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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희가 그렸다는 240여년전의 그림은 어디로 사라졌고,왜 영조임금은 전복을 언급하며 캐기어렵다고 했을까?

심성희(1684-1747)는 청송심씨로 이조참판,탐라어사,도승지,대사헌등의 벼슬을 했던 문관으로 그림에도 능했음을 알수있는데,

영조 45년 1769년의 기록에 영조가 말하길"심성희가 전복캐는 그림을 그려서 바쳐는데,그것을보고 전복캐는것이 힘든일임을 알았다"라고했는데,

그림이 얼마나 세세하게 잘 그려져 있었길래,그림만보고도 영조는 알수있다고했겠는가


오늘날에 심성희가 그렸다는 "전복캐는 그림"이 발견된다면 보물이겠는데,이 그림의 존재유무는 아직까지 발견되지않았다.오늘날에도 자연산 전복은 오래전방식 그대로 이어져 내려와 바다에서 여자들이 직접 채취하기에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전복캐는 모습은 비슷할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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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복을 어떻게 채취하는지는 본적이 없기에,영조가 그림을보고 알았다는 전복캐는 고난함과 어려움이 어떤모습을 말하는것인지 알수는없다.


그러나 상식선으로 생각해봤을때,여자들이 깊은바다속의 바위에 딱붙어있는 전복을 숨을 참으며 딴다는것은,수영장에서 물속에 잠겨있는 물건을 숨을 참으며 들고 나오는것도 힘든데,살아있는 전복이 바위에서 쉽게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을것이기에,인간의 짧은숨으로는 수십번은 물속을 왔다갔다해야 겨우 캘수있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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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통하여 오래전부터 전복은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인 귀한 음식재료였음을 알수있고,몇백년전에도 전복을 캐어바치는 해녀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자연산 전복을 먹을때는 왜 가격이 이렇게 비싼가?이런 볼따구 맞을 말을하지말고,영조임금조차도 캐기어려워,힘들겠다고 생각했던 자연산 전복을 캐주는 해녀분들이 있어서,몸에 좋은 전복을 먹을수 있는것이구나라는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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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1767년)시대에 있었던,엽기적인사건에대한 황당무계한 판결내용대한 이야기이다.


산음현이라는곳에 7살 여자아이가 동정녀로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80살이었던 영조는,이사건이야기를 듣고,어찌된일인지 상세히 조사하여 보고하라구하였다.


영조와 신하들사이에있었던 문답을 종합하여,엽기사건의 내용과 판결에대하여 살펴보자.



영조:7살짜리 여자아이가 혼자 아이를 낳았다니,이게뭔 변고이냐?

신하:나라에 불길한일이니,잡아다 죽여합니다.

영조:남자없이 여자아이혼자 아이를 잉태해서,무럭무럭 잘자란다니.어떻게 된것인지,소상히
     살펴보고난후 처리해도늦지않다.


며칠후.......




산음어사 구상:산음현에서 일어난 일에대하여 자세히알아본봐,7살여자아이가 사내아이를 낳은것은 분명하고
그마을에 돌아다니는 소금장사가 자백하였는데,소금장사의 아들이 틀림없습니다.

영조:여자아이가 7살이 진짜맞아? 키는 어느정도하던데?

구상:7살이 맞습니다.몸은 이미 다자라 보였습니다.

영조:내나이 80이지만,괴물들이로구,괴물이야,이 잡것들을 처리하는것은 별거아닌데,알아보지두않구,여자아이혼자 잉태해서 무럭무럭 잘자라구있다구 요따구 글을 올리면 되겠냐? 성현들이 남녀7세부동석이라는 말을 괜히 한것이 아닌것이야,다 이유가있는것이다.

구상: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영조:7살여자아이,여자아이의 엄마,임신시킨 남자와 여자아이에게서 태어난 사내아이  모두 잡아다가,따로따로 귀향보내어,노비로 삼도록하여라.



오늘날에서보면,대갈박이 제대로 되었다면,저런판결은 나올수가없다.그러나 조선시대는 연좌제로 인하여,집안의 한사람이 잘못하면,죄없는 부모형제,일가친족까지 3족을 잡아다 멸하는 시대상황이었기에,7살여자아이의 엄마에게두 그책임을 물었다구볼수있고.


오늘날같으면,7살여자아이는 피해자로서 보호받아 마땅할것인데,이또한 조선시대의 유교적 공자왈,맹자왈 꼬부랑헛소리나해되는 시대였기에,순결을 잃은여자는 보호의 대상이아니라 비난이나,매장을 시키는면이 더욱컸다.또한 신분제가존재했던 시대였기에,하찮은 신분의 7살여자아이에게는 보호해줘야한다는 그런측면보다 오히려,벌을받아야 사회풍습이 올바른윤리가 선다는 궤변적.이중적가치관이 지배하구있었기에,귀향을보내 노비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여자아이를 임신시킨 남자야 오늘날에 관점에서봐두,처벌받는것은 당연하겠지만,태어난 사내아이는 아무죄두없는데도,이또한 그시대상황에서는,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보호해주는게아니라,들이나 야산에 버려서 굶어죽게하거나,처벌로 태어나자마자 노비신분으로 예속되었음을 알수가있다.


시간을 되돌려,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정상적인교육을 받은사람이,영조시대로 돌아가,영조임금을보구," 너 대갈박이 제대로 됬으면,이런판결이 내릴수있어"이런식으로 따진다면,그것은 오늘날의 가치관이구,그시대상황에서는 즉각 목이댕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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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9대왕인 광개토대왕이 아들인
고구려 20대 장수왕은 394년에서-491년 100세 가까이 사신분이구
재위기간이 413년에서-491년이므로,79년을 왕으로 재위를
하신분이다.이분은 부왕인 광개토대왕이 젊은나이로 승하하자
왕위를 이어받아 오랜기간 재위를 하셨다.

그런데,이분이 아들이 조다라는분인데.
우리가 어떤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조다같은것
하는걸보면,조다라는분은 아버지인 장수왕이 79년을
재위하는바람에,왕이 되어보지두 못하구,도중에 죽었다.

장수왕은 부왕에게 젊은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아 오랜재위를
했지만,그와는 반대로,자식에게는 절대루 양위함이 없이
죽는 마지막순간까지,권력을 향유하여 훗날,자식이 조다같은
놈이라는
욕의 주인공이 되게하는 역할을 한 측면두 있으신분이다.


이런케이스를 찾아보면,영조라는분두 있습니다.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는 1694-1776년으로 80여세 정도사신분인데
재위기간이 1724-1776년이므로 무려,52년을 왕으로 재위하셨다.
이분의 아들인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사도세자)또한 왕위를
이어받지 못하구,도중에 죽습니다.

조다왕이나,장조는 공통적으로 왕위재위기간이
태자나 세자에게 이어질수없을만큼 부왕이
오랜기간동안에 왕위에 있었다는것을 알수있습니다.

권력이란것은 이처럼,늙어죽는 마지막순간까지두 향유하구
싶어하는것인지는 몰라두,어느정도 재위하구,자식에게
물려줬다면,조다나 장조가 불행한 삶을 살다가,한맺힌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것입니다.


단지 부왕이 권력이양을 하지않아,조다라구 후세에
까지 안좋은 의미로 사용되어지는 것과,뒤주에 갇혀
온갖 나쁜사람으로 기록되어지구 죽은댓가로 역사에는
오랜재위기간으로 자랑으로 기록되어질지 모르지만
권력을 죽는순간까지 향후하려는 욕심이 자리한결과로
자식이 불행진 케이스입니다.

그러나,이와는 다르게,홍익인간에 맞는 백성의 안위와
평안을 준 위대한 임금으로
기록되어지는 세종대왕은
위에 권력욕에 물들어,양위를 하지않구,자식이 못난것이라구
해야 죽을때까지 권력을 놓지않을수
있을것이기에,죽는순간까지
재위한결과 자식이 불행한 결과를 만든왕들에 비하여,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은,오히려,자신이 막강한 권력을
유지할수있는 재위기간이었는데
두,오히려 자식에게 왕위를
양위하므로서

오늘날 우리가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이
되게하는 터전이 되게해준걸보면,후세에 자식이 욕의 대명사나
사악한 사람으로 기록되어지는 자식의 불행이 오히려 권력의
무상함에 있는것일때두
있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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