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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림답부가 10살이 되던 해인 서기 77년 5월 한나라 현토군 태수 양귀가 3만의 병력으로 고구려의 절노부지역인 좌원을 약탈하기 위하여 기습 침략하였다.

이에 답부의 아버지인 어수가 고구려 기병 1만을 이끌고 양귀의 3만군사가 진격해 들어오는 좌원의 북쪽 토문강유역으로 나아갔다.

두나라의 군사가 토문강을 사이에 두고,백리앞에 대치하게 되었을때,어수가 휘하 기병 200명을 뽑아 토문강가로 나아가게 하며,고구려가 고래로부터 이어왔던 기병전술을 행하였다.



고구려 군사의 기병술은 적과 처음으로 교전하는 선발대,그리고 적의 후미부대까지 완전히 포위하여 전멸시킬수 있을때까지 유인하는 것이며,적의 본진이 온전히 강이나,산을 넘어 전부가 들어올수 있도록 기다리는 전술을 사용했고,

이때 고구려 기병 선발대의 임무는 승리가 목적아니라,선발대 전원의 전멸적 희생을 근본으로 하였다.토문강가에 200인 정도의 고구려 기병이 정열해 있는 것을 본 양귀는 전군을 한꺼번에 몰아 일거에 공격을 가하였고,

고구려 선발기병대는 이미 주어진 예정된 운명을 기꺼이 받아 드리며 전멸로 나아갔다.양귀의 군사가 수적우위에의한 맹공으로 고구려 선발대를 전멸시키며 토문강을 일시에 넘었을때

양귀는 혹시 모를 매복등의 함정에 대비하여 더이상 진격없이 군사들을 정비하며,척후대를 앞으로 보내 고구려군의 이동상황을 수집하도록 하였다.


어수는 본대를 2개의 기마병대로 나누워,5천의 기병은 그가 직접 지휘하며 마덕산아래의 좌원평야에 정열하도록 하고,나머지 5천기병은 토문강가의 어란진주위에 매복해있다가,한나라군이 전투를위하여 좌원평야로 나아갈 때 퇴로를 막아,전멸시키는 후위공격 기병으로 예비하였다.

옛부터 고구려 기병전술의 교범은 본진기병과 후위기병,2개의 기병대로 나누어 적을 섬멸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하였다.

토문강가에서 하루를 휴식한 양귀의 3만 군사는 척후대가 백리앞의 좌원평야에 고구려본진이 진을 치고 있음을 파악하자,본래의 목적인 약탈을위하여,좌원평야로 나아가기전 행군상에 위치해있던,오골이라는 마을을 습격하여,노예로 팔수있는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현토군지역으로 호위군을 세워서 이동케 하였고,나머지 노인들과 고구려 남자들은 모조리 죽였다.


양귀의 군사가 계속 약탈을 자행하며 행군하여,좌원평야의 고구려본대를 마주하여 대치하게 되었을때

고구려본대 어수의 가독부 막사에서는 작전지시가 내려지고 있었다.
조의천군,그대는 적부대의 좌측면을 횡공격하시오.
대사천군,대사의 군사는 우측면을 횡공격하시오.
신명을 다하겠습니다,가독
정중앙으로 마지막 일격은 내가 맡겠소.



여기서 고구려의 천군이라는 벼슬은 천명의 병사를 이끄는 지위를 말하며,초기에 가독은 고구려 부족장인 우두머리를 뜻하다,훗날 발해의 황제를 뜻하는 의미로 확대된다.

제하 천군들은 들으라,
우리 부모형제들이 적의 침략으로 죽임을 당하고.노예로 잡혀가는것이 그얼마였고,그 슬픔과 한이 얼마였는가!

기마병은 활이 없으면 칼로,칼이 부러지면 두팔로,두팔마저 없을때는 이빨로,적의 귀를 물어 띁어서라도,목숨이 다하는 최후의 순간까지,고구려 기병의 혼을 보여줘야한다.

신명! 가독.

전군 돌격하라!!
단한명도 살려 두지말고 전멸시켜라



공격나팔이 울려퍼지자 마자,창공을 가로지르는 번개처럼,빠른 기동력으로 고구려기병은 일시에 적군의 정중앙만을 비워둔채,좌우로 산개하며 말위에서 삶과죽음을 초월한듯이 머뭇거림없이 활각의 시위를 당겨 날리고,마주 달리며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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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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