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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언제나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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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봄~ 봄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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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 이세민의 눈을 파서 눈물을 머금게했던 고구려의 유명한 안시성전투에서의 장군의 이름은 역사기록속에서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않다.

안시성전투는 실제했으나,양만춘은 실제하지않는 가공의 인물이라는것이다.

양만춘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살펴보면,설혹 이것이 의미가있다고 조금이라도 가정해보더라도 이것은 이름이아니라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투가 벌어졌던 계절을 의미할뿐,장군의 이름은 아니다.


안시성싸움이 벌어진 고당전쟁의 계절은 이른봄부터 초가을까지인데,양만춘을 문자그대로 풀이하면 "버드나무가 만발한 계절인 봄"이라는 의미일뿐이다.고구려시대에대한 정확한 기록들은 고려시대에 작성된 역사서들이 그나마 사실적이고,조선시대에 기록되어지는 고구려역사들에대한 기록은 거이가 창작이거나 사실과 동떨어진 경우가많고,그 일례가 양만춘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야사에다가 기록했다는것이다.

안시성 성주와 연개소문은 동시대 사람이기에 안시성 성주가 누구였느냐를 이해하려면 먼저 연개소문의 생몰년을 살펴봐야한다.연개소문이 죽을때 나이가 백전노장의 흰수염을 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려진 전투도가 보이긴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고 연개소문은 광개토태왕처럼 이른 나이에 죽었는데,

생몰년은 616-665년이 역사적 기록과 부합하고,오늘날의 나이로보면 49세정도에 죽었기에 그당시 사회상에서는 노인이라고 주장할지모르지만 오늘날의 나이로는 이른나이에 죽었음을 알수가 있다.안시성 성주가 누구냐를 유추해보기 위해서는 안시성성주와 연개소문은 서로 상명하복의 관계가 아니였음에 주목해야한다.

이러한 의미는 안시성 성주나 연개소문은 독자적인 세력과부족을 가지는 지위에있는 우두머리였음을 알수
가있고,연개소문은 기록에보아도 서부대인의 부족장의 위치에 있음을 알수있고,영류왕을 단칼에 내리칠때에 동원된 부하들은 서부에 소속된 부족군 집단이었기에 왕의 말보다,직속 우두머리의 말에 더 충성했음을 알수가 있다.

안시성 성주가 연개소문에 맞서 자신의 지위를 주장하고 맞설수 있었던것도 자신또한 하나의 부족의 우두머리였기에 가능했고,그에따른 부족민들의 절대적 신임이있었기에 가능했다.연개소문과 안시성성주의 관계를 알아봤다면,역사에 기록되어지지않은 안시성 성주의 부족은 무엇이냐라는 의문이 들어야 정상일것이다.



이사람의 부족을 알려면 현재 중국에 속해있는 동북삼성의 위치에 어떠한 부족들이 강했는지 살펴보면 알수가있는데,러시아쪽 국경으로는 흑수말갈,요동과요서를 구분하는 중국과 맞따은 쪽은 속말말갈,그리고 두만강이나 백두산쪽으로 위치한 말갈이 존재했는데,안시성이 위치했던곳에는 속말말갈부족이 강했던곳이다.

오늘날에 와서야 말갈은 다른나라로 민족으로 구분되어졌지,고구려라는 나라에서는 여러부족들속에 하나로 뭉쳐진 통합 고구려의 나라였기에,중원에서 보기에는 말갈부족은 고구려의 별종이라고 기록하여도 이상할게 전혀없다.

말갈은 우리나라역사속에서는 물길,여진,만주족등의 여러이름으로 불려졌는데 공통적으로 강이나 물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는 부족이름을 가지고있다는것이다.물길이나 말갈의 의미는 호수나 강물과 관련되어 불려진다는것이다.안시성 성주는 정체는 어느정도 파악이되었다.



연개소문처럼 하나의 부족의 우두머리라는 것인데,그휘하에 속한 안시성의 부족민이 기록상 10만명 정도되었음을 알수가있는데 이정도의 일가를 이루는 부족은 안시성근처에서는 속말말갈뿐이었다.오늘날에 중국의
동북삼성은 러시아쪽에있는곳은 흑룡강성,중원쪽 경계에있는곳은 요녕성,중앙인 조선족이 살고있는 연변이있는 길림성으로 구분되어지는데,

여기서 흑룡강성은 흑수말갈지역이니 검은 흑이 붙어있고,중간에 위치한 길림성은 조선족의 자치구이니 의미를 알수가있는데 요녕성쪽에 존재했던 속말말갈의 존재는 지리명으로는 알수가 없다.속요녕성 이랬으면 쉽게 알수도있었겠는데,그러지않은 이유는 더 큰 위대한 나라가 그곳을 기반으로 세워졌기때문이다.

고구려의 장수이면서 역사기록속에 연개소문과 동시대에 살았고,안시성을 근거지로했고,망한 고구려를 대신하여,끝까지 저항하고 결국에는 고구려의 후예라고 선언한 나라의 아버지였던 대걸중상이라는 사람을 역사속에서는 기록하고있다.

대걸중상은 연개소문보다 8년이 늦게 태어난 생몰년이 622-698 이다.대걸중상은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아버지이고 대조영은 중국사서에" 고구려의 별종"으로 기록되어져있는데 별종이라는 의미는 고구려의 사람이나 부족이 다르다는 의미로 받아드려도 이상할것이 없다.

안시성은 고구려가 망한후에도 끝까지 저항한 성에 속하는데 이러한 저항정신의 밑바탕은 자신들의 부족이 속한 토착 지역이었기에 안시성이 함락되는 670년대까지 항전했다고 볼수있고 성이 함락되면서 당나라에 끌려가지만,결국은 당군을 격파하고 고구려가 망한지 30년도 넘지않아서 발해라는 고구려의 계승국이 탄생한것이다.

대걸중상은 그의 아들 대조영이 발해를 세우기이전부터 이미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왕이라는 칭호를 내려줬어도,그런칭호 필요없다라고 할만큼 독자적 군사력과 세력을 갖추고 이끌수있는 힘을 가진 장군이었음을 알수가있고,대조영의 아버지 대걸중상이 안시성 성주였다라는 것은 역사에 기록을 살펴보면 양만춘이라는 허울데기 거짓말 가공의 인물보다는 더 사실적인 역사에 부합될수 있음을 알수가있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의 장군은 애시당초 고구려에는 존재하지않았다.대걸중상은 역사속에 확실하게 기록되어진 안시성의 위치했던 지역의 이름난 장군이었고,연개소문도 힘으로 해서 국력을 낭비할만큼의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안시성성주와 싸울필요가 없다고 느겼을 만큼 당대의 영웅이었고,당태종을 격파할정도의 담력과 베짱이 있었기에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하여 발해를 세울 수있었던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발해를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지 않는다면 안시성전투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라는 부정이 되어버리기에,고구려역사왜곡만 관심을 가지고 발해를 내버려두는것은 황당한 논리이고,양만춘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낸 조선후기 인물이 적은 다른내용을 보면,광개토태왕비를 아예 말갈황제인 금나라의 왕의 비석이라고 전한다고 기록할만큼 역사인식이 미천했던 사람이 안시성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전한다고 적었놨다고 맞는 이름이라고 한다면 지나가던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

역사기록에서 유명한 사람은 후손들이 중시조이든 어떤형식이든지 자신의 성씨의 시조로 숭상하는것이 우리나라의 풍습이었는데 양만춘은 누구의 시조라는 말을 들은적이 전혀없다.애초부터 가공의 양씨 성을 가진 만춘을 날조했기 때문이다.엉터리 야사의 인물을 사실인냥 이름을 전하는것 또한 역사왜곡이며,연개소문과 맞짱을 뜨고,당태종 이세민을 격파할정도의 담력을 가진 동시대의 인물은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아버지 대걸중상인 고구려의 대중상 장군뿐이다.

안시성 성주는 대걸중상인데 왜 역사에 기록되어져있지 않았는가 하는것은,역사의 기록이 되어있지 않은게아니라 역사기록의 행간에 의문을 갖지 않기때문이다.고구려를 망하게한 측천무후가 왜 별볼일없던 아무 전공이 기록되어지지않은 대걸중상에게 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겠다고 애걸했는지,그만한 무력과 전공을 고구려 장군이었을때부터 보여줬기에 인정받은것이고,고구려가 망하자 그러한 칭호를 주려고했다는 것이다.역사교과서에 안시성전투의 장군은 양만춘이라고 기록하는것은 광개토대왕이 말갈황제라고 전한다고 기록한것을 믿는것과 다르지않을 정도로 코메디임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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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무렵 푸른하늘을 바라다보았다.높은 하늘위로 시원하게 평행기류를 흐날리며 비행기가 구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객기처럼 보이지는 않는데,하늘위에 아주 급한 볼일이 있는듯 생생거리며 순식간에 하늘 이편에서 저편까지 직선으로 가르더니 휙 사라져 버렸다.

무엇을 하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쾌하게 창공을 가로지르는 비행기구름이 시원하게 보였다.

오늘은 그동안 밀렸던 댓글들을 살펴보다가 나의 창작소설에 "재미있게 잘읽어네요"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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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하나 달리때마다 한페이지씩 써나가다보니 현재 7-8페이지 정도밖에 쓰지 못했고,댓글 반응이 썰렁해서 멈추게된 소설이었는데 재미게 읽었다고 댓글까지 남겨준분이 있다니,만세^^;;(소설을 계속쓸 핑계가 생겼다)

이런분이 있기에 허접한 창작소설이지만 힘이 생기고,댓글이 달릴때마다 한페이지씩 계속 글을 적어보려고한다.오늘은 주말이면서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벌써 봄을 알리는 배추꽃이 활짝피어 있었다.보기가 좋아 몇장 찍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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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시는분들의 마음에 감사함을 전한다.댓글의 행복이랄까,기분이 좋다.조금있으면 온가족이 시청할만한 좋은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방송된다.이것또한 나에게있어 즐거움중에 하나이다.이런 좋은 드라마를 볼수있다니,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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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엇그제같더니,어느새 봄이왔었는지도 모르게 여름이 다가왔음을,송이송이 메달린 빨간 장미꽃봉우리를 보니 느낄수 있었다.

장미잎이 너무 곱길래,따다가 무엇을 만들까?생각하다가,장미향이나는 향수를 만들어볼까하고 장미잎과 물,소주를 부어서 믹서기에 갈았다.

빨간 보라색의 물빛아래,갈아진 물과 사용하는 스킨을 섞었더니,투명했던 스킨이 불그스름한 뿌연색으로 보였다.

다 쓴 향수병에 만들어진것을 넣고 살짝 뿌려봤더니,
풀내음향기가 났다.


가끔은 스킨도 바르는게아니라 뿌려야겠다.빨간장미 그림을 보다가,세이프트이닝을 이리저리하다보니,엉뚱한 7송이 세포분열하는 장미그림이 생겨버렸다.


그림제목을 "마음을 만들어주는 장미그림"이라고 붙여보았다.그림을 뚜러지게보면,없던 잠도 스르르 감기며 졸리게 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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