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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역사를 통하여 알수있는 10대 인물의 기록을 통하여,오천년 한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세계역사속에서 사라지거나

사멸하지않고 독립되어 유지될수있는 근원이 되었는지 알수가있다.

마지막 10번째 인물은 베일에 가려져있지만 조만간에 나타날것을 믿어 의심치않는다.


무엇이 한민족을 오늘날까지 유지하게하고,이어져오게 할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고담덕:"사해에 나의 은혜가 넘쳤다"
한민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여,한민족 중심의 세계관을 세상에 표방하고,실제적으로 실행한 인물

김유신:"삼한일통,일백성으로 뭉쳐 조국이 부강해진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분단된 한민족을 하나의 백성,하나의 국가로 만들어 오늘날 한민족의 근원을 만들어낸 인물

강이식:"무례한 국서에는 붓이아니라 칼로써 답해야"
나라가 위급할때,오히려 더강하게 뭉쳐단결하여 대결하는 민족성을 이끌어낸 인물

박서:"이민족에게는 죽어도 어명없이는 항복없다"
세계최강의 몽골기마병단을 상대로 30여년을 넘게 맞써 싸워온 고려,이민족의 강압된 힘에는 절대 굴복하지않는다는 민족성을 보여준 인물

이중하:"내목을 잘라도 간도는 조국의 땅이다"
국가의 영토는 개인의 목숨이나 국제정세와 무관하게 주장해야하며,후세에게 온전히 물려줄 책임이 있음을 실행한 인물

김정일:"한민족이 망하느니 지구를 깨버리겠다"
한민족의 역사에있어,강대국의 전유물이었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제로 만들고 실행한 인물

지구를 깨버릴정도의 유효한 핵무기기 개수를 역산하면 1700기정도가 필요한것이고,이것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의 핵전력을 보유했다는 자신감의 선언임을 추정해 볼수있음.

핵실험을 한 장소가 남북한의 대치한 군사분계선근처가 아니라 중국과의 국경선부근에서 모두 이루어진것으로 보아,핵무기의 격납고등은 북.중 국경선근처에 산재해 있을것이 상식적으로 보이며 핵무기에 미리 세팅되어진 타격목표는 북경,상해등을 위시한 중국의 대도시를 겨냥하고 있을것을 어렵지않게 추정할수있고,

중국군의 북한주둔은 역사상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에 타국가의 군대가 주둔한 예가 전후후무하기에 가망성은 제로에 가깝고,통일한반도의 탄생시 주변의 4대강국이 먼저 한반도에 군대를 진군하려고 할경우는 한민족에대한 이민족의 침략에 해당하기에 진군할시 최후의 상황에서는 핵무기를 맞을 가망성이 있음.북한에 유일하게 군대를 진군할수있는 군대는 이민족에 해당하지 않는 한민족의 군대인 한국군뿐임.

박정희:"이한몸 다할때까지 나라를 위하여"
한민족의 역사에있어 지도자의 역할이 국가부강의 운명을 결정한다는것을 실제로 보여준 인물
누가 되었어도 한국이 경제적,군사적으로 부강했을것이라는것은 한민족의 역사를 통하여봤을때 궤변임을 알수가 있고,선진한국의 토대를 만든 지도자

노무현:"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아니겠는가"
한민족의 역사에있어,지도자로서 권력과 부귀영화의 편안함보다는 국민에 대한 지도자의  명예가 더 중요함을 실제로 보여준 인물.

김재규:"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대통령과국가,선택의 기로에서 대통령을 따르고 위했지만 선택의 순간에는 보장된 개인적인 영달과 부귀영화의 영속보다  korea를 더 사랑해야함을 실제로 보여준 인물

000:"통일한반도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삼대왕조세습을 쏘았다"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실체가 나타날 마지막 10번째 인물은 역례를 살펴보면,"장군출신으로,부하에게 일부분 절대적카리스마를 가지고있고,검은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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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대한민국의 대통령 노무현,그분의 유서전문을 나름대로 영어번역을 해보았습니다.



영어로 번역하려니,의미나,단어,어감에있어 모호한부분에대하여는 개인적인 주석을 ※괄호속에 첨가했습니다.개인적인 주석이므로 그러한 의미가 아닐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정확한 영문번역을 보고싶지만,저의 영어실력 한계로인하여,그렇게하지 못하는것이 아쉽습니다.어찌되었든


우리나라 반만녁역사에 나라를 이끌었던  최고통수권자중에 마지막심정을 유서전문으로 남긴분도 처음이었고,전례에없던 유일한 기록이기에 역사자료에 기록해둡니다.

영국 bbc뉴스의 사이트에 2009년 5월29일 해드라인은 노무현 전대통령에 관한 기사가 해드라인 탑뉴스로 나왔습니다.우리나라뿐아니라 전세계의 공정한 언론방송들이 노무현 전대통령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있었습니다.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중에 체재와이념을 넘어 세계가 추모하며 기린분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유일한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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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people helped me, so.

Many people are suffering because of me.

Harassment to prepare is too many for me.

The remaining time of life will be a burden to others.

I can not do anything because health is not good(※they torment me).

Can not read a book,moreover can not write.

Do not be sad.

both life and death is one of nature.

Do not be sorry.

Do not blame anyone.

It is fate(※Roh Moo-hyun analects Reference "Chosun Dynasty 600 years")

Do cremate.

Do leave a small memorial stone near my home.

It is my belief.

Republic of Korea President Roh Moo-hyun,16,the whereases in the w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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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들의 성씨의 미스테리,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에서 왕조의 성씨를 찾아보면,

생각외로 많지가 않다.고구려의 고씨,신라의 박.석,김씨 고려의 왕씨,조선의 이씨 그러나 백제왕가의 성씨는?에 도달하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고씨,박씨,석씨,김씨,이씨인 5대성을 왕조의 성씨라고한다면,왜 600년이상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백제왕가의 성씨는 역사에서 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

고구려,신라와 함께 삼국시대의 동시대의 문화를 살았던,백제가,신라나 고구려의 왕족 성씨는 모두 기록되어있는데,


같은 민족이라는 백제의 왕가는 왜 성씨가 미스테리로 되어있느냐하는 점에대한 글이다.백제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가야와 함께 수백년간 이어진 왕조에 비하여 주류를 이루지못하는 너무나도 빈약한 역사의 기록만이 남겨져있다.

이러한 이유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일본과 백제와 가야의 관계때문이다.일본의 천황이 자신은 "백제왕가 자손의 피가 흐르고있다"라고 하였고,우리나라에서도 구지 일본 천황가가 백제왕가의 피가 흐른다고,공공연이 말하는것에대하여 자부심인냥하는 경향이 있는데,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천황가도 성씨가 없다.우리나라의 역사에 존재하는 고대국가중 유일하게 백제왕가의 성씨만이 전해지지 않는다.역사에서 논란이 되고있는부분이 백제와 왜의 관계가 어느쪽이 주종관계였나인데,우리나라에서는 백제가 주고,왜가 종이었다는 입장이고,일본의 입장은 왜가 주고,백제가 종이었다는 태도인데,상식적으로 왕의 자식이나,친족을 인질로 다른나라에 보내는경우,고구려와 신라의 경우나,

세계사적인 국가인 몽골과 기타국가등의 관계를 보았을때,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왕가의 자손이나 친척을 상대방의 나라에 보내는것은 보내는쪽이 주종관계에서 우월한 입장인경우는 전혀없었다.

백제는 특이하게도 일본에 왕의 장남이나 자손들을 인질로 왜에 보내어 생활하게하다가,일정시간이되면 일본에서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곤했던 기록을 쉽게 찾아볼수가 있다.주목해야할 점은,우리나라의 최강의 군주였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시절에도 이미,신라는 왜의 공격으로부터 힘겨운 방어를하고있었고,직접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여 침입한 왜를 섬멸하였다는 기록을 볼수있는데,

왜의 세력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일본이 통일국가를 이루기전에,일부의 허접한 세력이아니라,광개토대왕 당시에도,신라를 극도로 위협할정도로 강성한 군사력이었음을 알수가 있는데 신라는 왜의 공격으로 나라가 흥망의 위기에 처할 그시대상에서 백제를 살펴보면,이것들은 어찌된것인지 왜의 공격으로부터 예외였을뿐아니라,오히려 왜와 백제는 서로 연합하여,주변국을 점차 점령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의 천황가는 백제왕가와 통하다라는 일본천황의 말에는 혈연적으로 하나였다일뿐인데,백제왕들이 성씨가 없는것이나,일본의 천황가가 성씨가 없는것이나,일맥상통한다.우리나라의 국민에게 백제왕가의 성씨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제대로 답할수있는 사람이 없다.

수많은 왕의계보를 가진 백제왕들이 단 한명도,우리왕조의 성씨는 무엇입니다라고 말하거나 기록한적이 없기때문이다.그 당시에 성씨의 개념이 없었느냐하면,고구려나 신라에는 이미 왕족의 성씨개념은 존재하고 있었기에,변명할꺼리가 없다.왜 백제는 왕가의 성씨를 기록하지않았느냐,이것은 너무깊게생각하면 어려운것이지만,상식적으로 간단히 생각해보면 백제왕가는 왜라는 나라의 천황가와 뿌리를 같이하며,서로 상부상조하며 나라가 발전했기에 일본의 천황가가 성씨가 존재하지않는것처럼,백제왕가또한 그러한 전통에 참여하다가 망했기에 역사의 기록에서 백제왕가의 성씨가 존재하지 않게되었다는 것이다.

백제와 왜의 관계는 문화적인 입장에서는 백제가 우월했고,군사력에있어서는 왜가 우월했다의 관점으로 볼수있는데,고대 동아시아의 국가들의 흥망성쇠를보면,문화가 우월했다고 주종관계에서 주가되는게아니라,몽골의 징스칸이 몽골 문화가 우수해서,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한것도아니고,비록 몽골의 전체군사력은 20만에 미치지 못했지만,훈련되어진 몽골기병의 군사력이 강하기때문이었다.

백제왕가를 호위하고,받쳐주었던 군사력의 힘은 왜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할수밖에없다.백제는 문화적으로 왜보다 월등했지만,일정시기동안 군사력에있어서 왜의 보호를 받는 그러한 형태의 연합관계를 왜와 공통으로 가졌음을 알수있고,그 뿌리가 백제왕가와 일본천황가의 혈연적 일치관계에 기반했음을 알수가 있다.

백제 왕가의 시조는 분명히 고구려의 한분파로 세워진 국가였지만,그이후 고구려처럼,해씨를 원조로하는 고씨인 왕의 성씨를 이어간게아니라,고씨라는 성씨와 결별하고,그당시 군사력에있어서 우월했던 왜국의 천황가와 혈연적뿌리를 공유한다는 백제왕가의 명분으로 백제와왜는 연합하는 군사동맹관계였음을 알수있고,근본적으로보면 백제왕가는,우리나라의 일반백성과 동떨어진 태생들이었지 않나 그런생각을 해볼수가있다.

우리나라역사에서 백제왕을 드높이는 경우는 거이 볼수없고,또한 조금 뛰어난 백제왕이었다고해도,그사람을 추적해보면 알수없는 미스테리기간동안 사라졌다가,불연듯 나타나 왕위에 오르는데 그밑바닥에는  왜왕가와 밀접한 관련이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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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가와 일본천왕가의 관계는,몽골과 고려의 부마국과의 관계정도로 이해하면 역사적진실에 가깝다고 볼수있지않나라는 생각이든다.우리나라의 역사에있어 백제와 왜의 관계를 어느쪽이 주종관계냐에 대갈박 골머리를 굴리고 일본과 서로대립하는데,그럴필요가 전혀없는문제고 주변국가나 우리나라 역사에 남겨진 기록들을 있는그대로 해석하여 받아드리면 될뿐이다,

고려가 몽골의 부마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해서,고려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우리역사가 아닌것은 아니듯이,백제왕가가,일본의 천황가에 예속되어 일정시기,군사적동맹의 도움을 받았다고해도 있는그대로 받아드리면되는것이지,대갈박굴리며 왜 이딴기록이 역사에 존재하는지 그에반한 학설을 만들어내는데 골머리를 쓸필요가 전혀없다.

백제왕가는 전체시기가아니라 일정시기동안,"왜에 종속된 왕의계승을 했었다"이렇게 보면 주변국가에 남겨진 기록들을 "왜곡"할 엉터리학설을 만들어낼 필요가없는것이다.역사는 교훈을 얻기위한것이지,자존심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그자체가 더 부끄러운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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