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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한민족의 국가였다는 근거에대하여 살펴보자.발해의 시조는 대씨이며,대중상,대조영등이.대중상은 말갈족출신이 맞으나

오늘날에보면 귀화한 한국인이라는것이고 귀화한 말갈인이 수대를 거치다보니 고구려인으로 되어진것이 대중상이었다.

이러한것을 고구려의 별종이다라고 기록한것은 역사기록이 정확하게 표현 했음을 알수가있다.

역사기록에서 발해의 건국과정을 나타날때 당나라장군 이해고의 천문령전투당시에 이에맞선 군사들은 고구려군인과 말갈족군인들로 구성된 대조영군사들이라고 고구려군과 말갈족군을 구분하여  기록하는것을 보았을때 말갈군사와 고구려군사는 그당시에도 서로 의미있게 구분되어졌고,발해건국의 주체군사에 고구려기병이 있었음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대중상이나 대조영의 군사는 말갈족 지휘관이라기보다는 패망한 고구려군사를 이끌었던 세력을 대표하고,말갈족군사는 따로 말갈족추장이 이끌었음을 구분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알수가 있는데,발해의 풍습은 부여를 이었고,부여의 풍습은 고구려,백제와 동격이었으므로 발해는 말갈을 강조한것이 아닌,고구려인의 풍습을 건국초기부터 강조하고 있음을 알수가있다.

역사기록에 남아있는 발해의 풍습중에 발해의 관리들은 신분에따라 '금색,은색등의 복주머니를 몸에 차고 다녔다'라고 하였는데 그모양은 물고기모양과 비슷한 복주머니였다고 기록 되어져 있다.오늘날 한민족의 복주머니 풍습은 삼국시대이후로 고려,조선에까지 이어졌고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복주머니의 모습은 복주머니의 입구는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처럼 생겼고 전체적으로보면 물고기모양과 비슷함을 알수가있다.

이러한 복주머니를 몸에지니고 복을 받거나,액운을 물리치거나하는 풍습은 고조선이래에 한민족의 풍습이었다.이것이 첫번째로  발해인은 한민족이었다는 증거이다.

두번째는 발해라는 국가명에서보듯이,건국초기에는 발해인과 말갈인의 연합으로 이루어졌기에 고구려인의 국가인 발해로할것인가,아니면 말갈인의 국가인 말갈로 할건인가 명칭의 문제로 보인다 결국은 지배계층의 주류인 고구려인을 나타내는 발해로 국가명이 정해졌음을 보았을때,발해는 스스로를 고구려인다라는 주체적 표현으로 한것이 두번째증거이다.이러한 사례는 훗날 이성계가 세운 조선의 창건과 궤를 같이하는데,이성계가 말갈족속에서 살고,혼인관계를 유지했고 말갈족 연합세력의 구성으로 조선을 창건했다고해서 조선을 말갈족정권이었다라고 주장하는것은 현세를 살아가는 한민족이 존재가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한 그렇지 않다는것을 한민족 스스로가 증거할수있다.

세번째는 발해는 온돌이나 된장등 한민족의 생활문화를 답습했고,고구려인 중심의 천하관을 바탕으로 주변 말갈족을 제압하고 합병해 갔다는것이다.말갈족이 고구려인을 통치해 다스리는 국가로 표현되기 보다는 주변말갈족을 하나씩 발해인으로 통합해가는 과정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때 당시에도 말갈족과 부여족은 서로 다른종족임을 서로 알고있었고,고구려이든,발해이든 국가의 주체는 부여족이라는 부여에서 여러국가가 나왔다라는 부여일통의 관념은 발해국에도 확실하게 이어졌다.

발해는 건국초기부터,멸망할때까지 말갈족의 풍습을 따랐다고 한것이 아니라,부여와 고구려의 풍습을 따랐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했고,역사에서도 발해는 말갈의 풍습을 따랐다라는 기록은 없고.특이하게도 말갈과는 전혀다른 거란의 풍습도 남아있었다라는 기록을 봤을때,발해는 말갈정권이다라고 주장하는것은 머리와 꼬리를 빠꾸는 황당한 왜곡이다.

네번째 오늘날까지 이루어지는 역사왜곡중에 동북지방의 조선족은 조선말기에 이루어진 현상이다라는것이다.동북지방은 발해가 멸망했을 당시에도 그지역에는 고구려인들이 존재했었고,고려로 10만명이 넘는 고구려인들이 귀순했지만,계속 동북삼성지역에는 고구려인들의 후예들이 남아서 살아갔다.

원나라때에도 고려국왕이 요동지역의 왕을 겸임했던 이유도 그곳에 고구려인들이 계속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고,명나라때에도 이곳이 누구의 관할이냐에 따른 대립으로 위화도회군문제가 발생하여,반역의 정권이 탄생되었지만 이쪽지역에는 고구려인들과 말갈족들의 후예가 사는 땅이라는 개념은 이어져왔고,동북지방에대한 한민족의 삶의 터전과 역사는 고구려,발해가 망한이후에도,오늘날의 동북삼성의 조선족이 존재하듯이 계속해서 이어져왔다.

동북삼성의 고구려인들이 후예가 이어져 오는것이 조선말기에 형성된 일시적현상이라고 역사를 왜곡하고,그래서 조선과 청나라간에 국경분쟁이 생겼다라는 관점은 잘못 되었다.중국를 지배했던 한나라,수나라,당나라,원나라,명나라,청나라,오늘날의 중국까지 동북삼성지역이 고구려.발해인들의 영토이며 터전이라는 관념은 계속 이어져왔다.이것을 조선말기에 갑자기 조선인이 이주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것은 궤변일뿐이다.

애시당초 한민족은 일본의 남방계민족이 아니라,북방계민족이 민족의 주류였다.한민족하면,말을달리며 활을쏘는 북방민족의 피가 흐름을 말을 안해도 본능적으로 느낄수있다.특이한것은 전라도지역에서 발견되는 왕릉급 거대고분의 인골들은 일본의 남방계민족과 관련 되어지는것이 어떠한 이유로 이러한 유물들이 만들어졌고,오늘날까지 전해졌는지는 역사가 전하지 않기에 뭍혀있다.발해인은 고구려인이고,백제인이고,신라인이고 같은뿌리인 북방민족계의 고조선인이다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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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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