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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중심의 나라였던 조선시대에는 매화나 대나무같은 식물이 지조와절개를 상징하여 그림이나 글들에서 볼수가있는데 삼국시대에는 단연코 돋보이는게 송백이다.


나라의 위급상황이나 어려움에 쳐했을때 극복하는 글과그림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자주등장한다.


조선시대의 매화,대나무vs 삼국시대의 소나무,잣나무 공통점은 추운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식물이지만,속을들여다보면 각기 쓰임이나 의미가 차이가있다.




매화는 평화로운시기에 안분지족적 편안함을 추구한다면,소나무는 어려움이있을지라도 극복하여 나라의 중흥을 이루는시기에 자주등장한다.삼국시대의 역사인 삼국사기기록에서 자주보이는 소나무가 상징하는 "비장미"는 어떤식물보다 역동적이고,다이나믹한 강렬한의미를 가지고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소나무가 가지는 상징성뿐만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인간에게주는 유익한것들이 어떠한것이있는지 살펴보고,집안에 심어서 안좋은나무들이 어떠한것들이 있는지 일반상식적으로 알아두자.


오늘날에는 이해할수없을지 모르지만,반세기전만하더라도 초근목피라는 용어가 낮설은 단어가 아니었다.배고파 먹을게없을때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는 양식이 되어준것이 바로 소나무껍질이다.요즘은 배고파서 산에있는 소나무껍질을 벗겨서먹는다기보다는 건강을위한 웰빙기능적효과로써 소나무껍질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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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가지는 솔잎은 송편음식의 재료로 쓰일뿐만아니라,육식을 먹지않고 채식만을 하는사람들에게는 솔잎은 그자체로 생식하여 먹기 좋은음식이 되기도한다.소나무의 열매는 잣나무의 열매처럼 생겼는데 사람의 기운을 좋게해주는 건강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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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서 떨어진 솔방울과 솔잎은 모아두어다가 추운겨울날 따뜻한온기가 필요할때 불을지펴 사용하기도하는데 연기가 거이나지않고,조금만 불씨에도 활활 잘타오르기에,다른것을 잘타게하는 촉매제역할뿐아니라 그자체가 훌륭한 연료였기에 겨울에 사용되어질 연료로 떨어진 솔방울과솔잎을 모으는게 겨울을 대비한 일이기도했다.

소나무의 솔잎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상괘하게하기에,집안에 심는 정원수로도 좋은나무이다.나무에는 소나무처럼 집안의 기운을좋게하고,잘되게하는 나무가있는반면에 집안에 심으면 안좋은나무들도있다.집안에 심어서 안좋은 나무종류에는 버드나무(집안에 대를 끊기게한다),봉숭아나무(조상들의 영혼을 괴롭힌다),오얏나무(자두나무라고도 하는데,집안에 음란한사람이나 난봉꾼이 생기게한다),수양버들(사기나 망신살을 불러들인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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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를보면,역사드라마에서 나오는 백성들의 모습과 전혀다른모습이었지 않을까생각한다.그중에서 칼에대한부분이다.우리나라는 칼을 숭상하는문화였구,그러한 전통은 반만년역사속에서 흘러왔으며,이러한 문화가 왜곡되어진것은 반만년역사중 조선왕조기간뿐이었다는것이다.


고구려시대에두,평민이든,귀족이든 상관없이,무를 숭상했으며,고구려에서 다른나라에 파견된고구려사신의 고분벽화의 모습은,역사드라마에서 자주나오는 글쟁이 사신모습이아니라,칼을차구있는 모습이라는것이다.오늘날로보면,타국나라에 파견되어진 우리나라 외교관이 칼을차구 공무를 보는것하구 똑같다.


또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듯이,연개소문은 칼을 몸에 5개나 차구다녔다는 기록두있다. 칼을 차구다닌다는것과 칼을 들구다니는것은 비슷해보이지만,




실생활에서보면,일이있거나,군사훈련할때만 칼을 가지구다니는것은 들구다니는개념에 가깝구, 일반생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칼을차구다녔다는 의미와 비슷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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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귀족이라서 칼을차구다닌게아니라,고구려의 일반백성들두 칼 1-2개는 보통으로 일상생활처럼차구다녔다는것이다.


신라에서두,칼을 중시했던 문화가 화랑이란집단에서 찾아볼수있는데 ,일상생활과 군인생활이 구분없는,
일상화된 개념으로 칼을차구 다녔다는것이다.


이러한 일상화된 집단인 칼을차구다니는 화랑도가있었기에 신라가 3국을 통일할수있는 튼튼한 정신적
토대가 될수있었던것이다.



현재 역사드라마에서 보여지는,시대구분할것없이 군인이나 칼을 들구다니지,일반백성들은 봇짐이나 광주리등을 들구다니구,평상시 칼을들구 다니는 그러한모습은 전혀안보임을 알수있는데,이건뭔가 틀렸다구본다.


삼국사기를 보면,신라,고구려,백제와의 전쟁시에 자주나오는게,승패의 결정적향방은,칼을 들구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일부러죽음을 당하여,사기를 높여서 이겼다라는 기록이많다.


일본사무라이들이,홀로 칼을들구 외치면서 적진에돌격하는 모습의 원조는 우리나라에서 아주오래전
삼국사기에 일찍부터 그러한 모습을 가지구있었다는걸 기록하구있다.


통일신라이후 후삼국시대에두,혼란한시기상,일반백성들이 봇짐이나 메구다니구,이렇지는 않았을것이구
일상화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해서라두 칼을 차구다녔을것이다.


고려시대에 넘어와서두,이러한 숭무의 전통이 남아있었기에,무신정권이 생겨나는 밑바탕이되었을것이며
고려와 몽고의 항쟁만해두 30년넘게 싸웠구,무신정권하에서두,숭무가 상징하는것은 곧 칼이었다.


이러한  칼숭상문화가,조선에 들어오면서,철저한 사대주의의 결과,500년동안에 큰전쟁이라구해봐야,
정묘,병자,임진 3개정도뿐이었구,양반입네,부모의 나라이네  어쩌구하는 개벽따구,유교적 공자왈,맹자왈을 집권자들이 강요한결과,전혀 엉뚱한 이미지로 일반백성들은 시대구분없이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들구다니는 모습으로 고정화시켰다구본다.


우리나라의 고대무덤에서,죽은사람의 무덤에 평소사용하던 칼이나 무기류가 함께 있는걸보면,
일상생활에서 칼을차구다닌것이지,장식용이나, 나라의 위급상황에서만 칼을 들구다녔다구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중 지극히 일부인 조선시대를 빼놓구,칼을 숭상하는 문화는 고구려시대부터~
고려까지
주욱이어져오지않았나 생각되어진다.


우리나라가 칼을숭상했다구해서 다른나라를 침략하는 호전적면이있었던것두아니지만,그렇다구
순한양처럼,어느시대건 통틀어 백성들은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나 들구다니는 그런모습은,절대아니라본다.
분명히 호신용이든,공격용이든,일반백성들두 칼을차구 다녔을것은 분명하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졌을때,히로히또천황이 " 겨울에 푸르른 소나무처럼~"이런말루 일본국민을
단결시켰는데,이말은,이미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 비녕자열전편에 김유신장군이 한 말이다.
"추운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법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만 강조되구,우리나라는 일반백성은 어느시대구,조선시대의 일반백성의 모습인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만 들구다니는 순한양같은 어벙벙한 모습으로 표현되는것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최소한 고구려 시대의 일반백성들은  칼한자루 필수적으로 차구다니는 모습이 더 역사적사실에 가깝
다구생각한다.


우리나라두 칼을 일상화처럼 차구다녔던,시대가있었구,그러한 사무라이보다,더한 정신력을 가진
문화두있었다는것이다
.안타깝게두,그러한 고구려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이,조선시대에 멸종되어버렸다.
조선시대가 민족의 기상면에있서는 가장 부끄러운시대였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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