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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과 징기스칸은 서로닮은점이많다.이들의 모습을통하여,오늘날에있어서두,배울만한점이있다하겠다.롬멜은 북아프리카라구 불리우는 리비아,이집트등의 나라에서 사막의 여우라는 별칭답게,지략이뛰어난 덕장이었다.



탱크를 주무기로한 기갑사령관으로,빠른기동력으로 치구나가는 대담무쌍한전술로 육군의 최고계급인 원수칭호를 얻었다.징키스칸의 몽골기병전술또한,빠른기동력을 이용한 전격전이었으며,몽골부족들에의하여 으로 추대되었다.





롬멜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와관련된일을 하였지만,전술과전략면에서는,과감한추진력을 가지구있었구,징키스칸또한,자신의 목표로한것을 이루기위해서 사용된전술은,식량보급이나,후방지원등을따지는게아니라,일단 목표가정해졌으면,후방의 지원이없더라두 빠른기동력으로,자체해결하는 전술을구사했다.



극한의 상황인 싸움에있어서,제일 얼빠진지휘관은,모든것을 자로잰듯이 다준비하구,충분한상태가갖춰져야 싸울수있다는 스타일이다.나라가 패망하느냐,승리하느냐의 싸움에서 징키스칸이,후방지원과식량보급이 다잘갖춰진상태에서,싸우겠다는식이었다면,국가전체인구가 백만명정도인 몽골의 상황상,후방보급로지원여력으로는 중국을 차지하기두 힘들었을것이다.징기스칸이 2,000년 세계역사의 가장위대한 인물 1위가되었던것은,"모든게 갖춰져야 그때야 시도해본다"가아니라,"없어두 갖추어나가면서싸우겠다"는 지휘력을 가지구있었기때문이다.



롬멜은 사막의 여우란 별칭처럼,영리한 지휘관이었지만,모든게 갖춰져야 행동했던게아니라,먼저 갖춰지도록 기갑부대를 이끌고 치고나갔다.적의 점령지를 직선으로 통과하여 지나가면,적의 한가운데에 들어가게되구,진격하는곳에서는 이기더라두,좌,우,후방에 포위될것이기에,이런전술을 사용하면,시도두하기전에 뒷다마만까며 시비를 거는인간들이 있었을것이다.이런부류들은 언제나 자로잰듯이,모든것이 다갖춰져야 행동하려구하기에,언제나 나라이든,기업이든 망조를들게하여,아예시도조차하지못하도록 만든다.그러나 롬멜의 이러한전술은 그를 최고의 지휘관으로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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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키스칸이 오늘날에 태어나산다면,롬멜처럼 교사를 직업으로하구있지않을까 생각한다.왜그렇게생각하냐하면,무엇을 가르치구,이끌어가는 리더쉽이없이,무조건 폭군이나,무식함으로는,쪼가리두목은될수있을지언정,세계적인 발자취를 남기지못했을것이다.징키스칸이나 롬멜은 분명히,부하나 무리들을통솔하는 교사적능력이 있었을것이다.롬멜이나 징기스칸이 공통점은,이러한 리더쉽을위하여,부하들과 똑같이생활을했다는점이다.징키스칸의 전투사를보면,들판에서 같이먹구,같이싸우며,직접 몸으로 부하들과함께했다.롬멜또한 아프리카의 사막이라는 특수한 환경속에서,혼자 편하게 안전한  후방에서 자빠져,"공격하라,사수하라,후퇴는없다"이런 헛소리를 한게아니라,직접전투상황을 체험하구,현실에 바탕을둔전술을 구사하며,부하들과 한몸이되어 포탄이 날아오는 실전상황에서 함께했기에,부하들이 신뢰와믿음을 가져던것이다.



롬멜과 징기스칸은 위대한 지휘관이었다.또한 이러한 세계적인 위대한지휘관으로 역사에 남을수있었던것은,"모든것이 갖추어져야 뭘해보겠다"라는 얼빠진자세가아니라,해나가면서 갖추어나간다라는 추진력과
결단력이있었다는점이다.



롬멜이 교사라는직업에서 기갑사령관으로 최고의 명성을얻었듯이,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대통령두 교사에서 군인의 길을걸어,우리나라의 근대화의 토대를 마련한 공이있었는데,박정희 대통령이 과실이있음에두,존경을받는이유는,무엇인가를 하려구했을때,허허벌판인 울산에,현실적으로 어느누가 투자를하겠읍니까?이렇게 해보기두전에 자빠져 뒷다마만친 장관의 정강이를것어차이게만들만큼,해보기두전에 잣대만굴리구,안됍니다요,가망성이없습니다요라구만 외치는부류들에대하여,"해나가면서 갖추어나갈수도있다"라는 지휘력이있었기때문이다


롬멜과 징키스칸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삼천포로빠졌다.어째든 기적이라든지,역사에 족적을 남겼던인물들은
"해나가면서 갖추어나간다"였지,대갈박만 굴리며,시도조차안해보구 자빠지는 스타일들은
아니었다는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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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데루,느낌이닿는대루,글을적어볼가한다.귀엽다라는 단어는,내가 생각하기에,여자가 받을수있는 최고의 칭찬이 아닐가생각한다.우리나라의 연예인중에,귀엽다는 이미지를 느끼게하는 분이 누가 있나 생각해봤는데,이매리라는분하구 임성민이라는 2분이 귀여움하구 잘어울린다는 생각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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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다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생각마다 다다를수있기에,나의 생각에는
이분들이 귀여운 얼굴모습이 표준이라구 생각되어진다는것이다.


인터넷문화의 가장근본적인 진리는 공유의문화라는 생각이든다.폐쇄가 아닌공유,공유를 지향하면,더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게되구,지식은 나눌수록 더풍요로와지는것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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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바뀌게한 7사람의 인물들이있다.그중에 한명이 아인슈타인이다.이분이 한말중에 유명한말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하지않는다"라는 말이다.인간이 보기에 불합리한것으로 보이구,우연처럼생각되는 그모든것은,우연인것이하나두없구,모든것이 애시당초 결정되어져 있었다는 의미를 담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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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바뀌게한 인물은 징기스칸의 말이다.이분의 한말은 "세상을 얻는데 사준사구 8명이면 족하다"라는 말이다.8명의 사람이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 끝까지 함께할수있는 사람으로 이끌수있는 지도력을 가진사람은 세계를 제패하구두 남는다는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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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바뀌게한 인물은 도고헤이아치로의 말이다.이분이 한말은"황국의 흥패가 이일전에 달려있다."라는 말이다..차후 일본또한 제국주의식민지정책을 답습했지만,그것과는별도로,발틱함대의 괴멸을 부른 해전에서,한 이말은,일방적으로 당하던아시아와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아시아의 식민착취지배를 당연히 여겼던 서양제국주의 국가의 구도가 깨지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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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바뀌게한 인물은 강이식의 말이다.이분의 한말은"무례한 국서에는 글로써가아니라,칼로서 화답해야한다"라는 말이다.천하의 중심을 외치던 나라가 위협할지라두,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킬수있는 민족적 정신의 토대가 되었으며,이러한정신은 수많은외침과 항쟁속에서두,굿굿이 일어나,세계역사의 시류를 근본적으로 바뀌어놓게하는 한민족의 기상이되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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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바뀌게한 인물은 나폴레옹의 말이다.이분의 한말은"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이다.현실에 불가능은 있을지언정,정신의 불가능은없다라는 의미를 가지는말로써,강인한 정신력이 세상을 바꿀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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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바뀌게한 인물은 윈스턴처칠의 말이다.이분의 한말은 "중복된 곤란은 승리의 기회다"라는 말이다.사람의 일은 업친데에서,주저앉구싶을때,덮친데의 상황이 발생한다면,그때가 곧 전화위복의 기회가 생길수있다는의미로서,어줍짢게 넘어지는것보다,넘어지더라두 확실하게 데싸질만큼이면,그것이 곧기회가 될수가 있음을말해주고있다.이러한 처칠의 신념은,히틀러와의 싸움을 승리로이끌어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놓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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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바뀌게한 인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말이다.이분의 한말은 "울지않는 새는 울게만든다."라는말이다.역사를 새로쓰게 만드는 일들은,그것이 좋은일이든,나쁜일이든,가만히있어서는 아무런변화두 없다라는의미로서,이러한 말은,훗날 천하의 중심을 여진족이 차지하게되는 결과를만들어,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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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그대 모습이 자꾸 내곁에 다가와, 그만 흐르는 눈물 감출 수 없어 ,온통 베게만 적시었네,오늘밤
웬일일까 ,잠못 이루겠네,하얀 종이위에 쓰여진 그대의 글씨,이젠 안녕이라는 그대의 말이였나,
오늘밤,두눈가에 눈물 흐르는데-규리-오늘밤.

1231년 9월 세계를 제패한 몽고군이,고려를 치기위하여 전사상 유래없는 잔혹한 몽골기병 3만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하였다.이당시 몽골기병 3만은,당나라군대 300만명보다 더 강력한군대라구 볼수있수있으며
몽골이 러시아정벌에 가동한 기병이 3만명정도였던것을 보았을때,몽고기병 3만은 그당시 세계최강의
군대라구 볼수있었다.순수 몽골기병은 많아봐야 10만명정도를 유지할수있었던 몽고가 세계를 제패한
것을 보았을때,그 위력과 공포는 상당했을것이다.

중국두 망하구,러시아두 망하구,이슬람,헝가리,유럽등 몽고군이 가는곳마다,패망하지않은 나라가 없었다.
끝까지 저항한 나라는,몽고기병이 살아있는 생명은 풀한포기,돌하나 남기지않구 완전히 패망시켜버리는
그러한 몽고기병을 상대로 무려 30년간을 끝까지 항쟁하여,고려라는 나라의 국체를 지켜내었다.

이러한 끈질긴 항쟁은 세계전사에 드물뿐아니라,그렇게 저항한 나라를 온전히 국체를 보존하게
해준것두 징기스칸의 군대특성을 보았을때,특이한 사례라구 볼수가 있다.

이러한것은 몽골기병이 마음씨가 좋아서 그랬던것이 아니라,그에 맞서 강인한 항쟁의식을 보여주었기에
힘으로 일시적으로 굴복시킬수는 있어도,지배할수는 없는 민족임을 깨달았기에 그렇게 한것이다.

1231년 9월 훗날 승장인 김윤후에게 죽임을 당하는 몽고기병 총대장 살리타이의 몽골 3만기병이
고려를 침략하였다.이때 고려군의 항쟁의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것이 귀주성전투라구 볼수가있다.
몽골기병이 빠른기동력으로 방어거점인 성들을 함락시키구,저항하는 성들은,엄청난 살육을 전개하면서
여러부대로 나누어 일부는 개경으로 진격하구,부대중 1만기병을 이끈 살리타이군이 귀주성에 당도하였는데,
이때 귀주성에는  4-5천명의 고려군이 있었다.그중에 대부분이농사를 짓다가,군인으로 변한 농민군들이
대부분이었기에,적의 수적우위뿐만아니라,저항하면 모두살육했다는 그러한 소식들을 들었던 몽골기병들이
성을 에워쌓기에,공포심은 극도로 달했다구 볼수가 있다.

귀주성에는 김경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싸워보기두전에,성내의 사기가 꺽인걸보구,결사대를 규합하여
오히려,성문을 열구나가,기습적으로 몽골군을 공격하였는데,뜻밖의 공격을 받은 몽골군은 의외의 반격에
적전분열이 되었다.전투에서는 숫적우위가아니라,죽기살기루 달려드는 사람한테는 몽골기병두,어쩔수
없다는점이다.수십명의 기병으로,수천의 몽골기병을 치러 성밖으로 나갔다는 자체가,대단한 정신력이라
아니할수가 없다.이렇게 서전에서 상대방의 기를 꺽어 당당히 싸워이기는걸본 성내의 군민들의 사기두
올라가게 되었다.

9월 초순에 시작된 귀주성전투가 10월이 넘어가도록,함락시키지 못하자,몽고군의 피해두 많아졌기에
몽고군은 성의 함락되면,모두 도륙하기전에,항복하라구,사자를 보내었지만,성내의 고려군은
사자의 목을 베어 결사항전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에 몽고군이 사력을 다하여,발석차를 이용하여 돌을 날려 성벽을 부수면,성내의 군민은 혼연일체가
되어,무너진곳을 다시쌓구,여의치않으면,몸으로 성벽을 대신하여 막으면서 11월이 다가도록 항전을
하였다.성안의 화살과 무기가 다떨어지면,주위에있는 돌을가지구 싸웠구,돌마져없으면,끊는물을 만들어
무기로 사용할만큼 이미 함락되두 모두죽을것이구,가만히 있어두 죽을것이구,이판사판인 상황이었다.

성내의 항전의 결사적이었기에,몽고군은 몽고와 고려가 강화협상이 진행되구있으므로,항복하라는
고려왕실의 항복권고사절을 동행하여 보내었으나,성안에 군민은 죽임은 있어두,항복은없다라는 자세를
취하였다.해를 넘겨 1232년이 되어,몽고와 고려의 강화협상이 타결되었어두,귀주성이 항복하지않자
몽고군은 고려정부에 귀주성이 항복하지않으면,강화협상두 끝장이라는 협박과함께,귀주성에 대한
총공격을 단행하였다.

몽고군이,강화협상이 타결되었음에두,항복을 강요하는 이유는,귀주성은 거란의 30만대군이 고려의
수도인,개경까지 깊숙히 침입했다가,퇴각하던중,강감찬장군에 의하여,귀주에서 거란군이 퇴로가
막혀 몰살당한 역사적기록이 있었다.이러한 사실을 잘알구있는,몽고군이였기에,안전한 퇴로를
확보하기위해서두,강화협상타결은 고사하구,고려왕조의 어명조차거부하는 귀주성의 군민은
목에 가시일수밖에 없었다.귀주성에 발이묶여 더이상 전진하지못한 살리타이는,개경근처까지
깊숙히 진입한 타부대를 동원하여,고려왕조를 위협하구,귀주성이 항복을하지않으면,강화협상은
무효구,재차 공격하겠다는 협박을 하므로,고려왕조에서는 다시 어명을 지닌 관리를 귀주성에
몽고군과함께 보내어,항복하도록 권고하였다.

성안에 당도한 정부관리의 항복권고에두,성안의 군민은 결사항전의 자세를 굽히지 않으므로
어명을 받든,정부관리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므로,자결하려구하였다.이에 성안의 책임자가
항복을 받아드려,강화를할수밖에없는 나라의 처지를 이해하구,출성하여 항복을 결정하자
성안의 남.녀노소가 울지않는사람이 없었다.

막대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당한 백성들의 분노는 극에달했으나,어쩔수없이,몽고군의 안전한
퇴각을 바라볼수밖에없었다.이후에두 30년이 넘는기간동안,몽고와 고려의 전쟁은 지속되어지만
전쟁기간이 길어질수록,항쟁의식은 더욱깊어졌으며,이러한 백성들의 항쟁의식은 나라의 국체를
지켜내는 원동력이 되었을뿐만아니라,원의 부마국으로,원황실의 공주를 고려의 왕의 아내로
맞이하는 제도가 생긴것두,고려인이 중국한족보다,높은계급을 부여받은것두,작지만 굴하지않는
민족성에 기인한것이었다.

원나라인 몽고황실은 몽고족이아니면 황제나 황후가 될수없었는데,원황실에서
몽고족이아니면서 황후가될수없는데두,또한 유일무일하게 이민족이면서 원황실의 황후가된것두
우리나라의 기황후가 유일했다.세계를 제패했던 몽고가,유독 자그만한 나라인 우리나라만큼은,신경을
많이 썼다는걸 알수가있다.우리나라가 몽고에 등돌리자,우연인지몰라두.원나라가 망한걸보면
우리나라는 작지만,강대국의 틈바구니속에서두,오뚝이처럼 살아남아,캐스팅보트를 쥐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음을 알수가있다.우리나라를 만만히 봤다가는,세계를 제패한 국가두 꼼작없이 덕분에
망한다는 수많은 역사기록이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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