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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바위는 칼을갈아 다없애고,두만강 푸른물은 말에게 다먹이리라"는 활달한 기상을 가졌던 조선시대에 보기드문 용장으로

20대의 젊은나이임에도 이룬공적이 높아 오늘날로보면 20대에 정부부처의 장관을지낼정도로 능력과업적이 탁월했던 남이인데

왜 재평가를 받지못하고 역사속에 미스테리로 뭍혀져있을수 밖에없는지 그까닭을 생각해보게되었다.

단지 유자광의 모함에의하여 역적으로 몰려 젊은나이에 억울하게 죽었다라는 정도로는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역사속기록을 통하여 남이장군의 숨겨진 미스테리를 파헤쳐보자.1468년 5월 세조임금이 집권하던시절,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있던 남이에 관한기록에서 의외의 구절을 발견할수있는데,


남이가 세조에게 상소를 올려 말하길" 저의 처는 어머니에게 불효하고,첩들을 시기하니 이혼하게해주십시요" 세조왈"칠거지악에 해당하니,너의 생각대로 하도록하여라"하였다.이러한 기록을 담당하는 사관은 특이한 사항들에대하여는 자신의 판단을 가끔씩 적어놓기도하는데 사관이 판단하여 기록하길"남이의 어머니는 며느리와 아들이 동침하는것을 좋아하지않았는데,왜 그런지 이유를 알수가없었다"


4개월이지나 1468년 9월에 세조가죽고 그의 둘째아들인 예종이 왕위에올랐는데,한달이 채지나지않은 10월에 유자광의 밀고로 남이가 역적모의로 잡혀서 국문을 받게된다.남이의 친적들도 역적연루혐의로 심문을 받게되는데 그중에 남희라는 사람이 예종과 나눈 대화도 괴이한데 이러했다.


예종이 말하길 "너도 남이하고 역적모의를 같이했지 않느냐?" 남희가 말하길 "남이의 장인이 저에게 이야기하길 (남이는 권남의 딸을 아내로 맞았고,권남은 세조의 등극을 도운 주요공신중에 한명인데 남이와 권남의 딸사이에는 남구을금이라는 딸이있었는데,권남은 남이의 역모가 일어나기 3년전에 이미죽었다) 남이와 그 어미사이에는 천지간에 용납할수없는 죄를 저지르고있는데,그눔이 인간이냐,짐승이냐라는 소리를 들은후,그이후로 남이와 단교하여 지낸지 오래입니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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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들에서 더 이상한점은 남이의 어머니에대한 형벌이다.남이는 역적의 죄를 지었으므로 당시 법률에따라 죽는것은 이해가되지만,그당시 법률에 따라 연좌제를 행했다하더라도 역적집안의 남자들은 죽인다해도,여자들은 노비나 관비로 만드는게 당시 법률이었다.그러나 어찌되어진건지 남이의 어머니는 극형인 소달구지를 이용한 환열형에 처해진것도모자라,여자인데도 3일동안 사람들이 오고가는곳에 메달아 두었다는점이다.남이장군을 재평가하여 좋게 만들고자해도 그렇게하지못하고 미스테리속에 뭍여 남길수밖에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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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전라도이다"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보았을때 틀린생각이다.백제는 고구려의 일파이고,주활동무대는 오늘의 서울.경기지역과 그리고 충정도지역이다.

백제는 처음과 쇠퇴하여 망할때까지 단 한번도 전라도지역에 수도를 정한적이없다.서울.경기지역에있던 백제가 고구려에밀려 부여나 사비로 수도를 옮겨지만,그곳또한 충정도 지역이었다.

역사적으로보면 고구려,백제,신라 3국을 삼국시대라고 기술하는데,묘하게 사라진부분이 지금의 전라도지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역사부분이 미스테리로 남아있다는점이다.



전라도지역에 생활했던 지배자나 지역민들이 고구려,백제,신라의 협공을 받으며 점차 세력을 잃고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곳이  전라도지역이기에 전라도는 백제이다라는 개념은 잘못된 역사적시각이다.


눈여겨 봐야할지역이 영산강유역에 남겨진 대형고분들과 유적들이다.전라도지역에는 고구려,백제,신라와 다른 지배계급과지역민들의 연합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것이다.우리나라역사에서 오늘날의 신라의 지역이라고 불리는 김해,부산지역에있던 가야라는 나라의 개념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있지만,고구려,백제,신라의 협공을 받았던 전라도지역에 존재하던 나라에대한 기록은 역사속에서 미스테리하게도 모두 사라졌다.


역사적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중에 전라도지역은 백제다라고 우기는분들이 있는데,전라도지역은 백제가 아니다.백제와 관련된 국립박물관이나 유물전시관이 모두 충정도지역에 오늘날에 존재하는지 생각해본적있는가? 백제의 근간은 서울,경기,충정지역의 지역민과 지배계층이 백제라고 볼수있고 오늘날의 전라도지역에 지배계급과지역민은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협공을 받으면서,그곳에 살고 집단지배세력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차츰 백제나 신라로 강제편입되었다라고 이해하는것이 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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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부끄러운 역사일지모르지만,역사속에서 모두 지워져 미스테리로 남길게아니라,오늘날의 전라도지역에서 수백년간 존재했던 나라에대하여 엉뚱한 백제나 신라의 역사로 두리뭉실포장하려니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사기가 묘해지게되버렸다. 전라도지역은 후기에  백제에의하여 강제병합되었지,그곳이 백제의 본류가 아니다.


백제는 충청도이고 전라도지역에는 백제와는 다른 무엇인지 정의할수없는 지역민들이 살고있었다.오늘날에와서 전라도지역은 백제의역사입니다라고 생각한다면,그것만큼 무식한개념도없다.단지 삼국사기에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역사만을 다루었기에,오늘날 전라도지역에있던 지배계층이나 지역민이 이루어었던 국가는 역사의 미스테리로 사라져버린것이다.전라도지역에 존재했던 지배계층이나 사람들은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협공에의하여 분해되버렸다라는 개념이 맞는것이다.백제에게 전라도지역이 강제병합되었다라면 모르지만,전라도지역이 백제였다라는 개념은 웃기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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