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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의 중앙행정기관인 방통위 인사권에대하여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없는 조항인  정치적 성향에의하여 임기만료된 방문진 이사에대하여 임기를 일개판사가 연장해주는 삼권분리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천인공노할 법해석과 창시를 했다는 점이다.

방문진이사의 임기가 남아있어서 그러하다면 이해할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이미 임기가 만료되어 퇴직날짜가 지난 사람을 판사 독단적으로  정치적 견해에따른  법해석을 전개하여 "더하시요"라고 퇴직날짜를 자의적으로 연장해준 꼴이라는 것이다.

 



누가 판사에게 퇴직만료된 사람까지 임기를 더 연장해줄 인사권한을 주었는가?  새로운 방문진이사를 행정부 중앙행정기관인 방통위가 임명했으면 2인이 어쩌구는 명분일뿐 어찌되었던 임기만료된 방문진이사에대하여 임명권자가 더 임기를 연장해줄 생각이 없다는것이 명확하고 분명한데 판사가 뭐길래 퇴직날짜까지 연장해주는 월권을 저지르냐하는 것이다.

행정부의 임명권자가 퇴직날짜 만료되면 퇴직하시요라고 명확하고 분명하게 보여준 것에대하여 퇴직만료된 자에대한 임기를 연장시킬 권한을 판사맘대로 한다면 삼권분립이 망조가 든 나라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행정부수반인 대통령이 임명한  kbs에도 같은 반복적으로 이러한 판결행태를 보인다면 방통위뿐만 아니라 행정부수반인 대통령의 인사권에대한 노골적 정치적반감으로 이것은 삼권분립을 아예 파괴하겠다는 자세이기에

문재인 정권시절에 성창호판사가 당한 수모에비하면 이 판사가 행한 정치적 판단을보면 그보다 더한 적폐판사라는 말을 들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법원내에  정치군인인 하나회와같은 존재한다면  뿌리뽑을 책임은 대법원장에게 큰책임이 있다고 국민으로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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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당인 민주당이 법사위나 기타 상임위에서 앵무새처럼 했던 이야기를 이번 결정을 한 강재원판사는 새겨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운영과 탄핵청문회등 "국회법 어디에 그런 조항이 있는가" 관례가 법위에 있지 않는것이기에 법대로 한다며 반대편 의원들 한명도 참가안해도 청문회하고 운영하고 심의 의결하는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국회운영 방식을 보여주었다.

방통위 위원회 재적위원은 처음시작이 2인으로 시작하든  5인으로 시작하든 위원회의 상임위원이 5인으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5인이 완성될때까지 추천받지 못하면 아무런 위원회역할을 못하는 행정부의 중앙행정기관이 된다면 그에따른 피해는 국민이 얻게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국회가 추천한 3인이 시작점이 되어야만 위원회가 구성되고 심의.의결을 할수가 있고 그렇지못하면 아무런 일도 할수없는 위원회라면 행정부의 인사권이 크나큰 침해로 아예 일도할수 없는 상태를 법원에 의하여 법해석으로 만들어 내게될것이다.

재적위원또한 국회의 재적의원개념으로 볼수가 없는게 행정부의 권한에 속한 방통위의 업무와 상임위원의 임명을 애초에 2명이든 3명이든 4명이든 5명이든 출발점이 몇명으로 운영을 시작하는가에 따라 판단함이 올바르고 새로운 위원회가 구성된 시작의 상태의 인원기준이라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전에 국회운영방식의 관례는 다 무시해도되고 법대로를 외치며 반대편 인원이 참석하든 말든 싸그리 다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편만으로  심의 의결하는 국회 다수당의 상임위의 의결과 운영방식대한 추천에는 믿음과 신뢰가 가는가? 

행정부의 조직도 국회추천이 당리당략에따른 당파싸움으로 3명이 추천이 안되어 5인 성원이 안되면 아예 방통위 심의.의결은 아예할수 없는 재적의원 개념을 만들어 내는게 강재원 판사의 법원이 국민을 생각하는 자세인가?

이번 결정을 한 판사에 대하여 드는 생각이 삶의 체험같은 프로그램처럼 판사가 국회에 들어가 국민의 복리보다는 자신들이 처한 당의 이익을  더우선하여 핏대를 높이는 당파싸움을 체험해보면 행정부의 중앙행정기관인 방통위조차 그러한 상태로 국회추천이란 변수에 전적으로 방통위를 영구불능상태로 나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것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정권이 바뀌었는데 임기가 끝난 방문진이사조차 방통위가 임명을 못하게 만들어  방통위를 행정부의 소속기관이아니라 국회의 소속기관화인것처럼   추천의 예속화를 지향하는 판단과 법해석을 내놓으려는 판사의  논리적구성과 개념은 그 어떤 이유와 명분을 달아도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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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하지말아야 할것중에 니편내편 상관없이 죄없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만큼 악질인것은 없다. 일반인들이 죄없는 사람에게 징계나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행정력인 사법기관을 소모시키면 무고죄로 처벌을 받는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권력을 가진 집단이라고 이것에 예외를 둔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것이다. 잘못한것이 없는데 탄핵이라는 징계처분을 구하는 그자체가 무고에 해당하기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기각이 나오면  그에 대한 탄핵소추피해자는 고의로 탄핵소추를 제기한  관련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민사상뿐만아니라 형법상의 무고죄로 일반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죄없는 사람을 죄가 있다고  징계할 목적으로 탄핵을 소추하는 자체가 무고이고 이러한 행위가 국회라는 집단이라고 예외라고 규정한  법규정이 없기에  죄없는 사람를 집단의 기분에따라 이러한 절차를 마음대로 할수가 있다면 힘없는 일반인들도 무고죄로 처벌하는 죄자체를 없애는게 공평하다.

국민위에 집단이 있는것아니고  집단이 법적수단을 악용하는 그자체가 악한 행위이기에 이에대한 무고죄의 법적판단과 선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에 대한 선례가 있음에도 의인을 핍박하려고 악의적으로 탄핵소추를 남발하는 행위에 대하여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후 일반법원이 형법상의 무고죄로 처벌받을수 있게 할수있음을 선례를 남기는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방통위원장의 탄핵소추에 대하여  판단을 받을때까지 직무정지를 당하더라도 다른 전분야에 악용하려는 사태에 이르렀기에 이번기회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제대로 받아보고 탄핵에 해당하지도 않음을 알면서도 고의로 무고하려는 집단에 대하여 경종을 울릴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반서민이 생각하는 관점으로  민주당의 발의하는 탄핵소추 그자체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으로 결정받을 가망성이 0.0000001%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많은 법조인을 보유한 다수당이 일반인의 합리적 생각판단에도 미치지 못할정도로 탄핵소추를 남발하는 것은 실수라기보다는 고의라고 생각하기에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죄없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이든 권력이든 제일 나쁜짓거리라고 생각한다. 탄핵소추기각이 뻔한데도 고의로 제기하고 그에대한 아무런 책임의식을 가지려고 하지않는 사람들이 리더들로 유지되는 그러한 국가의 미래는 망해갈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하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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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곡학아세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사사오입이라든지 3년상이니 5년상이니 쟁송논쟁등 국민복리보다는 자신들의 주장이나 편을위하여 교묘하게 룰을 악용하여 만들어 내는 경우로 이러한 세태를 곡학아세라하고 이런부류의 리더들을 경계를 하였다.

이러한 논쟁들의 결과는 나라를 부강하고 발전시킨적은 단한번도 없었고 사화나 당파등을 격화시켜 파국을 만들어내는 결과가  사필귀정으로 나타난것이 역사의 기록이었다.

우리의 삶에있어 법조문이나 규율은 중요한 것이 틀림이 없다.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위반하는 부분들의 법들이 사소한거지만  있을수있는데 자신의 주장이나 편을 위하여 그러한것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곡학아세하여 세상에 아부하는 형태로 행하는것이  국민이나 나라를 올바른 길로 만든적이  없었다.

국민청원동의한 것을 역사의 기록을 남겨두는 이유는 국회조차 이러한 곡학아세형태로 국력을 소모시키고 국회가 앞장서 편가르기를 하는 형태에대한 후세의 교훈을 얻을수 있는 기록이라 생각되어 청원동의후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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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사진은 존재했었고 교과서에도 실렸었는데  어처구니없는 궤변으로 일부 역사가들에 의하여 진본을 궁녀라는 논리로 명성황후사진이 아니라는 왜곡이 되었는데 조금만 역사적 사진들을 비교하고 원본 명성황후사진을 보면 사진속의 사람은 분명한 민비로 불린 명성황후사진이 맞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먼저 사진에 나온 인물을 알려면 배경이 된 의복이나 머리모양도 중요하지만 왕조시대에있어 왕과왕비가 사용하는 의자는 어떠한 경우든 일반궁녀나 신하들이 사용하거나 앉을수 없다는 것이다.

명성황후 사진에 나오는 의자는 서양식의자로 조선시대 대대로 내려온 왕과왕비가 사용한 전통의자는 아니지만 왕과왕비만 사용한 가능한 의자임을 사진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매듭을 묶은 것을 내리는 방식의 의자는 구한말에 일반인들은 사용하지 못했고 왕과왕비만이 사용할수 있었던 궁중물품이었는데 

이사진에서 앉아있는 여인이 왕비가 아닌 궁녀가 이러한 의자에 앉아사진을 찍는 그자체로만으로도 왕과왕비에대한 불경으로 대역죄에 해당하여 참수형에 처해질수있는 일이기에 어떤 궁녀가 기록으로 남기는 사진에 왕과왕비만이 앉을수 있는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을수 있다는 말인가하는 것이다.

이사진에 해당하는 매듭을 내리고 두른 의자를 배경으로하는 고종의 초상화와 사진도 전해지고 있고 이방식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서 구한말 남은 사진은 왕과왕비이외는 없었기에  사진의 여인은 민비라 불리운 명성황후가 분명하고 더불어 순종의 눈매와 이사진속 인물의 눈매는 빼박이라 친모가 아니고서는 얼굴이나 눈매가 완전히 일치하는 이유를 설명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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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등의 정사에 나오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에서 왜곡된 부분들이 있는데 왜이러한 잘못된 전쟁사를 정사에 기록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먼저 고려 목종에 관련된 기록에있어 목종은 효자인것은 분명하나 그의 모후 천추태후의 신분은 고려건국 태조인 왕건의 손녀라는 것인데 여기서 천추태후의 집안은 고려의 호족정치에있어 태조왕건이 왕권을 강화하게해주는 근본토대를 만든 집안이라는 것이다.

고려의 4대 광종까지 왕건의 아들들이 왕위에 올랐는데 5대부터 왕건의 손자들이 왕위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역사적으로 희귀한 사례가 발생하는데 5대  경종의 아내들로 천추태후의 자매가 연이어 왕비에 오르게된다.

천추태후는 경종의 장남인 목종을 낳았고 여동생인 헌정황후는 경종의 사후 왕씨 종친과 불륜으로 사통하여 훗날 대량원군 왕손으로 불리는 현종을 낳았는데 5대 경종이 죽으면 당연히 천추태후의 장남이 왕위를 이어야하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천추태후와 헌정황후의 친오빠가 6대 성종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려초기 왕씨의 왕권강화에 있어 천추태후와 헌정황후 그리고 성종은 같은 형제자매로 고려 왕족이 500년을 집권하게하는 궁극의 토대인 집안을 만들었다고 할수가 있다.

한국 왕조역사에 이러한 자매의 아들들이 차례로 연이어 왕위로 올라간 사례가 없고 고려의 목종과 현종이 유일한 사례였기에 희귀한 왕위계승이었다고 할수가 있었다.

고려사등 정사의 기록에등으로 오늘날에는 고려의 7대인 목종에 이어 등극한  8대인 현종을 세종대왕에 비교하는데 현종이 군주로써 명군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거란과의 전쟁사에있어서는 왜곡되어 기록되어지는 구절들이 있음을 살펴볼수가 있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인 현종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인데, 천추태후 입장에서는 여동생이 낳은 현종은 경종의 아내였던 자신과 자신의 여동생의 정통성에 있어 자신의 아들인 목종이 후사가 없다면 오히려 불륜으로 낳은 여동생의 아들인 현종보다 자신도  김치양과의 사이에 불륜으로 낳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오히려 목종이 후사로 맞다고 생각한게 틀렸다고 볼수가 없었다.

왕조시대에 선대왕의 아내였던 왕비들이 불륜으로 천추태후와 헌정황후 자매가 둘다 아들을 낳았는데 헌정황후는 같은 왕씨와 불륜을 해서 낳았다는 것이고 천추태후는 김씨와 불륜을 해서 낳았다는 성씨 차이일뿐 서열상으로 천추태후가 당대 목종의 어머니이고 여동생보다는 그 위치가 높았기에 자신의 아들인 목종의 후사가 없다면 불륜일지라도 자신이 낳은 또다른 아들을 올리려고 했던 것은 통일신라대 여왕의 전통인 모계가 강하게 이어진 고려초기에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신라가 여왕이 등극하고 후대에 왕위가 이어진다면 여왕의 남편이 조씨이든 윤씨이든 김씨왕조로 여겨져 이어졌는데 신라와 마찬가지로 고려초기인 모계영향력이 강했던 시기에 천추태후의 생각은 오늘날에서  이해가 안될지 모르지만 이상할것도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 강조가 왜 목종은 죽이고 그의 모후인 천추태후는 죽이지 않고 목종사후 21년을 친정인 황보씨가에서  장수하다 편하게 자연사하게 나두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있는데  

천추태후는 왕건의 친손녀이고 고려의 왕씨의 토대인 강건한 호족의 군사력을 보유한 집안의 장녀로 친할아버지가 태조왕건, 친오빠가 성종이었고 ,당대 목종의 어머니였고, 후대 현종의 큰이모였는데 왕씨 왕족을 절멸하여 역성혁명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여자를 죽여서는 고려가 유지될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왕씨왕족을 대표하는 기둥이기에 누가 그것을 뽑을수 있는가 말이다.

어째든 배경은 이러한 시대였는데 현종대에 거란과의 전쟁이 발생하게되는 여기서 서희의 강동6주니 강감찬의 귀주대첩등이 고려사의 정사기록등에 나오게 되는데 문제는 그러한 기록들을 읽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들이 있기에 이부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의문점으로 들어가보면 귀주대첩에 있어 승리의 결정적 요인중 하나로 기록된 병마판관이 이끌고 거란의 후방을 공격한 고려의 기병 1만의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도대체 이해가 할수없는게 고려라면 대장군,장군도 아니고 조선이라면 관찰사 도절제사가아닌 판관이라는 오늘날의 공무원 급수로보면 4급에 해당하는 판관벼슬이 오늘날의 군대로보면 대위나 소령쯤에 해당하는 중대장벼슬을 가진 사람이 고려의 기병 1만명을 이끄는 총사령관이었다는데 이게 말이 안된다.

오늘날의 군대의 직제를 보더라도 1만명의 직속군을 지휘하려는 최소한 별을단 장성급이지 중대장급이 그러한 부대를 이끌고 거란의 후방을 쳤다는게 개소리라는 것이다. 더욱더 믿을수 없는 부분이 우리나라가 제주도에 말의 방목장을 두어 대량의 말을 기를수 있었던 시기가 몽골의 원나라시기이기에 그보다 한참 앞선 거란과의 전투시에 1만의 넘는 말을 구하기 힘들었을뿐아니라 그렇게 귀한 말을 타고 이끄는 부대의 지휘관을 대장군도 아니고 현종이 판관벼슬에게 맡겨서 출전시킨게 맞는냐 하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기술이 문제점을 풀려면 거란의 침입루트나 후에 병자호란,임진왜란등의 전투에서 실마리를 얻을수가 있다. 먼저 왜 북방이민족들의 공격루트는 항상 예외없이 압록강지경만으로 한반도로 진입했느냐이다.

우리나라는 압록강이 아니라 백두산의 두만강지경도 있는데 왜 왜 왜 두만강 지경으로는 한반도의 진입공격루트로 거란은 한번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는가 하는점이다.

여기에 고려사의 정사에 기록된 귀주대첩의 왜곡된 거란과의 전쟁사를 풀열쇠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귀주대첩이 한반도를 지킨 결사의 전투이고 한민족의 자랑인 역사적 대첩은 분명하다. 다만 이과정에 있어 승리의 결정적 요인중 하나로 지목된 고려기병 1만의 정체이다.

소배압의 10만 거란군은 조선의 병자호란시 청나라의 신속기병군으로 삼전도의 치욕을 만들었던  방식의 당대최강의 기병으로 이루어진 전부가 기병대였다는 것이다.

한민족의 전투사는 공성전에 특화되어 물리치는 전투민족이지 드넓은 평야에서 대규모 전투에서 이기는 고대전쟁사는 단한번도 존재하지 않았고 강감찬의 귀주대첩이 유일하다. 유일하다면 뭔가 기존과는 전혀다른 것이 작동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거란기병대의 후방을 때렸다는 고려 기병의 존재였다.

실제 역사속에 있었던 그 기병대의 비밀을 풀어보면 거란과 고려의 귀주대첩시 거란의 후방을 공격한 기병대의 정체는 고구려왕조를 함께 이루었던 숙신또는 말갈로 불리던 백두산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쫄따구 벼슬인 병마판관이 아닌 흑수말갈족 기병이었다는 것이다.

강감찬장군의 이끌었던 보병 20만이 거란의 소배압의 10만 기병대에 넓은 평야에서 그대로 전투가 지속되었다면 우리나라가 수적으로 2배인 전력이고 말의 진로를 방해하는 검차같은 다양한 장비가 준비되어서 그랬다는 잠꼬대같은 소리해봐야 고려의 군대는 거란 기병대에 전멸을 했을것이다.

전멸하지 못하게 거란의 기병의 후방을 친 기병대의 정체는 어디서 왔는가하면 그당시 흑수말갈의 기병인 5만의 병력이 거란의 후방을 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흑수말갈 오늘날에는 여진족이라고 불리는 세력이 고려와 호흥하여 귀주대첩에서 거란을 쳤나는 것이다.

태조왕건의 반거란 정책을 시행한 중요한 요인중 하나가 거란이 고구려의 계승자인 형제국인 발해를 무도하게 멸망시켰다는 것이었는데 이때 발해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우리 한민족과 말갈에 해당하는 여진족이 민족구성으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점이다.

거란과의 전쟁시 고려의 적이 거란이었지만 말갈족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나라를 멸한 원수이기에 공통적인 적으로 대적하는데 이상할것이 전혀없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선의 선조가 의주에서 조금만 더 잡으러 오면 중국으로 도망갈거같아 왜군이 더이상 진군하지 않았다고 엉터리 논리를 펴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은 

그때당시 말갈족인 여진족이 차지한 백두산주변지역은 중원을 삼킨 청나라를 세울 부족들이 막강한 기병군사력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었고 이때 일시적으로 동원가능한 말갈의 기병을 5만으로 임진왜란시 기록에 남아있는데 이들이 참전할수도 있는 상황이 될수도 있었는데 왜군은 이들과의 확전은 막대한 피해만 예상되어 더이상의 전진이 없이 후퇴하고 정유재란시에도 여진족인 만주족이 기병대가 있는 지역으로는 아예 더 북진할 생각을 하지 않게하는 요인이 되었다.

거란과의 평야에서 전투인 귀주대첩에서 거란의 후방을 격파한 기병대는 흑수말갈기병으로 이들이 역사기록에 지휘관급으로 기록되어진 성씨중에는 특이하게도 고씨인 성씨들이 많은데 이들의 정체성은 두가지부류로 자신들을 고구려의 국적으로 생각하는 말갈족과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순수 말갈족으로 구분이 되었는데 고씨들은 아마도 고구려후손들로 생각하는 말갈족계통으로 생각할수가 있는대 발해를 세운 대씨들도 비슷한 성씨들이라 할수가 있다.

거란이후 금나라가 강성해지는데 바로 이들이 고려초기 거란과의 전쟁에서 고려의 막강한 기병대를 가지게하는 후원세력이었다는 점이다. 말갈족이 우리나라와 연합하여 중원세력과 싸운 기록은 고구려와 당태종 이세민의 전투사에도 이들이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군을 공격하여 당태종이 고구려와의 전투시 포로로 잡힌 수만명의 말갈족을 생매장하거나 다죽였다라는 기록이 정사에 남아있을 정도이기에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한 고려나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했던 발해나 말갈족은 우리나라와 외적들의 전투시에 함께싸우는 주요부족이었음 알수가 있다.

뼈아픈점은 이러한 말갈족인 만주족이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상국이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상하우위가 바뀌어 청나라가되어 우리나라와 군신의 관계를 맺게하는 삼전도의 치욕을 만들게했기에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국제사회의 논리를 잘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와 거란의 귀주대첩당시 거란을 전멸의 상황을 만들수있는 대적가능한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강한 기병은 판관나부랭 중대장급이 이끈것이 아니라 그당시 유일한 가능성은

백두산지역에 부족을 이루어 생활하던 말갈족인 5만 정도의 기병이 그당시 즉각적으로 응대가 가능한 병력이었다는 것이다. 거란를 멸망시키는것도 백두산지역의 말갈족인 금나라였던 것만 보아도 그당시 고대사 우리나라와 북방세력이 전투시 단골처럼 함께했던 말갈족이 귀주대첩에서는 아무런 기술이 없다는것은 누가봐도 이상한 점이고, 

고려의 태조왕건이 후백제와의 통일을 위한 일리천에서 벌어진 최대의 전투에서도 최대한 끌어모은 병력이 정사에서 8만정도라고 기술한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는 최대한 끌어모은 추정치가  3만정도였는데 그중에 고려왕건이 후백제를 쳐부술때 흑수말갈의 기병대 참가병력을 1만명정도로 기록하고 있는데 

내전에도 고려초기 흑수말갈이 기병을 1만을 지원해줄 정도면 국제전이 발생했을때 백두산지역에 비산해서 살아가던 흑수말갈부족의 기병대가 얼마나 더 지원이 가능한 상태였는지는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수가 있고 고려가 부족한 실제로 강한 기병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하는것이 틀리지 않다.

좀더 정확하게 살펴보면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에서 거란의 10만기병대를 후방에서 기습할수있고 맞설수있는 그당시 유일한 기병대는 백두산지역의 흑수말갈이 보유한 기병대이고 이들이 고씨성을 가진 예가라는 지휘관에의하여 참가하여 고려군과함께 거란기병대를 후방을 공격하여 전멸시켰다 

이렇게 역사의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것이 엉터리 정사기록보다 더 맞고 왜 이부분을 역사에서는 흑수말갈의 지원을 숨기고 밥풀때기 3개를 단 중대장급인 병마판관이 1만의 기병을 지휘하여 쳤다는 황당무계한 기록을 남겨나는 것이고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이 고대나 현대의 군대계급체나 지휘체계만보더라도 뭔가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것도 더 희귀하다 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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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말이나 단어를 이상하게 적용하면  외국어인 영어나 프랑스어로 부른 노래도 일부분이 왜곡하면 한국어처럼 들리게 곡해를 할수도 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보면 전혀 바이든하고 연결해서

바이든에게 욕설을 한것으로 왜곡시킬 이유가 전혀없는 것인데 어떻게 "승인안해주면 날리믄 쪽팔려서"  이러한 말이 바이든이 들어가게 해석하고 찌라시 방송도 아니고 지상파 공영방송이 "바이든"이라고 교체해서 넣은건지 일반국민으로서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었다. 내귀가 잘못된건지 여러번 저속으로 반복해서 들어봐도 어떠한 경우도 바이든으로 들리지 않았다.

사람을 웃길려고 외국어 팝송이나 노래에서 한국말처럼 들리는 부분을 한국어로 비슷하게 드립쳐 웃기는 경우는 있지만 외국인이라면 모를수도 있다고하지만 한국인이 "날리믄"을 바이든으로 들어 해석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왜곡이고 이것은 특정세력에 아부하는 곡학아세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지상파방송에서 어떤이득을 얻으려고 또는 국민들에게 어떤 코메디쇼를 보여주려고 바이든이라는 단어를 대체해 놓았는지 그 의도를 전혀 이해할수가 없다.

왜곡하고 억지로 꿰맞추는 이러한 짓거리가 언론의 자유라면 그러한 자유는 철퇴를 맞아야한다고 생각한다.보도를 하려면 단어의 사용이 애매하고 다의적으로 들릴수있는 상태라면 사실확인은 발언한 사람에게 직접확인하고 그러한 단어가 맞는지 확인하고 보도하는게 찌라시와 일반 공영방송의 차이라고 할수가 있다.

어떤 단어가 비판하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의 뇌에게는 비슷한 단어가 왜곡하기 좋은 단어로 들리고, 객관적으로 듣는 사람에게는 또 보통사람의 단어로 들리게 되는게 인간의 오류라 할수가 있는데 문제는 애매하게 들리는 단어를 특정한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은 큰 범죄에 해당하는 왜곡이라는 점이다.

분명히 주변의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고 당사자인 외교장관도 그 소리를 들었고 자연스럽게 그 인과관계가 바이든이 아님을 알수가 있는데 일반단어를 특정인으로 대체하여 왜곡시킨것은  사자성어로 "곡학아세"의 전형이고 왜 유독 mbc만 광우병쇼도 그렇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그렇고 보수정권이 잡았을때만 이러한 왜곡을 만들어 내는걸 보면 한번은 실수라고 할수가 있지만 반복되는것은 그 자체의 시스템의 문제일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에서 자신과 반대되는 측을 죽창을 들어야한다는지,또 반대측 국민의 눈치는 전혀 보지않고 꺼리낌없이 즉시 인사나 사법적인 절차로 반대되는 세력에게 보복을 가한 사례는 많다. 보수정권이 성직자도아니고 잘못된 것은 오히려 문재인 정권보다 반대측 여론에 개념치말고 법적보복을 가하는것에 꺼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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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서귀포칠십리 바둑팀이 창단8년만에 정규리그 1위및 챔피언전 우승을 이루어 냈는데 기적이라고해도 믿을만한 바둑 내용으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서귀포칠십리 우승에 mvp는 모든멤버가 다잘했지만 그중에서도 김윤영 프로의 역할이 제일 크기에 수훈갑이라고 할수있는 우승의 주역이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보여준 김윤영프로가 없었다면 통합우승은 불가능했기에 서귀포칠십리 바둑에있어 레전드의 우승기록을 남기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오래동안 우승하지 못한걸 단 2년만에 이루어낸 숨은공신은 좋은 선수를 알아봐 뽑고 그 선수들을 잘 통합하여 이끌어 우승을 만들어낸 지장인 김혜림 감독의 역할이 없었다면 우승도 없었기에 숨은 큰 역할을 했다고 할수가 있다.

서귀포칠십리 바둑팀의 통합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그 주역들은 바둑 역사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승 결승전 바둑내용들을 짧게 표현하면" 모든 바둑이 드라마틱했고, 결과는 행복이었다" 여기서 잠깐 추가하자면 "바둑 우승은 00 이다"에서 유주현 프로가 행복 이라는 단어를 넣었기에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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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높은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작사 작곡의 조국찬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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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총리께서 선견지명으로 하신 "빌어먹을 자식"이 올바른 판단이었음을 보여주는 취임사의 오늘날 현재의 결과.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


기회는 측근먼저 (국민아 불만있냐? 측근하자는 내눈에는 먼지보다 작게보여 ), 

과정은 쇼 (개돼지들은 쇼보며 즐기면 돼~ 쇼의 대가인 원전수출망,훈련기수출망등 나라 미래 수백조 경쟁력의 실패를 따지면 "넌 적폐 세력") , 

결과는 스시집 한끼 16 만원 (내돈 내고 먹는 것도 아닌데 ? 운동 열심히 해서 배고파 완장찼을 때 좀 빌어먹으면 어때서  구내식당 서민코스프레를 좀더 자주해야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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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9월의 첫날에 새까만 까마귀가 구슬픈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그울음이 역사서의 기록으로 대입을 해보면 국가의 앞날을 미리 알리는 소리 예시임을 알수가 있는데

9월에 북한을 방문하는 첫번째 국가수반은 시진핑이든 문재인이든 방문하는 사람은 재임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권좌에서 내려오게 됨을 추측할수가 있는건 동물들의 흉조의 예시가 나라의 멸망이나 왕의 권좌의 변화시에 미리 나타나는 역사서속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시진핑보다 앞서서 문재인이 북한을 9월달에 방문하길, 그게 아니라면 시진핑은 방문하지 않고 문재인이만 첫 방문하는 수반이 될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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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일으킨 전범인 김일성을 평창올림픽의 응원도구로 활용하여 우상화선전에 사용하게 한것은 그자체가 국가를 보위하도록 선서한 헌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에 해당하고 이러한 우상화선전에 장소와 편의를 제공한 최종결정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중요한 책무를 부여한 헌법을 분명하게 위반한 책임이 있다. 

결과론적일지라도 불상사에대한 최종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올림픽에서 합법적 형식으로 전범을 선전하게 만든 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있어 천인공노할 이적행위를 한것이 분명하고 그에따른 책임을 분명하게 져야한다. 일반인의 도덕성으로도 전범을 옹호하는 것은 그자체가 공직자로서의 결격사유에 해당하여 징계를 받을만한 일인데 하물며 그러한 행위를 할수있게 장소를 제공하고 허용한 책임이 최종결정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국민앞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를 해야할 일이고, 헌법위반은 분명하기에 나중에 탄핵이나 내란죄에 있어 참고할만한 김일성 가면응원 역사기록이라고 할수있다. 재임중에 할수없다면 퇴임이후 직권남용으로 충분히 검찰 수사를 통하여 책임을 물을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대북문제에 있어 국민의 동의에 의하지 않고 대통령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할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자체가 국민을 개나 돼지로 생각하고 개몽시켜야할 대상으로 보는 오만한 자세라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생각으로 결정할 생각이면 대통령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전대통령은 혼자서 미국산소고기에 대한 최종결정을 했다는 것으로 정권퇴진 시위가 있었는데 전범인 김일성을 옹호하는 응원도구를 사용하여 우상화선전을 한 그자체는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이기에  건강에대한 문제보다 더 중한 나라의 흥망에 관련한 핵심적인 사항이기에 정권퇴진시위보다 더한 헌법위반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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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중국 국빈방문의 성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국을 위한 빵셔틀담당으로 행동하고 처신했다고 생각하기에 문재인의 별칭을 외교에 있어서는 문셔틀로 붙이려고한다. 

문셔틀이 대한민국의 역사에 있어 기본적으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졌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을 2019년이 100년이라느니 더불어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건국을 일치하려는 역사왜곡을 하려고 하지 못했을 것인데 역사의 구분에 대한 기본도 모르는 인간이 역사를 논하는 것을보고 저분은 역사를 어느나라에서 배운것인지 같은 나라에서 배운 사람인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대한민국의 법통은 역사적으로보면 고조선-삼국시대-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단순화되는데 건국의 개념과 법통의 개념은 같지가 않은 것으로 쉽게 예를들면 왕건이 세운 고려라는 나라는 곧바로 고려가 건국된 것이 아니라 고려의 토대가 되는 궁예의 후고구려 지역과 제도를 그대로 물려받는 연속성에서 고려라는 나라가 건국되었다고해서 건국일이 후고구려가 세워 졌을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이성계의 조선의 건국년도도 마찬가지로 이성계가 실제로 쿠테타를 일으키고 집권세력이 되었던 것은 조선의 건국이전에 이미 고려의 창왕을 폐위시키는  일련의 역사가 진행되었다고 조선의 건국을 그러한 때로부터 이어져 건국일을 정하는 그러한 역사구분은 오천년 한국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면 건국에대한 역사구분도 자신의 마음대로 정의할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자체가 놀라울뿐이다. 

만약에 공화제인 대한민국의 건국일이 1919년이라면 조선이라는 역사에 있어 27대 순종이 죽는 1926년 4월 25일까지도 조선왕조실록이 이어졌는데 물론 한일합병이 1910년에 이루어졌지만 그렇다고 조선왕조실록의 역사기록이 1910년에 멈춘것은 전혀 아니었다. 

한일합병이 있었다고해서 그당시 우리나라 백성들이 순종을 생전에 왕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은적이 없고,1926년 순종이 승하하면서 조선왕조는 공식적으로 멸했다고 역사를 인식함이 역사기록에 부합되는데 1919년을 주장하면 순종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은 뭐가 되며 일제에의하여 왕위에서 강제퇴위되었다고 그당시 우리나라 백성들이 조선의 왕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은 1919년의 3월1일 만세운동처럼 1926년 6월 10일 만세운동이 재현된것을 보더라도 분명하게 인식할수가 있기에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계속 이어지는 1919년을 공화제인 대한민국 건국일로 해버리면 조선왕조실록은 뭐가 되며 일제에 의하여 강제퇴위가 되었다고해도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시기를 공화제 대한민국 건국일이라면 두고두고 분란을 만들어 낼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공화정의 이념에 맞게 우리나라 역사 최초로 국민이 참여한 투표에의하여 성립한 기념일인 1948년 8월 15일로 하는것이 합당하고, 왕조는 태조에 해당하는 사람이 나라를 세우면 왕조에 합당하기에 그에 맞춰서 건국년도를 잡으면 되고, 공화정은 국민이 주인이기에 반만년역사에서 국민의 투표로 인하여 최초로 선출된 정부가 수립된 기념일을 건국일로하는 것이 정치제도의 의미나 역사에 올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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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선언문은 역사속에서 많이 있어왔지만 2017년 11월 6일에 발표된 김무성외 8인이 발표한 "오늘 우리는 보수대통합의 길에 나섭니다."라는 선언문을 읽어보면 

올바른 대한민국의 역사인식에대한 핵심을 잘표현했을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감동적인 명문으로 이러한 선언문을 작성하고 만들어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한데 기본적으로 한민족의 역사에 있어 정통한 사람이 작성했음을 선언문의 내용의 흐름을 보면 어렵지않게 파악을 할수가 있다. 이하" 오늘 우리는 보수대통합의 길에 나섭니다."라는 정당 선언문의 전문을 역사자료로 기록을 해둔다.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하던 72년 전, 나라의 미래는 참으로 어두웠습니다. 식민지의 고통과 연이은 전쟁의 폐허로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국체 보전을 걱정할 때 우리의 선배세대는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선배세대들은 현명하게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나라 이념으로 삼아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적을 이뤄냈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추구한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증명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 발전과정에서 보수 세력은 국가가 나갈 비전을 설정하고, 피와 땀과 눈물로 일하면서 국민과 함께 뛰었습니다. 진보좌파세력이 실체 없는 말과 이념논쟁으로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때, 보수세력은 묵묵히 내일을 만들었습니다.

보수세력은 그러나 지난해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사태를 미연에 막지 못한 잘못으로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고 정권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모든 성취와 영광까지 비판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보수세력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속절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우리는 오늘날 보수세력이 직면한 안타까운 현실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보수세력이 갈등과 분열을 뛰어 넘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하나가 돼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폭주는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대한민국을 혼돈과 나락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외교안보전략의 부재 속에 북핵과 미사일 위협 앞에서도 독사 같은 김정은 정권에 대화를 구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드 배치를 놓고 오락가락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국내 기업들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좌파단체 반미단체들이 ‘진보단체’라는 가면을 쓰고 국가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조롱하고 훼손하는 데도 마냥 손을 놓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과도한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사이비 경제정책입니다.

비난과 비판에만 익숙했던 ‘진짜 같은 가짜’ 즉 사이비 경제학자들이 경제정책의 수장이 되어 경제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말로만 통합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국민을 갈라놓는 갈등과 분열의 정치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서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한풀이 정치를 펼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국정 폭주를 막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보수세력이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보수세력은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국정 운영을 바로잡고 올바른 대안 제시를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보수세력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을 싹틔우기 위해 이제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보수세력의 새로운 세계를 위한 첫 발걸음은 보수대통합을 이뤄내는 일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우리는 헌정 중단이 우려되는 엄중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 보수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바른정당을 창당했습니다. 새로운 보수의 구심점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바른정당은 그러나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보수 분열의 책임만 남았습니다.

보수가 갈라지면서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 폭주와 안보위기 조장을 막지 못하는 참담한 아픔을 겪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보수의 갈등과 분열을 즐기고 있습니다.

보수세력은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작은 생각의 차이나 과거의 허물을 묻고 따지기에는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위중합니다.

이 땅에서 보수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라’고 말씀하시는 데 그러한 목소리를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한 발자국도 미래로 나갈 수 없습니다. 개인과 집단의 아집을 버리고 이제 미래를 바라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폭주와 안보위기 속에서 이제 보수대통합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책무로 인식해야합니다. 우리는 오늘 바른정당을 떠나 보수대통합의 길로 먼저 가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폭주와 안보위기 심화를 막아내기 위해서 모든 보수세력이 하나 되는 대통합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대한민국 보수가 작은 강물로 나뉘지 않고 큰 바다에서 만나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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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스타의 굿바이 생방송이 오늘 오후 10시에 네이버 V앱에서 방송이 된다고 한다.

SISTAR GOOD BYE LIVE 'LONELY'
네이버 브이앱 오늘 오후 10:00



볼수있다는 것이 감동이고 감사하고 역사자료 카테고리에 기록해 둘만한 한국의 걸그룹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그룹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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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크리스마스 오후 8시에 촬영하는 달이 가장 큰 크리스마스 럭키문이 나타난다고하여 2015년 12월 25일 오후8시경에 촬영을 해봤다.

 

 

 

 

 

크리스마스 럭키문을 다시 보려면 대략 20여년이 걸린다고 하기에 못봤다면 이것으로라도 보면서 새해의 소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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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말에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고 하였는데 사도세자가 그러했으니 그의 행실과 성품이 개새끼였기에 조선왕족중에 유일하게 개새끼그림을 그리길 좋아해 작품이라고 후세에 남겨놓은 인물이다. 오늘날의 기준에서도 왜 이 개새끼인 사도세자가 죽어 마땅한지 잘알려져 있지 않아 드라마등을 통하여 미화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적어 놓으려고한다.

 

 

 

 

사도세자는 절대권력자인 후계자였기에 왕조국가에서 아랫사람들을 죽인 것에대한 책임에서는 그리 큰흠은 아니었다.그러나 죽임에는 나름이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 개새끼에게 죽임을 당한 무수한 사람들은 단지 옷이 좀 이상합니다라든지 같은 사소한 말에도 네까짓 게 뭔데 나에게 지적 질이라며 분기탱천하여 그 자리에서 즉시 모가지를 댕강 댕강 시켰다는 것이다.

 

사도세자가 왜 뒤주속에서 9일을 굶어서 죽는 형벌을 당했을가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도세자가 개새끼였기 때문이 그 근원임을 알수가 있다. 사도세자의 배다른 여자형제가 있었는데 사도세자보다 나이는 15살이 위였기에 누나뻘보다 이모뻘에 가까울정도의 나이차였고 이복누나인 이분이 13살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되는분도 13살이었다.

 

이 두분은 오늘날에서 보면 초등생나이에 만나 알콩달콩 자식도없이 서로만을 의지하여 살아갔는데 이복누나가 38세인 어느날 23세인 사도세자가 38살인 매형을 만나 시와 개새끼 그림을 그리며 풍월을 읖조리던중에 매형이 태도가 마음에 안드다고 먹물인 담긴 벼루를 잡아 대가리를 쳐서 죽여버렸는데, 영조의 딸이면서 사도세자에겐 이복누나였던 화순옹주는 38살이 되도록 아이가 안생겨서 오로지 남편만을 의지하며살다가 하루아침에 별거도 아닌 일에 남편이 죽임을 당하자

 

그 억울함을 아버지인 영조에게 아무리 호소해도 영조의 말은 아무리 개새끼같은 짓을 했어도 사위보다야 형제가 우선이 아니겠느냐 너가 인내하라였다. 왕조시대였기에 여자로서 항거할 방법은 소심하게 보름동안을 곡기를 끊고 굶어죽어버렸는데 영조는 이때에도 그래도 딸보다는 아들이라는 생각으로 사도세자에게 제발 정신차리라고 인내한게 그러한 일이있고 4년을 더 기다려 줬지만,

 

자신의 딸인 화순옹주가 굶어죽는 것을 본 영조의 인내기간인 4년동안에 오히려 100여명 더 넘는 사람의 목가지를 댕강시키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들을 낳은 후궁을 때려죽였을뿐만 아니라 잘린 머리를 들고 자신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에게도 자랑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사도세자의 친어머니와 사도세자를 양자로 입적한 영조의 정비조차도 그 개새끼를 살려 후계자로 물려주면 결단코 나라가 망조가 들것이라는 강력한 호소에 그래도 아들인데라는 마음에 영조의 고민은 깊어갔고

 

 

 

여름날 홀로 달빛을 멍하니 보며 며칠간 고민에 고민을 하던 영조가 신하들에게 말하길 내가 아니면, 내가 아니면 과연 누가 저 개새끼를 처리할 수가 있을것인가? 개새끼를 개새끼라고 말하지 않고 나에게 개새끼의 비리를 아랜사람을 무고라고 참수시켜 모른척한 신하들이 모두 역적이다.” 일갈하고는

 

저 개새끼의 합당한 형벌은 인과응보로 자신의 딸인 화순옹주가 굶어죽는 상황에서도 모른척한 것에 대한 회한과 뉘우침에 기인하여 결단에 이르게되어 그 즉시 실행하게하여 결국 사도세자가 굶어 죽게 된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며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했지만 동시에

 

화순옹주에게 열녀문을 내려 할아버지인 영조가 사위나 딸보다는 그래도 아들이 먼저이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굶어죽은 딸에게 내려주길 거부한 것을 바로잡아 조선왕족의 여자중에 유일하게 열녀가 되게한것도 정조였음을 보면 정조의 스타일은 좌우에 치우지지 않는 있는 그대로 보고 평가하고 실행하려던 실사구시의 실용성을 갖춘 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수가 있고

 

열녀문을 받은 화순옹주의 양자로 입적한 사람의 후손에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세한도를 그린 추사 김정희가 나온 것을 보면 세한도에 들어있는 것은 불의에 항거하여 굶어 죽을지라도 자신의 소신을 나타내 보이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인 열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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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쇼트트랙선수들이 우리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훼손하며 장백산화 시켜가는 중국을 향하여 백두산은 우리땅이라는 플래카드로 한민족의 혼을 표현했을때

중국은 백두산이 대한민국의 땅이면 화성도 대한민국 땅이라고 우길 뻔뻔한 민족이라는 논리로 대응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뻔뻔한 민족은 백두산이란 명칭을 중국의 지도나 지명에서 전혀 사용할수 없도록 중국정부가 강제하고 오로지 장백산이라고만 표기하고 사용하도록하는 중국이다.

 

이러한 중국정부의 이중적 태도에 대하여 한국인으로서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르는데 동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이 들어야 당연한 것이다. 왜 1980년대 이전까지 중국에서도 통용되었던 백두산이라는 명칭을 중국에서는 중국정부가 강제하여 표기나 사용을 못하게하는지 그 속뜻이 분명히 있을것이고,

중국이 상투적으로 영역분쟁이 발생했을때 사용하는 고래로부터 그렇게 지명이 불려져 왔다라는 논리를 말한다면 그렇다면 왜 고래로부터 다른이름의 하나로 불려져왔던 백두산이라는 명칭은 유독 강제로 표기나 사용을 못하도록 하느냐는 점이다. 이것은 분명히 대한민국이 말하는 백두산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중국땅 장백산만이 존재한다라는 강압적시각을 주입하고 세뇌시키려는 의도로밖에 볼수없다.

 

고유명사라는 것은 한번 정해지면 국제적으로 그이름을 바꾸는게 쉽지않고 초기에 강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백두산이라는 명칭은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장백산이라는 고유명칭만이 통용되게 되버린다는 점이다. 한국인으로서 백두산이란 명칭은 지켜야할 고유명사이고 국제적으로도 장백산이라고 불리기보다 백두산이라고 불러주길 기원함은 당연함이다.

이러한때에 단지 돈벌이를 위하여 백두산이건 장백산이건 그 명칭이 뭔대수냐로 공인의위치에 있는 사람이 개인의 이득만을 추구한다면,역사에서 올바른 평가를 받을수가 없다. 김수현과 전지현이라는 연예인이 장백산명칭이 표기되는 물광고선전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의 언론기사를 보았는데 

아무리 돈벌이가 좋다고해도 중국정부에서는 엄격하게 금하여 사용도 못하게 하는 백두산이란 명칭의 의도를 그렇게 하찮게 생각하는 얼빠진 혼을 가진 직업의식이라면 광고를 계속하든 뭔짓을 하든 막을수는 없지만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루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는 국가가 나서서 당사자인 연예인뿐아니라 관련 소속사에대하여 대한민국의 의무를 하나도 틀림이 없이 올바르게 잘했는지 광범위한 세무조사를 통해서라도 위법이나 탈법한 사실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들이 장백산물 광고로 거두어들인 이익보다 더한 이미지와 경제적 손실인 벌금과추징뿐 아니라 그에대한 형사처벌까지 가해야 한다고 국민의 한사람으로 생각한다.

백두산이라는 고유명사에 장백산물로 먹칠한 김수현과 전지현 그리고 소속사 키이스트가 강행한 짓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백두산이라는 명칭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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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금액수가 대한민국의 역사기록이 아니라 반상회보에 조차 지명수배가 된 대한민국역사이래 전후후무한 존재이기에 반상회보에 어떠한 기록이 기재되어 배포되었었는지 그 내용을 역사기록에 남겨두고자 한다.이하 반상회보에 기술된 내용들.

 

 

유병언 부자는 왜 검거해야 하나요? 유병언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 해운의 회장으로, 청해진 해운 및 천해지등 법인자금을 횡령 및 조세 포탈한 혐의가 있고, 아들 유대균은 법인자금을 횡령한 혐의가 있습니다.

회사법인 자금횡령과 세월호의 안전관리 부실여부관련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침몰사고 원인이 밝혀져야 하며, 이로 인해 이들의 검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고 후 보복이 염려됩니다. 신고자의 비밀은 보장되나요? 신고자는 철저히 비밀이 보장되며, 사안에 따라 신변보호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유병언부자와 관련하여 신고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국번 없이 112로 신고해주시면 됩니다.

 

유병언부자를 검거에 더 참고할 사항은 어떤 것이 있나요? 유병언 부자는 다른 범죄수배자의 도피행각과는 달리 구원파신도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급빌라나 주택가 등에 은신하며 도피를 하고 있습니다.

평소와 달리 음식배달을 많이 시키거나, 사람출입이 잦은 주택 등을 유심히 관찰하여 수상한 점이 발견될 시에는 신고를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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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고 의로운 행동을 보여준 의인들을 말하며 눈물을 흘릴 때 개인적으로 드는 감정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던 그것하고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같이 눈물이 나오더라.

 

 

우리나라가 의롭고 미래가 밝은 것은 위기때마다 묵묵히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의로운 행동을 보여주는 그러한 분들이 역사이래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자랑스러움에 대한 동질감의 눈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의 호불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눈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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