 그림속에서 화가가 무엇을 표현을하려구했을까?그런 궁금증이생겼다.그림을보면 여자의 모습은 사람답게 그려졌는데,남자의 모습은 뭔 해골바가지비슷하게,흉직하게그려져있다.남자가 뱀의 입빨에물려으니,독에의하여 죽음에이르게될것이라는것을 나타낸것이라구 추측해보면,남자의 몰골이 이해가되기두한다.




나는 미술사에대하여 조회가 전혀없다.그러나 저그림을 보면서,나름대로 그림을 풀어보면,고래루 뱀은 지혜를나타내는 동물이기에,여자의 손은 지혜를 잡구있는데,남자는 지혜를 잡은게아니라,눈에 먼저보이는 여자의 육체의손에 먼저가구,결과적으로,뱀은 자신을 먼저봐주지않는 남자의손을 물었다.지혜로운남자는 선,후가 어떠해야함을 나타내주고있다는 생각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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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로보이는 물수리조차두,맹독을가진 바다뱀을 단번에 제압하는것은,바다뱀의 특성을 물수리가 너무잘파악하구있는 지혜를가지구있있기 때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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