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구려의 왕중에 전투의 신으로 불리우는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은 주몽의 손자이다.대무신왕은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이름은 고무휼이었고,서기 4년에서-44년까지 살아 이른 나이인 40세에 죽었지만,그의 재위기간은 27년으로 짧지는 않았다.

11세에 태자가되고 15세에 아버지인 유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특이한점은 대무신왕의 두번째 왕비의 아들중에 호동왕자가 있었고,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첫번째 왕비의 모함으로 ,스스로 자결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게되는데,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있다.



역사기록에 나타난 대무신왕의 행적을 살펴보면, 대무신왕 3년 봄에 동명왕의 사당을 세웠다.그해 겨울 10월에 부여왕 대소가 몸은 두개이고 붉은머리가 하나인 까마귀를 고구려에 보내왔다.고구려가 부여에 병합되는것이 마땅하다는 의미로 보낸것이었다.


이에 대무신왕은 붉은 까마귀에 대하여 해석하길,두나라가 합쳐지는 의미를 가진것은 맞으나,그 새가 나에게로 보내줬으므로,나에게 길한징조이다 라고하였다.


대무신왕 5년 2월에 부여국의 왕인 대소를 잡아 죽였다.대무신왕 9년 10월에 개마국을 쳐서 멸망시키고,스스로 항복한 구다국을 병합시켰다.


대무신왕 15년 11월에 둘째왕비의 아들인 왕자 호동이 스스로 칼을 세워 엎드려 자결하였다.대무신왕 20년 낙랑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대무신왕 27년 10월 고무휼이 죽자,대수촌언덕에 장사를 지내고,시호를 대무신왕이라고 하였다.대무신왕의 뒤를 이어 동생인 민중왕이 고구려 4대왕이 되었으나 재위 5년만에 죽었다,


고구려 5대왕은 대무신왕의 맏아들이 왕위를 이었다.이왕을 모본왕이라고하는데,오늘날로 보면 개망나니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서,아버지인 대무신왕은 나라의 부강과 번영을 위하여 온힘을 기울여 싸웠다면,그 아들인 모본왕은 자신의 백성과 신하를 잡아죽이는데 온힘을 기울이다,신하인 두노의 칼을 맞고 재위 6년만에 죽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에대한 남녀의 인식차이에 대하여 알아보려면,먼저 역사적근원을 살펴보고,그에따라 남녀의 사랑에대한 인식차이를 알아보고자한다.

우리나라에는,순장이라는 풍습이있었다.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이 일찍죽으면,여자도 같이 무덤에들어가 죽는것인데,사랑하는 여자가 죽으면,남자가 무덤에 들어가 같이매장되는 그러한 전통은 없었음을 보았을때,남녀가 인식하는 사랑에대한 가치관이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여자의 사랑은 눈에보이는 현실의 사랑을 추구한다면,남자의 사랑은 이상에 바탕을둔 사랑을 지향한다.




사랑때문에 죽는 사람을보면,여자는 한치라도,더가까이 사랑하는 사람곁에서 죽으려고하고,남자는 사랑하는사람 앞에서 죽으려고하기보다는,나약한 모습을 안보이려고 아무도 모르는곳에서 홀로죽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본능적인 이러한 차이는,사랑에대한 인식에있어 남녀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위하여 죽는다"라는 말은,역사기록에 전해지는 호동왕자이야기를 살펴보지않더라도,여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전혀 낮선환경으로 홀로 떨어질지라도,가족과부모를 외면하구,남자에 올인하고,능히 야반도주하여 살아가는데 주저함이없으며,잘못된선택일지라도,남자의 말을 따르는 경향이있다.



남자또한 이러한 경향이 없는것은 아니지만,현실보다는 이상적규범을 추구하는경향이 좀더 강하기에,사랑에있어,이성이 감성을 제어하는 능력이 좀더 낫다고볼수있다.언뜻보기에,불타는 사랑에있어,물불을 안가리는쪽은 남성인거같아도,실제적으로보면 여자인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전개하다보니,다음단계의 글의전개가 막막하다.삼천포로 빠지기전에,간략하게 결론을 요약하여,포스팅을 마무리해야겠다.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면,"세상에 오직 당신만이"라는식의 모드로가야하고,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얻으려면,"현실에 함께있자가 아니라, 함께가자"라는식을 지향해야한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