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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사진들을 찾아보다가 만주국 건국 10주년 5족여인이란 우표사진이 있었다.만주를 나타내는 5가지 종족의 여인들이 어느나라 사람들인가는

사진그림을 통해서 입고있는 의상을 통해서 파악할수가 있어보이는데,정확하게 맞는 종족인지지 모르겠고,나름대로 입고있는 옷을 통하여,만주를 구성하는 여인들이 어떤사람들이었는지 살펴볼수 있다.

맨 오른쪽부터 살펴보면,허리에 스카프로 옷을 동여매 있는것을 보면,몽골족의 여인으로 보여지고,두번째는 저고리를 입은것으로 봐서,한민족의 여인으로 보여지고,가운데는 기모노를 입는것으로 봐서 일본족이고,네번째는 원피스형태로 목오른쪽이 갈라진것을 봤을때 만주족 여인으로 보이고,마지막은 다리사이가 아주많이 찢어지는 옷을 걸치고 있는것을 봤을때 중국인 한족여인 모습임을 유추할수가 있는데,4종족 여인은 만주에 대한 역사와 관련되어도 이상할것이 없어 보이는데,기모노입은 일본족 여인은 왜 끼어들어있는지 의문이 드는데.일본여인의 종족 기원이 고구려에서 나왔나?
    
이사진은 퍼블릭 도메인 배포된 사진으로 상업적이든,비상업적이든 상관없이 누구나,이유불문하고 활용하여 사용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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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회군은 우리나라의 역사의 물줄기를 꺼꾸로 돌려버린 우리나라 반만년역사에있어 최악의 판단이었다.

위화도회군의 진행과정과 그당시 국제정세를 통하여,위화도회군은 어쩔수없는 시대적운명이었는지에 알아보고자한다.

1388년에 신흥나라였던 명은 고려령에 속했던 철령이북지역에대하여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려고하였다.

그러나 한족이 세운 명나라는 고래부터나 그당시까지도 요동지역에대하여 지배권을 행사할 아무런근거도없는 나라였고


그곳은 대대로 고구려와 한백성을 이루었던 고려와 여진족의 터전으로 지배하려고해도 지배할수가없는 형식적인 통제만이 가능한지역이었다.

원.명교체기에서 명나라는 원나라황실을 북쪽으로 내몰아냈을뿐 몽골을 완전히 제패했던것도아니었기에 고려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지가 중요한때였다.원황실이 북부초원지역으로 물러났기에,요동지역은 무주공산으로 지배국가가 없는 상태였다.

위화도회군을하여 조선을 개국하고 만주벌판에대한 고토회복이 중단되었지만,그렇다고 그이후 명나라가 만주지역에대한 지배력을 행사할수있었느냐하면 그렇지도못했다.

명나라는 허울뿐인 명목상의 지배력만을 가졌을뿐,실제적으로 만주지역에 흩어져살던 여진족,거란,몽골,조선등의 영향력아래있었다.

1392년에 조선이개국하고,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생하였는데,조선이 개국한지 200년도 안된상태에서 이미 만주지역은 명나라의 지배하에 놓인게아니라,누르하치라는 여진족의 영웅의 지배하에 놓이게된상태였다.

누르하치(1559-1626)가 요동지역을 통일하여 지배할때의 군사력은 5만정도의 군사였다.명나라는 임진왜란때문에 국력이 약화된게아니라,요동지역에는 조선개국당시부터 여진족의 여러부족이 지배하고있었고 명나라는 여진부족간의 싸움을 부추겨 간접적인 통치형태만을 행사할수있었을뿐인 허약한상태였다.

임진왜란당시에도 명나라의 원군과 누르하치의 여진족의 원군 모두가 조선을 지원해주겠다고했지만 위화도회군의 원죄로인하여 명나라에대한 소중화를 자처했던 조선의 역대왕들의 태도처럼 대갈박 빈 선조에의하여 명나라원군만을 받아드리고 고구려의 백성으로 함께 나라를 이루었던 누르하치의 원군은 믿지못하고 색안경을끼고 의심하여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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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 3월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게 통보하자,1388년 5월 고려는 역사적으로나,또한 원나라황실과고려의 관계를보더라도 원나라가 몽골초원지역으로 물러나면,권리가있다면 고려에게있는것이지,한족이 세운 명나라가 요동지역에대한 권리를 주장할  이유가없다고 생각했기에 고려의 우왕과 최영장군은 이성계로하여금 우리나라의 요동지역에대한 고토회복을 명령하였다.

본격적인 요동수복전쟁을위하여 고려는 국가의 운명을걸고 총동원령을 가동했다.고려가 동원한 군사는 5만명으로 누르하치가 요동지역의 여진을 통일하여,중원대륙을 정복할때 동원되었던 순수여진족 군사수가 5만내외였기에 고려가 명나라와의 일전을위하여 동원했던 순수 고려인으로 구성된 5만의 군사는 적다고 볼수없는 군사였고,또한 이성계에게 주어진 고려병사들은 고려에서 동원될수있는 3만필에 이르는 말을 총동원하여 만들어진 기동력이 빠른 기마병단으로 구성되었다.

칭기스칸의 몽골군대와 고려가 싸웠을때 고려의 국토를 최북단에서 최단남까지 전격적으로 몽골군대가 휘젓고다닐수있던것은 몽골의 군대가 기마병으로 구성되었기에 가능했고,또한 그러한 몽골기병들은 몇십만이아니라 기껏해야 5만내외의 몽골기병이었고,

칭기스칸의 몽골군대가 광활한 유럽과 러시아를 원정하여 정복했을때도 몽골기병의 수는 8만에 미치지못했다.또한 고구려 최전성기인 광개토태왕이 왜적에의하여 침략당한 신라를 구원하거나 기타 정복전쟁을할때 동원하여 이끌었던 최강 고구려기마군대는 5만에 미치지못했다.

이성계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 동원한 고려의 정예군으로 이루어진 고려기마 5만명은 활동력에따라 요동뿐만아니라,정신력에따라서는 중원대륙을 삼켜버릴수도있는 군사로도 모자람이없었다.이러한 고려의 운명을건 우리역사에서 광개토태왕이 이끌었던 군사와 맞멎는 가장큰 원정군을 이끌었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요동지역으로 진격한게아니라,

꺼구로 조국인 개성으로 진격해버리는순간 이들을 막을수있는 고려의 군사는없었다.고려의 염원과힘을 모아 선조들의 고토회복과 고려의 흥망성쇠가걸린 막중한 책임을 맡기고 진군하게했던 이성계의 고려기마원정군이 조국에 칼을 겨누는 상황을 맞이했을때 고려의 심정은 통탄정도가 아니라 피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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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시 요동지역에 상주해서 살았던 여진족은 한족인 명나라의 지배를 받아드릴수없었기에 고구려의 한백성이었던 고려는 망조의 길로갔지만,굴하지않고 백여년도 지나지않아 자주적정신을 바탕으로 명나라에 반기를들고 요동지역에서 명나라세력을 몰아냈을뿐만아니라,오히려 200여년채안되서 명나라자체를 패망시키고 중원대륙에 청을 건국하였다.


고구려의 백성을 이루었던 여진족이 누르하치-청태종-순치제에이른 1644년 중국정복이 완성했을시기에 시대를 꺼구로가게한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조선은 고토회복은 고사하고,돌아가는 국제정세와 전혀 딴판인 임진왜란,병자호란등 한족인 명나라만이 위대합니다라는  앵무새같은 소리만 외치다 얻어터지는 상황에 직면하게되었다.


자주적으로 동아시아지역의 패권을 이끌어갈수있는 천우신조인 상황을 피동적,수동적,사대적 역사로 나아가게한 우리나라 반만년역사에있어 가장 잘못된판단이 위화도회군이다.위화도회군같은 반역의 무리들이 기득권을 차지한순간부터,역사는 반복되어 자신과가문이 영달을위해서는 나라도팔아먹는 매국노들이 기득권층으로 남아 단죄받지않는 역사가 반복되어지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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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려,고구려를 상징하는 나라의 꽃은 흥미롭게도 나라의 흥망성쇠와 그시대의 기상을 닮았다.

먼저 조선을 상징하는
조선왕가의 꽃은 오얏꽃인 자두나무꽃이다.


5가지잎으로 둘려쌓인곳에 꽃대가 수북이 쌓여있다.자두가 상징하는것은 연약함,색기를 의미한다.


색기는 한마디로 음란함을 의미하는데 역설적으로 조선은 엄격한 유교적도덕주의를 이상향으로했지만,현실은 정반대로 그 어떤역사의 시대보다,




여성들에게 억압적이고,강압적인반면에 남성들에게있어서는 그어떤시대보다 기득권신분층이 퇴폐적이고,문란함을 나타낸 시대였다.그결과 반만년역사에있어 오로지 외세에의하여 망조가된 유일한 나라였다.
자두가 상징하는 의미와 딱어울리는 문양을 왕가의 꽃으로했다고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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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은 태조왕건이 나라를 세울때부터 불교를 나라의 근본으로한결과 연꽃무늬인 연꽃을 나라의 상징으로하였다.연꽃이 상징하는것은 인내이다.인내는 어려운조건에서도 끈질길게 극복해나가는 생명력을 말한다.고려는 세계를 제패했언 칭기스칸의 몽골을 맞아 30년을 싸우고도,왕조가 파괴되지않고 인정받은
유일무일한 나라였다.


세계를 제패했던 칭기스칸은 끝까지 항전하다 패한왕조는 풀한포기,성곽 한조각조차도 남겨놓지않음만큼 항전하는 국가에는 왕조자체를 완전히 파괴해버렸다.그러나 고려는 30년넘게 몽골에게 항전을했지만,오히려 몽골은 황족의 딸들을 고려로 시집보내어 부마국으로 대우해줄만큼 고려는 어려움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생명력이 연꽃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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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상징하는 꽃은 벚꽃이다.만주벌판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잘자라며.고구려기와들에는 벚꽃을 상징하는 문양이 많이 나타난다.벚꽃이 상징하는것은 세심과결단이다.세심은  더러운물에서도 아름다움을 나타날수 있다는것이고,이러한것은 집권층의 부패로 나라가 위급해졌을때도 백성들은 혼연일체가되어 극복하는것을 말하며,결단은 대소를 가르지않고 불의함에는 싸우는 고구려기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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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우리나라 선조들의 고토인 드넓은 만주벌판을 정벌하여 회복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오히려 4대불가론을 외치며,적에게 돌려야할 칼날을 조국에 돌렸다.


고토를 회복하기위한,절호의 기회였음에도,사대주의적 공자왈,맹자왈같은 명분론만을 내세우며,민족의 기상을 꺾어버렸다.



이러한 썩어빠진 4대불가론정신에 맞서,오늘날 대한민국의 4대가능론이 나와야할때이다.



우리나라의 반만년역사속에 묵묵히 흘러온 긍정적 기상들속에서,대한민국의 발전정신을 함양할 4가지 정신을 나름대로 추려보았다.

첫번째 대국일지라도 우리나라의 이익에 반하면 치는 결단성을 드높인다.(고구려기상).


두번째 명분론을 지양하고,실용의 외교를 추구한다(조선의 광해군).

 

세번째 나라의 위급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강화한다(신라).


네번째 나라의 최상의 모토는 개인의 자유와인권의 보호에있음을 분명히한다( 단군조선 홍익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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