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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갑자기 무너진 이유를 백두산화산의 영향이었다든지 하는 황당무계한 논리들이 등장하지만,발해의 멸망은 내부의 쿠테타로 발생하였기에,밖으로의 외적영향을

찾을래야 찾을수없고,외적인 영향을 설명할길이 없자 갑자기 멸망되어진 이유를 자연재해로 인한것이다라는 비논리적 개념을 주장하기도한다.


발해를 이해하기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고구려를 이해해야하고,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이해하기위해서는 발해에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한다.


동이족의 기원이되는 고조선의 영역은 오늘날의 한반도내에 한정 되어진것이 아니라 영토의 크기가 한반도와 대륙의 벌판에 이어져 있었기에 그곳에 사는 부족들이 모두 한민족이지는 않았고,광대한 영토크기상 여러부족이 존재 할수밖에 없었다.

고조선.고구려라는 나라의 주류는 한민족이고,그속에 포함되어진 부족들이 거란(몽골),말갈(여진)이 있었다.
가족으로보면 주체적 권리는 한민족인 고구려인이고,나라의 구성에서 서자쯤되는 부족이 거란과 말갈이었다.

고구려인과 거란,말갈인은 서로 같지 않은 민족이지만,국가구성에있어서는 주류냐 비주류로 나뉘어진 구성원들에 속했다.발해는 스스로의 내분에의하여 망했다는것은 거란과 고려의 역사기록을 통하여 알수가있는데,

고려태조 왕건이 거란에대한 정책과 기록,거란에대한 중국의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거란은 "발해의 풍습과 제도를 따랐다"라고 되어있고,고려태조 왕건이 거란의 사신 30명을 섬으로 유배시켜 죽게하고,선물로 바친 낙타 50마리를 아사시켰던 이유를 말하는데,



"발해와 거란은 서로가 연합하여 한마음이었는데 이제 갑자기 배신을 때리고,발해를 멸했으니 무도하다"라고 하였다.이말을 이해하려면 훗날 거란이 고려를 침공했을때,서희의 담판에서 거란은 고구려를 발해가 계승했고,그것을 자신들이 다시 계승했으니 그영토에 속한 땅은 자신들이 땅이다고 하였는데,

고려는 자신들이 오히려 고구려의 계승국이다라고 하였는데,거란이 이러한 주장에대하여 고려가 고구려인의 적장자라는데 부정을 하지않고 물러갔다는 점이다.

고려왕건은 고구려인의 적장자를 고구려인의 나라인 발해와 고려로 보았고,방계로서 거란과 말갈이 존재하는데,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고구려가 할아버지라면,발해와 고려는 아들,거란과 말갈은 손자쯤되는 상속서열을 가지고 있었는데,손자가 자신의 부모를 친것을 무도한짓이라고 꾸짓고있는것이다.



거란은 발해의 부여부에 위치하고있음을 보거나,거란이 세운 요나라 태조가 발해의 풍습과제도를 그대로 따라했다는 역사기록을 봤을때 거란은 오늘날에보면 몽골족의 한부류였지만,고구려인들이 대륙벌판에 근거하여 나라를 세울당시,고조선을 이루던 동이족의 한갈래였고,그중에서 부여족과 관련이 되어져있다는것이고,

고구려의 뿌리와 오늘날 한민족이 뿌리가 부여족에서 나왔음을 보았을때,부여라는 갈래는 거란,고구려인,말갈을 다포함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것을 알수가 있다.발해의 지방제도중에 부여부는 거란을 말하는 의미와 동격인데,거란이 부여와 관계가 없다면 통솔부락을 부여부로 명칭을 하지 않았을것이다.

발해와 거란에있어 공통적으로 주목해야할 단어가 迭(질)이라는 단어인데,발해관리들의 품계를 나누는 단위기도했지만,거란의 8부족의 명칭중에 하나의 부족에도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한민족의 뿌리인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의 묘비를 세우거나 기록할때 부여라는 단어는 빠지면 안될 신성시되는 계승자가 될려면 부여라는 말은 꼭 집어넣어야할 명칭이었음을 보았을때,발해의 제도에서 거란이 부여부의 중심이라면,거란도 고구려인들과 마찬가지로 부여에대한 일정지분을 계승한다는 의식이 분명하게 존재했음을 알수가있다.

결론을 내자면,고려가 고구려의 적장자라고했을때,거란도 부정하지 못했고,발해의땅이 적장자는 고구려인이었기에,발해를 내부적으로 평정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세운 요나라도 자신들도 고구려의 계승자를 주장했지만,정확하게 말하면 발해의 계승자임을 주장했지만,그보다 앞선 적장자인 고구려인들이 세운국가인 고려에게있어서 마땅히 부정할 명분이 존재할수 없었다.

몽골이나 여진이 훗날 중국대륙을 집어삼키지만,부여족 고구려인의 본류인 한민족의 국가에 대하여는 왕을 잡아 국가를 패망시킬수 있는 최후의 순간에서도 그렇게하지 않은것은 뭔지모를 동질감,형제감등 오늘날 일본천황의 가계를 막부장군들이 없애버리지않고 형식적으로라도 유지시키려 했던 관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한민족의 고구려인들은 마지막까지 지켜져야할 그 무엇인가였다.그만큼 동아시아의 동이족에있어서 천년왕국 고구려가 차지하고있던 개념은 동이족의 관념속에 뿌리 깊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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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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