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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메모리에 이상이 생기면 치매에 걸리고,컴퓨터의 메모리가 고장이나면 앞이 깜감해져 화면이 안나오게된다.

요즘의 우리나라 정치는 메모리가 고장난수준이 아니라,아예 메모리자체가 빠져있다.

콘트롤타워인 메모리가 사라졌기에 사회전반의 시스템이 제대로 신바람나게 움직일리 없다.

현실정치 8개월만에 실용주의는 주먹구구식 철학으로 바뀌고, 경제는 국가의 미래에대한 비젼이아니라 국민을 원숭이로 아는지 조삼모사식 주댕아리처방만을 늘상 외치고있다.



언론에대한 대처방식은 일관성이 없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에 어울리는 놀음만을 하고있고 외교는 주변국에 강아지새끼마냥 꼬리를 뒷다리사이에 바짝내린채 비굴모드로 나아가고있다.


메모리가 빠져있으니,국민의 모습이나 소리가 눈에 뵐리가 없다.북한에 대한 정책도 10.4선언에 나타난 남북이 하나가 될수있는 백두산관광은 남북한이 공이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한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책임을 가져야하는 일임에도 8개월동안 백두산관광길은 코빼기도 보이지않는다.메모리가 빠진 경제,외교,통일분야가 8개월간의 최대 업적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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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를보면,역사드라마에서 나오는 백성들의 모습과 전혀다른모습이었지 않을까생각한다.그중에서 칼에대한부분이다.우리나라는 칼을 숭상하는문화였구,그러한 전통은 반만년역사속에서 흘러왔으며,이러한 문화가 왜곡되어진것은 반만년역사중 조선왕조기간뿐이었다는것이다.


고구려시대에두,평민이든,귀족이든 상관없이,무를 숭상했으며,고구려에서 다른나라에 파견된고구려사신의 고분벽화의 모습은,역사드라마에서 자주나오는 글쟁이 사신모습이아니라,칼을차구있는 모습이라는것이다.오늘날로보면,타국나라에 파견되어진 우리나라 외교관이 칼을차구 공무를 보는것하구 똑같다.


또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듯이,연개소문은 칼을 몸에 5개나 차구다녔다는 기록두있다. 칼을 차구다닌다는것과 칼을 들구다니는것은 비슷해보이지만,




실생활에서보면,일이있거나,군사훈련할때만 칼을 가지구다니는것은 들구다니는개념에 가깝구, 일반생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칼을차구다녔다는 의미와 비슷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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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귀족이라서 칼을차구다닌게아니라,고구려의 일반백성들두 칼 1-2개는 보통으로 일상생활처럼차구다녔다는것이다.


신라에서두,칼을 중시했던 문화가 화랑이란집단에서 찾아볼수있는데 ,일상생활과 군인생활이 구분없는,
일상화된 개념으로 칼을차구 다녔다는것이다.


이러한 일상화된 집단인 칼을차구다니는 화랑도가있었기에 신라가 3국을 통일할수있는 튼튼한 정신적
토대가 될수있었던것이다.



현재 역사드라마에서 보여지는,시대구분할것없이 군인이나 칼을 들구다니지,일반백성들은 봇짐이나 광주리등을 들구다니구,평상시 칼을들구 다니는 그러한모습은 전혀안보임을 알수있는데,이건뭔가 틀렸다구본다.


삼국사기를 보면,신라,고구려,백제와의 전쟁시에 자주나오는게,승패의 결정적향방은,칼을 들구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일부러죽음을 당하여,사기를 높여서 이겼다라는 기록이많다.


일본사무라이들이,홀로 칼을들구 외치면서 적진에돌격하는 모습의 원조는 우리나라에서 아주오래전
삼국사기에 일찍부터 그러한 모습을 가지구있었다는걸 기록하구있다.


통일신라이후 후삼국시대에두,혼란한시기상,일반백성들이 봇짐이나 메구다니구,이렇지는 않았을것이구
일상화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해서라두 칼을 차구다녔을것이다.


고려시대에 넘어와서두,이러한 숭무의 전통이 남아있었기에,무신정권이 생겨나는 밑바탕이되었을것이며
고려와 몽고의 항쟁만해두 30년넘게 싸웠구,무신정권하에서두,숭무가 상징하는것은 곧 칼이었다.


이러한  칼숭상문화가,조선에 들어오면서,철저한 사대주의의 결과,500년동안에 큰전쟁이라구해봐야,
정묘,병자,임진 3개정도뿐이었구,양반입네,부모의 나라이네  어쩌구하는 개벽따구,유교적 공자왈,맹자왈을 집권자들이 강요한결과,전혀 엉뚱한 이미지로 일반백성들은 시대구분없이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들구다니는 모습으로 고정화시켰다구본다.


우리나라의 고대무덤에서,죽은사람의 무덤에 평소사용하던 칼이나 무기류가 함께 있는걸보면,
일상생활에서 칼을차구다닌것이지,장식용이나, 나라의 위급상황에서만 칼을 들구다녔다구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중 지극히 일부인 조선시대를 빼놓구,칼을 숭상하는 문화는 고구려시대부터~
고려까지
주욱이어져오지않았나 생각되어진다.


우리나라가 칼을숭상했다구해서 다른나라를 침략하는 호전적면이있었던것두아니지만,그렇다구
순한양처럼,어느시대건 통틀어 백성들은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나 들구다니는 그런모습은,절대아니라본다.
분명히 호신용이든,공격용이든,일반백성들두 칼을차구 다녔을것은 분명하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졌을때,히로히또천황이 " 겨울에 푸르른 소나무처럼~"이런말루 일본국민을
단결시켰는데,이말은,이미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에 비녕자열전편에 김유신장군이 한 말이다.
"추운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법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만 강조되구,우리나라는 일반백성은 어느시대구,조선시대의 일반백성의 모습인
개나리봇짐이나 광주리만 들구다니는 순한양같은 어벙벙한 모습으로 표현되는것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최소한 고구려 시대의 일반백성들은  칼한자루 필수적으로 차구다니는 모습이 더 역사적사실에 가깝
다구생각한다.


우리나라두 칼을 일상화처럼 차구다녔던,시대가있었구,그러한 사무라이보다,더한 정신력을 가진
문화두있었다는것이다
.안타깝게두,그러한 고구려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이,조선시대에 멸종되어버렸다.
조선시대가 민족의 기상면에있서는 가장 부끄러운시대였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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