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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서 칭기스칸과 연개소문를 비교해보았다.단재 신채호선생이 우리나라의 오천년역사의 제일의 인물이라고했던 연개소문,뭔가 두 영웅에는 닮은꼴과 차이점이있을것이다.

역사에서 왜 칭기스칸은 위대한 인물로 전해내려오고,연개소문이 그렇지못했는지 무엇이 닮았고,무엇이 달라는지,만약 두사람이 세계의 판도를 놓고 일전을 벌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칭기스칸과 연개소문의 공통점 1.두 영웅의 아버지는 신분자체가 높은지위를 가지고있었으나,그 신분를 대를 이어 얻는과정이 순탄치 못했고,스스로의 힘과능력으로 쟁취하였다.


2.칭기스칸과 연개소문은 어릴적부터 활과 칼에 뛰어난능력을 가지고있었다.3,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있어 존재자체가 카리스마였다.4.결단성에있어서 상식을 뛰어넘었다.5.종교자체에 관대했으며 특정종교가아닌 일종의 샤머니즘같은 자신만의 종교를 믿었다.6.외적과 싸울때는 저항했던 적은 하나도 남기지않고 죽였다.7.전장에서 싸우다 말위에서 죽는것을 신념으로 삼았다.


연개소문이 칭기스칸처럼 위대한 인물로 전해지지않는것은 첫째가 스스로가 황제가 되려고하지않았고,둘째가 자식간의 우애를 만들어 내지못했기때문이다.연개소문이 스스로 고구려의 지존으로 나아갔다면,자식들이 불화도 생기지 않았을것이다.칭기스칸의 아들들또한 권력에있어 화합하지 못했다.그러나 아들대에서 나라가 더욱번창한것은,각자가 다스릴나라를 생전에 정해줬기때문이다.하지만 연개소문은 말로는 자식간의 우애를 강조했으나,스스로가 황제가 아니었기에,각 아들들에게 물려줄 나라가 없었다.


칭기스칸이 가장혐오했던 인간상은 자신의 주인을 배신하는 인간이었으며,아무리 자신에게 이득되는 배신을 한사람일지라도,자신이 모시던 주인을 배신한 부하는 상을주는게아니라 모조리 죽였다.그러나 반대로 적이라고할지라도 자신의 주인을 위하여 끝까지 저항했던 사람은 후하게대하고,신하로 삼았다.


만약에 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이 있은후 500년지난후 생겨난 칭기스칸의 몽골기병과 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이 세계의 판도를 놓고 싸우게되었다면,전력상으로 몽골기병은 최대 20만이 넘지않았고,연개소문의 사수대첩에서 당나라 30만군대를 전멸시켰을때 고구려의 기병은 20만명정도로 볼수가있다.


연개소문의 군사력은 국력이나 기병수에있어서 칭기스칸의 몽골기병보다 못하지않았다.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지휘하던 고구려기병은 당시 중원을 통일하여 적수가없었던 당나라의 기보병을 맞아 이긴것이고,칭기스칸의 몽골기병또한 자신보다 훨씬 전력상으로 많은군사를 가진 당시 최대의 세력을 이루었던 금나라의 40만대군을 전멸시킨것을 보았을때 연개소문과 칭기스칸은 지휘력에있어 탁월했음을 알수있지만,중원통일제국을 상대하여 이겼던 연개소문이,고려,송나라,금나라의 삼국균형을 유지한 판도에서 하나씩 상대했던 칭기스칸보다는 좀 더강한 지휘력을 가졌다는 생각이든다.


만약에 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과 칭기스칸의 몽골기병이 금나라와 몽골의 결전의 분기점이되었던 야호령전투와같은 상황으로 일대결전을 벌인다고 가정한다면,승패는 칭기스칸의 몽골기병이 전멸이었을것이다.연개소문은 우리나라 역사상  군사를 지휘하는 전술,전략에있어 신적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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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제국 당나라는 연개소문이라는 존재가 살아있는 그자체에도 상당한 공포를 느꼈음을 역사기록들은 말해주고있다.연개소문이나 칭기스칸은 일반 황제나 왕처럼 싸우는 군사들의 뒤에서 양산을쓰고 말로만 지켜보는 그런 스타일을 가진사람들이 아니라,직접 선두에서 군사들과함께 적과싸우는 스타일이었다.


전투지휘 스타일로봤을때 연개소문과칭기스칸이 전장에서 만났다면,선두에서 서로 맞짱을 떳을것이고,그 주위를 호위하며 주군을 보호하려는 군사의 사기가 승패를 결정지었을것인데,연개소문은 왕조차도 직접 단칼에 두동강내버릴정도로 과감한 기를 가지고있었고,전장에서는 항상 병사들이 자는것과 먹는음식을 똑같이하여 한몸을 이루어지냈기에,연개소문이 나아가서 싸운싸움은 생애에있어 단한번도 패한기록이없는  불패의신화를 가졌다.


그에반해 칭기스칸을 따르는 몽골기병은 패한적없는 기병같지만,칭기스칸의 생애있어 패하여 도망다니는일도 많았다.고구려 불패신화를 이끌었던 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 20만,그리고 세계를 제패했던 칭기스칸의 몽골기병 20만이 결전하게된다면,선방은 연개소문이 "나를 따르라"하고 치고 나갔을것이고,마찬가지로 칭기스칸또한 선두에서서 돌격하였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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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의 몽골기병의 주특기는 직접 적의 기병이나보병과 일대일로 싸우는게아니라 말위에서 적을 옆면이나 사면을 회전하며 적이 나아가는 속도에 맞춰서 화살를 쏘며 빠지는 전술이었기에,뭉쳐서 일대일로 육탄전으로 싸우는 전술과전략을 가진 중원이나 유럽의군대들은 적과 싸워보기도전에 토끼몰이처럼 희생만당하다 전멸하게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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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에게있어 고구려벽화고분에서도 볼수있듯이 달리는 말위에서 뒤를 돌아보며 화살을 쏘는 모습이 낮설거나,신기한것이 아니었다.중원이나 유럽에서나 통할 그러한 칭기스칸의 전술과전략은 고구려기병들에게는 통하지않는다.몽골기병이 가졌던 장점은 고구려기병또한 다 가지고있는것이고,승부의 분기점은 군사를 지휘하는 전술과전략이었을것인데,이점에있어서 연개소문의 능력은 중원통일제국 당나라도 전패를하고 돌아갈만큼 뛰어났다는점이다.


아무리 몽골초원을 통일한 칭기스칸이라고해도,연개소문에게는 패했을것이다.역사에서 가정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칭기스칸의 몽골기병vs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의 승패를 걸라고한다면,나는 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에 걸겠다.그만큼 연개소문의 전술과전략은 신묘그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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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기병이 패전한 상대방에게 냉혹하게했다고하지만,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관용을 주는 기병은아니었다.우리나라 역사기록에서 외국의 침략군에대한 대승의 기록을 남기게했던,수나라와 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도 전멸은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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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성격과기록을 보았을때 사수대첩에서 당나라의 30만명의 병사중에 단1명도 살려보내주지않았고,외국사료나 우리나라사료 모두에 전멸이라고 기록되어진 대첩은 연개소문의 사수대첩이 유일하다.그만큼 극강했던 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은 12세기 다른나라들이  칭기스칸의 몽골기병이 온다는 공포보다,


통일제국 당나라를 더 무서움에 떨게했던 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은,전술과전략,용맹성,기마능력에서 칭기스칸의 몽골기병보다 한수위에 군사집단이었다고 생각한다.결과적으로 칭기스칸의 몽골기병vs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이 맞짱을 떴다면,몽골기병이 전멸했을것이고.연개소문의 고구려기병이 12c에 존재했다면,고려와 강화하는정도가아니라,칭기스칸의 몽골제국자체가 탄생하지 못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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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칭기스칸이 몽골을 통일하여 칸이된지 6년이지난 1211년에 이르러 칭기스칸은 금나라를 이기지못하고는 몽골의 나라를 건설할수없음을알고,금나라와의 사생결단의 전쟁을하기로 결심하여,금나라 원정을 떠나게된다.


이때 몽골의 병력은 3군으로 나눠,우익군 4만명은 자신의 장남인 주치가 이끌도록하고,좌익군은 3만명을 제베가 이끌도록하고,중군 5만은 칭기스칸이 직접친정하여 총 12만명의 몽골기병군단을 구성하였다.

몽골에게 12만명의 군사는 몽골이라는 나라가 모을수있는 최대치의 군사였기에,



만약에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진다면,몽골자체가 패망해버리는 몽골의 모든 국운을 걸고 벌이는 일전이었다.몽골12만의 기병이 금나라로 침공한다는 소식을들은 금나라 7대 황제인 위소는 여진의 최고의 명장 완안승유를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여 40만의 최정예 기,보병군대로 몽골의 칭기스칸군대에 맞서도록하였다.


칭기스칸과 완안승유의 결전이 야호령지역에서 이루어졌다.야호령에서 이루어졌던 몽골과 금나라의 전투의 승패는,몽골인들에게 있어서는몽골인들도 할수있다라라는 자신감과 몽골족이 단합하는 자부심의 바탕으로,대제국 몽골을 건설할수있는 토대가 되었지만,금나라에게있어서는 야호령의 전투에서 패배로,100여년가까이 중원을 제패했던 여진족의 쇠망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야호령에서의 전투의 발단은 오사보지역에서 처음이루어졌는데 제베가 이끄는 좌익군이 오사보에 주둔하던 금나라군 우회하여 뒤를 돌아쳐서 무너뜨리자,금나라군은 퇴각하여 야호령에 진지를 마련하였고,이들을 지원하는 금나라 장군 완안승유의 40만군대가 야호령에서 이르자,몽골군또한 야호령에 도착하여 각자의 나라의 운명을건 일전을 벌이게되었다.


칭기스칸은 일전에 앞서 다음과같이 말하였다."몽골의 흥망이 이 일전에 달려있다."말하고는 휘하의 군사중에 몽골을 위하여 몽골군사의 혼을 보여줄 선발대 3,000명을 뽑았다.이들 선발대의 임무는 숫적으로 4배이상의 우위를보이는 금나라군사와의 일전에앞서 40만의 적군속으로 돌격하여 적의 사기를 꺽으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선발대는 살기위한 돌격을 하는것이아니라,죽는것을 영광으로 삼는목표를 가진 몽골군사들이었다.선발대가 금나라 대군의 진중으로 돌결하여 오자,금나라군대는 숫적우위를 이용하여,이들을 전멸시킨다.그러나 전멸당하면서 보여준 몽골군사의 모습이 금나라군사의 사기를 꺽어버리게 된다.


금나라 군사의 화살을 한쪽눈에 맞은 몽골기병은,비명을 지르며 아픈척 하는게아니라 아니라 오히려 화살에 박힌 눈알을 뽑아서 싸웠고 오른쪽손이 잘려나가면,왼손으로 칼을 잡고싸웠으며,머리를 도끼로 맞았서도,숨이 붙어있는 마지막힘이 남아있는순간까지 칼을 휘둘다 죽었다.


금나라가 군사들이 기름을 부어,몽골군사의 말과몸에 불을 지르더라도,말과함께 뼈와살이 다 타들어가는 순간까지,싸우면서 악귀처럼 웃으며 죽어가는 선발대 몽골군사들을보니,금나라군사들은 이들을 제압하고는 있었지만,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뒤로 도망가려고하였다.이때 몽골기병본대가 돌진하자,사기가 떨어진 금나라군대의 진중에는 도망가려는 군사들로인하여 우왕좌왕하다가 금나라는 대부분의 군사를 잃고 후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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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령에서 패전한 완안승유는 군사를 후퇴.재정비하여 회화보에 집결시킨후 마지막남은 자신의 군사에게 말한다." 고향으로 가고싶은자 돌아가도좋다.이미 이길수없음을 안다.그러나 나는 여기서 최후까지 몽골군과 싸우다 죽어 금나라장수의 혼을 보여주고싶다."이에 야인의 본성을 가졌던 여진족군사들이 사기가 깨어났지만,이미 한발늦은 결과였고 금나라군사는 최후의 1인까지,몽골군과 맞서싸워 전원이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러한 금나라군사들의 마지막 자세는,칭기스칸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가볍게 볼수없는 정신을가진 군사들이라는 생각이 들게하였으며,칭기스칸 자신의 생전에는 금나라의 패망을 볼수없었다.어찌되었든 금나라의 명장과 칭기스칸의 야호령의 결전은,몽골족에게는 자신들도 할수있다는 자신감을,패배한 완안승유와금나라군사의 마지막 정신과자세는,비록 몽골군에게 패했지만 훗날 청이라는 제국을 세워 중원을 지배할수있는 부활의 혼을 여진족에게 남겨주었다.


역사속에서도 보듯이,승자와패자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승패를 받아드리는  마지막자세가  어떻했는지도 중요하다는것이다.사회분야를보더라도,경쟁하다가 진사람은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승자를 축하해주는 모습보다는,뒷다리걸기,뒤다마까기등,자신의 부족했던것을 뒤돌아보기보다는 패배를 인정하지않는것이,자신을 더 돋보위게하는양,이런 비겁한 모습을하는 사람이나 부류들이 있다.


사람의 일에있어 승패는 이길수도 질수도있다.모든것을 다 이기는 사람도없고,영원히 승리만하는 삶도없다.중요한것은 승패가 결정되었을때 보여주는 마지막모습에따라,훗날 패자가 승자가될수있고,승자도 패자가 될수있는 요인을 가지고있다고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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