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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의하여 패망하던 긴박한 상황하의 백제는

어떻게 대처하고 움직였는지 역사속 실존인물의 행위기록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봤더니.......

백제의 패망군주 의자왕의 백제는 대외적으로는 신라를 압박하여,신라가  나라 날의 존망이 염려할만큼 막강한 백제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지휘했던 왕이었고,

실제로도 신라보다 더 큰 군사적.경제적능력을 가능케 환경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었던 신라보다 객관적으로 강했던 국가를 만든 왕이었다.

의자왕은 생각하였다."내가  백제의 국력을 신라를 완전히 압도하도록 만들었는데,그 공이 적지않고 높다.그러므로 이러한 국력의 결과는 나의 아들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것이 당연하다.내가 좀 정력이 쎄서,아들들이 40여명이 넘는데 이들을 모두 우두머리급으로 임명을 하고자하니 지방세력들은 잘알아서  처신하도록 하라"

백제에서 지방세력들은 백제라는 나라를 구성하는 지분을 가진 군사력을 자체로 보유한 세력들이었지만,대부분의 지역은 속으로야 어떻든 겉으로는 왕의 명에 순종을 하였다.그러나 전주와 나주의 세력들은 다른지역보다 좀더 강한 지역세력의 힘과 군사력을 보유했기에 백제왕이 뭐라고하든  대놓고 불평할 만큼의 세력 전통이 유지되어지고 있었다.(후삼국시절 나주가 고려의 후백제 정벌의 선봉대 역할지역이 될수있었던것도 이러한것과 무관치 않았다고 볼수있다.)

우리나라가 외적이 침입을 당했을때 왕들의 피난경로는 중국에서 내려오는 외적에 맞서 남쪽으로 몽진하며 이동하였고,일본쪽으로 들어오는 외적에대하여는 북쪽으로 피난을 가는 형식의 역사기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백제의 마지막날 당나라 대군이 밀려드는 순간에 의자왕은 남쪽으로 피난을 간게 아니라 엉뚱하게도 북쪽지역으로 북상하여 피난루트를 잡았다는 점이다.백제 의자왕에게 있어 마음속에는 남쪽으로 내려가는것보다 북쪽으로 올라가는것이 더 심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다고 볼수있는데 이러한 행태는 우리나라의 기본적 피난루트와는 의외라고 볼수가 있다.

백제의 우두머리급 관직들은 모두 의자왕의 아들들이 들어차게 만든 의자왕이었기에,실질적으로 능력을 발휘하여 백제를 방어할수있는 층은 계백장군같은 실무진 급들이었다.백제의 마지막의 상황을 구성해보자.

의자왕:나의 잘못된 관리임명으로인하여 실질적으로 백제를 방어하여 지킬수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 대부분 등지거나 죽어서 별로 없는상황이 되었소,계백장군은 지방세력들이 마음을 돌려,그래도 나의 허물을 탓할지라도 국가의 종사는 망하게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들어 지원군이 올 동안 시간을 벌어주시오.

계백장군:신명을 바치겠습니다,전하.(애원하는 왕을 바라본 계백의 심정은 이미 백제의 앞날이 망조로 진입함을 느끼고,살아 돌아올수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백제흥망의 열쇠는 당나라군이 아니라,신라군이었기에 신라군만 꺽을수 있다면 백제에 일가닥 승산이 있었지만,상대방 장수가 신라대장군 김유신임을 듣는 순간,계백은 희망조차 없음을 알고,집으로가 집안정리를 먼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계백이 자신의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면서 읍조리는 말이 "전하,어찌하여 김유신의 손녀를 죽여,김유신이 백제에대한 불구대천의 원한을 갖도록 만드셨는지,그것이 여한입니다.김유신의 분노가 백제를 망하게하니 김유신을 신라에 태어나게한 하늘의 운명을 어찌하겠습니까 " 

신라와당나라의 대군이 사비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자,의자왕은 마지막 백제의 혼을 보여주고자 끝까지 남아 항전하려고 했으나,의자왕의 아들들끼리 줏대없이 여자에 홀려서 태자를 왔다갔다 바꾼탓이니,항복을 할지언정 항전하여 내가 왜죽어야하오,죽기 싫소하니,의자왕은 어쩔수없이 항복하겠다는 아들세력을 사비에 남겨놓고 항전하겠다는 아들들은 데리고 밤에 몰래 북쪽방향으로 길을잡고 이동했다.

역사의 가정을 할수있다면,이때에 의자왕이 북쪽방향과 남쪽방향의 피난방향의 선택에서 남쪽으로 갔더라면 망하는것은 막을수는 없었더라도 치욕스럽게 부하의 배신으로 당나라왕에게 바쳐치는 뒤통수맞은 패망군주라는 불명예는 더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주와 나주세력에대한 백제지배세력의 뿌리깊은 불신이 그쪽 방향으로 피난방향을 잡지못한 원인이 될수도 있었겠지만 그당시 백제와 일본과는 사이가 나쁘지않았기에 만약에 의자왕이 전주나 나주쪽으로 피난가 전주출신 여진족으로 살과피를 섞었던 조선의 전주이씨왕조의 선조임금처럼,

자신의친족과 가까운 방향인 북쪽의 의주쪽으로 도망가 여차하면,중국으로 튈거여하고,버티고 실제로 일본으로 튈생각을했다면 의자왕은 망하지않고 후대를 이어 갔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선택에서 의자왕은 북쪽방향으로 나아갔고,결국 짱깨쪽 귀화세력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아쉽다.의자왕이 통치시 최소한 전주와 나주에 공을 들여서 잘다스려 놨고,그쪽방향으로 피난을 가도된다는 믿음이 생겼다면,의자왕도 조선의 선조처럼 충신들은 다 죽게만들었을 망정,스스로의 안위와 부귀영화는 끝까지 유지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선조임금이 북쪽방향으로 도망길을 잡아서 결국 명나라가 조선에 지원군을 파견해서 도와줬고,전라도지역이 보존되어 이순신이 이곳 경제력을 바탕으로 왜적에 맞서 결국 승리했던 과정과,의자왕이 남쪽방향인 전라도방향으로 피난을 가서 버티다가 일본의 지원군이 올때까지 뒤통수 맞지않고 버텨 항전했다면,역사의 방향이 바꼈을수도 있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일본은 명나라처럼 시기가 늦었지만 분명하게 백제에게 지원군을 보낸것을 보면,선조처럼 백성이 죽든말든,충신이야 되지든 말든 도망의 귀재로 단지 운명의 동전을 어느쪽 방향을 선택했으냐에.......걸어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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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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