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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은 이전부터 오래전에 생각해 왔다는듯이 머뭇거림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명림답부의 삶을 체험하고 싶어,그는 역사속에는 몇줄의 단어로 나오지만,그시대에 지도자를 잘못만나 고구려가 패망의 길로가는데 있어 그런 임금은 죽어 마땅하다고 외치며,과감하게 왕의 목을 쳐버리고,

고구려가 올바른길로 나아가는 토대를 만든 사람이기에,어디서,어떤 성장과정을 거쳤기에 단칼에 왕을 없애고 왕위계승의 흐름을 바꿔,훗날 을파소라는 명재상을 이어지게하여,백성들을 부유하게하고,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냈는지 알고싶어.너는 어떤데?

을나는 상자안에 들어있는 약을 꺼내들고는 이약이 거짓인지,진실인지 미덥지않다는 표정인 장난끼 머굼은 얼굴로,너가 명림답부라면,그럼 나는 명림답부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그림자형상으로 항상 따라다니는 명림답부의 그림자인간이 되겠어라고 말하며,한방울의 약을 건네고,자신도 한알을 먹었다.


갑자기,눈부신 방사형 흰빛이 사방으로 화살처럼 퍼져나가는것 같더니,서기66년 초겨울 고구려 절노부의 부족장인 고추가 명림어수가 말을타고 좌원마을을 가로질러 가는장면으로 시작되었다.

머리를 산발한  청년이 눈쌓인 길거리에 앉아,가슴이 다들어날정도 헤어지고,찌어진옷을 걸친채 무엇이 서러운지 목메어 울고있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통곡하며,슬피 우느냐?
제가 어릴적 부는 한나라의 침략으로 싸우다 일찍 돌아가시고,그이후 병드신 노모를 홀로 모시며 날품팔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왔는데,올해는 흉년이들고 날씨가 추워,하루품을 할 일조차 없어,노모에게 드릴 한끼니의 밥조차 구할 수 없어,그것이 서러워 목메어 웁니다.

명림어수가 집으로 돌아가,하인들에게 일러,그 청년의 집에 옷과양식을 가져다 주어,모자가 겨울을 배고품없이 날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한 일이있는 후로,육십이 넘도록 집안을 이을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었는데,그의 부인에게 태기가들어,열달이 지나 사내아이를 낳으니,명림어수는 아들의 이름을 명림답부라 부르며,아들을 교육함에있어,고아나,과부나,노인,장애인인들같은 나라의 소외된 백성들의 배고품을 살피는데있어 게으르지 말것을,하늘의 생명을 내린 뜻으로 알도록 가르쳤다.



훗날 명림답부는 한나라와의 싸움에서 우리나라의 전사에 기리남을 청야작전이라는 불세출의 병법을 사용하여 직접 전장으로 나가,한나라 현토군을 완전히 몰살시켜 대승을 거두는 고구려의 위대한 장군이 되면서 동시에 오늘날의 총리의 벼슬인 국상까지 오르게 되는 고구려의 전후후무한 장군이 된다.

고구려의 환생인물인 명림답부가 어째서,왕과의 주군관계보다는 백성들의 슬픔과 배고픔을 더 마음아파하고,백성을 환란과 배고품에 허덕이게 이끌던 왕을 단칼에 쳐죽이게 됬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한 출생의 운명을 가지고 시작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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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2대왕인 남해왕이죽자,3대 왕위를 누가 물려받을지에대하여 정해지지않았다.남해왕에게는 아들인 유리와 사위인 탈해가 왕권의 후보였다.



먼저 유리가 석탈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는 마음으로 탈해에게 말하길 '백성들의 추앙을받는 자네가 왕위를 잇는것이좋겠네"


탈해가 말할길" 왕의 자리는 그 그릇에 맡는 어질고,현명한 사람이 맡아야하는것으로 아무나 감당할수있는것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현명한사람은 이빨이 많다고 알고있습니다(석탈해는 자신보다 유리가 더많은 치아를가지고있는것을 알고 있었던듯하다)그리고는 떡을가져다 한입씩 물고 떡에난 이빨자국을보니 유리가 많았기에 신라의 3대왕은 유리왕이되었다.


이후로 신라의 왕을 이사금이라고 불렀는데,이사금이란 "이의 자국"이라는 기원을가지게되었다.신라3대 유리왕은 과부,고아,자식없는 노인등의 처지가 불우한 백성들에게 더많은 관심을가지고 정치를하였기에 백성들의 생활이 편안하고,복되었다.


유리왕시대에 신라의 6부에게 성씨를 하사하였는데 양상부는 이씨,고허부는 최씨,대수부는 손씨,간진부는 정씨,가리부는 배씨,명활부는 설씨라는 성을 내렸다.이,최,손,정,배,설씨 6가지 성씨는 신라의 6부족과 관련이 있는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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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신라의 설씨 성을가진 처녀는 얼굴이곱고,심성이 지조가있었기에.삼국사기열전에 설씨처녀에대하여 따로 부가하여 기록할정도였다.유리가 죽을때 유언을 남기길 자신의 뒤를이을 왕은 자신의 아들들이 아니라,탈해에게 왕위를 잇도록 엄명하고는 죽었기에 신라의 4대왕은 석탈해가 되었다.유리와 탈해의 관계는 이처럼 서로를 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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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사진은 티스토리달력 사진공모전의 출품작입니다.사진제목은 "바위섬"입니다.바위섬~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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