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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구가하기위해서는 지도층을 상시적으로 도륙내어야한다는 운명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아버지를 보며 두려움에 떨던 맏아들이 “아버지를 도운 지도층인 공신이나 고위관료들을 더 감싸고 보호해줘야지 왜 공신이나 고위관료들을 개미목숨보다 더 하찮게 공포가 사무치도록 상시 도륙을 하십니까?”물으니 주원장이 말했다.

내가 엄하게 도륙하는 사람은 성 밖의 없이살고, 힘없는 백성들 중에서 그리하는 것을 보았느냐? 지도층을 대대적으로 상시 도륙했더니, 결과는 백성들이 못살고, 굶주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있어왔던 어떤 왕조들보다 백성들이 삶의 지표들이 나아지고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원장의 이러한 운명의식은 부패한 사회지도층에의한 탄압으로 부모가 모두 굶어죽었을 정도로 피폐한 삶을 어릴 적부터 살았던 주원장은 그 자신이 인생이 제일 밑바닥부터 최고의 지존인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동안 터득한 경험에서 나왔음을 알 수가 있다.

 

 

이방원: 이씨왕조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서 그것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외가이든 친가이든 상관없이 모조리 도륙했는데 이러한 골육상쟁의 모습을 지켜보던 맏아들이 “ 혈육의 정은 천륜인데 어찌하여 골육을 도륙하면서 국가의 충효를 논하십니까? 물으니 이방원이 말했다.

내가 엄하게 외척이나 형제들을 살육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이씨왕조의 탄탄한 초석을 만들어 만대에 이어지길 기원하기 때문이다.

이방원의 이러한 운명의식은 근본에 있어 열등의식이 존재하였기 때문인데, 조선을 건국한 이씨왕조의 피의 근본이 고려의 풍습을 간직하고는 있었으나 여진의 풍습과 혼인관계를 바탕으로 성장한 성씨였기에 국가도 백성도 그런 것보다는 더 우선적으로 이 씨라는 성씨의 왕가의 전통이 이어짐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였기에, 국가가 어떻게 되던, 백성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이 씨 왕가가 우두머리로 남을 수만 있다면 어떤 짓을 하든 상관없이 그것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왕위를 계승하여 이어가는 것이 운명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아버지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한 질문을 했던 맏아들은 공통적으로 모두 왕위를 이어받지 못했다.

 

 

주원장과 이방원은 동시대의 사람으로 서로의 운명관을 가지고 만나게 되는데, 한사람은 중국을 통일한 황제의 신분과 이러한 명과 일전을 벌일 것인지를 놓고 탐색하는 요동정벌론을 주장하는 정치 상황을 맞이한 조선의 왕자신분으로 만나게 된다.

농민에서 황제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중국을 통일하여 황제가 된 주원장조차도 조선을 침공하여 정복하는 것도, 그렇다고 가만히 나두는것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지리적 위치였다. 중국을 통일하였다해도 몽골지역에는 여전히 원나라의 조정인 북원이 남아있었고, 요동지역에는 여진이라는 야인들의 세력이 강했기에 잘못 판단했다가는 수나라처럼 통일 중원제국이 하루아침에 조선이라는 나라 때문에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비상했던 주원장은 조선이 명나라를 칠 용기도, 패기도 없는 왕조라는 것을 간파하고는 조선을 침공하여 국가의 흥망성쇠의 도박을하는것보다는 주둥아리로만 위협하여 여진과 몽골을 적대시 할 정도의 상태만 만들어 놓으면 좋다고 생각했기에, 조선사신이 오면,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억류하거나, 참수를 하여 분하면 쳐들어 오던가라고 패기 없는 조선이라는 왕조를 조롱하며, 조선이 스스로 비굴하게 굽혀서 엎드리도록 길들였다.

이방원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원장을 만났을 때 주원장은 이방원을 환대하고, 이방원은 주원장을 받들어 사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굳히게 되는데, 주원장이 이방원을 환대한 이유는 주원장의 의도를 간파한 이방원이 조선의 개국에 일조했던 여진을 적대시하고, 요동의 권리를 명나라가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개념 밥말아먹은 사대의 자세를 취하겠다는 의도를 확고히 했기 때문이고.

이방원이 주원장을 받들어 사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굳힌 이유는 주원장의 명나라는 조선에 있어 이씨왕조를 이어가는데 침략하여 정복하고자하는 생각이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에 나라의 땅이 어떻게 되던, 백성이 어떻게 되든 이씨왕조인 조선이 대대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에 부합한 인물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대선이 다가오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시대적 정신이 주원장 같은 사람의 운명관이 필요한것인지,아니면 이방원의 운명관이 필요한것인지 생각해볼만하다. 주원장은 명분이나 체면을 위하여 억지가 아닌 스스로가 원나라를 승계한 왕조임을 천명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방원의 조선은 명분과 체면을 위하여 고려의 왕으로부터 선양을 받는 형태로 왕조를 바꾸면서, 실제적으로는 고려왕조의 왕 씨들을 남김없이 한데모아 수장시켜 도륙해버리는 태생부터 겉모습과 속모습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러함에 주원장은 조선을 보는 것과 이씨왕조를 보는 것을 구별하여, 조선이라는 국가는 함부로 할 수 없지만, 이씨왕조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배역왕조이다라는 관점을 명나라의 후대 황제들이 가지도록 역사를 기록시켰다.

오늘날까지도 조선왕조 600년 동안 이어져온 겉 다르고 속다른 이중적형태의 뒤통수들이 잘먹고 잘살면서 정의인냥하는 부정적 인물상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하나의 나라의 우두머리의 운명관을 선택할것인지  아니면, 세계의 중심 코리아의 운명관을 선택할것인지는 역사속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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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지말라"라는 죄명에서 천하제일 첫번째 거짓말쟁이 직업들이 정치인들이라고 볼수가있다.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약속중에 절반만이라도 거짓말이 아니면,

그런대로 괞잖은 정치인이라고 볼수가있지만 일반인들에 비하면 엄청 거짓말을 밥먹듯한다.

거북이의 빙고를 듣다가 생각난것이 우리나라의 애국가를 대신하여 국가를 정하라면 난 거북이의 "빙고"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에의하여 발전하여온 나라가 아니다.

외적이 침입해서 나라가 어려울때는 민초들이 단합하여 일어났고,나라가 힘들때는 백성들이 제일먼저 자신들의 것을 내놓았다.왜 전세계적으로 해군이 강한 나라가 큰나라가 되어는가하면 해군은 최후의 순간에 리더가 제일먼저 책임을 지고 승부를 걸기때문이다.위급시 윗대가리는 제일 먼저 도망가는 나라치고,제대로된 역사를 만들어낸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이 뽑아준것을 지멋대로 던져버리거나,백성들의 선택을 잘못으로보는 "오만"을 가진것들은 애시당초 정치인으로 존재가치가 없는것들이다.법률밑에 국민이있는것이 아니라 법위에 국민이 존재하는것이라는 생각은 정치인의 기본이 아닌가,

매일,매일 서로를 헐뜻고,반대를위한 반대를하고,저것들은 어쩌내,자기네는 어쩌네 편가름으로 치고박고 이딴 머저리짓을 계속해도 국민들이 자신들의 당을 응원해줄것이라고 믿는것들은 대갈박들이 변화하는 국민들을 따라오지 못하는것이다.

정치가 거짓말쟁이 쇼맨쉽이라고해도 개중에는 올바른 변화를 만들어가는 리더들도 존재했기에 발전이 있어왔다.정치인을 어쩔수없이 뽑아야한다면 "서민운동"이니,"민주화운동"이니 어쩌구하는 이런 개뼉다구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은 더이상 뽑아주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시대가 바뀌고,개념이 바뀌고,시스템이 바뀐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저런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외통수들을 뽑아놓아서는 치고박고,지잘났네,네가못났네하는 타협없는 지롤들의 정치영역을 계속만들어갈것이 확실하다.

"빙고"와 같은 시원한 정치인들이 많이 생겨나길,그리고 개뼉다귀 진보니 보수니 지롤은 개밥그릇에나 던져버려라."기분좋아졌나,기분좋아졌나,노래한곡하고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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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죄수가 남자죄수들의 방으로 보내져 윤간당하는 형벌이,우리나라에도 있었는데,이러한 일이 왜 일어났었는지,그 배경부터 살펴보면

1596년 조선의 암군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조, 재위29년 어느 추운 겨울날 발생했던 이사건은 그시기가 임진왜란시기,

선조는 의주까지 백성을 버리고 혼자 도망가,여차하면 중국으로 튀어서 도망갈 준비를하고 있었는데,마침 원조하러 중국의 군사들이 도착했기에,

그들의 비위를 잘맞춰서 일본군을 몰아내주기만을 학수고대했고,

백성들 또한 얼른 전란이 끝나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하는 마음이 강했지만,중국군사들과 일본군은 서로의 지도부 대가리들의 비위만을 맞추는 시늉만이 더 중요했기에 되도록 싸우기보단 ,서로 말을 맞춰서 자신들의 군사가 피해가 없는 방향을 지향했기에 주둥아리로만 싸우는것을 좋아하였다.

어느때고 마찬가지지만,나라에 전란이 일어나면 가장 피해를 보는것이 힘없는 어린아이와 여자들인데,툭하면 천자의 군사가 도와주러왔는데 그런편의도 못봐주냐하면서,마을에서 보이는 여자들은 족족 자신의 군영으로 잡아다가,중국군장교나 수하들이 첩이나 성적노리개감으로 삼는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현실을 보다못한 지방관리가 선조에게 상소를 하면 선조의 반응은 "그럼 어쩌라고?" 너가 직접가서 따져보던지,이러면,지방관리는 명나라군영을 찾아가서,이번에 잡아간 마을의 아무개는 이미 결혼한 여자이므로 돌려보내줄수 없느냐고,명분을 내세워 사정하고 데리고,오고하니,일반민가에서는 그래도 자신들의 여식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안볼수있지 않을까해서,조혼풍습이 유행하게되었는데,이러다보니 중국군의 성적노리개로 유린당하는 문제에대하여는 힘없고,가난한 백성들의 여식들이나,신분적처우가 미천한 여자들이 일순위가 될수밖에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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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이 5년차에 접어들무렵인 1596년,중죄를 지어서,목에 나무칼을찬 여자죄수가 감옥으로 들어왔는데,고려와 조선시대에,정식관리가 아닌,지방의 잡다한 공무를 보는 향리들을 통틀어 색리(色吏)라고 불렀는데,감옥의 업무를 담당하던 색리가 으슥한 밤에 목에 칼을찬 여죄수에가 다가가서 말하길 "너는 어자피 죽을목숨이잖느냐,너도 알다시피  죄없는 마을의 여자들이 중국군사들에 의하여 강제로 잡혀가 성적노리감이 되고있는데,덜 피해를 볼수있게 너가 희생좀 해라"하고는 여자죄수의 목에 차던 나무칼을 풀어주고는 중국눔에게 넘겨 밤새도록 중국눔에게 시달리게했다.

이튼날 명색이 죄수신분이었기에,여자죄수가 초죽음인 상태 다시 옥으로 돌아오자,색리가 여자죄수에게 말하길" 너 혼자 옥에있으면 몸도 그런데,돌봐줄 사람도없고,무서울거같으니,남옥에서 같이 지내는게 좋겠다"

여자죄수왈 "안돌봐줘도 좋다, 이캐새퀴야!!!,혼자 있게해달라,그러나 여자죄수의 외침은 아무런 소용이없었고,여자죄수는 남자죄수들과 같은방에 집어 넣어져,급기야는 이러한 사실이 선조에게까지 이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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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왈:그런 일이 있었냐? 어떻게 했음 좋을까? 신하들왈:"그날 감옥을 담당해던 색리를 파면하는 정도가 어떨지?" 선조왈: 그렇게 하도록해라,신하들왈: 알겠습니다.아,그런데 여죄수를 성적노리개로 이용한 하늘같은 중국인은 어떻게? 선조왈:"나보고 어쩌라고,내가 직접 창칼들고 싸우러 나가리? 알믄서,사람을 보내어,앞으로는 이런일이 되도록 없도록,넓으신 아량을 베풀어주십사하고 잘구슬려봐,명나라군사를 뿔나게해서 철군하게만들면,보낸사람 목이 달아날걸 각오는 잘하고,중국군사도움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되겠냐,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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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망하게하는법인가,국민을 절름발이로 만드는 법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국가보안법의 피해를입고,탄압을 받았던 사람들이 대통령이되고 장관들도 되고 사회.경제 각부처의 주요인사들이 된지,

군부독재가 타도된이후로 강산이 두번 바뀌는 20년이 넘었다.그런데도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정권을 잡은사람들은,

권력을 쥐면 권력이 달콤한인지,갇다붙일 코걸이와 귀걸이의 통제의 편리함인지 악법이라고 그렇게 외치던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았다.


과연 북한을 망하게 할수있는법이 국가보안법인가라고 보면,전혀 그런거같지 않다.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았을때,아무리 공고한 정치.경제 사회신분질서가 고착화되게 독재체제를 만들었던 시대라고해도,민심과 역행했던 지배계층은 백성이나 신하의 손에의하여 처단되어졌다.

우리나라의 근래사를 보더라도 국민에의하여 부패대통령을 강제로 쫓아냈던 경험이 있으며,군부독재도 국민의 힘으로 타도했던 경험도 있다.이것은 우리나라의 국민의 자산이며,민족성이다.

간첩을 잡고,북한을 망하게하는 법이라는 국가보안법은 지금까지 국민을 잡았고,엉뚱한 사람들의 사상과가치관을 빨갱이로 몰아 국민의 양심의 자유와 인권을 절름발이로 만든 악법일뿐이다

간첩이 대놓고 간첩이라고 하겠나,뒤에서 은밀히 숨어서 활동하거나 조정하는 진짜간첩은 국민의 눈에는  전혀 딴 평가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결과적으로보면 공개적으로  "빨갱이"라고 매도되는 99,999%는 북에서 직접 걸어내려온 간첩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멀쩡한 국민들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체제는 국가보안법으로 망하게할수있는게 아니라,자유와인권 보호법일것이다.그리고 북한의 백성들이 한민족의 역사를 공유해왔던 민족성을 가졌다면,한민족의 동일한 피가 흐르고 있다면 시간이 다소일뿐 사필규정에의하여 북한의 폭악적 독재정권은 붕괴될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국가보안법이 지켜온게아니라,일반 민초들이 지켜온것이고,앞으로도 그럴것이다.자유와인권에 대한 국민적 경험과가치관이 성숙되고 높아졌음에도,오히려 국가보안법의 편리한 통제성을 핑계로,덜떨어진 국민성을 가졌다고 우기는꼴일 뿐이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상관없이 국가보안법이 오늘날 민주화된 대한민국을 지켜줄것이라고 믿는사람이 있다면,그런사람에게는 짱돌을 던져주고싶다.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할 때가 되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은 북한의 폭압적 독재정권이 존재하는 특수성에 대항한다는 의미는 이미 존재가치가 없다.오히려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양심과자유를 절름발이로 만들고 통제의 편리성이란 악법의 기능만을 담당하고 있을뿐이다.

북한에 대항할수있는법은 자유와인권의 강화와 국민의 자유와인권에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식과가치관,그것이 북한을 붕괴시키고,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은것이지,병맛같은 대가리만 그럴듯한 허울데기 명분을 가진 국가보안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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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 복이온다는 그 웃음중에 함박웃음 이라는것이 있다.어떻게 웃는모습이기에 함박웃음이라고 했을까,함박웃음에 대하여 살펴보고자한다.


꽃중에 함박꽃이라는 것이 있다.함박꽃=목란꽃=목단꽃=작약꽃=모란꽃 다같은 의미를 가지는 꽃인데,일상생활에서 흔히 말하는 모란은


삼국시대부터 꽃중에서 꽃이라고 불려지며,꽃의 여왕의 자리를 차지해왔는데,모란꽃무늬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서민적인 이미지보다,귀족이나 왕족만을 위한 이미지가 강했다



아름다운 여자를 경국지색이라고도하는데,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여자를 상징하는 꽃은
역사속에서는 모란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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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같은 웃음을 짓는 여자속에 담긴 의미는 최고로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여자라는 찬사가 들어있음을 알수가있는데,함박꽃의 모양으로 봤을때 다소곳하게 손을 가리며 웃는모양이 아니라,
꺼림김없이,활짝 펼쳐웃는 순진무구한 모양임을 알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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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야 장미꽃이 꽃중에 여왕이겠지만,장미꽃이 없었던 역사에서는 함박꽃이 미의 대명사였기에,모란꽃무늬를 한 옷을 입거나,모란꽃 문양을가진 물건들을 사용하는 여자들은 " 나 잘난 여자야"라는 신분을 상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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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만복의 근원이라고 한다.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자신의 건강과복을위하여 "우아하하~" 활짝웃는 모습은 자신뿐아니라,남들에게도 복과 건강을 전파하게된다.맨날 쭉상을해가지고 달에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있다는식이 가보면 단번에 알수있을걸,가보지는 않고 주댕아리로만 이럴것이다,저럴것이다 헛소리해봐야 아무결론도 나올수 없는것이고 쭉상들이하는  헛소리들은 자신뿐만아니라,주위의 사람들까지 진절머리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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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돌아다니다보면,미소가 번지게하고,운영하는 블로그주인의 마음과자세속에 나오는 지식이나, 교훈,경험을 간접적으로 얻게되었을때, 고마움이 저절로 느껴지게하는 블로그가 있는반면에,


블로그에 들어가보면,차라리 읽지않음만 못하는 눈을베리게하는 블로그도있다.


눈을 베리게하는 이런 블로그는 공통적으로 상대방을 인정하려는 자세가 아니라,상대방은 잘못이고,그것을 논죄하는 자신의 가치관은 선이라는 생각으로 똘똘뭉쳐진 나사가빠진 광신도와 다름이 없다.




옛말에,"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한다"말이 있다.어떤분야이든지  바꾸고싶으면 민주화된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는 주댕아리놀리는것은 아무나할수있다.


서슬퍼런 독재체제하에서는 주댕아리놀리는것,그자체만으로도 값진보석의 의미가있었다.그러나 지금은 주댕아리는 아무나 놀릴수있다,그것이 덕목이 될수없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것이다.그렇기에,자신이 그분야에들어가서 노력하든지,그분야에대한 공부를하든지해서 ,해결책까지도  제시할수있기를 바라는 사회수준으로까지 왔다는것이다.


가장 나쁜것이 해결책두없이 무조건 나는 옭소,믿어봐 천국이야,무조건이야,믿으면 천국간다 오로지 꼴통 광신도의 가치관을 가진부류들이다.이것들은 애시당초 개조가 불가능한 주댕아리로만 사는것들이기에,바다에 빠져도 주댕아리만 동동뜰것이다.


입주댕아리로만 맨날 국민을 달고다니며 고상한척,풍월을 읍지말라는것이다.서당개 3년이면,강아지도 외우는걸,지난 민주화시기를 넘어 3년이뭐냐,강산이 두번바뀌고 남을시간이 흘렀는데, 서민들이 풍월을 읍고도 남아넘칠만큼,이미 꼴같지않는 주댕아리놀리는것들이 하나를 말하면,그이면을 생각해볼정도가 될수있는 국민들이 수준이돼있다는것이다.


오히려 노가다십장하는 서민이,그런광신도들보다 더 조리있게 정치를 이야기할수있는 지식과 소양을 가진 사회전반적 시스템이 레벨업된 국민성을 가진 우리나라이다.때론 주댕아리로만 짱돌을 던져야하는경우도있을수있다.그럴경우에도 상대방을 인정하고,타협하는 가치관속에서 필요한것이지,공자왈 맹자왈,정의네,명분입네 요따구 고정화된 주댕아리로만으로 정의될수없는 세계화된 사회에 살고있다는것이다.


세계초강대국 미국도,정의를 외치지만,따지고보면,정의롭지않는 많은것들을 국가이익이라는 명분으로 행하여왔고,지금도 마찬가지다.그렇다고해서,미국이라는 나라의 자유와인권이 다른나라보다 못하냐하면 그것도아니다.


걸뱅이같은 민족의 기상을 갈가먹은 조선시대의 전통인 명분론주댕아리로 당리당략에 몰두하여,백성은 어육이되든,도탄에빠지든,유교경전에 기록된 공자왈맹자왈 정의만 읍조리다보니,반만년역사에 단한번두있지않았던,나라를 빼앗기는 설움까지 당했던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토론과 타협이문화가있어야지,오로지 나의 생각만이 천국으로가는 지름길이고,나라가 아름다워는지름길이고,요따구 광신도같은,쓰레기같은부류들에게 던져주고싶은것이 있다,에라이, 짱돌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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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가치관으로 해결책없이 오로지 주댕아리로만 국민이라느니 정의라느니 외치며 뒤로는 자신들의 배볼딱을 채웠던 사회곳곳에 퍼져있는 암세포같은쓰레기들,그런부류들을 쓸어버리는것,그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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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2대왕인 남해왕이죽자,3대 왕위를 누가 물려받을지에대하여 정해지지않았다.남해왕에게는 아들인 유리와 사위인 탈해가 왕권의 후보였다.



먼저 유리가 석탈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는 마음으로 탈해에게 말하길 '백성들의 추앙을받는 자네가 왕위를 잇는것이좋겠네"


탈해가 말할길" 왕의 자리는 그 그릇에 맡는 어질고,현명한 사람이 맡아야하는것으로 아무나 감당할수있는것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현명한사람은 이빨이 많다고 알고있습니다(석탈해는 자신보다 유리가 더많은 치아를가지고있는것을 알고 있었던듯하다)그리고는 떡을가져다 한입씩 물고 떡에난 이빨자국을보니 유리가 많았기에 신라의 3대왕은 유리왕이되었다.


이후로 신라의 왕을 이사금이라고 불렀는데,이사금이란 "이의 자국"이라는 기원을가지게되었다.신라3대 유리왕은 과부,고아,자식없는 노인등의 처지가 불우한 백성들에게 더많은 관심을가지고 정치를하였기에 백성들의 생활이 편안하고,복되었다.


유리왕시대에 신라의 6부에게 성씨를 하사하였는데 양상부는 이씨,고허부는 최씨,대수부는 손씨,간진부는 정씨,가리부는 배씨,명활부는 설씨라는 성을 내렸다.이,최,손,정,배,설씨 6가지 성씨는 신라의 6부족과 관련이 있는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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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신라의 설씨 성을가진 처녀는 얼굴이곱고,심성이 지조가있었기에.삼국사기열전에 설씨처녀에대하여 따로 부가하여 기록할정도였다.유리가 죽을때 유언을 남기길 자신의 뒤를이을 왕은 자신의 아들들이 아니라,탈해에게 왕위를 잇도록 엄명하고는 죽었기에 신라의 4대왕은 석탈해가 되었다.유리와 탈해의 관계는 이처럼 서로를 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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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사진은 티스토리달력 사진공모전의 출품작입니다.사진제목은 "바위섬"입니다.바위섬~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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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관대한처벌을 받는것이 고위공직자등 정치권활동을하면서 뇌물쳐먹는 인간들에게대한 법의 처벌이아닐까 생각한다.

부패가 만연한 중국조차도,빽이나 끊이 떨어진 정치인이라서인지는 모르지만, 백성들을위한 안정책으로 고위정치인들을 공개처형하는 기사를 접할수있다.


쇼라도좋으니,우리나라도 제발 조선왕조 500년동안 쭈욱이어져,오늘날까지도 너무도 뇌물이나 부정부패에대한 처벌이 관대한 법적정의를 제대로 시행했으면 좋겠다.




일반서민은 사이다1병 훔쳤다고,실형을선고하면서 뇌물쳐받아먹고,부정부패한 정치인들은 뭔 빽이 그렇게좋길래,툭하면 집행유예로 관대한처벌을 하는지 이해할수없다.말로만 엄중이 처벌한다,엄벌하겠다 주둥아리만 놀리지말고,형량과판결로써 엄벌에 처하는 전통을 만들어줬음 좋겠다.뇌물과부정부패에 관련된 정치인이나공직자들은 평생 정치인나공직에서 활동할수없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잠시지나면 무슨로비를했는지,사면받아 정치인이나 공직으로 복귀하는 이런 작태는 없어져야한다.그러기위해서는 법의 정의가 제대로되야된다.이런 뇌물이나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정치인이나공직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더라도,그 처벌이 무겁지 않다.이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일반 살인범죄자의 피해보다 더심하고,악영향을 미친다.


정치가 3류에서 계속머무는 이유가 뇌물처먹거나 부정부패한 이런 공직자나정치인들이 너무나 쉽게 정치인나공직자로 복귀시키는 저주받은 조선왕조 500년의 부패한 정치문화가 아직까지도 남아있기때문이다.역사로부터 배워보자.


탐관오리의 대명사로 불렸던 고부군수였던 조병갑의 처벌과 복귀과정을 역사기록을 통하여 살펴보고,뇌물과부정부패한 정치인이 얼마나 쉽게 다시 공직자로 복귀해서 호의호식을하는지 아울러 썩은대가리가밑에서는 탐관오리들은 어떻게 오뚜기처럼 부활하는지도 알수있다.


1894년 고부민란일어나자 고종은 근엄한 얼굴로 정색한채 조병갑에대하여 백성들에게 보여주기위한 모습에서는 이렇게 명령한다" 이놈은 단지 국고를 횡령만한게아니라,백성들을 학대까지한 자이니,엄중히 조사하여 처벌하도록 하여라"이렇게 말해놓고는 고종은 단지 조병갑을 고금도에 유배시키는것으로 마무리해버린다.


그리고 유배한지 채 1년이되지도않는 1895년 여름에,법부에서 "조병갑을 풀어주는게 어떻겠습니까?"하고 물으니 고종은 "좋아"라고 말하며,사면해버린다.그당시 조씨집안이 정치권에 힘있는세도가였기에 여기저기 로비가 고종에게 들어갔을거니,짝짝쿵손발이 맞아 사바사바 잘했을것은 미루어짐작할수있다.


그런데 더 기가막힌것은 고부군수로있으면 백성들에게 뇌물과 부정부패를저질러,고부민란이생기게했던 어떻게보면 오늘날이아니라 그당시에도 엄청난사건이었는데,2년이 조금지난 1898년 1월2일 조선왕조실록을보면,고종이 조병갑에 공직을 부여하는 기록이나온다.기록은 짤막하다 "4품 조병갑 법무민사국장에 임명한다" 이게 뭥미?


고부민란으로 백성들이 어육이되고,전봉준또한 참수되는 큰사건이었는데,고작 2년도 안돼서,탐관오리의 대명사 조병갑은 오뚜기처럼 부활하여 정치인으로 복귀하도록 고종이 도와준다.오늘날에도 뇌물이나부정부패에 연루되었던 정치인이나공직자들이,빽이나 줄을타고,오뚜기처럼 복귀하는것들이 있다.이런것을 집행유예해버리고 사면해버리고하니,2-3년만에도 다시 얼굴을 내미는것이다.엄벌이 집행유예고 사면이냐?


어째든 다시 돌아가서 탐관오리 조병갑은 오뚜기처럼부활해서 다시 공직자로 임명된다.여기서 4품이라고 나오는걸보면,조선시대의 관리의 품계상 관찰사 종2품,목사 정3품,군수 종3품이 임명되는데,고부군수를 지냈다면 종3품이었을것인데,그래도 공직에 재임용하면서 백성들에게 눈치는보였던지 한단계 강등된 4품품계로 공직을 임명했음을 알수가있다.


탐관오리 대명사인 조병갑을 것도 정의를 심판해야할 사법부에 공직자로 등용시킨 고종의 대갈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올수있었을까? 2년새에 조병갑일가가 얼마나 로비를 잘했던지,아니면 서슬퍼렇게 "이눔은 횡령만한게아니고 백성을 학대 어쩌구하면서 했던말이" 기억이 안날정도로 치매에 걸린건지 그 대가리밑에 그놈이다.


우리가 만화영화에서보면 흔히 나오는 악인은 패하고,선인은 승리하는 해피엔딩이아니라,슬플게도 그당시 현실은 탐관오리 조병갑은 68세까지 장수하며,죽을때까지 호의호식하며 잘먹고 잘사다가 죽었다.


제발 오늘날 선진국으로 가려는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어떠한 범죄보다,유영철아니 그어떤 살인범보다 더 나쁜놈이 뇌물이나부정부패를 저지른 정치인이나공직자라는 일반공유적 가치관이 있어야하고,사법부또한 지난세월 정치인,공직자로 나라에 이바지한 공로가있어 이따구 볼따구맞을 명분을 갇다붙이고 처벌에관대할게아니라,다시는 정치인이나공직자로 부활하여 오뚜기처럼 악인이 해피엔딩하지못하도록 중한형벌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조선왕조 500년도 모자라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탐관오리들의 부활오뚜기 정치문화를 이대로 계속이어갈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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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오늘날처럼 길거리에서 몸을파는 여자들이 있었는지,창녀들에대한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명칭기록으로 남아있음을 알수있다.


일반적인 형태의 창녀는 관가의 노비로예속되어 활동하는 관기,기생,운평으로 불려던 여자들로서 조선시대의 양반문화의 기득권을 가진 관리들의 노리개감으로 합법적으로 활동했던 여성들이 있었다.

일반 백성들의 삶속에서는 이러한 여자들이아닌 나라에서 인정하지않기에 불법적인,노는여자를 뜻하는 유녀의 역할을 무당이라는 호칭을가진 사람들이 하였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여지는 신내림개념만을 가진 무당이아니라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사이에서 행하여지는 매춘,일탈행위를 기업적으로하는 포주의 개념으로 받아드려졌기에,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하는 조선시대에서는 무당은 온갖 나쁜것의 대표적상징으로 사용되어졌다.


무당은 아름다운 미모를가진 여자를 현수라고하여 데리고 다니면서 거문고를 타거나 노래를 부르게하였는데,무당의 눈치에의하여,현수와 일반백성간의 성매매가 은밀하게 이루어졌다.또한 무당은 남자무당인 박수를 데리고다니면서 일반백성들이나 양반집부녀자들과 사통하여 거래하기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자무당을 화랑이나,양중으로 불리웠는데,삼국시대의 진취적 무예기상을 화랑이라는 개념이,유교문화 시대인 조선시대에는 오히려,똑같은 화랑이라는 단어가,오늘날의 호스트바종업원정도의 개념으로 사용되어졌다.이러한 호스트바의 영업방식이 중종(1513년)시대에 전라도관찰사 권홍이 왕에게 올린 장계에서 살펴볼수있는데.그내용은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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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굿을할때 젊은남자를 여자복장을하게하고,얼굴에는 분을바르고,여자무당과함께 방안에있다가,밤이 깊어지면,틈을 엿보아,여자무당이 젊은남자와 부녀자간의 매춘를 알선하고있습니다."



여자무당은 예쁜여자인 현수도 거느리고,젊은남자인 화랑도 거느리고하면서,마음껏마시고,노는 굿판이 벌어지면 틈을보아 굿판을 벌이는 집안의 남자나 부녀자와 매춘을 알선하는 포주역할을 조선시대에하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엄격한 신분계급사회를 이상향으로한 유교문화인 입으로만 도덕,공자,맹자,열녀문,정조를 외친 조선시대조차도 일반백성을 상대로하는 무당의 매춘문제는 해결할수없었던 근본적이유는 유교적도덕을 주댕아리로만 외쳐던 기득권양반들이,관아의 노비신분으로 삼던 성노리개감인 여자들인 관기나 기생제도를 조선왕조가 패망할때까지,전혀 스스로 폐지할생각을 하지않았던 이중적도덕률을 가졌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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