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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의 마지막 유언내용은 오늘날에도 되새겨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만하다.



673년 7월1일에 김유신장군은 죽는다.죽기전에 문무왕이 유신의 집을 방문하여 유신에게 앞으로 자신과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유념하여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묻는다.



문무대왕이 울며 말하길,"만약에 나라의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백성과사직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유신이 말할길 "백성을 등용함에 있어서,왕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처럼 사람을 믿고 등용하셨으면,의심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임무를 맏기시고 왕께 개인적으로 바라는것은 공을 이루는것은 쉽지않음을 아시며,그것을 지키는것은 더욱 힘써 스스로 노력해야함을 생각하시고,시종여일하시옵소서"



 

"오랜기간 삼국이 서로 갈라져 항상 싸워왔기에 삼한의 백성들은 나라를 가리지않고 전란의 불안에 살아왔습니다.이제 삼한이 하나가되어 한백성이라는 의식으로 뭉쳐, 나라의 기틀이 번영하고 부강하여진다면 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왜 김유신이 "문무왕에게 공을 이루는것이 쉽지않음을 아시며"라는 말을 했는지는,문무왕과 김유신의 관계를 살펴보면 알수가있다.김춘추와 결혼한 김유신의 누이동생이 낳은아들이 문무왕이었다.관료문화에서 신분적질서가 철저했던 신라사회에서 가야의 왕족으로 신라사회에 편입된 김유신일가는 원칙적으로 신라왕족의 핵심층에 들어갈수 없었다.


할아버지인 무력,아버지인 서현,아들인 유신 3대에 걸쳐 스스로의 능력으로 국가에 공을세워 집안을 일으켰고,3대에 걸친 노력이 문무왕의 근본토대가 되었다는것이다.유신의 호국정신 유언을 받든 문무왕은 죽어서도 넋이나마 바다를 건너오는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맹세를하고 지금의 경주시 감포앞 바다속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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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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