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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선조이다.선조는 무능력했을뿐만아니라,국제적인 시대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못한 왕으로써,일본이 임진왜란으로 침략했을당시,명의 힘을 이용하여,국난을극복하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사대주의적경향을 심화시켜,자체적인 국가적 발전기회를 소멸시켰을뿐만아니라,조선이 망조의길에있어서,그 근본적모델을,후세에남겨,조선왕조가 망하게되는 근원이되었다.

임진왜란당시,일본이 의주로 도망간 선조를 추격하여,잡지않은이유는 명의 군대와의 다툼이아니라,누르하치라고 불리는우는 여진족의 걸출한 영웅이,만주지역을 완충지대로 지배하구있었기때문이었다.

고구려시대에 한국가의 백성을 이루었던,여진족에대하여만큼은,비타협하는 사대적가치관을 강조하여 국제적인 시대상황를 꺼구로가게하는 결정적인 역할을한 매국적 왕이었다.


두번째는 인조이다.사대적인 정치의 근본인 선조와는 다르게,권력을 획득한 광해군이,여진족에대하여 대결보다는,중립적인위치로,나라의 발전을 도모하려구하였으나,선조시대에 강화된 사대적매국노정신을 이어받은 유신들에의하여,쿠데타가 발생하여,인조가 집권하게되었기에 국제적상황에서,시대상황에 맞지않는 정반대의 길을추구하여,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하였음은 물론,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자신의 첫째아들인 소현세자와 세자빈그리고 손자까지 무참히 죽이면서까지,유신들의 눈치를보며,자신의 권력기반을 유지하려고하였다.그결과 청은 중국을평정하여,중국에 청이라는 큰나라를 세웠지만,우리나라는,얻은것없이 몰매만맞고,오히려,한수아래로,가르침을 받던 여진족보단 못한 나라의 모습을만들었으며 조선이 망하는날까지,주체적의식이없는,속국이나 속방으로서,만족하여 살아가는 나약한시대상을 만들었다.


세번째는 고종과민비그리고 흥선대원군이다.정통성에있어,그권력이 미약했던 고종의 왕위계승은,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휘두룰수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으며,고종과 흥선대원군의 권력다툼에,민비가 가세하면서 결과적으로,우물안개구리식의 국가의 미래보다는 왕조의안녕과권력의 강화에만 눈똑을 드린결과,스스로 고종과민비vs흥선대원군의 권력다툼을 파생시켜 자충하여 무너져,식민시대로 들어가게하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시대를 꺼구로돌려,선조와 인조 그리고 고종과민비그리고 흥선대원군이 시대에,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을보여줬다면,우리나라의 모습은,만주를 아울러지배할수있는 기반을가졌음은 물론이고 나라를 잃어 식민지상태로가게되는, 비극적인선택을 하지않았을것이다.후세의 역사가들이,선조나 인조또는 고종.흥선대원군.민비를 높이는 어떠한시도두 옳지않으며,이들은 나라를 잘못이끌어,패망의 상태를 구걸하여,국가의 미래를 지킨것이아니라,왕조의 안위와안녕만을지킨,조선시대에 나오지말어야할,매국적지도자의 표상들이다.


조선시대의 결단의시기에,매국적행보를한 선조,인조,고종의 전철을 비판하며,나라의 위급상황하에서,국제적정세를 파악하지못하는 지도자가주는 해악이 얼마나 나라를 망조를 이끌어주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구할수가있다.선조,인조,고종의 공통점을 볼수있는데,이들왕은 나라의 운명을 주변국에 맏겨,의탁하려는 사대적정신이 너무투철하여,스스로 뭘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없구,언제나 수동적역할로,자신의안위와 권력을 유지하는데만 정신이팔린,대표적인 매국노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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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대비는 선조의 정비인데,광해군과는 악연을가진 여인이었다.자신의 아들뿐만아니라,부모형제,일가
친척모두를 광해군에게 죽임을당하구,대비의 명칭마저 폐위되어 10년동안을 골방에 갇혀지냈기에
광해군에대한 원한은 짐작하구두 남는다.

인조반정이 성공하구난후,인목대비의 글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있는데,
“ 부모의 원수는 한 하늘 밑에 같이 살 수 없고 형제의 원수는 한 나라에 같이 살수 없다. 역괴가 스스로 모자의 도리를 끊었으니 나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갚아야 할 원한이 있고 용서해야 할 도리는 없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두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에 딱어울리는 구절이 아닐수없다.

이런구절때문에 인목대비를 주목한게아니라,한글과 관련된 선구자적인 여인이라는 측면에서 인목대비를
살펴보고자하는것이다. 인목대비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선구자적인 획기적일을 했는데,교서를 한글로
내린 전후후무한 여인이라는것이다
.

세종대왕시대에 한글이 만들어졌지만,조선시대내내 한글은 왕가의 교서로 사용된적이 없었다.
그런데,쇼킹하게두,인목대비는 당당하게 한글로 교서를 내린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있다.

실제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을지는몰라두,한글사랑을 실생활에서 사용하여 사랑한 임금이라구는
전혀볼수가 없다.역대 조선시대의 문무관리나 왕들은 한글을 천시했으며,신분이 낮은 일반백성들이나 ,
여인들이 실질적인 한글사랑을 실천했던 대상들이었다는 점이다.

인목대비의 선구자적 한글사랑이 얼마나 조선시대의 관료들에게는 쇼킹그자체였으면, 사간원에서
상소올리게 된것인지 조선왕조실록의 구절을 살펴보자

1623년 인조1년  12월7일
"지금 공주를 시집보내는 예(禮)를 보건대 의복과 기물의 사치가 보통 때보다 배나 되고 있으니, 이미 조종조에서 절약하고 검소하였던 도리가 아닙니다. 더구나 언서(諺書)로 하교하신 사실을 보고 듣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옛날 성인이 훈계하신 뜻과 뭇 신하들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써 조용히 아뢰어, 이미 내리신 명을 도로 거두고 언서로 하교하는 일이 앞으로 없도록 하심으로써 조종조의 가법(家法)을 밝혀 후손에게 남겨주는 법으로 삼으소서.”

조선시대의 관리들은,한글을 무시하는것은 당연하구,오히려 한문을 안쓰구,한글을 쓴건 불법한짓을 했다는 투로말하구있음을 알수가있다.

오늘날같으면,대갈박깨지는건 둘째치구,사회에서 매장될인간들이 조선시대 신하라는것들의 가치관이었음
을알수가있다.이런 덜떨어진 신하들에게,통쾌한 일격을 가한 선구자적 여인이 인목대비였다는것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구,반정에 성공한 집권초기인 인조로서는,인목대비라는 백그라운드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기에,인목대비의 교서에대하여 문제삼지말라구 신하들에게 명령한다.

만약에,인목대비라는 대담무쌍한 여인이아니구, 일반 선비나,신하가 한글로 상소를 올리던지,
공문서를 올렸다면,한글을 썼다는 그이유하나로 접수불가는 물론이구,임금을 모독했다구 죽임을
당할수도있는 일이었다
.오늘날의 현실로는 이해할수없는 그러한일들이 공자왈 맹자왈하는 신분제사회하에서는,상소를 한글로 올린다는 그자체, 양반이라는 껍데기인 자신의 속한신분에서 왕따나 사회적매장을 당할충분한 이유가될수도있는 사회체제였다는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후기 신분제사회가 종말을 기할때까지두 이어졌으면,이가 득실대는 상투머리에
상투를 짜르느니,차라리 목을 짜르는게 더현명하다는 가치관이 조선후기까지 이어졌기에,
한마디루 말해서,오늘날에 사람이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살게되면 복장터져죽을 일이 다반사였을것이다.

한글을 사랑하구싶어두,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시대가 조선시대였다는것이다.그이면에는
썩어빠진 공자왈 맹자왈이 그런 사회적가치관과 문화를 만드는데 아주지대한 역할을 해다는점이다.

인목대비는 이러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속에 빠져들었던사회에,혁신적 한글사랑을 몸소실천한 선구자
라구 볼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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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주님 찬양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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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참진리가 넘쳐나는 교주님,경배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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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주님 찬양단의 한분인 오찬양님과 면담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
교주님의 다스리는 나라가 자유와 서민을 위한 삶을 외치셨었는데,어째서,현실은 정반대루
법을 잘 지키는사람은 븅신이구,사기치는 사람,말만잘하는 주댕이가진사람,뒤통수를 때리는사람
,그런분들이 잘처먹고,배터지는 인간들이 더많아지는, 주댕아리와는 정반대의 사회현실이
되었다구 보시나요?

오찬양
역사가 평가할것입니다.

사회자
훗날 역사가 평가해줄거라는 항의를 하신 전임교주들두 그런 비슷한 말들을 많이 하셨는데요
역사가 평가하는데,광해나,연개소문은 아주나쁜눔이구,쥐새끼같은 인조나 선조들은 좋은평가로
실록에 기록되어졌는데,이런건 그럼 왜 그렇다구 보십니가?

오찬양
기록자가 노망이 나서그런것입니다.

사회자
좋은사회정의를 외쳤는데,현실은 정반대루 도덕과 사회수준은 뒤걸음치는 인간들이 활개를치구,
사기꾼과 말잘하는 주댕아리만 가지면 된다는 극단적사회현실이 된것에 대하여 오찬양님을
비롯하여,교주님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요?

오찬양
우리에게 뭔힘이 있었다구,그런거까지 책임져야하나요.
사심없이,신도들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안따라준 무지몽매한것들이 문제라구 볼수가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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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오늘 대담에 응해주셔셔 감사합니다만,누가 교주님이나 오찬양님등에게 등떠밀며,
교주해달라구한적없으며,하겠다구,별쇼를 다하면서 선출해달라구,신자들을 잘인도하신다구해서,
뽑아줘던것이지,그러한 기회를 준 신자핑계는 되지마시길 바랍니다.

오찬양
한번더,기회를 주세요.진짜 이번에는 찬양두잘하구,맨날 신자들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진짜입니다.

사회자
그렇게 고생스럽다면서  찬양단을 뭐하러 더하실려구요? 전에 뽑아주고,이번에 안뽑아줬더니
신자들이 덜떨어졌다느니,도덕성개념이없다느니,이따구로 교만하시면서,그게 뽑아준 신자들에 대한
도리인가요? 찬양단하면 뭐,좋은게 많나봐요?고생만하구 힘들다는 찬양단,푹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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