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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기가

1절:민중의 붉은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2절:원쑤와의 혈전에서 붉은기를 버린놈이 누구냐
돈과 직위에 꼬임을 받은 더럽고도 비겁한 그 놈들이다.

높이 들어라 붉은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님을 위한 행진곡

 

1절: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2절:1절 반복

 

 

 


두 노래가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단어: 동지(전사), 깃발(붉은 기), 맹세(맹세),사랑.명예.이름(돈과 직위)

 

적기가와 님을 위한 행진곡의 단어에서 깃발과 동지 그리고 사랑과 명예라는 핵심 단어들을 빼버리면 노래의 의미가 전체적으로 없어져 버림을 알수가 있다.

 

적기가라는 노래가 님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나왔기에 단어의 사용과 배열등의 유사성은 적기가라는 가사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모방했을리는 없고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을 해볼수가 있다.

 

어떠한 노래의 울림에서 같은 유사한 단어가 4개이상 핵심적인 의미가 같이 사용이 되고 그러한 단어들이 노래전체의 일관된 중요단어들이라 빼버리면 전체가사의 의미를 없애버리는 구조를 가졌다면 서로간의 영향을 생각해 볼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유사성에서 적기가를 부른 사람은 처벌해야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은 국가 지정곡이 된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시대에는 " 식민지 조국에 딸로 태어나 이땅에 발붙이고 하루를 살아도 통일을 위해 이목숨 할일있다면 ~" 이러한 노래들도 민중가요로 불려졌는데 그럼 이노래도 국가 추모곡으로 허용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동지는 되고 식민지라는 단어는 안되나?

 

결론적으로 우리나라가 통일한반도가 되는 날까지는 적기가의 아류 단어들이 사용되고 그러한 뜻으로 의미가 유사한 곡들은 민간에서는 사용되게 하더라도 국가의 공식 추모 노래로 지정되게 하려는 판단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님을 위한 행진곡의 동지나 깃발, 맹세 그리고 명예등이 적기가에서 사용된 단어들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대상들에 대한 단어들이라고 해도 

 

전체적인 맥락이 적기가의 핵심단어들의 나열로 유사성을 가지며 논란이 있을수 있는 노래는 애당초 국가 추모곡으로 지정하지 않는 것이 국론을 분열시키지 않는 지혜로운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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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해는가? 너무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문득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을 바라다 보았다.구름속에서 달은 모습을 감추고,

지나가면 밝은달이 보여진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달은 하얀구름속에서는 그대로 밝은달의 모습을 보여주고,검은구름속에서만 모습이 보여지지않았다.

어쩌면 흔히 저지르는 오류중에 하나가,무언가를 정의하려는 자세인것같다.

사실은 정의할수 없음에도 기어이 정의하려는 어리석음,어떤삶이 행복한것인가에 대하여 여러가지 생각이 날것이다.


근데 인류의 역사가 이어진 지금까지 "이러한 삶이 행복이다"라고 누구에게나 알맞은 기준을 정의하여진 삶은 존재 하지않았다."하늘의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는 의미나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겠다"라는 격언들은 삶에있어 중요한 의미를 제공해주고있다.그 의미는 다름아닌 스스로의 만족으로 살아가는 삶이 행복이라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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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삶에있어 절대적인 행복기준은 없지만,절대적인 생각을 의미하는 맹세는 존재한다.사람이 맹세를 해놓고,어기는 경우는 사는것보다,차라리 죽는것이 더 행복이다.왜그러냐하면 맹세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지독한 특권이기때문이다.

맹세는 삶에있어 하지 않는것이 제일좋지만,어떠한 이유든지 맹세를했다면,그것을 흐지부지하여 아무리 오래살아 간다한들 아무런 의미가없는 삶일뿐이다.

삶이 값지고,의미가있는것은 스스로의 맹세를 지킬수있는 사람에게 존재하는것일뿐 다른 의미는 아니다.삶은 죽음의 반대말이지만 삶이라는 의미는 "생각을 지키고 지속한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기에 생각이없는 삶은 죽음보다 못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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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이 100년을 살면 행복하고,10년을 살면 불행이라는 세월의 다소로 판단하는 기준자체가 허무함이다.얼마나 오래 사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얼마나 자신의 맹세에 충실하게 살았으냐가 더 의미가 있다.이러한 말이 맹세를하는 삶이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는 뜻은 아니다.단지 맹세를 했다면,"히히낙낙하며 그까이거 어기고,대강대강살지 뭐"라고 살아가려는 삶의 자세를 가졌다면, 차라리 그냥 맹세를 지키고 짧게 사는것이 삶의 행복에 가깝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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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평왕때 백제와의 국경지역에있는 봉우리성 성주인 찬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해론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해론이 나이 7살이 되었을때,백제가 많은군사로 봉우리성을 포위하여 백여일동안 공격하였지만 성을 함락할수는 없었다.


진평왕은 악전고투하는 찬덕을 위하여 상주,하주,신주의 3개주의 군사로 봉우리성을지원하도록하였다.





3개주의 장군은 백제군사의 위세가 강함을보고,싸우는척만하고 이길수 없다고 말하며 퇴각하여 돌아가버렸다.멀리 성안에서 이모습을 지켜보던 찬덕이 하늘을 우러러 말하길"아군이 위급함을 알고도,적의 강함을 생각하여 싸워보지도 않고 가버림은  의가 아니다.의를 버리고 구차하게 살기보다,의를 위하여 죽을것이다"하고 분전하였지만,포위된지 4개월이 넘어가자 성안에 음식과 물이 다 떨어졌다.



이에 이르자 찬덕은 물대신 오줌을 받아 마시면서까지 최후의 항전을하였지만,이미 성이 함락되는것을 막을수는 없었다.최후의 순간이 온것을 안 찬덕이 남아있는 부하들에게는 항복하여 살도록 명하고,정작 자신은 항복하지않고,눈을 부릅뜬채 나무에 스스로 머리를 박아 죽었다.그후 13년이 흘러,찬덕의 아들 해론이 20살이되었을때,신라와 백제는 다시 봉우리성에서 전투를 하게되었는데,기이한 인연에 따라 종군한 장수중에 해론이있었다.



해론은 백제와의 싸움에 앞서 주위 장수들에게 말하길"나의 부친이 이곳에서 죽었다.내가 앞에 나가 싸우려는것은 의를 버리고 구차하게 사는것보다,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달픈 선친의 맹세를 느끼기에,기쁜마음으로 신라의 정신을 보여주고 오늘 죽을것이다"하고 칼을 들고 홀로 적진으로 달려가 힘이 다하는 순간까지 싸우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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