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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기록에 근거하여 일치하는 얼굴모습은 이러한 얼굴이다.

폐비윤씨의 얼굴이 그 당시 얼마나 예뻤으면 피부가 백옥 같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얼굴이다라고 기록되어져 있다.

 

조선시대 여자가 미인이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눈 까리가 오이 눈같이 올라간 모습은 중국의 미인도이고 조선 미인의 전형적인 모습은 이러한 얼굴유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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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과 독재자의 공통점,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인 폐비윤씨 사건때문에 폭군이되어진것으로 인식되어지고있지만,사실은 그렇지않다.


역사속에 남겨진 기록들을 살펴보면 연산군 그자체가 독재자 유형의 길을 즐겨하고,좋아하는 왕이었을뿐이었다.


연산군의 모델을 통하여,인류역사가 시작된이래 시간과공간에 상관없이 독재자가 되어가는 과정상에 공통점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연산군은 집권을하자,제일 처음 한일이,백성과 자신과의 관계설정의 신비주의였다.자신이 사는 궁궐의 성벽을 높이,높이 쌓아올리도록하는것도 모자라,아예 자신의 사는곳에서 자신이 무슨짓을하든 아무도 볼수없도록,궁궐주위 사방 40km주변을 누구도 살수없는 지역이라고 "금표"를 부착하여 자신이하고 싶은행동을 꺼리낌없이 할수있는 장소를 만들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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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행동하는것들이 백성들이나 외국에 전파되지못하도록 외국으로가는 사신들에게는 미리 예상문답내용을 암기시켜보내고,자신이하는 행동들에대하여 누설하는 신하를 가장큰 죄로 다스렸으며,궁궐안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잘알수있는 내시들의 결혼상대 배우자까지도 법으로 규정하여,사대부나 국민들속에 자신의 행동들이 새어나가는것을 금했다.이렇게 연산군은 자신의 행동들에대하여 비밀이 유지될수있게 철저하게 주변환경을 만든후,오로지 신하와 백성들에게는 충성과 도리에대한 이야기들 강조하였다.

중종반정인 군사쿠테타로인하여 힘없이 연산군이 강제퇴위 당하는것을보면 연산군이 자신을 지켜줄 군사의 양성이나 무에대하여  연약한 왕이었지 않나 생각할수있지만,연산군은 자신의 부모들의 제사에도 군복을입고 참여할정도였고,개성이나 주요도시를 순시를 할때는 3만명에 이르는 기병과보병을 완전무장시킨채 이끌고 행차할만큼 자신을 보위하는 친위군을 많이두었으며,그자신이 말위에서 활을쏘고 말달리는것을 즐겨하던 힘이나 무에있어 강성한 체력을 가지고있었다.

이런 평상시 강대한 군사수로 자신을 호위하고,만일의 사태에 대비를 철저했는데도 왜 연산군이 박원종이 이끄는 소수의 임시규합적인 군사들이 궁궐을 포위하던 그날밤에 한번 대항도 못해보고,친위군들이 무너졌냐하면 궁궐을 지키는 친위군들이 반란군이 궁궐로 쳐들어오고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마자,단 한사람도 우리의 왕을 지키자하는 군사들이 없었고,평소에는 아양과 아첨을떨며 연산군에게 잘보이려던 장교들과 군사들이었지만,막상 연산군을 지켜야할때에는 평소봐왔던 연산군의 모습을 잘알고있었기에 이런왕을 보호해,자신들의 목숨을 바칠 필요가 뭐있냐는 생각으로 궁궐의 개구멍을 통하여 모두다 도망가버려,반란군이 궁궐로 진입했을때는 연산군을 지키던 군사들은 하나도 보이지많고,연산군만이 궁안에 덩그러니 남아있게 되었다.

연산군은 먼저 자신과 백성과의 간격과 거리를 벌리게하고는 두번째로 한일은 여자들에 관한것이었다.여자의 신분이나 유부녀인지 처녀인지 상관없이,이쁘거나 반반한 몸매를 가진 여자들을 전국에서 불러들였을뿐만아니라,거사라하는 이동할수있는 임시가옥을 만들어,그곳이 길가이든,산이든,민가한복판이든, 밤이든,낮이든 반반한 여자가 보이면 불러들여 그것이 놓인곳은 그자체로 침실이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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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한일은 백성들의 송사나 분쟁,경제적어려움등 사사로운일들이나,천재지변같은 현상들은 자신에게 절대 상소하지 못하도록하여,애시당초 자신을 향한 불평 여론근원이 자신에게 도달되지 않도록 한반면에,자신의 보위와 관련되는 문제는 형제자매나 일가친족이라고해도,아예 호적을 파버리거나,서슴없이 죽여버리며 "가엽게 생갈할 가치도없다"라는 말로 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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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로 한일은 자신보다 힘이큰 나라였던 중국에게는 잘보이려고 갖은 아양을 다떨었는데,중국사신이 오면,"내가 어찌 황제의 어명을 갖고온 사신과 마주보고 앉을수있겠습니까"하며,중국사신보다 아래좌석에 앉으며 자신보다 강자인 사람이 존재하는 나라에게는 철저하게 비굴했다.

다섯번째는 신기한 동물들에 관심이 많고 음악과시같은 예술적분야게 관심이 많은척,후원하는척하며,예술적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으레 시를 짓거나,음악을들으며, 나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지?라는 칭찬을 항상듣고 싶어했고,술을 좋아라했다.술을 좋아한 나머지,법률로 업무시간이라도  술을먹고 비틀거리거나,헤롱헤롱한다고,아랫사람이 그러한것을 흉보는 투서를한다면,그 투서를한 아랫사람을 세상의 도를 모르는것들이라하여 잡아다 벌주도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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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나 기타사정으로 궁궐밖에 나가살게되는 궁녀들은 비록 민가에서 산다고해도,왕의 여자들이었던 까닭에 결혼하거나,남자와같이 살수가없었다.


형식상으로는 민간인 처녀들이었기에 법으로 궁녀의 신분이었다가,민간인이되었다고 결혼하지말라는 그러한법은 없었지만,


왕가의 입장에서 왕조의 여자였던 궁녀들을 신하가 데리고산다는것은 주.종의 신분관계가 엄격한 조선유교주의사상하에는 불충의 개념이 될수밖에없었기에,나서서 결혼하려는 사람들은 존재할수가없었다.


이러한 예외를 깬 특이한 경우가 있었는데,남치원이라는 사람이다.병으로 궁궐밖을 나간 궁녀을 첩으로 맞아들여서 살고도,무사했을뿐만아니라,벼슬까지도 할수있었는데,어떠한 사연이 있었길래 감히 왕의여자를 첩으로 두고도 살아남을수있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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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의 슬하에는 배다른 형제자매가 많았다.성종의 첫째아들이 연산군이었고,배다른 둘째아들이 진성대군인 중종이었다.연산군과 진성대군의 나이차는 12살이었는데,연산군의 어머니 폐비윤씨는 일찍죽었고 진성대군의 생모인 숙의윤씨(정현왕후)는 연산군이 자신의 생모의원수를 갑는다고 일으킨 피바람속에서도 숨죽이며 살아남아 자신의 아들인 진성대군과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수있었다.


연산군과 진성대군의 배다른 형제자매중에 성종의 후궁인 숙의심씨의 맏딸인 경순옹주가 남치원에게 시집을갔기에 남치원은 성종의 부마이면서,연산과진성의 처남이기도했다.숙의 심씨와 훗날 중종의 어머니가되는 숙의 윤씨는 서로를 잘아는 사이의 친분을 가지고있었다.


연산군시대에도 남치원은 우대를 받았고,중종시대에도 배려를받았는데,중종은 연산군을 내쫓고 왕이된 임금이었기에,쫒겨난 왕의 측근들은 대부분 처단되기마련인데,남치원은 연산군의 배려를많이 받았는데도,중종대에 이르러도 특혜를 받는걸보면 평소처신을 잘하지 않았을까하겠지만,


남치원이라는 사람의 일상생활행동을 살펴보면,오늘날의 망나니나 조폭같은 인물이었기에,성종의 여러 부마들중 한사람인 부마라는 관점보다는 경순옹주의 어머니인 숙의심씨와 중종의 어머니인 숙의윤씨의 관계가 특별했다고 생각할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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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치원에대하여 기록된 행동들을보면,다른지방을 50명정도의 무리를 이루어 여행다니며,자신에게 잘못보이는 사람은  일부러 시비나꼬투리를 잡아 그자리에서 패거나 가둬둔다든지,승려들이 사냥하는데 방해가된다고 절간자체를 박살내버린다든지 일반사람같았으면,중한형벌을 받았을것인데,유야무야로 넘어가는 기록들뿐이다.


평소행실이 이모양이었던 남치원이 궁궐의 대비전에서 나인으로 일했던 궁녀가 병으로 민가에 나가살게되었는데,그 궁녀를 데려다 자신의 첩으로 만들어 버린일이 생기게된다.다른것은 그냥 넘어간다고해도,이것은 그냥넘어갈수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조정에서는 연일 궁녀를 데려다 첩을삼은 남치원은 불충이기에,잡아다 죽여야한다고 상소를하니,


처음에는 이복동생의 남편이였기에 생각해서 눈감아 줄려고해도 궁녀의 체계자체를 무너뜨릴수있는 행위였기에 형벌은 내려야겠고 잡아들이면,반드시 죽여야하는 불충에 해당했기에,처단해버릴까 하다가도,어제밤에 자신의 모후이면서 대비인  정현왕후가 한말이 귀가에 멤돌았다.


"성종시대,악독한 폐비윤씨의 피박속에서 그리고 연산군아래에서도 나와 숙의심씨는 서로를 도우며,이겨냈었는데 이번일은 불문하고 넘어갔으면 하네" 하지만 어머님,신하들의 상소가 너무강해서......."신하들의 말은 중요하고,내말은 암것두 아니라는 말이지,아이고 내가 지금까지 누굴믿고 모진 연산군의 핍박속에서도 살았는데,늙으면 빨리죽어야 할까보네 내말은 상관말고,신하들 말 잘듣고 잘사시게,그만 물러가게......."  어머님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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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대간들이 남치원을 잡아들여 죽이라고 탄핵했지만,중종의 입에서 나오는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불허한다,불허한다,불허한다" 결국 남치원을 유배를 시키는가싶더니,유야무야되어지게된다,중종의 생몰년은 1488-1544 이고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는1462- 1530 이기에,남치원은 중종25년 1530년까지는 중종의 어머니의 보호를 받았을것같기는 한데,남치원의 공식적인 벼슬은 중종14년 1519년이후로 사라져,생몰년을 알수가없다.


병으로 민가에나가 사는 궁녀에대하여,사람들이 남치원처럼 행동했다가는 목숨이 열개라도 부족한 왕과신하의 관계가 엄격했던 불충하면 같은형제라도 죽임을 당하는 조선시대에서 부마로서 대놓고 꺼리김없이 행동하며 살다간 인물 1위를 고른다면  남치원이다.중종과 남치원의 기록을 살펴보다보니,왕이라고할지라도,자신의 어머니가 후원하는 사람에게는 어쩔수가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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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재위기간은 12년이었다.그런데 이 연산군의 사주팔자와 김정일의 사주팔자는 아주 운명적으로딱맞아떨어진다.두사람의 본성이나 행실모두가 비슷한면이있다.

연산군은 시와음악등의 예술을 좋아했구,전국에서 얼굴이 반반한  처녀는 청녀라는 명칭을으루궁중으로 불러서 놀았구,김정일또한 예술을 사랑하는기질과 반반한여자들을 기쁨조라구 불러서노는것은 아주 똑같이 닮았다.

연산군은 특히 파티나연회같은것을 자주열구,아주좋아라했는데,이같은 성격두 김정일하구똑같이 닮았다.

연산군은 툭하면 자신이 지은시라구,신하들에게 어떤가하구 의견을 묻기를
좋아했는데,말한번 잘못하면,죽임을 당하니,전하의 예술은 최고입니다라구 아니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나 멋진시를 자주써는지,조선왕조실록 연산군에기록된 수많은 연산군의 시중 그 하나를 살펴보자

"비 개이고 바람 맑아 풍경 걷은 듯
 
금전에 아지랑이 둘러 떠 있네
 
잔치를 자주 여니 우애 좋은데
 
넌지시 사람 끄는 홍분 얼마뇨"

도성주위에 가뭄과 전염병으로 백성들이 시체가 길바닥에 널려 쌓여있는데두,연산군은 파티가
얼마나 인간사이의 정을 돈독히해주는지,너희는 아느냐란식의 시를 적어 짜빠져있음을 알수가잇다.
연산군은 더 나아가,길가에 배고픔에 쓰러져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너무많아,치우는사람이 없자
길가에 시체가 그대로있으면,고을이나 이웃사람을 잡아다 책임을 물어 옥에가두게하는 법률을
만들기까지했다.

이러한것은,주위사람이 잘못하면,친지와 일가족및 이웃에게 책임을 물어,하루아침에 집안전체가
쥐도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지게하는 김정일의 통치방법과 다르지않다.


연산군은 또한 특이하게,남의 아내를 잡아다 음욕을 채우는것을 좋아했는데,이러한 성품은 김정일이
자신의 아내들을보면,남의 아내를 빼았아 자신의 아내로 만든것두 두사람이 공통점이다.

연산군은,잔치나 파티라는 명목으로,관리들의 부인들을 궁중으로 불러,가슴에는 남편이름을
붙여넣게하여
,옷을 똑바루 입혀준다는 구실을되게하여,자신의 욕심을 채우고,하루두 좋구,
일주일두좋구 놀데까지놀다,밖으로 내어보냈다.

인권을 탄압하구 백성을 도륙하는 김정일정권이 아무리 강력한 독재를한다구해두,우리나라의 백성들의
기상을 살펴보면,엄격한 신분제사회의 왕조시대인 연산군시대에두,패악한 왕이라면,패망시키구
내쫒았던걸보면

김정일 자신은 호의호식으로 파티나열며,온갖 악독한짓은 다하면서두,백성들은 옥수수죽두 제대로 못
먹구, 300만명이 넘는 국민을 굶어죽게만든죄는 하늘에 다았다.

또한 이러한 현실을 비난하는 백성들을 잡아다 어육을 뜨구,공개총살하며,수용소에 가두어둔사람만해두
수십만이넘었구,현재까지두 배고픔에 떨면 죽어가는 백성들이 널부러져있다.국민을 자신의 호의호식
도구로 이용한 연산군보다,더하면 더했지 덜하지않은 악독한 지도자이며,둘의 기록을 살펴보면,
성품이나,행동거지,태어난 배경등이 하나두 틀림이없이 똑같다는 점이다.

또한 이 두명이 사주팔자는 기이하게두 재위 12년을 넘기지못하여,권좌에서 쫒껴나게되며,권좌에
서 쪼겨나더라두,그즉시 죽임을 당하거나 암살당하지는않구,유배지나 교도소에 생을 마감하게되는
사주또한 똑같이 나옴을 알수가있다.

백성을 도탄에빠뜨리구,어육이되게한 연산과 김정일은 같은운명과 사주를 가지구
태어났기에,재위 12년을 넘기지못하구,백성과부하들에게 돌팔매를 당하여,정권이 마감될 운명을
가지구있음을 알수가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통일은,멀리있는것이아니라,길어두 2년내에 긴급사태가 발생한 가망성이
많기에,우리나라의 동맹외교를 굳건히하여,우리나라의 통일을 방해하여 침략하는 적(구체적으로
보면 동북공정을 의도하는 나라라구볼수있다.)에게는 강력한 대응작전계획을 미리세워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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