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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조선에서 발생하였던 자주적 민중개혁의 원동력인 동학혁명과 자주적 정치개혁의 근본인 갑신정변을 외세와 결탁하여 국민과 백성들을 탄압하고 어육 화시켜 천세 만세 이씨왕조의 영원한 부귀영화만을 추구하였던 민비이하 고종을 비롯한 이 씨 왕족 집권세력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 근대화론을 동류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거나 보는 세력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매국노에 해당할 뿐이다. 두 가지 관점은 전혀 다른 역사적 인식을 포함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식민지 지배라는 불행한 역사를 통하여 교훈과 가치를 얻고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르치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관점이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점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정하고 근세조선의 역사를 가르치려는 것은 곡학아세하려는 학문을 가르치려는 망조의 역사학자들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두리뭉실 식민지 지배라는 명분으로 모든 관점을 서술하려는 역사 판단의식은 결국 그 당시 지배세력인 이씨왕조에 대한 면죄부를 확대하고, 식민지배의 책임을 외세에게만 돌려, 자체 지배세력의 무능과 극악함과 일신과일족의 영화와영속이 국민과 국가보다 위에 존재하려고 했던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을 봉쇄해버리고, 어떻게든 엉터리 미화나 미담을 만들어 내려는 역사적 왜곡과 관점을 만들어 내게 된다.

조선시대의 3대 암군 중에 하나인 고종과 백성을 외세를 빌려 도륙한 민비를 미화하려는 시도 등이 식민지 지배는 전체가 악이라는 관점에서 그에 관련된 왜곡 측면을 가진 것이라도 악이란 관점을 상승 승화시킬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미화. 왜곡하려는 역사적 왜곡을 자행하고 실행하게 된다.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과 책임을 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한 것을 위하여 지배세력의 악행과 실정으로 인한 백성들이 고통과 피눈물을 오로지 식민지 지배의 결과라는 식으로 포장하여 왜곡해버리는 모든 역사적 관점은 역사를 통하여 교훈을 얻는다는 역사교육의 가치를 부정하는 매국노들인 것은 틀림이 없다.

역사에 대한 진실을 가르치고, 역사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교훈을 후세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거나 매장시키려는 세력과 시도들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해야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역사적 사실과 관점에서 진실에 부합하고, 이를 통하여 백성과 국가보다는 일신과 일족의 부귀영화만을 추구하여 백성들을 도탄과 피눈물 속에 살아가도록 만든 장본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처단을 올바르게 할 수가 있다. 식민지 지배라는 명분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거나 결과를 조작하거나 역사를 왜곡하거나 그 당시 현실의 상황을 거짓으로 곡학아세하는 학문을 가르치거나 선전하려는 그 자체가 후세에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 있어 죄이다.

얼마나 역사를 웃기게 만들었으면 이 씨 왕족의 부활 어쩌구하는 짓거리에 이른 현실이란 말인가, 근세조선인 조선말기의 상황에 있어 그 어떤 사람들보다 이 씨 왕족의 처신과 행위는 매국적이었으면 영원히 매국노로 처단평가된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집권세력들이었다. 이들을 황실복원이니 어쩌구하는 자체가 먹혀든다는 게 얼마나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이들에 대한 책임과 처단을 미루거나 조작 미화시켜는 지 반성하고 되돌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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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민씨가 여흥 민씨 잖아요……. 그럼 여흥 민씨 무슨 공파에요?

 

명성황후는 본관인 여흥 지금의 경기도 여주입니다. 고종의 왕비로 살아있을적에는 황후가 아니였으며 죽은 후에 대한제국이 되면서 황후가 되었습니다.

명성이라는 시호또한 죽은 후에야 받은 것으로 살았을 때는 민비 또는 민왕후,민왕비가 맞겠습니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이고 아버지의 파가 삼방파이므로 명성황후는 아버지가 가진 파와 다를 수가 없음으로 여흥 민씨 삼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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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역사기록에서 사용되는 명칭이나 용어들을 현재에서 보았을때 기준으로 바꾸거나 변경하려는것은 무책임하며,무뇌아적인 모습이다.

선조들이 역사기록속에 기록한 명칭들은 그당시 사회상에서 어떠한 시류와관념등이 있었는지에대한 중요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이성계쿠테타로 명칭을 바꾼다든지,5.16혁명을 5.16쿠테타로 변경하다던지,국가간의 전쟁이므로 임진왜란은 임진전쟁이고,병자호란은 병자전쟁이라명칭을 바꾸는것등,아주 잘못된 역사인식이다.

일본이나 여진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때,우리나라 선조들의 생각은 대등한 국가대 국가의 전쟁이아니라,일본이나 여진은 한수아래의 집단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했으며,이러한 관점은 무장의 우두머리나 부족의 우두리가 쳐들어온것은 한수아래라는 생각을 표현했음을 유추 해볼수있다.

오늘날에와서 수백년동안 역사에 기록된 명칭을 버리고,오늘날의 기준으로 명칭을 바꾸어 표현하려는것은 역사왜곡에 해당한다.명칭이 문제되는것중에 명성황후,민비 어느것이 올바른것이냐하는 논란도 있는데,구한말 애국지사들이 남긴 역사서들에는 타의가 아닌 자의로 민비라는 명칭으로 쓰고있음을 알수가 있다.

민비라는 명칭이 명성황후보다 계급적명칭이 아래이니 무시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거나,일제의 식민사관에의한 명칭이라든가하는 엉뚱한 역사왜곡은 하지 말아야한다.민비라는 명칭은 그당시 백성들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표현한 명칭이었고,그렇기에 그러한 명칭이 역사기록속에 쓰여져 내려왔는데,갑자기 오늘날의 관점으로 민비라는 명칭은 잘못이요,명성황후라고 명칭을 바꾸자는것은 단지 명칭의 바뀌는것을 의미하는것만이 아니라,그시대의 선조들이 생각했던 관념이나 사상을 전혀 이해할필요가 없고,오늘날에 관점으로 바꿔버리자라는 자세이기에,과거에서 미래의 거울을 보자라는 역사의 교훈에도 맞지않는다.



전체적으로보면 수백년간 역사에 기록된 명칭들을 오늘날에 새롭게 해석한다고 바꿔버리자는 짓거리들은 바르지않다.우리나라의 역사기록에서 몽골과의 싸움은 전쟁이라는 개념으로,대몽항쟁, 항쟁으로 사용하고 있다.어찌보면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의 개념을 가진 선조들에게있어,전쟁이라고 표현할것은 몽골뿐이었다는 자존감의 표현일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인식에서 한민족은 다른나라에게 항상 침략만 받은 민족인것처럼 그려지는것도 올바르다고 할수없다.한민족이 살았던 영토인 만주벌판과 한반도에는 한민족만이 살았던곳이아니라,여진,거란,몽골,선비등의 다양한 종족들속에 한민족이 있었고,역사에 소국들의 기록은 많이 남아있고,수많은 소국들이 크게 고구려,백제,신라등의 한민족국가로 통합되어졌을뿐이고,그러한 결과가 도출될때까지 여진,거란,흉노,몽골,선비등의 부족들의 수많은 소국가들을 한민족이 멸망시키고,통합시켰음이 분명하다.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가만히 있었는데,저절로 한반도와 만주벌판의 패자가되어 수천년간 한민족의 영토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그만큼의 정복전쟁이 무수히 있었고,한민족은 수세적으로 침략만 받았다라는 개념으로 역사의 관점을 왜곡하는것도 옳지않다.

읍루,동예,옥저,마한,변한,진한,부여등등,광개토태왕릉비에 기록된 한민족이 다른 부족국가들을 평정한 기록만봐도 그러하며,오늘날에 그곳에있던 부족국가들이 모두사라졌다고 한민족은 침략만 받아왔다라는 개념은 몰상식하다.

한민족의 근원이되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을 만든 국가의 패자가 한민족이고,그러한 개념이 생겨날때까지 수많은 정복전쟁이 이루어져 통합되었다.역사에 기록된 명칭들은 그당시 시대적상황에서 의미를 부여하고쓰여졌기에,오늘날의 관점으로 틀렸네,맞았네하고 명칭들을 오늘날에 개념으로 바꿔버리려는 자세는 역사왜곡뿐만아니라,곡학아세하는 전형적인 모습임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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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선조이다.선조는 무능력했을뿐만아니라,국제적인 시대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못한 왕으로써,일본이 임진왜란으로 침략했을당시,명의 힘을 이용하여,국난을극복하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대주의적경향을 심화시켜,자체적인 국가적 발전기회를 소멸시켰을뿐만아니라,조선이 망조의길에있어서,그 근본적모델을,후세에남겨,조선왕조가 망하게되는 근원이되었다.

임진왜란당시,일본이 의주로 도망간 선조를 추격하여,잡지않은이유는 명의 군대와의 다툼이아니라,누르하치라고 불리는우는 여진족의 걸출한 영웅이,만주지역을 완충지대로 지배하구있었기때문이었다.

고구려시대에 한국가의 백성을 이루었던,여진족에대하여만큼은,비타협하는 사대적가치관을 강조하여 국제적인 시대상황를 꺼구로가게하는 결정적인 역할을한 매국적 왕이었다.


두번째는 인조이다.사대적인 정치의 근본인 선조와는 다르게,권력을 획득한 광해군이,여진족에대하여 대결보다는,중립적인위치로,나라의 발전을 도모하려구하였으나,선조시대에 강화된 사대적매국노정신을 이어받은 유신들에의하여,쿠데타가 발생하여,인조가 집권하게되었기에 국제적상황에서,시대상황에 맞지않는 정반대의 길을추구하여,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하였음은 물론,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자신의 첫째아들인 소현세자와 세자빈그리고 손자까지 무참히 죽이면서까지,유신들의 눈치를보며,자신의 권력기반을 유지하려고하였다.그결과 청은 중국을평정하여,중국에 청이라는 큰나라를 세웠지만,우리나라는,얻은것없이 몰매만맞고,오히려,한수아래로,가르침을 받던 여진족보단 못한 나라의 모습을만들었으며 조선이 망하는날까지,주체적의식이없는,속국이나 속방으로서,만족하여 살아가는 나약한시대상을 만들었다.


세번째는 고종과민비그리고 흥선대원군이다.정통성에있어,그권력이 미약했던 고종의 왕위계승은,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휘두룰수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으며,고종과 흥선대원군의 권력다툼에,민비가 가세하면서 결과적으로,우물안개구리식의 국가의 미래보다는 왕조의안녕과권력의 강화에만 눈똑을 드린결과,스스로 고종과민비vs흥선대원군의 권력다툼을 파생시켜 자충하여 무너져,식민시대로 들어가게하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시대를 꺼구로돌려,선조와 인조 그리고 고종과민비그리고 흥선대원군이 시대에,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을보여줬다면,우리나라의 모습은,만주를 아울러지배할수있는 기반을가졌음은 물론이고 나라를 잃어 식민지상태로가게되는, 비극적인선택을 하지않았을것이다.후세의 역사가들이,선조나 인조또는 고종.흥선대원군.민비를 높이는 어떠한시도두 옳지않으며,이들은 나라를 잘못이끌어,패망의 상태를 구걸하여,국가의 미래를 지킨것이아니라,왕조의 안위와안녕만을지킨,조선시대에 나오지말어야할,매국적지도자의 표상들이다.


조선시대의 결단의시기에,매국적행보를한 선조,인조,고종의 전철을 비판하며,나라의 위급상황하에서,국제적정세를 파악하지못하는 지도자가주는 해악이 얼마나 나라를 망조를 이끌어주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구할수가있다.선조,인조,고종의 공통점을 볼수있는데,이들왕은 나라의 운명을 주변국에 맏겨,의탁하려는 사대적정신이 너무투철하여,스스로 뭘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없구,언제나 수동적역할로,자신의안위와 권력을 유지하는데만 정신이팔린,대표적인 매국노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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