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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의 조직문화의 시류를보면 뒷통수 치는것을 미화 비스무리하게하여 무슨가치가 높은것인냥,갖가지 명분을 갇다 붙이더라도,결국보면 뒤통수인데,왜 이러한 눈을 멀게하는 현상들이 나타나는지에대한 우리나라,일본,중국의 역사적으로 내려온 국가를 지탱하는 의식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중국의 역사는 대부분 이민족의 통치왕조하에 놓인 역사가 대부분이기에,국가의 흥망성쇠라는 관점보다는 자신의 속한 집단에대한 의리를 강조하는 관계형성을 이루어왔음을 알수가있는데,대표적인것이 중국 삼국지에서 관우장군이 보여주는 의리에대한 이야기를 들수가 있다.

중국은 국가가 망하더라도,자신과 관계되는 친구나,집단이 더 우선인 관계지향성을 보여주기에 그것이 더 우선순위이고,중요하다.



일본의 역사는 천황의 역사라고 할수 있을만큼 천황을 기준으로 그것을 지키고 받드는 주군개념을 이어오는 나라임을 알수가 있다.미국이 2차대전에서 세계를 지배할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천황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것은 미국이 그렇게 할수있었는데,그렇게 하지 않은것이 아니라,그렇게 할수없음을 강제로 인식시킨,주군문화의 힘에 미국이 굴복한것임을 알수가 있다.

일본이 천황을 보호할수 있었던것은 카미가제와같은 무력적 저항정신의 무서움을 미국이 어쩔수없이 인식했기에,천황을 그대로 나둘수밖에 없었다.주군전통의 힘을 일본스스로가 행동으로 보여줘서 지켰고,미국이 은혜나 아량으로 지켜준것이 아니란 점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지배계층세력은 아래로부터 올라 오려는 될성부른 떡잎은 아예 처음부터 밟바 버린다라는 문화가 이어져왔기에,국민이 사회지도세력에대하여 자발적인 우러름이나 존경을 가지지 않았고,억압되고,압제된 형식적 충성을 강요 받았기에,

외적이 침입이나 나라에 어려움이 쳐했을때는 왕조나 주군,사회지배세력을 보호하고 구하자라는 개념보다는 그들의 실정이나 잘못은 제쳐두고,국가는 지켜야한다는 수천년 이어져온 국가문화로 인하여,사회지배계층들은 제일먼저 도망가도,끝까지 남아 풀뿌리 국민들이 희생하고,저항하여 결국 지켜내는 역사가 반복되었다.

오늘날에 우리나라의 발전은 신라의 화랑정신을 근본으로하여 개조된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의 문화로 긍정적으로 변화 정착되어지고 있다.이러할때에 또다시 시대를 꺼구로 만드려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는데,조직에서 뒤통수치는 문화를 여러 명칭이나 명분을  들어 미화하려는 시류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이 단기적,일시적으로는 붙여진 명칭이나 명분에따라 사회에 긍정적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긴관점에서보면,국가와 사회를 망조로 이끌어가게 한다는 점이다.

국가보다는 관계에 중점을 둔,의리를 중요시하여 국가보다는 개인간의 의리를 더중요시하고 받들어 목숨을거는 중국,

아무리 잘못한점이 있다고해도,주군을 해아거나,나쁘게 되어지게 한다면,주군을위하여 초개와같이 목숨을 바치는 일본



사회지배층을위한 충성도 아니요,국가보다 의리를 더 우선하는것도 아니고,중국과 일본과는 다른 독특한,주군은 버려도,의리를 져버리더라도 한민족 국가인 국체를 유지한다는 관점에 있어서는 최우선으로 똘똘뭉치는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뒤통수"짓거리는 어떤명분,어떤명칭을 가져다 바친다해도,그러한 짓거리를 한사람은 불이익은 물론,폐가망신을 시키는 전통을 꿋꿋하게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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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평왕때 백제와의 국경지역에있는 봉우리성 성주인 찬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해론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해론이 나이 7살이 되었을때,백제가 많은군사로 봉우리성을 포위하여 백여일동안 공격하였지만 성을 함락할수는 없었다.


진평왕은 악전고투하는 찬덕을 위하여 상주,하주,신주의 3개주의 군사로 봉우리성을지원하도록하였다.





3개주의 장군은 백제군사의 위세가 강함을보고,싸우는척만하고 이길수 없다고 말하며 퇴각하여 돌아가버렸다.멀리 성안에서 이모습을 지켜보던 찬덕이 하늘을 우러러 말하길"아군이 위급함을 알고도,적의 강함을 생각하여 싸워보지도 않고 가버림은  의가 아니다.의를 버리고 구차하게 살기보다,의를 위하여 죽을것이다"하고 분전하였지만,포위된지 4개월이 넘어가자 성안에 음식과 물이 다 떨어졌다.



이에 이르자 찬덕은 물대신 오줌을 받아 마시면서까지 최후의 항전을하였지만,이미 성이 함락되는것을 막을수는 없었다.최후의 순간이 온것을 안 찬덕이 남아있는 부하들에게는 항복하여 살도록 명하고,정작 자신은 항복하지않고,눈을 부릅뜬채 나무에 스스로 머리를 박아 죽었다.그후 13년이 흘러,찬덕의 아들 해론이 20살이되었을때,신라와 백제는 다시 봉우리성에서 전투를 하게되었는데,기이한 인연에 따라 종군한 장수중에 해론이있었다.



해론은 백제와의 싸움에 앞서 주위 장수들에게 말하길"나의 부친이 이곳에서 죽었다.내가 앞에 나가 싸우려는것은 의를 버리고 구차하게 사는것보다,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달픈 선친의 맹세를 느끼기에,기쁜마음으로 신라의 정신을 보여주고 오늘 죽을것이다"하고 칼을 들고 홀로 적진으로 달려가 힘이 다하는 순간까지 싸우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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