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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3년 한국 전쟁 당시 포로들이 거제도포로 수용소를 탈출하려다 잡히면 어떤 형벌들을 받곤 하였는지 알고자 하는데요? 그리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규모에 대해 설명 한다면요? 전쟁 기간 동안에 이곳에 수용된 북한군 중공군의 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 주셨음 합니다.

한국전쟁당시 거제도포로수용소의 규모는 10만-20만 명 정도의 전쟁포로들을 가둬둘수있는 300만평정도 되는 시설이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17만 명의 전쟁포로가 수용되어 있었다고합니다.

거제도에 수용된 전쟁포로중에서는, 남쪽에서 살게다는 포로와 북쪽으로 가겠다는 포로가 수용소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였습니다.

남쪽에서 살게다고한 포로들을 반공포로라고하였는데, 한국전쟁의 종전협상을 선결조건으로 포로교환이라는 문제가 발생하였고, 포로들의 의지에 따라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주려고했었습니다.

반공포로들이라고 할지라도, 북으로 끌려갈 상황에 이르자, 거제도에 수용되어있던 포로들이 포로수용소를 뛰쳐 도망가는 것을 처벌한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국가적으로 이들을 도망가라고 하고, 비밀리에 풀어 주었습니다.

기록상으로 북한군포로 15만명, 중국군 2만명, 여자포로 3천명정도 있었다고합니다.나라에서 비밀리에 도망가라고 도와준 반공포로가 아닌 경우는 평상시 수용소를 도망치려고 하다가 잡히면,6.25전쟁 상황에서는 총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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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 이세민의 눈을 파서 눈물을 머금게했던 고구려의 유명한 안시성전투에서의 장군의 이름은 역사기록속에서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않다.

안시성전투는 실제했으나,양만춘은 실제하지않는 가공의 인물이라는것이다.

양만춘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살펴보면,설혹 이것이 의미가있다고 조금이라도 가정해보더라도 이것은 이름이아니라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투가 벌어졌던 계절을 의미할뿐,장군의 이름은 아니다.


안시성싸움이 벌어진 고당전쟁의 계절은 이른봄부터 초가을까지인데,양만춘을 문자그대로 풀이하면 "버드나무가 만발한 계절인 봄"이라는 의미일뿐이다.고구려시대에대한 정확한 기록들은 고려시대에 작성된 역사서들이 그나마 사실적이고,조선시대에 기록되어지는 고구려역사들에대한 기록은 거이가 창작이거나 사실과 동떨어진 경우가많고,그 일례가 양만춘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야사에다가 기록했다는것이다.

안시성 성주와 연개소문은 동시대 사람이기에 안시성 성주가 누구였느냐를 이해하려면 먼저 연개소문의 생몰년을 살펴봐야한다.연개소문이 죽을때 나이가 백전노장의 흰수염을 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려진 전투도가 보이긴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고 연개소문은 광개토태왕처럼 이른 나이에 죽었는데,

생몰년은 616-665년이 역사적 기록과 부합하고,오늘날의 나이로보면 49세정도에 죽었기에 그당시 사회상에서는 노인이라고 주장할지모르지만 오늘날의 나이로는 이른나이에 죽었음을 알수가 있다.안시성 성주가 누구냐를 유추해보기 위해서는 안시성성주와 연개소문은 서로 상명하복의 관계가 아니였음에 주목해야한다.

이러한 의미는 안시성 성주나 연개소문은 독자적인 세력과부족을 가지는 지위에있는 우두머리였음을 알수
가있고,연개소문은 기록에보아도 서부대인의 부족장의 위치에 있음을 알수있고,영류왕을 단칼에 내리칠때에 동원된 부하들은 서부에 소속된 부족군 집단이었기에 왕의 말보다,직속 우두머리의 말에 더 충성했음을 알수가 있다.

안시성 성주가 연개소문에 맞서 자신의 지위를 주장하고 맞설수 있었던것도 자신또한 하나의 부족의 우두머리였기에 가능했고,그에따른 부족민들의 절대적 신임이있었기에 가능했다.연개소문과 안시성성주의 관계를 알아봤다면,역사에 기록되어지지않은 안시성 성주의 부족은 무엇이냐라는 의문이 들어야 정상일것이다.



이사람의 부족을 알려면 현재 중국에 속해있는 동북삼성의 위치에 어떠한 부족들이 강했는지 살펴보면 알수가있는데,러시아쪽 국경으로는 흑수말갈,요동과요서를 구분하는 중국과 맞따은 쪽은 속말말갈,그리고 두만강이나 백두산쪽으로 위치한 말갈이 존재했는데,안시성이 위치했던곳에는 속말말갈부족이 강했던곳이다.

오늘날에 와서야 말갈은 다른나라로 민족으로 구분되어졌지,고구려라는 나라에서는 여러부족들속에 하나로 뭉쳐진 통합 고구려의 나라였기에,중원에서 보기에는 말갈부족은 고구려의 별종이라고 기록하여도 이상할게 전혀없다.

말갈은 우리나라역사속에서는 물길,여진,만주족등의 여러이름으로 불려졌는데 공통적으로 강이나 물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는 부족이름을 가지고있다는것이다.물길이나 말갈의 의미는 호수나 강물과 관련되어 불려진다는것이다.안시성 성주는 정체는 어느정도 파악이되었다.



연개소문처럼 하나의 부족의 우두머리라는 것인데,그휘하에 속한 안시성의 부족민이 기록상 10만명 정도되었음을 알수가있는데 이정도의 일가를 이루는 부족은 안시성근처에서는 속말말갈뿐이었다.오늘날에 중국의
동북삼성은 러시아쪽에있는곳은 흑룡강성,중원쪽 경계에있는곳은 요녕성,중앙인 조선족이 살고있는 연변이있는 길림성으로 구분되어지는데,

여기서 흑룡강성은 흑수말갈지역이니 검은 흑이 붙어있고,중간에 위치한 길림성은 조선족의 자치구이니 의미를 알수가있는데 요녕성쪽에 존재했던 속말말갈의 존재는 지리명으로는 알수가 없다.속요녕성 이랬으면 쉽게 알수도있었겠는데,그러지않은 이유는 더 큰 위대한 나라가 그곳을 기반으로 세워졌기때문이다.

고구려의 장수이면서 역사기록속에 연개소문과 동시대에 살았고,안시성을 근거지로했고,망한 고구려를 대신하여,끝까지 저항하고 결국에는 고구려의 후예라고 선언한 나라의 아버지였던 대걸중상이라는 사람을 역사속에서는 기록하고있다.

대걸중상은 연개소문보다 8년이 늦게 태어난 생몰년이 622-698 이다.대걸중상은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아버지이고 대조영은 중국사서에" 고구려의 별종"으로 기록되어져있는데 별종이라는 의미는 고구려의 사람이나 부족이 다르다는 의미로 받아드려도 이상할것이 없다.

안시성은 고구려가 망한후에도 끝까지 저항한 성에 속하는데 이러한 저항정신의 밑바탕은 자신들의 부족이 속한 토착 지역이었기에 안시성이 함락되는 670년대까지 항전했다고 볼수있고 성이 함락되면서 당나라에 끌려가지만,결국은 당군을 격파하고 고구려가 망한지 30년도 넘지않아서 발해라는 고구려의 계승국이 탄생한것이다.

대걸중상은 그의 아들 대조영이 발해를 세우기이전부터 이미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왕이라는 칭호를 내려줬어도,그런칭호 필요없다라고 할만큼 독자적 군사력과 세력을 갖추고 이끌수있는 힘을 가진 장군이었음을 알수가있고,대조영의 아버지 대걸중상이 안시성 성주였다라는 것은 역사에 기록을 살펴보면 양만춘이라는 허울데기 거짓말 가공의 인물보다는 더 사실적인 역사에 부합될수 있음을 알수가있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의 장군은 애시당초 고구려에는 존재하지않았다.대걸중상은 역사속에 확실하게 기록되어진 안시성의 위치했던 지역의 이름난 장군이었고,연개소문도 힘으로 해서 국력을 낭비할만큼의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안시성성주와 싸울필요가 없다고 느겼을 만큼 당대의 영웅이었고,당태종을 격파할정도의 담력과 베짱이 있었기에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하여 발해를 세울 수있었던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발해를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지 않는다면 안시성전투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라는 부정이 되어버리기에,고구려역사왜곡만 관심을 가지고 발해를 내버려두는것은 황당한 논리이고,양만춘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낸 조선후기 인물이 적은 다른내용을 보면,광개토태왕비를 아예 말갈황제인 금나라의 왕의 비석이라고 전한다고 기록할만큼 역사인식이 미천했던 사람이 안시성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전한다고 적었놨다고 맞는 이름이라고 한다면 지나가던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

역사기록에서 유명한 사람은 후손들이 중시조이든 어떤형식이든지 자신의 성씨의 시조로 숭상하는것이 우리나라의 풍습이었는데 양만춘은 누구의 시조라는 말을 들은적이 전혀없다.애초부터 가공의 양씨 성을 가진 만춘을 날조했기 때문이다.엉터리 야사의 인물을 사실인냥 이름을 전하는것 또한 역사왜곡이며,연개소문과 맞짱을 뜨고,당태종 이세민을 격파할정도의 담력을 가진 동시대의 인물은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아버지 대걸중상인 고구려의 대중상 장군뿐이다.

안시성 성주는 대걸중상인데 왜 역사에 기록되어져있지 않았는가 하는것은,역사의 기록이 되어있지 않은게아니라 역사기록의 행간에 의문을 갖지 않기때문이다.고구려를 망하게한 측천무후가 왜 별볼일없던 아무 전공이 기록되어지지않은 대걸중상에게 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겠다고 애걸했는지,그만한 무력과 전공을 고구려 장군이었을때부터 보여줬기에 인정받은것이고,고구려가 망하자 그러한 칭호를 주려고했다는 것이다.역사교과서에 안시성전투의 장군은 양만춘이라고 기록하는것은 광개토대왕이 말갈황제라고 전한다고 기록한것을 믿는것과 다르지않을 정도로 코메디임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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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화가분이 지나가는 말로 "손톱으로 작품"을 만들어보면 좋을거 같다라는 글을 적었는데,그 화가에게 3년이 지난 어느날 택배가 도착했는데,

열어보니 보내준 사람의 가족들이 손톱을 깍을때마다 3년간 모아둔것인데 "3년전에 하신 말씀 잊지 않으셨죠? 좋은작품을 만드세요"라는 편지와함께 손톱이 가득들어 있었다고 한다.

글을 쓴분은 즉흥적으로 생각나는대로 적어논 말이라도,대부분이 사람들이 그런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분들에게는 사소한 것일 지언정 마음에 담아 3년간의 시간을 들이는 사람도 있음을 알수있다.


말이든 글이든 한번 나온것은,사람의 기억속에 남아있든,글의기록으로 남아있든 사라지지 않는다.블로그에서 포스팅하여 발행된 글은 스스로 블로그에서 삭제하거나 블로그를 닫아 버린다고해도 웹상에서 발행된 포스팅은 인터넷환경이 없어지지 않는한 발행된 글은 남아 있게된다.

옛날에는 역사는 종이위에 기록된 책의 기록들을 통하여 수백,수천년전의 일을 참조하여 역사서가 만들어졌다면,웹이라는 환경이 탄생된이후 역사의 개념은 달라졌다.100년,아니 200년이 지난후 오늘날의 역사를 살펴볼때 정사로써 승자의 기록인 삼국사기나,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등과 같은 특정되어진 책만을 통하여 그시대상을 살펴보거나,신뢰하지 않을것이라는 점이다.

웹이라는 환경속에는 자연스럽게 사회,문화등 모든분야가 총망라되어 기록되어지기에,천년이 지난다해도,서기 2009년 한국의 시대상은 어떠했는가?는 특정 역사서가 아니라 후손들은 웹상을 찾아보게 될것이고 역사시대마다 특정되어진 책만으로,인물이든,문화든 시대상을 평가하지 않게 될것이다.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웹상에서는 수천년이 지난후 특정국가가 2009년의 일을 왜곡하여 역사서를 만들어낸다고해도,동시대의 사회.문화자료들이 실시간 전세계가 공유되어진 웹상에서는 다 뽀록이 날수밖에 없다.

역사이야기를 적으려고했던게 아닌데,둘리같은 kungmi 여기까지 글을쓰다가 내가 왜 갑자기 이런글을 적게되었지? 댓글이야기를 하려다가 이런글을 적게된거같은데,^^;; 글을 쓰다가 삼천포로 가는경우가 많기에,이 글을 적게된 계기가 된 이야기로 들어가서,그러니까 댓글에 2007년에 내가 포스팅했던 글이 있었는데 만이 아니라 2009년 햇수로 3년만에 글에대한 피드백이 달렸는데,

그때 티스토리 블로그의 초보로서,웹상에서 블로그 운영에 모델이 될만한 블로거 분 들의 블로그을 찾아다니며 글을 읽으면서 나도 저분들처럼 개성있는 블로그를 운영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내가 모델로 삼으려고했던 블로그의 주인들과는 일면식도없고 전혀 모르는 분들이지만,틈틈히 방문하여 눈팅하며 몰래보던 블로그들중 글속에서 푸른바다의 맑은 바다 물빛같은 느낌을 받는 블로그가 있어서,내가 생각하는대로 그 블로그에대한 느낌을 포스팅한적이 있었다.

그 분의 블로그가 이과수폭포수라면,나의 블로그는 간혹가다 가뭄에 콩나듯이 좋은글을 쓸까 말까하는 한두 방울 떨어지는 옹달샘같은 격차를 가진 블로그라서 내가 뭘 주절이든 알턱이 있겠나 싶었고 실제도 그러하다.어찌되었든 내가 블로그운영의 모델로 삼고자했던 블로그의 주인이 무려,무려,햇수로 3년만에 나의 블로그에 댓글을 남겨주셨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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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http://blog.naver.com/africaart_ko

그분의 글을 읽기는하지만 댓글을 남긴적도,블로그주소를 남긴적도 없는데,어떻게 찾아오셨을까,그것은 바로 웹이라는 환경속에 몇년이 흘렀어도 검색창에 나의 포스팅이 시간이 흐름과 상관없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댓글 하나에 댓글어천가를 부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닮고싶은 블로그주인이 댓글을 남겨준것이 기쁜일이 아니라면,세상에 뭔 기쁜것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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