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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들의 성씨의 미스테리,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에서 왕조의 성씨를 찾아보면,

생각외로 많지가 않다.고구려의 고씨,신라의 박.석,김씨 고려의 왕씨,조선의 이씨 그러나 백제왕가의 성씨는?에 도달하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고씨,박씨,석씨,김씨,이씨인 5대성을 왕조의 성씨라고한다면,왜 600년이상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백제왕가의 성씨는 역사에서 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

고구려,신라와 함께 삼국시대의 동시대의 문화를 살았던,백제가,신라나 고구려의 왕족 성씨는 모두 기록되어있는데,


같은 민족이라는 백제의 왕가는 왜 성씨가 미스테리로 되어있느냐하는 점에대한 글이다.백제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가야와 함께 수백년간 이어진 왕조에 비하여 주류를 이루지못하는 너무나도 빈약한 역사의 기록만이 남겨져있다.

이러한 이유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일본과 백제와 가야의 관계때문이다.일본의 천황이 자신은 "백제왕가 자손의 피가 흐르고있다"라고 하였고,우리나라에서도 구지 일본 천황가가 백제왕가의 피가 흐른다고,공공연이 말하는것에대하여 자부심인냥하는 경향이 있는데,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천황가도 성씨가 없다.우리나라의 역사에 존재하는 고대국가중 유일하게 백제왕가의 성씨만이 전해지지 않는다.역사에서 논란이 되고있는부분이 백제와 왜의 관계가 어느쪽이 주종관계였나인데,우리나라에서는 백제가 주고,왜가 종이었다는 입장이고,일본의 입장은 왜가 주고,백제가 종이었다는 태도인데,상식적으로 왕의 자식이나,친족을 인질로 다른나라에 보내는경우,고구려와 신라의 경우나,

세계사적인 국가인 몽골과 기타국가등의 관계를 보았을때,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왕가의 자손이나 친척을 상대방의 나라에 보내는것은 보내는쪽이 주종관계에서 우월한 입장인경우는 전혀없었다.

백제는 특이하게도 일본에 왕의 장남이나 자손들을 인질로 왜에 보내어 생활하게하다가,일정시간이되면 일본에서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곤했던 기록을 쉽게 찾아볼수가 있다.주목해야할 점은,우리나라의 최강의 군주였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시절에도 이미,신라는 왜의 공격으로부터 힘겨운 방어를하고있었고,직접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여 침입한 왜를 섬멸하였다는 기록을 볼수있는데,

왜의 세력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일본이 통일국가를 이루기전에,일부의 허접한 세력이아니라,광개토대왕 당시에도,신라를 극도로 위협할정도로 강성한 군사력이었음을 알수가 있는데 신라는 왜의 공격으로 나라가 흥망의 위기에 처할 그시대상에서 백제를 살펴보면,이것들은 어찌된것인지 왜의 공격으로부터 예외였을뿐아니라,오히려 왜와 백제는 서로 연합하여,주변국을 점차 점령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의 천황가는 백제왕가와 통하다라는 일본천황의 말에는 혈연적으로 하나였다일뿐인데,백제왕들이 성씨가 없는것이나,일본의 천황가가 성씨가 없는것이나,일맥상통한다.우리나라의 국민에게 백제왕가의 성씨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제대로 답할수있는 사람이 없다.

수많은 왕의계보를 가진 백제왕들이 단 한명도,우리왕조의 성씨는 무엇입니다라고 말하거나 기록한적이 없기때문이다.그 당시에 성씨의 개념이 없었느냐하면,고구려나 신라에는 이미 왕족의 성씨개념은 존재하고 있었기에,변명할꺼리가 없다.왜 백제는 왕가의 성씨를 기록하지않았느냐,이것은 너무깊게생각하면 어려운것이지만,상식적으로 간단히 생각해보면 백제왕가는 왜라는 나라의 천황가와 뿌리를 같이하며,서로 상부상조하며 나라가 발전했기에 일본의 천황가가 성씨가 존재하지않는것처럼,백제왕가또한 그러한 전통에 참여하다가 망했기에 역사의 기록에서 백제왕가의 성씨가 존재하지 않게되었다는 것이다.

백제와 왜의 관계는 문화적인 입장에서는 백제가 우월했고,군사력에있어서는 왜가 우월했다의 관점으로 볼수있는데,고대 동아시아의 국가들의 흥망성쇠를보면,문화가 우월했다고 주종관계에서 주가되는게아니라,몽골의 징스칸이 몽골 문화가 우수해서,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한것도아니고,비록 몽골의 전체군사력은 20만에 미치지 못했지만,훈련되어진 몽골기병의 군사력이 강하기때문이었다.

백제왕가를 호위하고,받쳐주었던 군사력의 힘은 왜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할수밖에없다.백제는 문화적으로 왜보다 월등했지만,일정시기동안 군사력에있어서 왜의 보호를 받는 그러한 형태의 연합관계를 왜와 공통으로 가졌음을 알수있고,그 뿌리가 백제왕가와 일본천황가의 혈연적 일치관계에 기반했음을 알수가 있다.

백제 왕가의 시조는 분명히 고구려의 한분파로 세워진 국가였지만,그이후 고구려처럼,해씨를 원조로하는 고씨인 왕의 성씨를 이어간게아니라,고씨라는 성씨와 결별하고,그당시 군사력에있어서 우월했던 왜국의 천황가와 혈연적뿌리를 공유한다는 백제왕가의 명분으로 백제와왜는 연합하는 군사동맹관계였음을 알수있고,근본적으로보면 백제왕가는,우리나라의 일반백성과 동떨어진 태생들이었지 않나 그런생각을 해볼수가있다.

우리나라역사에서 백제왕을 드높이는 경우는 거이 볼수없고,또한 조금 뛰어난 백제왕이었다고해도,그사람을 추적해보면 알수없는 미스테리기간동안 사라졌다가,불연듯 나타나 왕위에 오르는데 그밑바닥에는  왜왕가와 밀접한 관련이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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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가와 일본천왕가의 관계는,몽골과 고려의 부마국과의 관계정도로 이해하면 역사적진실에 가깝다고 볼수있지않나라는 생각이든다.우리나라의 역사에있어 백제와 왜의 관계를 어느쪽이 주종관계냐에 대갈박 골머리를 굴리고 일본과 서로대립하는데,그럴필요가 전혀없는문제고 주변국가나 우리나라 역사에 남겨진 기록들을 있는그대로 해석하여 받아드리면 될뿐이다,

고려가 몽골의 부마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해서,고려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우리역사가 아닌것은 아니듯이,백제왕가가,일본의 천황가에 예속되어 일정시기,군사적동맹의 도움을 받았다고해도 있는그대로 받아드리면되는것이지,대갈박굴리며 왜 이딴기록이 역사에 존재하는지 그에반한 학설을 만들어내는데 골머리를 쓸필요가 전혀없다.

백제왕가는 전체시기가아니라 일정시기동안,"왜에 종속된 왕의계승을 했었다"이렇게 보면 주변국가에 남겨진 기록들을 "왜곡"할 엉터리학설을 만들어낼 필요가없는것이다.역사는 교훈을 얻기위한것이지,자존심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그자체가 더 부끄러운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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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전라도이다"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보았을때 틀린생각이다.백제는 고구려의 일파이고,주활동무대는 오늘의 서울.경기지역과 그리고 충정도지역이다.

백제는 처음과 쇠퇴하여 망할때까지 단 한번도 전라도지역에 수도를 정한적이없다.서울.경기지역에있던 백제가 고구려에밀려 부여나 사비로 수도를 옮겨지만,그곳또한 충정도 지역이었다.

역사적으로보면 고구려,백제,신라 3국을 삼국시대라고 기술하는데,묘하게 사라진부분이 지금의 전라도지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역사부분이 미스테리로 남아있다는점이다.



전라도지역에 생활했던 지배자나 지역민들이 고구려,백제,신라의 협공을 받으며 점차 세력을 잃고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곳이  전라도지역이기에 전라도는 백제이다라는 개념은 잘못된 역사적시각이다.


눈여겨 봐야할지역이 영산강유역에 남겨진 대형고분들과 유적들이다.전라도지역에는 고구려,백제,신라와 다른 지배계급과지역민들의 연합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것이다.우리나라역사에서 오늘날의 신라의 지역이라고 불리는 김해,부산지역에있던 가야라는 나라의 개념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있지만,고구려,백제,신라의 협공을 받았던 전라도지역에 존재하던 나라에대한 기록은 역사속에서 미스테리하게도 모두 사라졌다.


역사적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중에 전라도지역은 백제다라고 우기는분들이 있는데,전라도지역은 백제가 아니다.백제와 관련된 국립박물관이나 유물전시관이 모두 충정도지역에 오늘날에 존재하는지 생각해본적있는가? 백제의 근간은 서울,경기,충정지역의 지역민과 지배계층이 백제라고 볼수있고 오늘날의 전라도지역에 지배계급과지역민은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협공을 받으면서,그곳에 살고 집단지배세력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차츰 백제나 신라로 강제편입되었다라고 이해하는것이 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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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부끄러운 역사일지모르지만,역사속에서 모두 지워져 미스테리로 남길게아니라,오늘날의 전라도지역에서 수백년간 존재했던 나라에대하여 엉뚱한 백제나 신라의 역사로 두리뭉실포장하려니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사기가 묘해지게되버렸다. 전라도지역은 후기에  백제에의하여 강제병합되었지,그곳이 백제의 본류가 아니다.


백제는 충청도이고 전라도지역에는 백제와는 다른 무엇인지 정의할수없는 지역민들이 살고있었다.오늘날에와서 전라도지역은 백제의역사입니다라고 생각한다면,그것만큼 무식한개념도없다.단지 삼국사기에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역사만을 다루었기에,오늘날 전라도지역에있던 지배계층이나 지역민이 이루어었던 국가는 역사의 미스테리로 사라져버린것이다.전라도지역에 존재했던 지배계층이나 사람들은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협공에의하여 분해되버렸다라는 개념이 맞는것이다.백제에게 전라도지역이 강제병합되었다라면 모르지만,전라도지역이 백제였다라는 개념은 웃기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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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다양한 고분군들이있다.우리나라에서두,아직미발굴상태로 남아있는 많은고분군들이있는데,그중에서두,가야의고분군들이 대표적이다.박물관에서 보여지는 진귀한 우리나라의 보물들은 대부분이 고분에서 출토되어진 유물들이다.




정식으로 발굴하는게 아니라 고분속에 들어있는 보물들을 몰래 도굴하는 도굴꾼두 시대와상관없이 있어왔을것이다.이미 도굴된 고분들속에는 컵라면이나,음료수병이라든지 이런오늘날에 쓰여지는 물건들도 발견되어진다구한다.







고분유물들이 연대측정에서,저런물건들이함께있다면,참황당한일일것이다.도굴의 문제는 오늘날에의 문제만이아니라,고대로부터 존재했을것이기에,고분의 연대에있어,전혀 나라와시대배경이 안맞는 물품이 들어있다면,대갈박을 굴리며,이물건은 어찌된연고로 이곳에있는가? 정식으로 발굴하는 사람들을 미스테리에 빠지게한다.




어찌되었든,세계의 고분군들이,우리나라의 고분군들과 비슷해보이는것들두있지만,스케일이나 모양면에서
특이한고분들두 보인다.
세계의 고분들은 어떤모습들인지,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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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거대한 산전체가 하나의 고분,스케일이 웅장해보이는 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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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맹이를 세워놓은 모양이 특이한 고분이다.무엇을 상징하는 고분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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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광개토태왕릉처럼,돌무더기루 쌓아올리것같긴한데,돌은 국가를불문하는 고분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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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가야시대의 무덤같은 모양인, 언덕같은 고분이,다른나라에두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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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분하면 둥근모양의 봉분이 생각하는데,피마미드처럼 삼각형이네요.







전체적으로보면 세계의 고분들의 모습이,우리나라의 고분들과는 조금씩다르게보여두,자신들의 역사유물인 고분들에대하여,보존하구,기리는정신은 어느나라나 똑같은것같습니다.우리나라의 영산강유역에있는 가야시대의 언덕처럼 큰고분의 봉문위에 올가가 사진찍구,앉아 김밥벅구,음료수먹는분들,봉분위에서 그러는거,몰상식한짓입니다.가야시대의 고분의 주체가 우리선조가아니라구해두,그래서는안되는것입니다.어떤주체가 뭍혀있든,그곳은 우리역사의 중요한 고분들이기에,후세에두 잘보존하여,가꾸어나가야할,우리역사의 일부분인 역사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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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사진이다.이 거대한 규모의 무덤이,누군지 모르겠다니,말이 돼냐.............................

 저 정도의 거대한 규모를 만들정도의 집권자라면,당연히 그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있어야

 하는데,그냥,부족장이 저런무덤만들수 있었다면,,경주나,백제의 무덤군의 집권자는

 별것두 아니겠네..부족장보다 더 못한 무덤을 썼으니....




가야(伽倻 혹은 加耶)라는 나라의 역사는 미스테리루 남아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면


가야사람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인 토기나,기타 갑옷등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출토유물과는 상당히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나구 있다.


일본서기에는 가야라는 부분에 대하여 상세하구두,자세히

역사서에 기록된 반면에,우리나라의 역사서에는 고의적으로

이 가야부분에 대하여,아예 삭제해버렸고,개인적으로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라면 어째서 600년 넘게 존재했던

나라의 왕들은 누구고,무덤군들은 어째서 저렇게 거대한지

일개부족장이 고인돌이나 뭍힐것이지,저런 거대규모의 무덤을

남겼는데 역사기록에 기록된 활동이나 행적이 전혀 없다는게

말이 되는가


고구려,백제,신라와 같은시기에 건국되었고  600년이상 존재했던 나라였구,

백제가 망한것이 662년인데 가야는 그보다 백년정도 앞서서 망했을뿐인데

대부분시기는  삼국시대와 함께 가야국이 역사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가야라는 부분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그 흔적이 지워지구

자세한 부분에서는 둥리뭉실 개관하는정도로 지우고 싶은 ,깊게

연구해서는 안되는,그저 둥리뭉실넘어가면 제일좋다는식으로

남아있다구 볼수있다.


가야의 핵심은 일본서기 신공황후편에 기록된 임나임본부설

을 부정해야하는 모순에서,이러한 모습이 나오구 있다구 본다.


나주의 영산강 고분군을 보면, 그 규모는 오히려 경주의

왕릉고분들보다 그 크기가 더크고,무덤양식또한 일본의

무덤양식을 나타내구 있는데,이무덤의 주인공은 왜인이라

단정적으로,확신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경주의 천마총이나 왕릉급고분 무덤에

우리나라 사람은  그 무덤위에 올라가서 밟구다닌다던지

봉분위에서 관광객들이 모여 놀구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데


나주의 영산강 고분군의 무덤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위 봉분위에서 잘두 돌아댕기구,관광객들이

봉분위에 돌아댕기면서 놀구,모여서 사진두 찍구 뭔가 대접이 전혀 다르다.


만약에 나주 영산강 고분군이 조상님의 묘라구 생각했다면

어째서 이런 극과극의 행동이 나타날수 있겠는가.


광개토대왕릉비에서두, 신라국경를 침범한 왜라는

존재가 표시되구 있으며,이시기는 가야국이 존재했던

시기로, 왜라는 나라가 신라의 국경을 침범했을때

광개토태왕이 바다건너서 왜나라 정벌을 한것두

아닐것인데,왜국 깊숙히 쳐들어가,정벌을 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때,나타난 즉 신라와 국경을 맞댄 국가는

아무리 찾아봐두,백제,가야이외는 없구

신라 국경에 왜인가득찼다는 의미는

왜인들의 근거지가 한반도내에 존재했다는

의미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둥리뭉실,그리고

600년이 넘게 존재했던 가야라는 나라가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이유가 감추고 싶은

역사라서 그렇다구 나는 생각한다


왜인이 살았던 나라는 가야로 설정함이

올바르다고 본다.


엉터리루 부정하구 있지만,임나일본부설은

그 시대에 존재했었구,가야라는 나라는

왜인이 지배했던 나라였다구 생각한다.


구석기시대 유적지두 발견되면

아주,귀한 대접을 받는데..


어째서,가야시대의 고분들은

경주의 왕릉급고분군들보다

규모나,크기나 형태에서 훨씬더

거대한데두,대우는 천양지차가

되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가야의 역사나 유물은 없어서

연구못하는게 아니라,사방에 널려있는데

널려져있는 가야시대고분군들이

오히려,백제나 신라의 고분군들보다

더많은데,어째서 가야사는 둥리뭉실

은폐되어있단 말인가..


삼국시대에 왜인들이

나라가 남부일부지역에

나라로서 존재했다는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개인적 생각이므로,객관적 신뢰성은 없다.

그러나 가야가 임나일본부설의 대상인

나라라구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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