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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회군은 우리나라의 역사의 물줄기를 꺼꾸로 돌려버린 우리나라 반만년역사에있어 최악의 판단이었다.

위화도회군의 진행과정과 그당시 국제정세를 통하여,위화도회군은 어쩔수없는 시대적운명이었는지에 알아보고자한다.

1388년에 신흥나라였던 명은 고려령에 속했던 철령이북지역에대하여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려고하였다.

그러나 한족이 세운 명나라는 고래부터나 그당시까지도 요동지역에대하여 지배권을 행사할 아무런근거도없는 나라였고


그곳은 대대로 고구려와 한백성을 이루었던 고려와 여진족의 터전으로 지배하려고해도 지배할수가없는 형식적인 통제만이 가능한지역이었다.

원.명교체기에서 명나라는 원나라황실을 북쪽으로 내몰아냈을뿐 몽골을 완전히 제패했던것도아니었기에 고려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지가 중요한때였다.원황실이 북부초원지역으로 물러났기에,요동지역은 무주공산으로 지배국가가 없는 상태였다.

위화도회군을하여 조선을 개국하고 만주벌판에대한 고토회복이 중단되었지만,그렇다고 그이후 명나라가 만주지역에대한 지배력을 행사할수있었느냐하면 그렇지도못했다.

명나라는 허울뿐인 명목상의 지배력만을 가졌을뿐,실제적으로 만주지역에 흩어져살던 여진족,거란,몽골,조선등의 영향력아래있었다.

1392년에 조선이개국하고,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생하였는데,조선이 개국한지 200년도 안된상태에서 이미 만주지역은 명나라의 지배하에 놓인게아니라,누르하치라는 여진족의 영웅의 지배하에 놓이게된상태였다.

누르하치(1559-1626)가 요동지역을 통일하여 지배할때의 군사력은 5만정도의 군사였다.명나라는 임진왜란때문에 국력이 약화된게아니라,요동지역에는 조선개국당시부터 여진족의 여러부족이 지배하고있었고 명나라는 여진부족간의 싸움을 부추겨 간접적인 통치형태만을 행사할수있었을뿐인 허약한상태였다.

임진왜란당시에도 명나라의 원군과 누르하치의 여진족의 원군 모두가 조선을 지원해주겠다고했지만 위화도회군의 원죄로인하여 명나라에대한 소중화를 자처했던 조선의 역대왕들의 태도처럼 대갈박 빈 선조에의하여 명나라원군만을 받아드리고 고구려의 백성으로 함께 나라를 이루었던 누르하치의 원군은 믿지못하고 색안경을끼고 의심하여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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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 3월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게 통보하자,1388년 5월 고려는 역사적으로나,또한 원나라황실과고려의 관계를보더라도 원나라가 몽골초원지역으로 물러나면,권리가있다면 고려에게있는것이지,한족이 세운 명나라가 요동지역에대한 권리를 주장할  이유가없다고 생각했기에 고려의 우왕과 최영장군은 이성계로하여금 우리나라의 요동지역에대한 고토회복을 명령하였다.

본격적인 요동수복전쟁을위하여 고려는 국가의 운명을걸고 총동원령을 가동했다.고려가 동원한 군사는 5만명으로 누르하치가 요동지역의 여진을 통일하여,중원대륙을 정복할때 동원되었던 순수여진족 군사수가 5만내외였기에 고려가 명나라와의 일전을위하여 동원했던 순수 고려인으로 구성된 5만의 군사는 적다고 볼수없는 군사였고,또한 이성계에게 주어진 고려병사들은 고려에서 동원될수있는 3만필에 이르는 말을 총동원하여 만들어진 기동력이 빠른 기마병단으로 구성되었다.

칭기스칸의 몽골군대와 고려가 싸웠을때 고려의 국토를 최북단에서 최단남까지 전격적으로 몽골군대가 휘젓고다닐수있던것은 몽골의 군대가 기마병으로 구성되었기에 가능했고,또한 그러한 몽골기병들은 몇십만이아니라 기껏해야 5만내외의 몽골기병이었고,

칭기스칸의 몽골군대가 광활한 유럽과 러시아를 원정하여 정복했을때도 몽골기병의 수는 8만에 미치지못했다.또한 고구려 최전성기인 광개토태왕이 왜적에의하여 침략당한 신라를 구원하거나 기타 정복전쟁을할때 동원하여 이끌었던 최강 고구려기마군대는 5만에 미치지못했다.

이성계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 동원한 고려의 정예군으로 이루어진 고려기마 5만명은 활동력에따라 요동뿐만아니라,정신력에따라서는 중원대륙을 삼켜버릴수도있는 군사로도 모자람이없었다.이러한 고려의 운명을건 우리역사에서 광개토태왕이 이끌었던 군사와 맞멎는 가장큰 원정군을 이끌었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요동지역으로 진격한게아니라,

꺼구로 조국인 개성으로 진격해버리는순간 이들을 막을수있는 고려의 군사는없었다.고려의 염원과힘을 모아 선조들의 고토회복과 고려의 흥망성쇠가걸린 막중한 책임을 맡기고 진군하게했던 이성계의 고려기마원정군이 조국에 칼을 겨누는 상황을 맞이했을때 고려의 심정은 통탄정도가 아니라 피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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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시 요동지역에 상주해서 살았던 여진족은 한족인 명나라의 지배를 받아드릴수없었기에 고구려의 한백성이었던 고려는 망조의 길로갔지만,굴하지않고 백여년도 지나지않아 자주적정신을 바탕으로 명나라에 반기를들고 요동지역에서 명나라세력을 몰아냈을뿐만아니라,오히려 200여년채안되서 명나라자체를 패망시키고 중원대륙에 청을 건국하였다.


고구려의 백성을 이루었던 여진족이 누르하치-청태종-순치제에이른 1644년 중국정복이 완성했을시기에 시대를 꺼구로가게한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조선은 고토회복은 고사하고,돌아가는 국제정세와 전혀 딴판인 임진왜란,병자호란등 한족인 명나라만이 위대합니다라는  앵무새같은 소리만 외치다 얻어터지는 상황에 직면하게되었다.


자주적으로 동아시아지역의 패권을 이끌어갈수있는 천우신조인 상황을 피동적,수동적,사대적 역사로 나아가게한 우리나라 반만년역사에있어 가장 잘못된판단이 위화도회군이다.위화도회군같은 반역의 무리들이 기득권을 차지한순간부터,역사는 반복되어 자신과가문이 영달을위해서는 나라도팔아먹는 매국노들이 기득권층으로 남아 단죄받지않는 역사가 반복되어지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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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선조이다.선조는 무능력했을뿐만아니라,국제적인 시대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못한 왕으로써,일본이 임진왜란으로 침략했을당시,명의 힘을 이용하여,국난을극복하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대주의적경향을 심화시켜,자체적인 국가적 발전기회를 소멸시켰을뿐만아니라,조선이 망조의길에있어서,그 근본적모델을,후세에남겨,조선왕조가 망하게되는 근원이되었다.

임진왜란당시,일본이 의주로 도망간 선조를 추격하여,잡지않은이유는 명의 군대와의 다툼이아니라,누르하치라고 불리는우는 여진족의 걸출한 영웅이,만주지역을 완충지대로 지배하구있었기때문이었다.

고구려시대에 한국가의 백성을 이루었던,여진족에대하여만큼은,비타협하는 사대적가치관을 강조하여 국제적인 시대상황를 꺼구로가게하는 결정적인 역할을한 매국적 왕이었다.


두번째는 인조이다.사대적인 정치의 근본인 선조와는 다르게,권력을 획득한 광해군이,여진족에대하여 대결보다는,중립적인위치로,나라의 발전을 도모하려구하였으나,선조시대에 강화된 사대적매국노정신을 이어받은 유신들에의하여,쿠데타가 발생하여,인조가 집권하게되었기에 국제적상황에서,시대상황에 맞지않는 정반대의 길을추구하여,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하였음은 물론,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자신의 첫째아들인 소현세자와 세자빈그리고 손자까지 무참히 죽이면서까지,유신들의 눈치를보며,자신의 권력기반을 유지하려고하였다.그결과 청은 중국을평정하여,중국에 청이라는 큰나라를 세웠지만,우리나라는,얻은것없이 몰매만맞고,오히려,한수아래로,가르침을 받던 여진족보단 못한 나라의 모습을만들었으며 조선이 망하는날까지,주체적의식이없는,속국이나 속방으로서,만족하여 살아가는 나약한시대상을 만들었다.


세번째는 고종과민비그리고 흥선대원군이다.정통성에있어,그권력이 미약했던 고종의 왕위계승은,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휘두룰수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으며,고종과 흥선대원군의 권력다툼에,민비가 가세하면서 결과적으로,우물안개구리식의 국가의 미래보다는 왕조의안녕과권력의 강화에만 눈똑을 드린결과,스스로 고종과민비vs흥선대원군의 권력다툼을 파생시켜 자충하여 무너져,식민시대로 들어가게하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시대를 꺼구로돌려,선조와 인조 그리고 고종과민비그리고 흥선대원군이 시대에,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을보여줬다면,우리나라의 모습은,만주를 아울러지배할수있는 기반을가졌음은 물론이고 나라를 잃어 식민지상태로가게되는, 비극적인선택을 하지않았을것이다.후세의 역사가들이,선조나 인조또는 고종.흥선대원군.민비를 높이는 어떠한시도두 옳지않으며,이들은 나라를 잘못이끌어,패망의 상태를 구걸하여,국가의 미래를 지킨것이아니라,왕조의 안위와안녕만을지킨,조선시대에 나오지말어야할,매국적지도자의 표상들이다.


조선시대의 결단의시기에,매국적행보를한 선조,인조,고종의 전철을 비판하며,나라의 위급상황하에서,국제적정세를 파악하지못하는 지도자가주는 해악이 얼마나 나라를 망조를 이끌어주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구할수가있다.선조,인조,고종의 공통점을 볼수있는데,이들왕은 나라의 운명을 주변국에 맏겨,의탁하려는 사대적정신이 너무투철하여,스스로 뭘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없구,언제나 수동적역할로,자신의안위와 권력을 유지하는데만 정신이팔린,대표적인 매국노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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